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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백일, 마적과 싸웠지 독립군 토벌 안했다"


입력 2011.07.22 18:54 수정         조성완 기자 (csw44@naver.com)

<직격인터뷰>김 장군 동상 세운 흥남철수기념사업회 황덕호 회장

"일부 시민단체 동상 훼손 그대로 두고 국민에 바른 사실 알리겠다"

21일 경남 거제시 포로수용소 유적공원에 세워진 뒤 친일 행적을 둘러싼 논란에 휩싸인 고 김백일 장군의 동상에 차양막과 쇠사슬이 감겨 있다. 왼쪽은 흥남철수작전기념사업회가 흥남철수작전 당시 미군 아몬드 장군을 설득해 피란민을 함대에 승선할 수 있게 한 김 장군의 공을 기리기 위해 동상을 세웠을 당시 모습. 21일 경남 거제시 포로수용소 유적공원에 세워진 뒤 친일 행적을 둘러싼 논란에 휩싸인 고 김백일 장군의 동상에 차양막과 쇠사슬이 감겨 있다. 왼쪽은 흥남철수작전기념사업회가 흥남철수작전 당시 미군 아몬드 장군을 설득해 피란민을 함대에 승선할 수 있게 한 김 장군의 공을 기리기 위해 동상을 세웠을 당시 모습.

"나의 어깨에 달린 이 별은 지금 흥남부두에 있는 30만 명이 달아준 것이다. 난 저 사람들을 도외시 할 수 없다. 저 사람들을 여기에 두면 적들에게 학살당할 것이 뻔한데 어찌 버리고 가겠나. 한국군이 탈 배가 있으면 거기에 동포들을 태워달라. 우리는 여기서 방어하다 전사하겠다."

흥남철수작전 당시 김백일 장군(1917∼1951년)이 북한동포 10만여 명을 피란시키기 위해 미 10군단장 아몬드(Edward M. Almond) 장군에게 했던 말이다.

김백일 장군은 6·25남침 때 반격전에서 38선을 맨 먼저 돌파한 육군 제1군단장으로 동해안전선의 38선을 돌파, 쾌속으로 원산과 청진을 지나 혜산진까지 북상했다. 흥남철수작전에서는 10만명의 피란민을 해상수송으로 구출했고, 1951년 3월 중공군 공세를 물리치고 재반격작전이 시작됐을 때에도 북진에 선두를 지켰다.

세계전사상 가장 큰 규모로 이루어진 흥남철수작전에서 김 장군은 당시 미10군단장이었던 아몬드 장군을 설득해 9만 1000명에 이르는 북한 피난민들도 구출했다.

하지만 최근 민족문제연구소가 발표한 친일인명사전에 이름이 오르면서 친일파 논란에 휩싸였다. 지난 20일에는 거제시에 세워진 김 장군의 동상이 진보단체에 의해 쇠사슬로 묶이는 사태도 발생했다.

22일 김 장군의 동상을 세운 흥남철수기념사업회 황덕호 회장은 <데일리안>과 만난 자리에서 “김 장군은 단순한 육군장군이 아니라 대한민국 국군의 표상과 정체성을 한 번에 알 수 있는 분”이라며 일부 시민단체의 동상 훼손 행위에 대해 분개했다.

황 회장은 김 장군의 '친일 논란'에 대해 “김 장군을 친일문제로 훼손하면 대한민국 국군의 정체성은 뭐냐”고 반문하며 “또한 김 장군에게 국군을 창설케 한 대한민국 정부의 정체성까지 무너지게 된다”고 말했다.

황덕호 흥남철수기념사업회장 황덕호 흥남철수기념사업회장
황 회장은 “친일인명사전을 만든 사람들이 사전 작성 당시 간도지방에 가서 몰어 본 사람들은 만주국 당시에 군인생활을 하던 사람이 아니었다”며 “단지 어릴때 거기에 있던 사람들 이야기로 만든 것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황 회장은 이어 “김 장군과 함께 중학교 시절 같이 공부했던 김광옥 제독은 오히려 ‘김 장군이 절대로 독립군하고 싸우지 않았고 오히려 46만 조선족을 보호하기 위해 마적 등이 침략해오면 즉각적으로 맞서싸웠다’고 했다”고 말했다.

그는 “기록에 의해 문서화 된 것이 없으니까 와전돼서 나온게 많다”며 “간도지방 전체를 일본이 침탈해서 들어가니까 그 영향 속에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김 장군이 직접 나서서 독립군을 학살했다고 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지적했다.

황 회장은 거제시에 대해서도 “시민단체들이 천을 씌우는 것을 막았어야 했다”며 불만을 표시했다.

그는 “지금 쇠사슬을 풀고 천막을 치면 뭐하느냐"며 "훼손 당하는걸 놔둬라. 국민이 알아야 하고 우린 그걸 가지고 싸우겠다”고 말했다.

경상남도는 경상남도 문화재 자료 99호로 지정된 거제포로수용소 반경 300m 이내에서 건설공사시 문화재에 영향을 미치는지 검토해야하는데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동상을 이전 또는 철거하라는 명령을 지난 4일 거제시에 내렸다.

이에 대해 황 회장은 “문화재보호구역 논란은 거제시가 몰랐던 것”이라며 “행정적으로 다시 요청해라. 왜 철거하라고 하느냐”며 거제시의 행정능력을 비판했다.

시민단체들의 행위와 거제시의 무능에 대해 분노를 감추지 못하면서도 황 회장은 “나의 형도 장승포 피란민 수용소에서 죽었으며 지금도 장승포 언덕에 묻혔다”며 “사람이 죽어서 묻히는 곳은 고향과 같은 곳이며 나도 고향이 잘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황덕호 흥남철수기념사업회장 황덕호 흥남철수기념사업회장
그는 “기념탑을 세우면서 동시에 거제시민에 대한 은덕탑도 세웠다”며 “감정적으로 하지말고 잘 융합해서 역사에 맡기고 이 시대를 슬기롭게 해쳐나가자”고 호소했다.

흥남철수기념사업회가 김백일 장군의 동상을 세우게 된 계기는 흥남철수의 공을 세운 현봉학 교수와의 만남에서 시작됐다.

함경도 출신 독립운동가인 아버지를 따라 월남한 황 회장은 '흥남철수'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했다가 지인의 소개로 2002년 현 교수를 만난 자리에서 흥남철수의 진실을 전해듣고 이듬해 사은의 밤을 개최했다는 것.

그 자리에서 현 교수는 “흥남철수작전때 민간인들을 피난시킨 것은 나 혼자의 공이 아니다. 나보다 더 훌륭한 분이 김 장군"이라고 밝혔고 이를 계기로 ‘흥남철수기념사업회’를 만들고 마침내 김백일 장군의 동상까지 세우게 됐다.

한편, 이날 재향군인회는 성명서를 통해 "정부는 김백일 장군 동상을 모독한 불순세력들을 즉각적이고 강력하게 의법처리해야 된다"고 주장했다.

재향군인회는 “북한공산집단의 도발로 누란의 위기에 처한 대한민국을 구하고 수많은 피란민을 구출한 김 장군은 진정한 6·25 전쟁의 영웅”이라며 “이러한 전쟁영웅을 모독하는 것은 대한민국 국군을 모독하는 행위”라고 밝혔다.

재향군인회는 ‘친일파 논란’에 대해 “비록 일제 말기에 초급장교의 신분으로 만주군에 복무한 사실이 있으나, 이를 이유로 친일파로 규정한다면 당시 일제 치하에서 살던 3천만 동포 모두가 친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고 말했다.[데일리안 = 조성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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