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관 처우 이대론 안된다②> 미국과 한국 선발부터 처우까지 비교해보니
"미국 소방관 부럽지요. 처우가 아니라 사회가 바라보는 시선, 그게 부러워요."
경기지역에서 근무하는 한 소방관은 '미국 소방관이 부럽지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소방관으로 자부심, 자긍심이 누구보다 강하다"는 그였다.
우리나라 소방관들에게 미국 소방관이 부러움의 대상인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한국과 미국의 소방관은 사회적 인식부터 큰 차이가 난다. 미국의 소방관이 '존경의 대상'이라면 우리 소방관들은 '위로의 대상'에 가깝다.
우선 미국에서 소방관은 영웅 대접을 받는다. 매년 어린이들 장래희망 설문조사에서 부동의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직업만족도'와 '행복지수' 조사에서도 선두권을 유지하고 있다. 영화나 드라마 등에서 묘사되는 소방관의 모습은 우리네 의사, 변호사 등 '사(士)자 직업'에 비견된다.
반면, 우리나라 소방관은 직업만족도 최하위에 임용 5년 내 20%이상이 이직한다. 전체 소방관 가운데 절반가량이 우울증에 시달린다는 조사결과도 있다.
공무원이 인기 직업으로 손꼽히고 있지만, 소방관들은 그 범주에 들지 못하는 실정이다. 이른바 '3D업종'이라는 인식이 강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여기에 자신을 희생하며 생사의 현장을 넘나드는 업무특성에 비해 처우는 그 수준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2교대 근무에 현장 근무자들에게 지급되는 생명수당은 월 5만원, 화재진압 수당은 8만원에 불과하다.
미국에선 통하는 '소방관DC'…"영웅을 대접하는 사회"
미국에선 소방관을 '슈퍼 히어로'로 대접한다. 동네 가게나 식당 등에서 소방관에게 특별한 대우를 하는 것이 그 단면이다. 우리나라에서 유명 연예인들에게 물건 값을 싸게 해주는 일명 '연예인DC'가 있다면, 미국에는 '소방관DC'가 있는 것.
실제 미국에서는 소방관 유니폼을 입고 상점 등에 들어서면 주인이 자진해서 물건 값을 깎아주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입장료가 필요한 장소에 대한 무료출입도 가능하다. '소방관=영웅'이라는 공식이 통용돼 이들을 '대접'하는 문화가 자리 잡은 것.
또한 '소방관 배지'는 큰 힘을 발휘한다. 각종 건물 등에 대한 출입이 자유롭고, 배지가 놓인 차량에 대해선 대부분 주차단속도 하지 않는다. 각 주(州)마다 법으로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국민에게 봉사하는 소방관에 대한 최소한의 예우차원에서 이같이 하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미국 소방관 1인당 담당 국민 1075명…"연봉 1억 넘는 직업군"
특히 미국 소방관의 연간 소득은 우리와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다. 미국 CNN 보도에 따르면 '대학에 입학하지 않고도 연소득 10만 달러가 넘는 직업군'에 소방관도 꼽혔다.
미국 소방대장 평균 연봉은 7만3000달러이고, 이 가운데 12만1000달러(약 1억3000만 원)를 받는 소방대장도 있었다.
우리나라 소방공무원 봉급표에 따른 월급은 9급 소방사가 129만9900원, 소방정과 소방준감은 경력에 따라 250만원 안팎이다.
여기에 위험수당 5만원과 화재진압수당 8만원을 합해 13만원을 받는다. 1인당 출동건수로 환산하면 화재 1건당 약 4000원을 받는 것. 그나마 위험수당은 지난 2008년 3만 원에서 5만 원으로 오른 것이고, 화재진압수당도 2001년 4만 원에서 8만 원으로 오른 뒤 12년째 제자리다.
