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코티에스 이미순 대표 “어둠 속에도 R=VD!”
<인터뷰>비코티에스 이미순 대표
"어두운 현실이라도 희망을 잃지 않고 생생하게 꿈을 꾼다면 이루어진다"
“수용소 생활을 견디지 못한 사람은 낙관주의자였다. 암울한 현실을 제대로 직시하고 대비한 사람만이 살아남았다.”
이른바 ‘스톡데일 패러독스(Stockdale Paradox)’다. 베트남 전쟁 당시 하노이 포로 수용소에서 10년 가까이 혹독한 고문을 당하고도 살아남은 미국 스톡데일 장군이 남긴 명언은 지금도 인구에 회자된다. “곧 풀려날 것”이라며 무조건적인 낙관만 하던 포로들은 가장 먼저 사망한 반면, 포로생활에서 풀려날 것이라는 믿음과 희망을 품으면서도 현실에 대한 냉철한 인식 속에 훗날을 대비하던 포로들은 석방 때까지 생존했다.
짙고 긴 그림자 속에서 막연히 긍정의 힘에만 기대어 덫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직시하고 그 안에서 최선의 생존법을 찾아가는 여성이 있다. 어쩌면 ‘She'라기보다는 ’He'가 어울릴 법한 삶의 궤적을 그려온 호텔 예약전문기업 비코티에스 이미순 대표(44)가 그 주인공.
지식 정보사회로 접어들면서 다양한 분야에 걸쳐 여성들의 진출이 크게 늘고 있다. 전문직, 공무원, 교직에 이르기까지 여성이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고 있다. 대기업 CEO는 물론 대한민국의 대통령도 여성이다.
굳이 전통적으로 내려온 가부장적 제도에 따른 남성 우월주의와 권위주의라는 ‘거대담론’을 꺼내지 않아도 여성이 사회적 성공이란 과실을 맺는 것에는 제도적 제약과 현실적인 고충, 갈등, 그리고 시련이 따른다. 아무리 시대가 바뀌고 여성의 지위가 상승했다고 해도 여성에 대한 오랜 편견은 한 순간에 깨지기 어렵다. 수동적이고 보호받는 존재로 머물지 않고 강인한 독립적 존재가 될 수 있어야 한다.
모 멘토링 스쿨 강연장. 남성 중심의 그릇된 음주 문화 속에서 고뇌와 고충이 큰 여성들의 고민을 듣던 이미순 대표는 “마시기 싫은데 권한다고 해서 억지로 술을 마실 필요는 없다. 피할 수 있는 것은 피하라. 하지만 사회생활에서 무조건 선을 긋고 담을 쌓고 살 수는 없다. ‘술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술을 선물한다’는 등의 방법으로 하나하나 긍정적인 면을 찾아가는 자세가 필요하다. ‘난 여자라서’ ‘난 여자니까’라는 생각을 버려라. 그런 발상은 한계선을 끌어내릴 뿐이다. 아예 여자임을 잊어라. 아니면 장점만 꺼내어 활용해라”라고 조언했다.
당당한 여성으로서, 그러나 결코 억척스럽지 않게 굳은 심지를 바탕으로 원칙과 융통성의 경계를 유연하게 넘나들며 걸어온 이미순 대표가 퍼뜨린 향기로운 포스에 여성 CEO를 꿈꾸는 학생들은 녹아들었다. 그런 힘을 바탕으로 이미순 대표는 여러 위기를 넘겼다. 위기라는 동전의 양면에서 기회의 뒷면을 더 크게 보며 지금의 비코티에스를 일궜다.
비코티에스는 1997년 일본서 출발해서 2007년 한국에 법인을 설립하면서 개인 여행 중심의 여행사로 자리 잡았다. 한국 진출 5년 만에 매출 500억원, 영업이익 100억원을 기록하며 업계에 돌풍을 일으켰다. 2009년에는 '오마이호텔'이라는 전 세계 호텔예약 사이트를 오픈했고, 중국법인을 설립해 본격적인 글로벌 기업으로서 입지를 넓혀갔다.
