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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훈 "맞짱토론 거부, 무상급식 허구성 때문"


입력 2010.12.09 09:04 수정        

<인터뷰>"굳이 전면시행만 고집하는건 정치적 목적의 선전전 불과"

"보편적 복지 구호에 담긴 불편한 진실을 알리는데 전력을 다할것"

오세훈 서울시장. 오세훈 서울시장.

“평소 이미지와 배치되는 정치를 하는 게 당장은 손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책임있는 정치인이라면, 나라의 미래를 걱정하는 진정한 정치인이라면 지금 나서지 않았다간 평생 후회하고 괴로울 것 같았습니다.”

정치인에게 유권자의 선택만큼 무섭고 강력한 것은 없다. 유권자의 선택을 받았다는 것은, 그리고 높은 득표율을 기록했다는 것은, 당선 여부를 떠나 하나의 훈장이고 영광이 된다. 그런 의미에서 오세훈 서울시장은 강력한 무기를 가진 셈이다.

그러나 최근 6개월 간 오 시장은 자신의 의지를 관철하지 못했다. 오 시장이 ‘선택’을 받은 것은 비단 젊고 잘생겼다는, 나이와 외모의 문제가 아니었다. 디자인 개념을 도입해 네모 반듯한 도심이 다양하고 생생한 표정으로 바뀐 것에 대한 믿음 때문이었다. 눈에 두드러지진 않지만 꾸준한 변화에 대한 기대였다. 그럼에도 오 시장은 여소야대가 된 시의회로 인해 자신의 뜻을 꺾어야 했다. 오 시장의 역점사업들은 제동이 걸렸고 친환경 무상급식, 서울광장 개방 등 선거 당시 전선을 형성했던 현안들로 압박했다.

7일 <데일리안>과 만난 오 시장의 얼굴은 굳어 있었다. 때때로 ‘허허’라고 웃었지만 공허했다. “늘 바른 길을 가야 되지만 최근 1년의 행보가 있기 전까진 숨어 있는 사연이 많다”고 해명을 자청한 오 시장의 말끝에는 한숨이 한 자락 배어 있었다.

오세훈 서울시장. 오세훈 서울시장.
오 시장은 최근 시의회의 일방적인 무상급식 조례안 통과에 대해 시정질의를 거부하고 연가에 들어가면서 강경하게 대응했다. ‘좀더 대화를 하지 그러느냐’ ‘시의회와 그렇게 대립각을 세워서야 되겠느냐’는 주위의 만류와 우려에도 오 시장은 ‘물러설 수 없다’는 결연한 입장을 밝혔다. 평소의 ‘스마트한’ 이미지와 다른 오 시장의 행보는, 그러나 결코 정치적 계산이 깔린 것이 아니었다. 17대 총선 직전, 정치개혁을 요구하며 스스로 기득권을 포기하고 불출마를 선언했던 소신과 원칙이 다시 재연된 것 뿐이었다.

“제 의사과 관계없이 최근 저의 행보를 두고 이런저런 정치적 해석이 나오고 있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무상급식만큼은 정말 원칙을 세우고 싶었습니다.”

오 시장은 “이같은 망국적 복지 포퓰리즘, 무차별적인 복지를 무리하게 추진하는데 실상이 알려지지 않고 있다”며 “보편적 복지라고 포장하는 걸 용납할 수 없었다. 그게 책임있는 정치인의 일이라고 생각했다”고 힘주어 말했다.

오 시장은 무상급식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님을 강조했다. 다만 수혜대상을 굳이 소득수준과 관계없이 모든 초등학생, 중학생으로 돌려야 하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나이에 맞는 발육을 보장하기 위한 질과 양이 담보되지 않는 무상급식이 과연 수혜자들에게 얼마만큼의 만족을 줄 수 있을까라는 지적이다.

“서울시교육청이 교사들 봉급이나 학교 시설유지 및 보수 등 고정된 항목 외에 쓸 수 있는 예산이 8000억원입니다. 이걸 갖고 교육 컨텐츠를 개발하고 질을 향상시키는 거지요. 그런데 초·중학교 전체 무상급식에 필요한 예산만 4000억원입니다. 공교육을 강화하자면서 쓸 수 있는 예산의 절반을 급식에 사용한다면 어느 학부모가 동의하겠습니까?”

