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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은 무슨 죄를 지었나


입력 2009.05.15 14:34 수정        

<기자수첩>내집마련 서민 꿈 날리고 자식엔 돈받아 집 마련

´결혼 빨리 하고, 직장 빨리 구하는 사회 만들겠다´ 말로만

지난 4월 30일 검찰에 출두하기 위해 대검 청사를 들어서는 노무현 전 대통령.

스물여덟의 노무현은 아들 건호를 얻었다. 1973년 5월의 일이다. 한 가정을 책임지는 가장(家長)이 됐지만 그는 ‘백수’였다. ‘고시생’ 노무현은 마을 건너편 산기슭에 있는 허름한 토담집을 수리해 ‘마옥당(磨玉堂)’이라 이름 붙이고 낮에는 이곳으로 와 법전을 들여다보고 밤이면 부인과 아들이 있는 집으로 향했다.

아들 건호의 원래 이름은 ‘신걸’(이후에 ‘건호’로 개명)이었다. 고시공부에 찌든 노무현에게 아들은 공부의 피로를 말끔히 풀어주는 ‘청량제’와 같았다. 아내 권양숙은 신걸이를 업고 점심을 지어 날랐다.

“아내의 세심한 배려는 말할 것도 없고, 점심을 가지고 올 때면 언제나 따라오는 개구쟁이 신걸이의 재롱이 하루의 긴장과 피로를 깨끗이 잊게 해주어, 나는 침체기를 몰랐고 따로 휴식이 필요 없었다. 애타는 애인들 있으면 결혼들 합시다.”(노무현, <고시계> 75년 7월호 기고문)

밤에 건호는 유난히 울었다. 노무현은 아이가 울면 달래기도 하고 기저귀도 갈아 채웠다. 밤이 늦도록 아내와 정담을 나누며 잠을 덜 자면 이튿날 낮잠을 잤다.(<고시계> 기고)

노무현은 집에서 아들 건호와 스스럼없이 지냈다. 아이는 무럭무럭 자라 고등학생이 됐다.

노무현은 “내 아이들을 성적의 노예가 되도록 내버려 두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그래서 노무현은 아이들이 놀지 않으면 직접 데리고 놀았다. 하지만 건호가 고2가 되니 사정이 달라졌다. 건호는 학교수업 진도를 제대로 따라갈 수 없었다.(노무현 자서전 <여보 나 좀 도와줘>)

우여곡절 끝에 아들 건호는 동국대 화학과에 진학했다. 그런 아들에게 노무현은 이렇게 타이르듯 말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다시 다른 공부를 하고 싶으면 네 나이 40세까지는 책임지마. 정치를 그만둔 뒤라도 돈을 벌어 밀어줄테다.”

노무현은 자신을 똑 닮은 아들 건호에 깊은 애정을 드러냈다. 그는 자서전에서 아들 건호에 대해 “생김새도 목소리도 심지어 한 일(一)자 주름살까지도 나를 닮았다”고 흐뭇해했다.

아들 건호는 군 제대 후 연세대 법대 편입을 이뤄낸다. 민주당 대선후보였던 노무현은 2002년 8월 30일 아들의 연대 졸업식에서 “학벌타파를 얘기하면서도 아들이 대학을 졸업하니 기분이 좋다”며 “나는 대학을 나오지 않았지만 대통령이 되면 아들의 모교를 내 모교로 생각하겠다”고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고졸’인 자신에게 ‘대졸’인 아들은 자랑스러웠다.

아들 건호는 LG전자에 입사했고, 그해 말 노무현은 대통령이 됐다.

여기까지는 여느 가정과 다를 바 없는 부자(父子)간의 애틋한 스토리다. 그런데 노무현의 숱한 자식 사랑 표현 가운데 유독 한 가지 걸리는 부분이 있다.

“네 나이 40까지는 책임지마. 정치를 그만둔 뒤라도 돈을 벌어 밀어 줄 테다.”

그의 이 말이 뇌물수수로 검찰 조사를 받고 있는 노무현 내외를 보며 기자의 머리를 자꾸 맴돈다.

아버지의 이 말을 들은 아들 건호는 든든했을 것이다. 또 한편 세상풍파에 치이다보면 마음이 연약해지고 아버지의 말을 떠올리며 ‘기댈 구석을 찾았을 수도’ 있다.

2006년 다니던 회사를 휴직한 아들 건호는 미국 유학길에 오른다. 대통령 노무현 내외는 이런 아들에게 미안하고 안타까운 마음을 가졌다고 한다.