일본 여행사업이 해외 매출의 주를 이루고 있었지만, 최근에는 싱가포르 홍콩 중국 태국 등 아시아를 중심으로 해외법인을 설립하면서 새로운 시장 개척에 성공했고, 어느덧 직원 100여명이 함께하는 탄탄하고 옹골진 여행 기업으로 성장했다. 특히, 월간 방문자 40만을 상회하는 오마이호텔은 젊은층 중에서도 호텔 예약만을 원하는 수요나, 자기만의 프로그램으로 저렴하면서도 효용도 극대화를 원하는 수요에 매력적이고 간편한 온라인 호텔 예약사이트로 유명하다.
-위기 많지 않았나.
가장 큰 위기는 뭐니 뭐니 해도 지난 2011년, 일본 대지진과 원전 사고가 터졌을 때다. 매출로 봤을 때 일본 비중이 70%에 달했던 만큼, 회사 입장에서는 치명타였다. 일본에서도 도쿄가 70% 이상의 비중을 차지했는데 무게중심을 오사카로 옮기기까지 많이 힘들었다. 당시 스트레스로 탈진 상태에 이른 기억도 생생하다. 당시 동경을 3분의 2 축소하고 오사카로 옮겼다. 하지만 지금은 서일본 여행 시장이 활발하다. 지진 전보다 오히려 좋다.
물론 큰 시련이었지만 오히려 기회로 보고 접근했다. 위기보다는 기회 요소에 더 시간 투자를 했다. 그리고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생각으로 이전부터 준비를 해왔다. 인바운드, 도메스틱, 월드와이드 등 새로운 사업을 꾸준히 준비해오면서 철저하게 계획을 세우고 또 꿈을 그렸다.
그런 준비가 있었기에 천재지변이 일어나 무너졌던 일본 아웃바운드 시장의 손실을 최소화 했고,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고 개척하는 계기도 됐다. 결국, 준비한 사람이 기회를 잡는다. 준비하지 않은 사람은 그것이 기회인지 아닌지도 파악하기 어렵다. 어느 면을 보고 갈 것이냐가 가장 중요하다. ‘힘들어 죽겠어’라고 한탄할 시간에 기회요소에 투자 방안을 수립하고 또 새로운 기회를 잡기 위해 준비하는 편이 낫다.
-비코티에스에서 운영하고 있는 오마이호텔은 토종 온라인 호텔예약서비스사다. 외국 OTA(Online Travel Agency)가 밀려들고 있어 역시 위기일텐데.
맞는 얘기다. 아고다, 익스피디아 등 글로벌 OTA가 급속도로 밀려들어왔다. 위기를 넘어 피해 손실이 어느 정도인지도 파악하기 어려울 정도로 가파른 상승세다. 심지어 아고다가 한국 업체인줄 아는 사람들도 많다.
업계 일부에서는 과거 못 들어오게 막자는 얘기도 있었지만 고객들의 선호도, 흐름을 어떻게 막을 수 있나. 자유여행이 트렌드가 되면서 글로벌 OTA와 경쟁해야 하는 것은 현실이다. 20-30대를 넘어 40대까지 틀에 짜인 여행이 아닌 FIT(Foreign Independent Tour)를 추구한다. 쉽게 말해 패키지보다 자유여행을 선호하는 경향이 짙다. 그건 트렌드다.
과연 경쟁할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돼 있느냐에 더 신경을 쓰고 키워야 할 때다. 그래서 이지겟이라는 부설연구소도 만들었다. OTA의 마케팅은 상당히 공격적이다. 글로벌 업체에 비해 우리는 마케팅 비용이 10분의 1에 불과하다. 더 갈고 닦는 수밖에 없다. 무작정 배척할 수만은 없다. 네거티브 전략을 취하면 오히려 역효과를 볼 수도 있다. 그들의 파워를 인정하고 우리도 대안을 찾아야 한다.
