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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의 눈물 vs 정세균의 눈물


입력 2009.07.28 15:59 수정         이충재 기자 (cjlee@dailian.co.kr)

장외투쟁서 ‘투사형 지도자’로 변신…정, 전략적 한계극복 ´관건´

#1: 2005년 12월 28일 국회에서 열린 한나라당 의원총회. 박근혜 대표가 질끈 눈을 감았다. 굳게 다문 입술은 결연한 의지를 뿜었지만, 눈가엔 눈물이 고였다. 사립학교법 재개정을 둘러싼 장외투쟁을 주도한 박 대표는 “내가 북한 때문에 어머니까지 잃은 사람인데, 그래도 북한에 가서 김정일까지 만났다. 나름대로 남북문제에 대해 넓은 생각을 갖고 있다...”며 끝내 말을 잇지 못했다. 장내는 숙연해졌고, 이어 의원들의 박수가 터져 나왔다. 사학법을 이념 문제로 대응하는 바람에 당의 이미지가 나빠진다는 일각의 반대여론은 한순간 일축됐다. “역시 박근혜다” “공주가 아닌 투사다”는 소리가 들렸다.

#2: 2009년 7월 24일 국회 민주당 당대표실. 정세균 대표는 엿새째 이어진 단식농성에 여윈 모습이었고, 수염은 덥수룩했다. 하지만, 굳게 다문 입술엔 결기가 흘렀다. 미디어관련법 처리를 둘러싼 장외투쟁을 선언한 뒤 의원직 사퇴서를 제출한 정 대표는 국회 현관을 나서다 끝내 눈물을 흘렸다. “언론악법 무효화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국민속으로 직접 들어가겠다”고 비장한 각오를 밝혔다. 정 대표를 에워싼 당직자들도 함께 눈물을 쏟았다. 사즉생 각오로 투쟁에 나서겠다는 결연한 의지의 눈물이다.

미디어관계법을 둘러싼 민주당 정세균 대표의 장외투쟁과 지난 2005년 사립학교법 개정안 처리 당시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의 투쟁은 닮은꼴이다. 제1야당 대표의 눈물로 호소한 결기와 장외로 나가 투쟁의 깃발을 펄럭이는 등 장외투쟁을 벌인 것도 ‘판박이’다.

정 대표는 28일 오후 영등포 당사에서 ‘언론악법 원천무효·민생회복 투쟁위원회’ 발대식을 한뒤 서울 영등포역으로 자리를 옮겨, 미디어법무효 가두 선전전을 벌이는 것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장외투쟁에 돛을 올렸다. 또 정 대표가 직접 위원장을 맡아 100일 동안 소속 의원들과 함께 전국을 돌며 미디어관련법 강행처리와 이명박 정부의 정책을 비판한다는 계획이다.

박 대표는 지난 2005년 12월 12일 “당의 모든 힘을 사학법 무효투쟁에 쏟겠다”면서 “지도부부터 비장한 각오로 임해 달라”고 투쟁의 깃발을 올렸다. 또 이날 이규택 최고위원을 본부장으로 하고 사무총장과 원내수석부대표 등 17명이 참여하는 ‘사학법 무효화 투쟁 및 우리 아이 지키기 운동본부’를 구성했다. 운동본부는 국민과 학부모, 사학단체와 힘을 합쳐 사학법 무효화 투쟁을 펼치겠다고 밝혔다.

2005년 12월 16일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열린 ‘개정사학법 원천무효’ 집회에서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와 강재섭 원내대표 등이 “사학법 날치기 원천 무효”를 외치고 있다.(자료사진)

‘눈물’로 돌파한 당내 걸림돌…박근혜 강력한 리더십 확인

당내 ‘걸림돌’에 투쟁동력이 흔들린 상황을 맞은 것도 대응방법도 크게 다르지 않다. 두 대표 모두 당내 위기 상황을 ‘눈물의 리더십’으로 돌파하려 했다. 다만, 그 결과는 차이가 크다.

정 대표는 강경한 투쟁을 선언하며, 섣불리 꺼낸 ‘의원직 총사퇴’ 카드에 당내 투쟁동력에 제동이 걸렸다. 의원직 사퇴 문제를 두고 의원총회만 수 차례 열렸고, 갑론을박이 오가며 진통을 겪어야 했다. “‘정치쇼’로 비칠 수 있다”는 반대여론과 “진정성을 보이기 위해 전원 사퇴를 선언해야 한다”는 강경론이 맞섰다.

더욱이 원내외 병행투쟁 전략이 의원직 사퇴와는 논리적으로 모순인데다, 김형오 국회의장마저 사퇴서를 처리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혀, 결국 ‘총사퇴 카드’는 물거품이 될 전망이다. 정 대표가 지난 24일 김 의장에게 사퇴서를 제출한 것이 그나마 ‘진정성’을 확인할 수 있는 제스처였다. 그는 사퇴서를 제출한 뒤 눈물을 보이며 투쟁의 ‘불씨’를 살렸다.

사학법 논란 당시 박 대표는 사학법을 이념 문제로 대응해 당의 이미지가 나빠진다는 장외투쟁 반대 여론이 일자 의원총회를 열어 “우리가 지금 가는 길이 옳은 길이기 때문에 나중에 부끄럽지 않을 것이고, 역사의 옳은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눈물로 호소한 박 대표의 연설에 이후 투쟁의 강도는 한층 격상됐고, 당내 반대 목소리는 자취를 감췄다. 장외투쟁 초기에는 머뭇거리던 의원들도 박 대표를 중심으로 한데 뭉쳤다. ‘박근혜의 리더십’을 다시한번 확인한 눈물이었다.

25일 오후 서울역 광장에서 야4당과 시민사회단체가 가진 ´언론악법 원천무효 국민선언 촛불문화제´에서 진보신당 노회찬 대표(왼쪽부터), 민주노동당 강기갑 대표, 민주당 정세균 대표, 창조

‘투사’로 거듭난 제1야당대표…‘잃어버린 야성 되찾아’

아울러 평소 온화한 성격의 두 정치인이 강경한 목소리를 낸 것도 비슷하다.

정 대표는 지난 22일 미디어관련법 국회본회의 통과 직후 “모든 것을 걸고 싸우자”며 사즉생 각오를 천명했다. 그는 또 28일 ‘언론악법 원천무효 및 민생회복 투쟁위원회’ 1차회의에서 “투쟁을 시작했고, 강도 높고 성심성의껏 투쟁을 지속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있다”고 전의를 다졌다. 평소 정 대표는 ‘미스터 스마일’로 불리며, 온건 합리주의자로 평가됐지만, 이번 장외투쟁을 통해 ‘투사’로 거듭난 모습이다.

박 대표도 사학법 투쟁을 통해 제1야당의 잃어버린 ‘야성’을 찾는데 선봉에 섰다. 박 대표는 장외투쟁이 시작된 후 “끝까지 버텨내야 한다”, “우리의 뜻이 전달될 때까지 끝까지 투쟁하겠다”며 소속 의원을 독려했다. 12월 27일 대구에서 열린 장외집회에선 “지금 나라가 망해 가는데 이것을 막지 못하면 야당과 야당 대표가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당시 박 대표는 기존의 여성스럽고, 감성적인 이미지를 벗고, ‘투쟁하는 야당지도자’상을 확립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충재 기자 (cjlee@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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