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오련은 1500m 경기에서도 금메달을 따내며 대회 2관왕에 올랐고 이후 그의 특이한 몸 풀기 동작은 수영선수들 사이에서 인기 있는 준비 운동이 됐다.
‘아시아의 물개’로 명성을 떨친 조오련(57) 씨가 4일 심장마비로 타계했다.
죽기 전까지도 아름다운 도전을 멈추지 않았던 그는 국민들에게 용기를 준 ‘한국 수영계의 희망’이었다.
오로지 수영을 위해 고등학교 1학년 때 서울로 혼자 올라온 일부터 1978년 방콕 아시안게임에서 마지막 동메달을 획득하며 은퇴하기까지 굴곡 많은 그의 삶은 회자되는 일화도 많다. 그 잊지 못할 추억들을 찾아봤다.
YMCA 수영장에서 생긴 일
수영선수가 되기로 결심한 조오련은 해남고 1학년인 1968년 말 자퇴서를 내고 무작정 상경했다.
조오련은 먹여 주고 재워준다는 조건으로 YMCA 맞은편 간판집에 취직해 끼니를 해결했다. 그러던 중 손님들은 구두를 닦아오라며 푼돈을 줬고 그는 “내가 더 싼 값으로 닦아 주겠다”고 설득해 수영장에 다닐 돈을 만들었다.
처음 실내 수영을 경험한 조오련은 중동고 야간 수영부 학생들의 텃세에 어려움을 겪었다. 팔꿈치로 얼굴을 맞는 것은 예사였고 괴롭힘이 극에 달했다.
결국 그는 어느 날 뱀을 한 마리 사 가지고 왔고 중동고 수영부 스물 명이 보는 앞에서 뱀을 질근질근 씹기 시작했다. 그런 다음 제일 괴롭힌 아이의 뒷통수를 물어뜯었다. 때마침 죽겠다며 날 뛰던 아이를 병원으로 데려간 사람은 박태환(20·단국대)을 가르쳤던 박석기 코치였다.
조오련만의 몸 풀기
조오련이 30여년 전인 1970년 방콕 아시안 게임 자유형 400m 경기에 출전했을 당시 다른 선수들은 처음 보는 한국에서 온 선수를 보고 비웃었다. 가볍게 몸을 풀며 준비하던 선수들에게 그의 준비운동 동작은 너무나 어설퍼 보이고 우스꽝스러웠기 때문.
천부적인 수영실력을 갖고 있던 조오련은 체계적으로 훈련을 받아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수영을 하기 전 늘 하던 투박한 동작으로 몸을 풀었고 다른 선수들은 모두 그를 신기해하면서 비웃었던 것.
경기가 시작되자 조오련은 누구보다 힘차게 물살을 가르며 결승점에 가장 빨리 도착했다. 경기장의 관중들은 일제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준비운동 하나 제대로 할 줄 모르는 무명 선수가 우승후보였던 일본 선수를 누르고 당당히 금메달을 차지한 것.
이튿날 1500m 경기에 조오련이 출전했을 때 수영 경기장에 모인 관중들은 특이한 광경에 또 한 번 웃음을 터뜨렸다. 400m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던 한국 선수가 계속해서 촌스러운 동작으로 몸을 푸는 동안, 다른 선수들도 힐끔힐끔 곁눈질을 하면서 그의 준비운동을 따라하고 있었던 것이다.
조오련은 1500m 경기에서도 금메달을 따내며 대회 2관왕에 올랐고 이후 그의 특이한 몸 풀기 동작은 수영선수들 사이에서 인기 있는 준비 운동이 됐다는 얘기가 있다.
호텔 복도에서 수영복 입고 사진 찍기까지
조오련은 2007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피겨스케이트는 생방송도 하던데 수영도 방송에서 관심을 가져줘야지, 한 다음에 뒷북치면 뭐하냐”며 생중계를 하지 않은 방송을 꾸짖기도 했다.
당시 KBS는 박태환이 출전한 2007년 멜버른 세계선수권대회의 중계권을 갖고 있음에도 중계를 하지 않았고 네티즌들의 호된 질타를 받은 바 있다.
이어 "나도 박태환 선수와 비슷하게 1970년 방콕 아시안게임 시절에는 국내 언론이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며 ”400m에 출전할 때는 기자들이 아무도 안와 신문에 쓸 사진이 없었는데 한참 뒤에 기자들이 와서 호텔 숙소 복도에서 수영복을 입고 사진을 찍었다“고 씁쓸한 비화를 공개하기도 했다.
아시아를 제패했던 37년 전이나 박태환이 세계를 제패한 때나 언론은 변한 게 없어 보인다는 쓴소리였다. 조오련의 쓴소리를 들었을까. 박태환은 지금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언론의 관심을 받고 있는 중이다.[데일리안 = 이광영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