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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을 충격의 도가니 만든 임수경 패러독스


입력 2012.06.08 14:59 수정         데스크 (desk@dailian.co.kr)

<곽대중의 加油 KOREA!-storyK 칼럼>'내손으로 죽이고픈' 심정 이해

'막말의 꽃'으로 시들어버린 '통일의 꽃' 그들도 이제 종말을 맞는다

고등학교 1학년 때로 기억한다. 북한을 탈출한 ‘귀순자’ - 당시에는 탈북자를 그렇게 불렀다 - 두 명이 안보강연을 하러 우리 학교를 찾았다.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에 유학하던 북한 학생들이 연거푸 대한민국의 품에 안기던 때였다.

이미 수많은 이념서적을 섭렵한 덕분에 종북(從北)까지는 아니더라도 친북(親北) 성향은 농후하였던 나와 우리 서클 친구들에게 그들의 방문은 달갑지 않은 만남이었다. ‘작전’을 짰다. 그들의 마음을 아프게 만들어주기로 한 것이다. “북한에 버리고 온 부모형제는 어떻게 하고……”라는 식의 질문을 던지기로 했다. 질문할 사람은 교련 선생님께 내용을 미리 검열 받아야 했지만 우리는 무작정 손을 들어 ‘도발’하기로 했다. 우리만의 ‘통일투쟁’이었다.

“내 손으로 죽이고 싶은” 그 심정을 이해한다

당시 우리의 투쟁은 성공하지 못했다. 강연 중에 그 분들이 가족 이야기를 이미 해버렸기 때문이다. 북녘에 두고 온 어머니 이야기를 하면서 눈물을 글썽거릴 때 강연장의 분위기는 숙연해졌다. 강연의 마지막에 노래를 청하자, 당시에 유행하던 ‘여름날의 추억’이란 노래를 멋들어지게 부르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렇게 교련 선생님의 안보강연은 대성공을 거뒀고, 우리의 통일투쟁은 시도조차 못해보고 막을 내렸다.

나중에 탈북자들을 만나 북한인권운동을 할 때에, 비록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그날의 부끄러운 기억이 생각나 당사자들에게 사과를 하고 싶었다. 내가 그런 엉뚱한 생각을 하면서 살았던 놈인데 이제라도 당신들의 편에 서서 싸우겠으니 너그러이 용서를 해달라고……. 당사자들에게 직접 사과는 못했지만, 현재 자유북한방송을 이끌고 있는 탈북자 김성님 형님의 집에 찾아가 소주 한 잔 마시면서 그런 사연들을 이야기했더니 “마음만으로도 고맙다”며 내 손을 꼭 잡아주었던 온기 또한 아직까지 가슴에 전해진다.

내가 탈북자 강연에 도발을 하려고 했던 그 해에 북한을 무단으로 방문하여 이른바 ‘통일의 꽃’이란 호칭까지 얻은 분이 있다. 그분이 최근 탈북 대학생을 앞에 두고 “근본도 없는 탈북자 ××, 변절자 ××”라는 막말을 했다고 한다. 일반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과연 그랬을까’하고 의심까지 하겠지만, 나는 임수경 부류의 그런 심정을 충분히 이해한다. 백 번 그러고도 남을 사람들이다.

특정 연예인에게 푹 빠져서 그에 대한 아주 약간의 부정적인 기사에도 미친듯이 달려들어 비난을 퍼붓는 비정상적인 오빠(누나)부대를 팬덤(fandom)이라 부른다. 일반적인 팬의 수준을 넘어서는 사람들이다. 소녀시대 팬덤, 슈퍼주니어 팬덤처럼 말이다. NL(민족해방)운동권 출신들은 ‘북한 팬덤’이라 취급하면 된다. 북한에 대한 일체의 비판을 그들은 ‘자신에 대한 공격’으로 여긴다. 그들에게는 탈북자나 북한인권운동가들의 존재 자체가 그동안 간직해온 자신의 신념 체계에 대한 일종의 도전이자 위협으로 다가올 것이다. 임수경의 말마따나 “내 손으로 죽이고” 싶은 심정 말이다.