현재까지 드러난 바로 박 회장이 노무현 일가(一家)에 쏟아 부은 돈은 600만달러를 넘는다. 13일에는 40만달러 추가 수수의혹도 불거졌다.

노무현 내외의 해명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것을 전제로 투자금 성격의 500만달러를 빼면 노무현 내외는 박연차 회장으로부터 직접 받은 140만달러를 아들 건호와 딸 정연의 유학비와 주택구입 비용으로 썼다.

노 전 대통령 측은 “권 여사가 어미로서 도움이 될 만한 것을 찾다보니 집을 구해주자고 생각한 것 같다”고 돈을 받게 된 경위를 설명했다.

노 전 대통령 내외가 마침 집 얘기를 했으니 할 말이 많다.

‘서민 대통령’을 표방했던 노무현은 대통령에 당선된 뒤 대선공약을 뒤집고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에 반대했다. 이때부터 노무현은 사양길을 걸었다. 집값은 연일 폭등했고, 서민들의 ‘내집 마련’은 점점 멀어져 갔다. 노무현은 서민의 꿈을 앗아간 대통령이 됐다.

1973년생인 건호 씨의 올해 나이는 서른일곱. 대졸 취업자 중에서도 소수만이 허락되는 대기업에 입사한 그도 이 땅에서 아파트 한 채 마련하지 못하고 미국으로 갔다. 그리고 거기서 부모가 건넨 부정(不淨)한 돈으로 집을 마련했다.

대통령 노무현의 죄목은 다른 데 있지 않다. 자식사랑이야 누가 뭐라는가. “자식에게 집 한 칸 마련해주고자 하는” 그 심정을 그리도 잘 아는 사람들이 이 땅 서민들은 피눈물나게 해놓고선 ‘제 자식 집 한 칸 마련해 주려고’ 물불 안 가리고 검은 돈을 받아쓴 데 있다.

‘노무현의 사람들’은 그렇게 받은 돈을 자식의 생계비로 썼다며 ‘생계형 뇌물수수’라고 항변하고 있는 모양인데, 이거야말로 노무현을 두 번 죽이는 망발이다. 지지리 궁상도 이런 지지리 궁상이 없다. 못난 사람들이다. 차라리 ‘목에 칼이 들어와도 용처는 못 밝히겠다’고 버티기라도 하지 그랬나.

마흔이 다 돼 가는 제 자식에게는 뇌물로 받은 부정한 돈으로 유학비며 집까지 챙겨주려 하면서 이 땅에서 정당하게 땀 흘리며 한푼 두푼 모아 ‘내집 마련’을 꿈꾸던 서민들의 희망은 앗아가 버린 죄가 더 크다.

대통령 노무현은 재임 당시 “우리 모든 사회제도를 장가 일찍 가고, 시집 일찍 가는, 결혼 일찍 가는 제도로 전부 바꿔줘야 한다”고 말했다.

“결혼 빨리 하기 제도, 직장에 빨리 갈 수 있게 하는 제도, 이런 제도로 바꿔 주지 않으면 경제적으로 다 지체가 된다. 지금 그 계획 세우고 있다. 장가 빨리 보내는 정책, 이런 제도를 개발하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노무현의 이 말은 허언(虛言)이었다. 그는 이런 사회를 말로만 외쳤을 뿐 바꾸려 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퇴임을 앞두고 제 자식 집 마련해줄 돈을 따로 꿍쳤다. 하라는 정치(政治)는 하지 않고 사치(私治)를 했다.

결혼관련 업체들의 조사에 따르면 처녀총각들이 결혼을 망설이는 가장 큰 이유는 경제적인 것이고, 그 경제적인 사유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집 걱정’이다. 그로 인해 억대가 넘는 결혼자금이 필요하다고 하니 이 나라가 제대로 된 나라인가.

노무현은 아들 건호에게 “네 나이 40까지는 책임지마. 정치를 그만둔 뒤에도 돈을 벌어 밀어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노무현의 자식 사랑은 대통령이 되면서 이렇게 바뀌었어야 옳다.

“하루하루 열심히 정당하게 벌면 40까지는 내집 마련을 할 수 있도록 책임지겠소. 정치를 그만둔 뒤 제 자식 놈도 이렇게 해서 경제적으로 자립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겠소.”

“부동산 빼고 꿀릴 것 없다”던 노무현은 그렇게 자신을 망가뜨렸다. 자신이 약속했던 정치와 서민의 기대를 스스로 배반했다.

노무현은 이 땅의 집 없는 서민들이 자신을 동정하고 있는데 대해 정말로 ‘면목이 없어야 한다’.[데일리안 = 김성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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