오 시장은 “가정집 부엌 수준의 조리실을 개선하고 급식 보조원과 조리 종사원 등의 수를 늘리는 데에도 최소 6000억원 이상이 들 것”이라며 “그런데 한 끼에 2500원도 채 되지 않는 돈을 책정해놓았으니, 급식의 질을 보장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한정된 교육예산에서 우선돼야 할 것은 차상위계층에 대한 지원, 그리고 교육컨텐츠를 개발하고 학교 폭력을 줄이고 아이들 등하굣길 안전을 책임질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오세훈 서울시장. 오세훈 서울시장.
“현장에서 학부모들을 만나면 ‘아이 안전’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제일 많다”고 말한 오 시장은 “그래도 내년도 예산에 470여억원을 아이들 먹거리 등에 편성한 것은 무상급식이 필요한 계층에게 지원을 늘리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다. 결코 ‘서민을 위한 무상급식’을 반대하는 게 아니다”고 강조했다.

내년부터 시는 소득수준에 따라 올해 소득 하위 11%에서 16%로 확대하는 데 291억원을 배정한 상태다.

오 시장은 “‘소득 수준에 따라 무상급식’을 제안했지만 전면 실시라는 요구에 따라 결국 민관협의체 구성에도 참여했다”며 “1+2+3 혹은 2+2+2의 순차적 실시를 제안했지만 시의회는 조례안을 반영시켜야 한다는 입장이니, 어떤 대화도 가능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시정질의 거부와 시정협의 중단. 극단의 선택으로 비쳐쳤지만 “막바지에 막바지로 몰린 선택”이라는 설명이었다.

시의회와 시의 평행선은 이미 예고된 것이었다. 시의회의 4분의 3을 차지한 민주당측은 개원 전부터 오 시장의 리더십을 ‘독선’ ‘아집’ ‘절대권력’ 등으로 규정하며 ‘이를 견제하고 낮은 자세로 대화와 상생에 응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파행의 전주곡이 흘렀어도, 마찰음은 생각보다 컸다.

시의회는 이날 오전 시정질의를 거부한 시에 대해 ‘침묵회의’라는 이름으로 맞불을 놓았다. 시의원들의 호출에 불려나간 실국장급 간부들은 꼼짝없이 손발이 묶여야 했다. 며칠째 계속된 침묵회의에 볼멘소리가 나왔지만 별다른 방도는 없었다. 오 시장이 “자세한 내용을 아시면 오세훈의 인내심이 한계를 넘어섰구나 하실 것”이라고 말할 정도 양측의 갈등을 극에 달했다.

“등원도 하기 전에 예산이 확보돼 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양화대교 사업에 대해 중단하라고 요구했습니다. 공사 중지에 따른 손해가 상당하기 때문에 상식선에서 생각해봐도 납득되지 않는 요구였습니다. 그래도 공존과 대화를 위해 대립국면만은 피하자는 심정에서 대승적 결단을 내려 공사를 중단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이렇게 되니 답답합니다.”

오세훈 서울시장. 오세훈 서울시장.
오 시장은 “시의회와의 협조체제를 만들기 위해 최대한 낮은 자세로 대화를 위해 노력했다. 심지어 상임위별 그룹별 면담에 회식까지 제안하고 필요 이상으로 충분히 설명을 했다”며 “시각차를 좁히기 위해 스킨십을 하려 했지만 그런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됐다”고 말했다.

시의원 가운데 일부는 오 시장에게 ‘조례안과 다른 생각이라면 재의를 요구하고, 시의회가 다시 재의결하면 대법원에 제소하면 될 일을 지나치게 나갔다’고 비난했지만 오 시장은 확고부동했다.

오 시장은 “교육감이 할 일을 서울시장에 전가하고 무상급식을 강제하는 위법적 조례를 수용하라니, 그럴 수 없었다”고 강조했다. “이런 일이 일년에 수십번씩 반복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좌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오 시장은 “재의요구를 하거나 대법원에 제소하면 된다니, 무책임한 말이 아니냐”고 지적했다. 시와 시의회의 소모적 공방전으로 행정공백이 생기는 것을 우려한 것이다. 서울광장 조례안 역시 시의 재의요구에 시의회는 재의결로 대응했다. ‘상생과 대화’를 강조하던 시의회는 입장이 다른 시의 요청을 외면했다.

혹자는 오 시장이 '민주당의 프레임에 걸려들었다‘고 평가한다. 오 시장도 그런 것을 알고 있었다. 민주당측의 정치공세에 밀려 막무가내의 고집으로 보일 우려도 다분했다. 그럼에도 “정략적 유불리를 계산할 새도 없이” 오 시장은 결정을 내렸다.