NL운동권이 스스로를 민주화운동가나 인권운동가, 시민운동가로 포장하고 있으니 따뜻한 마음을 갖고 있는 사람들일 것이라 생각하시겠지만, 절대로 속지 마시라, 그러한 증오심을 가슴 가득 품고 살아가는 존재들이다. 자기편에게는 한없이 온정적일지 모르겠지만, 자기편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순간, 칼을 들고 덤벼드는 사람들이다. 오히려 증오를 합리화하면서 ‘적 아니면 동지’라는 철저한 흑백논리에 짧게는 몇 년에서 길게는 몇 십 년까지 푹 빠져 살아온 사람들이다. 하루아침에 그 습성을 쉬이 바꾸지 못할 것이다. 임수경의 이번 발언은 그들의 내면세계를 살짝 엿보인 작은 해프닝 정도에 불과하다.

평양에서 연설하는 임수경. 그녀의 자유분방한 모습에 북한전역은 문화충격을 받았다.

북한 전역을 사상적 충격에 빠뜨렸던 임수경

실은 임수경이 국회의원이 되었을 때 잘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국회의원으로서 가장 먼저 하려는 일이 개성공단 방문이라고 하는데, 그는 개성공단이 아니라 평양에 가야 한다. 대한민국 국회의원의 자격으로, 금배지 달고 성대하게 평양에 갔으면 한다. ‘통일의 꽃’ 임수경의 방문이니 북한 정권도 뉴스 단신(短信)으로만 처리할 수는 없을 텐데, “통일의 꽃 임수경이 살아서(!) 돌아왔단다, 그것도 최고인민회의 대의원과 같은 거물이 되어서 돌아왔단다”라는 사실이 북한 사회에 쫙 알려지는 순간, 북한 전역이 또 한 번 공황 상태에 빠질 것이다.

나는 예전부터 그것을 ‘임수경 패러독스’라고 불러왔다. 자신이 의도하지 않았던 행위를 통해 전혀 의도하지 않았던 결과가 나타나는 경우를 말한다. 1989년 임수경의 방북이 그러하였다.

남한에 온 탈북자들을 만나면 “남한 사회에 대한 동경을 어떤 기회를 통해 갖게 되었느냐”는 질문을 줄곧 던지곤 했는데, “임수경 때문”이라고 답하는 탈북자를 족히 수십 명은 만나본 것 같다. 처음에 그런 답변을 들었을 때 마치 신대륙을 발견한 듯 신기하고 놀라웠다. 임수경이 어디 북한 인민들에게 ‘남한 사회의 자유와 번영을 알려주기 위해’ 북한 땅을 밟았겠는가. 그런데 결과가 그렇게 되어버렸다.

임수경이 유럽을 경유해서 북한에 도착하였을 때, 북한에서 조금 생각 있는 사람들이라면 아주 조심스럽게 이렇게 쑥덕거렸다고 한다. “비행기는 도대체 어떻게 탔을까?”

북한 사람들은 평생에 비행기 한 번 타볼 수가 없는데, 남한의 새파란 저 여학생이 지구를 반 바퀴나 돌아서 북한까지 왔다는 사실에 사람들은 놀랐다. 남한에는 여행의 자유가 있는 것이다! 그것도 해외여행의 자유가!

임수경이 북한의 어느 대학에 도착하였을 때, 그곳 대학생들이 즉석에서 연설을 요청하였다. 임수경은 흔쾌히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다했다. 북한 사람들이 놀라 또 다시 쑥덕거렸다. “우와! 남한에서는 준비된 연설문이 없어도 저렇게 자기 의견을 말할 수 있는가 보구나!”

임수경이 물 만난 물고기처럼 북한 여기저기를 돌아다닐 때, 노동신문은 매일같이 그의 사진을 큼지막하게 실어서 내보냈는데, 아침에 신문을 펼쳐들 때마다 사람들은 놀랐다. “우와! 오늘 또 새로운 옷을 입었다!”

