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헌식 칼럼>무조건적인 문제화, 예술을 죽인다
영화 <트랜스포머3>에서 당연히 여주인공으로 등장하리라 생각했던 메간 폭스는 볼 수 없었다. 이유는 메간 폭스가 말 한마디를 잘못했기 때문이라고 알려졌다. 이는 시사회장에서 스티븐 스필버그가 밝혀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이는 그간 다른 작품을 위해 <트랜스포머3>에 출연하지 않는다고 밝힌 메간 폭스의 인터뷰 내용과는 배치된다.
스필버그의 말에 따르면 메간 폭스는 자진하차가 아니라 퇴출당한 것이 된다. 그렇다면 메간 폭스는 도대체 무슨 말을 했기 때문인가. 메간 폭스는 마이클 베이를 가리켜 촬영장에서는 히틀러가 되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 말에 크게 분노한 것은 마이클 베이 감독이 아니라 스티븐 스필버그였다. 그가 이 영화의 제작자이기 때문이었을까.
정작 스티븐 스필버그가 그녀의 말에 분노를 표하고 그녀를 퇴출시키는 행위를 한 이유는 유태인이기 때문이다. <쉰들러 리스트>와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는 세계 2차대전 당시의 나치 만행이 담겨 있다. 사실 할리우드의 많은 영화 제작에 미국의 유태인 자본이 뒷받침이 되어 왔다. 자, 여기에서 스티븐 스필버그의 행동은 정말 옳게만 볼 수 있는가하는 문제가 생긴다.
1996년 레바논 남부의 카나마을에 이스라엘 폭격이 있었다. 이 포격으로 무고한 사람들 100명이 사망하기에 이른다. 이 사건을 대하는 이스라엘 언론은 " 우리는 면책받을 수 있다. 우리에게는 홀로코스트 박물관이 있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아랍의 인권운동가들을 탄압하는 이스라엘은 항상 자신들이 박해받은 민족임을 내세워 다른 민족들에 대한 전쟁과 폭력을 정당화했다. 특히 2차세계대전 당시 나치가 자행한 유태인 대학살을 하나의 커다란 명분으로 삼았다.
노르만 핀겔슈타인(Norman Finkelstein)은 ´홀로코스트 산업´이라는 책에서 유태인들이 어떻게 나치의 유태인 대학살을 상품화했는지 적었다. 그는 일련의 이런 주장과 저작 활동 때문에 자신이 재직하던 뉴욕대학에서 떠나야 했다. 미국을 지배하는 유대계의 압력을 학교 측에서 받았기 때문이다. 그는 어떤 주장을 했기에 10여년을 재직했던 학교에서 떠나야 했던 것일까.
그는 홀로코스트 즉, 대학살을 근거로 자신들의 사적인 이익을 채우는 유태인들의 행동을 비판했다. 그들은 유태인의 희생을 명분 삼아 막대한 배상금이나 지원금을 가로채기도 했고, 세계패권적인 행동을 정당화 했다. 다른 나라의 내정에 간섭하면서 나치와 같은 세력의 등장을 막아야한다는 논리를 내세우기도 했다. 이러한 점은 별다른 피해를 직접적으로 보지 않은 미국 유태인들에게 드러났다. 사실상 그들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럽의 유태인들에게 결정적인 지원을 하지도 않았다. 희생의 과실을 그들이 따 간 것이다. 특히 다른 나라들을 나치에 비유하면서 세계적으로 각국의 내정에 간섭하기도 했다.
홀로코스트 상품화는 나치가 유태인들을 학살할 때 왜 유럽 사람들 특히 독일인들이 그들을 싫어하게 되었는지는 지적하지 않는다. 그들 대한 나치의 학살은 잘못되었지만, 홀로코스트 상품화는 유태인이 그들에게 많은 잘못을 했다는 사실을 묻어 버렸다.
나치와 히틀러라는 단어는 상대방의 행동을 쉽게 부정적으로 규정하는데 빈번하게 사용되었다. 특히 비판적 지식인임을 내세우는 이들은 작은 집단적인 대중의 행동도 나치의 행동과 쉽게 동일시했다. 그들은 관계없는 행동들을 광신적 애국주의, 즉 쇼비니즘으로 쉽게 규정하면서 자신의 사상적 진보성을 강조하며 매체를 점령했다. 거리의 월드컵 응원전도 이러한 행위로 매도되었다. 디워논쟁에서도 마찬가지의 단어가 나왔다. 아니 유태인도 아닌데도 그 세세한 맥락을 생각하지도 않고 견강부회하여 집단적 행동은 모두 쇼비니즘으로 연결시킨다. 이러한 행위들은 지식인의 홀로코스트 상품화의 한 유형을 이루는 것이었다.
임재범이 나치 장교 복장으로 퍼포먼스를 한 것에 대해서 논란이 많다. 임재범의 의도는 나치에 대한 비판을 넘어서 전체주의, 획일성, 부자유에 대한 탈출 갈망을 의미한 것이다. 이 사례는 스티븐 스필버그의 메간 폭스 퇴출과도 비교할 수 있다. 사실 스티븐 스필버그가 메간 폭스를 퇴출한 것은 오버다. 자신이 제작하고 있는 영화의 연출이 히틀러 방식으로 만들어지고 있다는 지적은 불쾌할 수 있다. 그러나 그의 행동은 유태주의 혹은 유태인 희생자 의식을 강화하기 위한 셈법인 것이다. 홀로코스트 산업과 연관되어 있다.
임재범에 대한 비판은 홀로코스트를 산업화하여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는 이들이 나치와 히틀러와 관련된 것들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을 떠올리게 만든다. 지식인들은 나치와 히틀러를 언급하면서 자신들의 진보적인 가치를 드러내기에 바빴다. 사실 진보적이라는 단어가 무색하게 개인문화주의자들은 집단문화나 민족의식을 쇼비니즘과 연결시켜 버렸다.
나치장교의 복장을 입고 나온 임재범의 퍼포먼스는 나치즘과 관련성이 없다. 이에 대한 비판들은 마치 스티븐 스필버그가 메간폭스를 퇴출할 때의 논리와 같다. 오히려 그것보다 더 심하다. 마이클 베이 감독을 히틀러와 같다고 표현한 것은 실제 그런지 메간 폭스의 개인적인 주관적 감정인지 알 수가 없다. 임재범은 분명 나치복장을 통해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했다. 나치복장은 차용이미지에 불과하다.
다만 그 나치 복장을 마초주의 관점에서 비주얼한 효과를 위해서 차용한 측면이 없는 것은 아니다. 나치의 유니폼이 멋있는 것은 사실이며 이는 나치군의 자긍심을 돋우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한 면에서 임재범의 쇼맨십에 대한 비판은 일정 정도 가할 시점은 되었다. 무엇보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에도 나치군들의 유니폼은 멋지게 등장한다. 문제는 주제의식이다. 예술은 그것이 더 중요하다.
글/김헌식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