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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 9명 북송 뒤에야 만난 대사관직원은...


입력 2013.06.02 11:00 수정 2013.06.02 11:04        김소정 기자

탈북 주선한 선교사 부부에 한다는 말이 "산 사람은 살아야..."

라오스에서 ‘꽃제비’ 출신 탈북청소년 9명이 추방돼 강제북송 되면서 파장이 큰 가운데 탈북자들을 대하는 한국대사관측의 무성의한 태도가 연일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탈북청소년들을 보호해온 주모 선교사측에 따르면, 탈북청소년 9명이 27일 북한측 인사에게 넘겨진 다음날에서야 라오스 이민국에서 풀려난 주 선교사는 이민국 직원에게 “아이들을 한국으로 보내준다고 하지 않았나”라며 강력 항의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번 사건이 발생한 이후 처음으로 주 선교사를 인계받기 위해 이민국을 찾은 한국대사관 직원은 바로 옆에서 이를 지켜보면서 한마디 말도 없이 침묵만 지켰다는 것이다.

라오스 북부 우돔사이 이민국을 거쳐 수도 비엔티안 이민국에 수용된 지 18일만에 석방되면서 소지품을 돌려받을 수 있었던 주 선교사는 가방 속에 꽤 많이 보관하고 있던 현금을 고스란히 빼앗긴 사실도 뒤늦게 파악했다.

주 선교사는 앞서 9명의 탈북청소년들과 우돔사이에서 비엔티안까지 이동하기 위해 1500달러(약 170만원)에 달하는 이송경비도 이미 지불했었다.

이민국에서 석방된 주 선교사는 대사관 직원과 함께 한 끼 식사를 같이 했다고 한다. 이 자리에서 한국대사관측 인사들은 위로나 사과 한마디 건네지 않았다고 한다. 다만 “산 사람은 살아야...”라는 식의 말만 남겼다는 것이다.

주 선교사 부부는 아이들의 중국 추방과 평양 압송 등의 소식에 거의 실신할 지경이었고, 갖고 있던 현금도 빼앗긴 상황이었다. 하지만 한국대사관측은 한국으로 돌아올 주 선교사 부부의 귀국 길에 대한 염려도 없었다고 한다. 주 선교사측은 “위로 차원에서라도 비행기 표를 끊을 여력은 되는지 물어볼 수 있을 만한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이번에 라오스에서 한국으로 오려다가 돌연 평양으로 압송된 탈북 청소년 9명이 이민국수용소를 빠져나올 기회가 여러번 있었는데도 한국대사관에서 이를 만류한 사실은 이미 보도된 바 있다.

☞ 관련기사 ‘탈북고아 9명, 한국대사관 탓에 탈출 못했다’


최근 중국을 거쳐 강제 북송된 탈북 청소년 9명이 라오스에 체류할 당시 찍은 사진을 박선영 전 의원이 1일 공개했다. 이 사진은 탈북 청소년들을 안내했던 주모 선교사가 지난달 10일 불심검문에 적발된 직후 라오스 이민국에 들어가기 전에 찍은 것이라고 박 전 의원이 설명했다.ⓒ연합뉴스

우돔사이에서나 비엔티안에서도 이민국수용소에 수감된 상태에서 주 선교사 일행은 식사를 하기 위해 매일 외출을 할 수 있었고, 한국대사관은 이민국수용소에서 1시간반 남짓 떨어진 거리에 있었다.

주 선교사측은 “이민국수용소 자체에서 식사 제공이 안 되니까 돈만 지불하면 밥을 사먹기 위해 이민국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또 때로는 현지에 있는 주 선교사 지인이 김밥을 마련해서 이민국 안으로 들어가 주 선교사 일행을 만나기도 했다”고 말했다.

주 선교사만 통행이 자유로웠던 것이 아니라 탈북청소년들도 식사를 위해 이민국수용소를 빠져나오는 것에 자유로웠다고 한다. “어린 여자아이들이 머리핀을 사러 잠시 이민국수용소를 빠져나가기도 했으며 나간 김에 미국대사관까지 걸어서 가보기도 했다”는 것이다.

베엔티안 이민국수용소에서 24일까지 출입이 자유로웠지만 25일부터 상황은 급변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주 선교사측은 “20일과 23일, 25일 세 차례에 걸쳐서 북한 말을 쓰는 인사가 찾아와서 탈북청소년 한사람씩을 대상으로 조사를 하고 사진을 찍고 마지막으로 자필서명을 받아갔다”고 했다.

북한 말을 쓰는 인사가 주 선교사 일행을 찾은 일과 관련해선 정부도 라오스 대사관을 통해 확인한 바 있다. 외교부 관계자는 31일 “주 선교사가 대사관 직원과 통화하는 과정에서 ‘(탈북청소년을 만나 조사한 인사가) 북한 사람일지 몰라 걱정된다’고 말한 일이 있었던 것으로 파악했다”고 전했다.

주 선교사측은 “주 선교사가 한국대사관에 전화를 걸어 ‘이럴 때 탈출시키는 게 좋겠다’고 하자 대사관 직원은 ‘다 된 밥에 코 빠뜨리지 말라’고 했다. 우리가 이러는 와중에 북한은 아이들의 여권을 만들고 중국을 통과할 수 있는 단체여행비자를 준비했다”며 울분을 토했다.

주 선교사가 짧게는 6개월에서 길게는 3년 가까이 중국에서 보호하다가 어렵사리 라오스까지 인솔한 탈북청소년들은 27일 점심을 먹은 직후 오후1시쯤 ‘한국으로 간다’며 들떠서 우르르 뛰어나갔다고 한다. 아이들이 나간 뒤 주 선교사 부부가 나서려고 하자 이민국 직원이 가로막았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은 주 선교사는 즉시 한국대사관과 한국에서 돕던 지인에 전화를 걸고 문자를 보내 ‘아이들을 빼돌린다. 알아봐달라’고 했고, 이후 피를 말리는 5시간여가 흐른 뒤 라오스 이민국측이 한국대사관에 탈북청소년들의 중국 추방 소식을 알리면서 대사관측이 주 선교사에게 이 소식을 다시 전했다고 한다.

탈북청소년 9명이 베이징으로 옮겨져 고려항공편으로 평양으로 압송된 이후인 28일 저녁에야 주 선교사는 석방될 수 있었고, 그제서야 주 선교사는 한국대사관 직원을 만날 수 있었다.

앞서 주 선교사 부부가 이민국수용소에 있는 동안 부인은 갑상선 절제수술 후유증으로 약을 복용해야 하는 상황이었다고 한다. 이런 사실을 한국대사관에 알리면서 해당 약을 요청했으나 이후 대사관으로부터 돌아온 대답은 ‘라오스 이민국에서 건강해 보인다고 했다’였다고 한다.

서울에 도착하자마자 우선 병원에 입원해야 했던 주 선교사 부부는 “지난 성탄절에 해맑게 웃던 아이들의 모습이 눈에 선연해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지경이다. 아이들이 탈출할 수 있는 기회가 너무 많았는데 결국 사지로 떠나보냈다”며 눈물만 흘렸다.

김소정 기자 (bright@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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