모두가 비슷한 스타일의 계절 옷 한 두 벌밖에 없는 북한 사람들에게 임수경의 패션은 그야말로 거대한 문화적 충격이었다. 북한 전역에 임수경 말투 흉내내기, 임수경 옷차림 따라하기가 유행처럼 번졌다. 나중에 임수경이 돌아가고 나서 북한 당국이 단속에 애를 먹었다고 한다.

임수경의 부모가 살아있다니!

임수경이 판문점을 통해 남한으로 돌아가겠다고 했을 때, 북한 전역이 울었다. 저 어린 것이 이제 정녕 죽겠구나, 미제놈들의 총탄에 쓰러지겠구나……. 그런데 판문점을 넘자마자 죽기는커녕, 포승줄에 꽁꽁 묶이기는커녕, 좋은 승용차에 실려서 이송되는 것이 아닌가! 북한에서 탈출을 시도했던 사람들이 당하는 것처럼, 흠씬 두들겨 맞고 피범벅이 되어 끌려갈 것이라는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이런 것도 북한 사람들에게는 충격이었다.

게다가 몇 년 뒤에는 더욱 충격적인 일이 일어났다. 북한의 연형묵 총리가 남한을 방문했을 때 수행하였던 북한 기자단이 예고도 없이 임수경의 집에 찾아간 일이 있었다. 사진으로 북한 전역에 보도되었는데, 우와, 거실에 피아노가 있는 것이 아닌가! 북한에서는 고위간부들의 집에나 있을 법한 피아노가 남한에서는 ‘중간쯤 산다’는 임수경의 집에 있을 정도라니!

결정적으로 충격적이었던 사실은 임수경의 부모들이 ‘버젓이 살아서’ 기자들과 인터뷰까지 했다는 것이다. 북한 같았으면 사돈의 팔촌까지 싹 쓸어서 수용소로 끌려갔을 텐데, 대체 어찌된 일일까……. 의식 있는 북한 인민들은 말할 수 없는 충격에 휩싸였다.

이런 모든 것이 ‘임수경 패러독스’다. 임수경이 전혀 의도하지 않았던 결과가 나타난 것이다. 이번 임수경의 막말 파동에 탈북자들이 충격을 받은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기도 하다. 당신 때문에 남한을 알게 되었고 북한을 탈출했는데, 어떻게 당신이 우리를……! 우상(偶像)이 깨지는 기분, 임수경에 대한 엄청난 배신감을 느꼈을 것이다.

여담으로 이런 이야기도 들어보자. 북한에서 사상교육을 할 때 남한 대학생들이 시위를 하는 모습을 보여주곤 하는데, 한번은 자동차에 불을 지르고 뒤집어엎는 장면이 나왔다고 한다. 그 영상이 흘러가자 강당에 모여 앉은 북한 사람들이 웅성웅성 거리기 시작했다. 북한 사람들에게는 충격적인 장면이었다. 도로변에 세워진 자동차를 아무렇지도 않은 듯 뒤집어엎다니, 남조선에는 얼마나 자동차가 많기에 저러는가! 그 뒤로 그 영상은 삭제되었다. 북한은 그런 사회다.

‘막말의 꽃’으로 시들어버린 통일의 꽃

임수경이 이번 사건으로 국회의원 자리까지 위태롭게 된 것은 어쩌면 안타까운 일인지도 모른다. 그를 평양으로 보내 북한 사회를 또 한 번 충격에 빠트릴 수 있는 좋은 기회인데 말이다.

그렇지만 북한 정권의 막가파식 사상교육도 이젠 득도의 경지에 이르렀다. 아마도 임수경이 살아서, 게다가 국회의원이 되어 북한 땅을 밟는다면 김정은 정권은 이렇게 북한 주민들을 이해시킬(?) 것이다.

“장군님을 만나뵌 사람은 저렇게 불멸의 생명을 얻게 되나니…….”

그런데 어떡할 거나. 임수경에게 불멸의 생명을 안겨주신 ‘장군님’은 먼저 꼴까닥 저 세상으로 가버렸으니 말이다. ‘막말의 꽃’으로 본색을 드러낸 ‘통일의 꽃’ ‘충성의 꽃’들의 종말에 삼가 명복을 빈다.

글/곽대중 중국거주 칼럼니스트(http://www.storyk.net)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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