우리 소방대원 한 명이 담당하는 국민은 1208명으로 미국 소방관이 1075명을 담당하는 것에 비해 많은 편이다. 프랑스(1029명) 일본(820명) 홍콩(816명) 등 다른 나라 보다도 많다.
미국 24시간 근무 후 48시간 휴식…2교대 '살인적' 근무환경과 대비
더욱이 우리 소방관들은 2교대 근무환경의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소방관들 사이에선 "살인적인 근무환경"이라는 지적과 함께 '소방노예'라는 자조 섞인 말이 나올 정도다.
우리의 경우, 2개조가 24시간 맞교대로 근무하는 방식으로, 오전 9시에 출근해서 다음 날 오전 9시까지 근무하고 다음날 하루를 쉰 뒤 다시 24시간을 근무해야 한다. 6일을 기준으로 '주주야야비비(주간·주간·야간·야간·비번·비번)'근무가 흔하다.
상대적으로 교대 인력이 부족한 지역에선 근무시간이 더 많아 질 수밖에 없다는 게 소방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나랏일'을 하면서도 노동법이나 근로기준법에서 비켜선 모순을 겪고 있다.
반면, 미국 소방관들의 주당 근무시간은 48시간으로 우리와 비교가 되지 않는 수준이다. 하루 근무 이후 이틀 이상 휴식이 주어진다. 이 때문에 개인시간 활용이 자유로워 직업 만족도가 높은 인기 직종으로 꼽히는 것은 물론, 높은 삶의 질 역시 보장된다.
우리나라 소방관 평균수명은 58.8세로, 일반인 평균 보다 무려 20살이나 적다. 평균수명이 80세를 향해 가고 있는 시대에 소방관들은 흐름을 역행하고 있는 셈이다. 화재 진압과 인명구조를 하다 희생된 소방관은 2012년에만 8명이었고, 2006년부터 50명이 목숨을 잃었다. 부상당하는 소방공무원은 연간 300명이 넘는다.
이제 '반짝 관심' 아닌 '현실적인 대책' 마련할 때
소방관들에 대한 처우문제는 순직사고가 발생하고 나서야 '그들이 왜 사지로 몰릴 수밖에 없었는지' 조명됐다. 그나마 사회적 이슈가 될 정도로 대형사고가 터져야 가능한 일이었고, '반짝 관심'을 보였다가 다시 흐지부지되는 일이 반복돼왔다.
"정치권에서 큰 사건이 터졌을 때 소방관 처우개선에 대한 목소리를 높였다가 다시 무관심으로 돌아서는 게 대표적인 사례"라고 지적했다. 실제 소방관 처우 개선을 골자로 한 지방소방재정특별법 등 관련 법안은 국회에 제출됐지만, 무관심 속에 표류한지 오래다.
이와 관련, 새정부 출범과 함께 소방관 처우 개선에 대한 정부차원의 대책이 논의되고 있다. 지난 14일 소방방재청의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의 업무보고에서 '소방관 인력 증원'과 '노후장비 교체' 등에 대한 보고가 이뤄졌고, 차기 정부에서 단계적 개선이 이뤄질 것으로 보고 있다.
이제는 소방관들의 희생이 있을 때마다 보인 '반짝 관심'이나 '땜질식 처방'이 아닌, 현실적인 대책을 세워 이들이 자부심를 갖고 구조활동을 펼 수 있도록 환경조성에 나서야 할 때라는 지적이다. 더 이상 소방관들을 '사명감'만으로 불길 속으로 뛰어들게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오늘도 소방관들은 묵묵히 국민의 안전과 생명 사수를 위해 뛰고 있다. "소방관 2년차가 되면 어디서 나오는지 모르는 '사명감'이 생기는 게 보통"이라고 한다. 또 "힘들고 지칠 때, '감사합니다'라는 한 마디에 소방관이 된 것이 자랑스럽고, 잘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계속 한다"는 게 현장 소방관들의 공통된 생각이라고 한다.
©(주) 데일리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