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아 교생 쇼’ 논란이 들춘 불편한 현실
김연아 고소 취하로 ‘교생실습쇼’ 논란 일단락
학원스포츠계 머리 맞대고 풀어야 할 숙제 재확인
[데일리안 스포츠 = 임재훈 객원칼럼니스트]‘피겨여왕’ 김연아(22·고려대)의 교생실습을 ‘쇼’라고 표현한 연세대 심리학과 황상민 교수의 발언으로 촉발된 이른바 ‘김연아 교생실습 논란’이 김연아 측의 조건 없는 고소취하로 일단 상황이 일단락되는 분위기다.
김연아는 15일 법률 대리인인 법무법인 ‘지안’의 이상훈 변호사를 통해 서울서부지방검찰청에 고소 취하서를 제출했다.
그리고 김연아는 이날 중국 상하이에서 열리는 '아티스트리 온 아이스'(17일)에 출연하기 위해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출국했다.
김연아 매니지먼트사 올댓스포츠는 "국제대회 등이면 출국 때 기자회견을 간략하게나마 하는데, 국제대회가 아닌 아이스쇼 형식의 행사라 굳이 외부에 알리지는 않았다"고 김연아의 조용한 출국 배경을 설명했다.
김연아 측 이상훈 변호사는 "김연아 선수가 교생실습을 성실하게 수행했다는 사실이 여러 객관적 증거를 통해 명백히 밝혀졌다"며 "황 교수는 허위사실 적시에 대해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하지 않았지만 더 이상 소모적인 논란에 휩싸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고소를 취하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이어 "고소 취하에는 고소 주체인 김연아의 의사가 반영됐다"고 덧붙였다.
결국, 김연아는 출국 전 자신을 둘러싼 논란을 매듭짓기를 원했고, 그에 따라 황 교수 사과여부와 관계없이 고소를 취하하고 중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은 것으로 보인다.
한편, 김연아는 중국 상하이에서 열리는 아이스쇼 ‘아티스트리 온 아이스’ 참가를 하루 앞둔 16일 기자회견에서 “진로 방향이 어느 정도 잡혔다. 여름 전에 확정된 진로에 대해 밝힐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김연아 교생실습 논란 자체는 수면 밑으로 가라앉았다. 하지만 이번 논란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나타난 쟁점 가운데 한 가지는 앞으로도 한국 엘리트 스포츠가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는 문제라 향후 체육계와 정부의 대응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많다.
이번 김연아 교생실습 논란에서 쟁점이 됐던 부분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김연아가 여느 대학 4학년 교생실습생과 같이 성실하게 교생실습에 임했느냐 하는 부분이었고, 다른 한 가지는 과연 김연아가 체육교육과 학생으로서 지난 3년간 교생실습을 나갈 수 있을 만큼의 학점관리 등 학업을 잘 수행해왔느냐 여부였다.
김연아 측이 황상민 교수를 고소한 부분은 전자의 부분을 문제 삼은 것이었다. 김연아의 교생실습이 ‘쇼’라고 규정한 황 교수의 발언이 김연아의 교생실습의 성실성에 대한 부정으로 인식했고, 이를 허위사실 유포로 본 것이다.
하지만 이 부분은 김연아가 교생실습을 한 진선여고 재학생, 교직원 등 학교 구성원들이 다양한 루트를 통해 증언, 김연아의 교생실습이 성실하게 이루어졌음을 입증했다. 김연아 측도 고소취하의 배경을 밝히면서 이 부분을 강조했다.
바로 두 번째 쟁점인 김연아의 교생실습의 진정성에 관한 문제, 즉 일반 교사가 될 가능성이 적은 김연아가 교생실습을 하는 것이나, 지난 3년간 학교 수업이나 시험에 거의 참가하지 못하는 등 학생으로서 교생실습을 나갈 수 있을 만한 상황이 아니었던 김연아에게 교생실습의 기회를 부여한 것이 과연 대학의 본연의 기능을 제대로 한 것이냐의 문제에 대해서는 김연아 측에서 이렇다 할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이번 논란이 김연아 측의 고소 취하로 일단락되는 분위기에 있음에도 여전히 남은 문제는 바로 이 부분이다.
일각에서는 김연아 측이 고소를 취하한 배경이 황 교수와의 법정공방 과정에서 고려대 재학생으로서 김연아의 출결상황, 학점 등 학사기록이 어떤 경로를 통해서건 유출되고 이 부분이 보도되면서 또 다른 논란을 불러오는 것을 경계했기 때문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실제로 소송 과정에서 황 교수의 주장에 대한 사실관계를 검증할 필요성이 있던 것이 사실이고, 그렇게 되다 보면 자연스럽게 김연아에 대한 학사관리 문제가 도마에 오를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이번 논란 과정에서 고려대 측이 철저하게 침묵으로 일관했던 부분도 이런 부분과 무관하지 않다는 지적이 많았다.
