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근본 원인을 바로 잡아야지 보이기 위한 대책만 급급
크리스토퍼 핫지킨슨은 저서 '리더십 철학'에서 고위공직자가 도덕성을 가져야하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윤리는 가장 전형적인 가치다. 그리고 지도자는 가장 전형적인 가치행위자다.”
즉, 모든 사람이 가치 행위자지만 지도자가 행하는 가치는 훨씬 전형화 되기 쉽기 때문에 지도자가 도덕적이지 않을 때 조직과 조직 사람들의 도덕성 또한 담보할 수 없게 된다는 이야기다. 정부는 '공익'(Public benefit)을 목적으로 하는 집단이다. 따라서 도덕적 투명성이 사라진 정부에 공익을 기대하기 어렵다.
출범한지 100일도 채 되지 않은 박근혜정부가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 성추문 의혹 여파로 또 다시 우리 사회 내 고위공직자 ‘도덕성’ 자질 논란을 불러왔다. 특히 새 정부 첫 방미 중 국가 일선 대변인이 ‘음주’ ‘성추행’ 등 도저히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행동에 연루된 것과 관련해 우리 국민의 분노가 쉽사리 가라앉지 않고 있다.
이에 불똥이 튄 정부도 고위공직자의 심각한 기강해이, 도덕성 회복을 위해 사태 진압에 나선 모양새다. 그러나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서 드러난 정부의 근시안적 대처 역시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윤창중 사태’ 이후 첫 해외 순방에 나선 정홍원 국무총리의 태국 방문에서 보인 행보다.
20일 일부 보도에 따르면 이날 제2차 아시아·태평양 물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태국을 방문한 정 총리의 공식 일정을 지원하는 인턴 3명은 모두 남성으로 알려졌다. 해당 일정이 아침부터 밤까지 강행군인 탓에 부득이하게 남성을 선호했다고 하지만 윤 전 대변인 사건도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다는 후문이다.
여기에 음주에 대해서도 강박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실제로 정 총리는 태국행을 앞두고 “술을 못 마시는 사람만 수행원으로 데려갈까 하는 생각도 했다”며 사실상의 ‘금주령’을 내렸을 뿐만 아니라 19일 열린 치앙마이 한인 대표들과의 오찬간담회에서는 술 대신 오렌지 주스로 건배한 것으로 나타났다.
두 사안 모두 ‘윤창중 사태’와 별개로 두자면 사실 큰 의미를 두지 않아도 될 법한 사안이다. 그러나 ‘음주’ ‘여성인턴 성추행’이라는 오명 이후 이 같은 행보를 걷는 것과 관련해 그 연계성을 배제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윤창중 사태의 핵심은 고위공직자가 ‘도덕성’을 상실했을 때 얼마나 국익이 훼손될 수 있는지 보여줬다는 것이다. 이번 사태로 우리나라 국가이미지에 상처를 낸 것은 물론이고 정부 존립의 근간인 국민적 신뢰마저 빼앗아갔다.
이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결국 제대로 된 인사와 청명한 정무 수행으로 장기적으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번 정 총리가 태국 방문에서 보인 행보는 마치 ‘술’과 ‘여성’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것이 재발을 막을 수 있다는 근시안적 태도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더욱이 총리실 측은 여성인턴을 채용하지 않은 것에 대해 ‘고된 일정’임을 고려한 배려였다고 했지만 여성대통령을 배출한 국가의 핵심 정부부처에서 이런 인식을 갖고 있다는 것 자체가 심각한 문제이며 역차별 논란에서도 자유롭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국제적인 공식 자리에서는 국제적 매너가 있기 마련이다. 통상 대통령이나 총리들의 공식 오찬자리마다 의례 ‘와인’이나 ‘샴페인’ 등을 곁들어 건배사를 건넨다. 이는 와인을 ‘술’의 개념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에티켓’으로 보는 까닭이다.
실제로 기자가 본 정홍원 총리 역시 평소 술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만찬마다 와인으로 건배를 하면서도 입에 대지 않아 왔다. 그런데 돌연 이번 태국 방문에 이례적으로 오렌지주스로 건배를 했다는 것은 공식 석상의 일반적인 에티켓과도 맞지 않을뿐더러 지극히 ‘윤창중 사태’를 의식한 행보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결국 이처럼 문제의 전체를 읽지 못하고 사태 수습에만 급급한 정부의 문제 해결 태도는 신뢰 회복보다는 불신의 길을 더욱 자초할 뿐이다. 정 총리의 태국 방문에서 나타난 이 같은 행보에 인터넷 여론 상당수가 옹호하기 보다는 회의적인 시각을 보내는 것도 그런 연유에서일 터다.
어쩌면 지금 우리 정부 고위층들에게 필요한 것은 ‘2 빼기 2는 0’이란 딱딱한 사고에서 벗어나 마이너스 상황을 플러스로 전환시키기 위해 근본적인 원인에 대한 정확한 인식과, 유연하게 적용할 수 있는 사고의 전환이 무엇보다 시급해 보인다.
공직자들이 사고칠까봐 감시당해야하는 '초딩'은 아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