한국 OTA의 강점을 살려 익스피디아, 아고다 등 외국계 OTA들과는 달리 구매 과정에서 문화적 이질감도 줄이고, 구매 후 애프터서비스 등 타사와의 차별성을 부각시킬 것이다. 고객의 요구와 시장의 트렌드를 파악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마케팅 하고 브랜드를 강화한다면 살아남을 수 있다고 본다. 어두운 현실이라도 희망을 잃지 않고 자기를 돌아보며 생생하게 꿈을 꾼다면 생존할 수 있다. 그렇게 해왔고 그리고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고, 그렇게 해나갈 것이다.
-국내 경쟁도 경쟁이지만 해외지사 설립을 많이 하고 있다. 배경을 설명해 달라.
한 곳에만 몰아넣기엔 환경이 안정적이지 못하다. 과거 일본을 기반으로 컸다. 그리고 일본에 치우쳤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성장하는 경제는 늘 변화한다. 성장하고 싶으니 변화를 택한다. “일본에서나, 일본에서만 잘 하지”라는 애정 어린 우려와 견제도 있었지만 남들과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생각했다. 기존 시장에서 성장하면 우호적인 시선만 있는 것도 아니다. 성장의 한계도 느꼈다.
한 바구니에만 담을 수는 없다. 작은 문제라고 생각했는데 크게 이슈가 되어 막심한 피해를 볼 수도 있다. 지진이라든지 전쟁이라든지. 여행업은 외부환경에 민감하기 때문에 선제대응 작업도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다양한 곳에 투자를 해야 한다.
-최근에 태국에도 법인을 설립했지만 싱가폴 쪽에 관심이 많다고 들었다.
일단 기업에 우호적이고 인프라도 잘 구축돼있다. 금융도 자유롭다. 쉽게 말해 ‘돈 들고 와서 편하게 장사해라’라는 식으로 돼있다. 위치적으로도 적도에 있어 유럽이나 미주로 넘어가기도 편하다. 한마디로 확장성이 있다.
-해외지사 설립이 많아 그런지 해외에 많이 머무는 것 같다. 1년 중 해외에 얼마나 있나.
주간 단위로 보면 5일 중 3일은 해외에 있다. 하지만 주말은 꼭 가정에 있으려 한다. 남편과 고등학생-중학생-초등학생 아이가 있다. 소꿉장난하기 바쁘다.
-여성 CEO로서 힘든 점이 많을텐데.
접대문화라든지 이런 부분에서 힘들긴 했다. 특히, 초기에 그런 점 때문에 힘든 부분이 있었다. 당시에는 여자라서 이게 불편하고 저게 불편하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여자라서 약점이라 생각하고 포기하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았다. 여자라서 강점이 있는 부분도 많다.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 가령, 술을 못 먹으면 술을 선물하는 마음가짐으로 피해가면서 상대를 맞출 수 있는 방법은 많다. 끝없이 고민하고 연구하면 된다. 하지만 정체돼 있으면 안 된다. 움직이면서 해야한다.
-해외지사를 통한 글로벌 비즈니스 연계 부분에 신경을 많이 쓴다. 앞으로 가장 큰 가치는 어떤 것에 두나.
트렌드 캐치가 제일 중요하다. 그것을 선봉에서 선도해나갈 수 있고, 업계에 환원하는 것이 비전이다. 비전을 제시하고 롤모델이 되고 싶다.‘나만 잘 되는 게 아니라 이렇게 하면 잘 되더라’라는 것을 업계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 해외지사 설립도 그런 생각과 궤를 같이 한다.
성공하기까지의 자취를 떠올릴 때, 투사의 이미지가 강할 것으로 생각하고 만났지만, 이 대표는 역시 ‘She'였다. 간교한 꾀나 얄팍한 입담으로 비즈니스를 하지 않는다. 온화하면서도 유연하게 남성을 압도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그리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철저하게 ‘R=VD’를 되뇌었다.
녹슬지 않고 물들지 않아 밝고 맑은 곳을 찾아가기도, 정착하기도 유리했다. 긍정의 단면을 확실히 꿰뚫었다. 그렇다고 숲을 보지 못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긍정의 시너지로 부정의 바이러스를 퇴치하고 생생하게 꿈을 꾸며 섬세한 가치를 향해 가고 있었다. 작지만 옹골지고, 웅장하지 않지만 정교하고 섬세한 이 대표는 그래서 'She'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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