“어떤 시의원분이 ‘오 시장이 받자니 한나라당의 정체성과 어긋나고 받지 않자니 개인적 정치적 소신과 어긋나기 때문에 딜레마에 빠질 것’이라고 단언하는 것을 보고 기가 막혔습니다. ‘무상급식은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 찬성한다’ ‘아이들 밥 한끼 눈치보지 않고 먹게 한다’ 등 무상급식의 이미지는 굉장히 강합니다. 어느 정치인이 굳이 나서서 인색하게 보이려 하겠습니까. 그래도 복지 포퓰리즘에 동의할 순 없었습니다.”

오 시장은 “왜 지금 (시의회가) 무상급식 전면 시행을 들고 나왔는지 시기가 미묘하다”고 말했다. 2012년 총선과 대선을 앞둔 상황에서 무상급식은 표를 의식한 정략적 의도가 다분하다는 지적. 더욱이 내년이면 무상급식 전면 실시의 최대 논거였던 ‘낙인감’ 문제가 해결되는 마당에 올해 무상급식을 계속 지속시키기 위한 ‘유도체’가 필요했다는 게 오 시장의 생각이다. 결국 진통과 반발, 비판 등에도 무상급식 조례안을 통과시킨 것은 이러한 생각들이 작용했다는 얘기다.

오 시장은 “내년부터 학교에서 무상급식 지원 대상자인지 아닌지 전혀 알 수 없게 시스템이 개편된다”며 “동 주민자치센터에서 신청을 받게 돼 부주의한 일부 교사들에 의한 아이들의 상처를 덜어줄 수 있다. 그걸 아니까 전면시행해야 한다고 밀어붙이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결론적으로 “전체 예산의 0.3%만 투자하면 된다”는 야당의 선전전(propaganda)에 휘말려 토론도 고민도 원칙도 없이 ‘무작정’ 무상급식을 하자는데 동의할 수 없었다는 말이다. 서울시정을 책임지는 사람으로서 “올해야 건설 예산을 깎는다 해도 내년부터 깎을 예산이 없어 서민층과 중산층의 세금이 오를 것이 뻔한데 당장의 무상급식이라는 결과물에 찬성할 수 없었다”는 것.

그래서 오 시장은 “스스로 총대를 멨다”고 했다. “서울이 무너지면 무상급식 논의가 전국으로 확산되고, 포퓰리즘적 복지 공약이 계속될 것이라는 걱정이 앞섰다”면서 “서울이 분수령이란 생각”이라고 강조했다.

오세훈 서울시장. 오세훈 서울시장.

도의회 의석을 한나라당이 3분의 1+1석을 가진 경기도와는 다르게 서울은 재의요구가 통하지 않는 의석구조다. 더욱이 서울이 지닌 상징적 의미와 파급력을 생각하면 서울에서의 무상급식 전면 실시는 전국적 이슈로 확산될 것이라는 게 오 시장의 판단이다.

오 시장은 “큰 틀에서 무상급식의 허구성을 알리는 데 최선을 다하는 한편, 대화의 물꼬는 열어두겠다”고 했다. 곽노현 시교육감과 시의회 등 여러 교육 주체들이 참여하는 TV 공개토론과 함께 교육정책 서면설명회 등을 제안한 것은 이같은 입장을 보여주는 것이다.

오 시장은 “시의회와 곽 교육감이 내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는 자체가 본인들의 논리적 허구성을 드러내고 무상급식이 가진 시급성이 떨어지는 것”이라며 “자세한 사정을 알리고 어떤 선택이 바람직한지는 시민들께 물어야 한다”고 말했다.

“시의회의 말처럼 본회의장에서 말할 수도 있겠죠. 그러나 일방적인 주장에 대해 답변 기회조차 주지 않고 ‘서면으로 대체하라’는 식인데 그런 대화라면 의미가 없지 않겠습니까. 모두가 진지하게 고민하고 판단할 중요한 과제입니다. 당의정처럼 설탕을 살짝 발라 입맛을 돋우는 선전구호 뒤에는 세금이 오르고 가계부담이 늘어나는 현실이 있음을 저는 알리고 싶었을 따름입니다. 설사 그것이 불편한 진실이라도, 그리고 전략적으로 불리해도 계속 알리겠습니다. 모든 판단은 시민들께서 해주시겠죠.”[데일리안 = 대담 이종근 편집국장/ 정리 변윤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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