지난 2009년 김연아가 고려대에 입학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서 생애 첫 세계선수권 금메달을 획득하자 곧바로 주요 신문에 전면 광고를 내 ‘고려대가 김연아를 낳았다’고 대대적으로 선전하던 때의 민첩한 움직임과는 달리 고려대 측은 이번 김연아의 교생실습 논란 과정에서 이렇다 할 입장 표명을 하지 않았다.
이 같은 태도는 보는 이들로 하여금 고려대 측이 김연아의 학사관리 문제에 관해 뭔가 말 못할 사정이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을 낳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이 부분은 김연아 뿐만 아니라 세계 10대 스포츠 강국으로 인정받고 있는 한국 스포츠계, 특히 국가를 대표하는 선수들을 길러내는 학원 스포츠계 전체가 머리를 맞대고 풀어야 할 과제다.
여러 경로를 통해 확인해 본 결과 김연아가 체육 특기생으로서 교생실습을 나간 문제에 대해 고려대 체육 특기생 출신을 포함해 많은 수의 체육 특기생들은 대체적으로 김연아의 교생실습을 특혜라고 여기고 있지 않았다.
체육교육과 등 교직이수가 필수인 학과에 재학 중인 체육특기생이라면 이런 과정을 거치는 것이 당연한 수순이고, 출석이나 과제, 시험 등의 부분에서 학칙에 따라 학교의 배려를 받는 부분이므로 김연아의 교생실습은 다른 체육 특기생들과 비교해도 일반적인 사례라는 것.
이 대목에서 김연아의 교생실습 논란이 그저 소모적인 논란 내지 해프닝으로 끝나지 않고 뭔가 건설적인 성과물을 낼 수 있는 하나의 단초가 될 수 있는 여지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최근 국내 체육계와 정부는 ‘공부하는 선수’를 육성하는 데 많은 공을 들여왔다. 대학의 여러 종목의 스포츠 리그를 해당 대학을 교환 방문하는 ‘홈 앤드 어웨이’ 방식으로 치르고 있는 점이나 중고등학교의 축구나 야구도 클럽 중심, 주말리그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모두 ‘공부하는 학생선수’를 육성하기 위한 정책적 노력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종목의 체육 특기생들이 수업이나 과제, 시험 등은 남의 이야기로 여기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스포츠를 통한 ‘국위선양’ 자체가 학생 선수가 학교생활을 불성실하게 해도 되는 자격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에 입각할 때, 분명 잘못된 일이다.
따라서 이 같은 잘못된 관행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체육특기생 제도 자체에 대해 전면적인 검토와 개혁이 필요하다. 체육 특기생들의 학업성적과 각종 대회 출전 자격 내지 체육 특기생 자격 유지를 연계, 좀 더 성실한 학업을 유도할 수 있는 방향으로 제반 규정이 정비될 필요가 있다.
2004 아테네올림픽 태권도 금메달리스트 출신인 새누리당 문대성 국회의원 당선자의 논문 표절 논란이 불거졌을 때 <조선일보> 김대중 주필은 자신의 칼럼에서 문 당선자가 체육계에 몸담았던 사람임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의 글을 써 비난을 받았다.
이는 곧 ‘운동하는 사람’은 다른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학문적인 수준과 소양이 낮다는 점을 전제로 하는 내용으로 체육학계 전체를 비하하는 내용으로 비쳐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 주필 주장에 공감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김 주필 주장 속에 투영되어 있는 한국 엘리트 스포츠의 현실은 부정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었다.
불편한 현실을 피하기만 한다면 그 현실은 개선될 여지가 없다. 그와 같은 불편한 현실과 맞서 적극적으로 개선책을 찾고, 실행에 옮길 때 비로소 불편했던 현실은 과거의 일이 되어 있을 것이다. 김연아의 교생실습 논란을 통해 한국 스포츠계는 새삼 엘리트 스포츠 위주로 흘러왔던, 그래서 ‘공부 못하는 선수’를 양산해 온 한국 학원스포츠의 불편한 현실을 확인했다.
이제는 그동안 논의에만 그쳐왔던 체육 특기생 제도의 개선과 공부하는 학생선수 육성에 관한 여러 방안을 실천에 옮길 때다.
[관련기사]
☞ 김연아 “소치, 시간 충분하다” 여름 전 진로 결정
©(주) 데일리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