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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좌관 종부리는 슈퍼갑 의원들? 롱런못하더라"


입력 2013.06.23 09:54 수정 2013.06.24 12:16        조소영 기자

<인터뷰>보좌진 권익 주창해온 윤재관 민주당보좌진협의회장

"의원-보좌진 관계 상하수족 아닌 동지 파트너로 바뀌어야"

윤재관 민주당 보좌진협의회 회장.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윤재관 민주당 보좌진협의회 회장.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좋은 사람들이 와 좋은 일을 할 상황이 못되는데 ‘롱런’을 하겠나요.”

서글서글한 인상의 윤재관 민주당보좌진협의회(민보협) 회장의 얼굴이 금세 굳어졌다. “국회의원과 보좌진 간 ‘갑을관계’에 민보협이 어떻게 대처하는가”라는 물음 때문이었다. 그는 “보좌진을 종 부리듯 부리려는 분들은 ‘롱런’하지 못한다”며 “회사를 어디로 갈지 판단하듯 우리도 우리가 모실만한 의원인지를 판단한다”고 말했다. 의원-보좌진 간은 ‘갑을관계’라는 일반적인 사고를 ‘파트너’로 재정립, 과거 사고를 가진 이들에게 경종을 울린 셈이다.

최근 13일 장병완 민주당 의원실에서 만난 윤 회장은 민보협 22대 회장. 지난해 7월 취임해 올해 7월 1년 임기를 마친다. 국회 내 각 의원실 가장 막내인 ‘인턴’부터 시작해 ‘민보협회장’까지 오른 그는 국회 잔뼈가 굵은 인물로 ‘실력파 보좌진’으로 꼽힌다. 이렇게 국회의 역사를 꿰고 있기 때문인지 그는 인터뷰 내내 ‘보좌진의 위상’을 강조했다. 국회의 위상이 올라간 만큼 이곳에서 일하고 있는 보좌진의 위상 정립 또한 필요하단 것이다.

특히 그는 민주당 내 의원과 보좌진 간의 관계를 예로 들면서 향후 의원과 보좌진 간 관계가 ‘상하’가 아닌 ‘상호’가 될 것을 강조했다. 윤 회장은 “의원과 보좌진 간 관계를 ‘상하수족’의 관계보다는 ‘동지’나 ‘파트너’로의 관계로 가져가려는 민주당 의원들이 아주 많다”면서 “(내가 모시는) 장 의원도 내가 민보협회장을 하는 것을 아주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전적으로 지지를 해준다”고 말했다.

윤 회장은 1시간여의 인터뷰 동안 민보협회장으로서, 보좌진으로서의 삶에서 뿌듯했던 점과 아쉬웠던 점, 국회의원이 되고 싶은 이유와 ‘최종 꿈’까지 밝혔다. 그동안 그의 핸드폰은 쉴 새 없이 울렸고, 그를 찾는 목소리 또한 끊이지 않았다.

다음은 일문일답.

- 우선 민보협의 역사 등에 대해 간략히 설명해 달라.

“민보협은 22년 됐다. 국회에서 의원들이 교섭단체별로 총의를 모으는 것처럼 우리 역시 총의 모으는 일을 하기 위해 나름대로 조직체계를 갖추게 됐다. 하지만 이때까지 당내에서 공식적인 기구로 명문화되지 않았는데 작년 1월 원내대표 산하기구로 공식인정을 받았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2008~2012년에 있던 ‘MB악법’ 저지 투쟁 과정에서 보좌진들이 당에 대한 충성도를 보여줬기 때문이라고 본다. 아울러 당의 큰 의사결정기구인 중앙위원회에 민보협이 4명을 추천할 수 있는 권한도 얻었다.”

- 민보협회장 취임이 7월이고, 임기가 1년이니 마무리할 시점이다. 1년 동안 민보협회장으로서 잘했다는 점을 꼽자면 무엇이 있나.

“총괄적으로 보자면 ‘민보협은 나와 같이 호흡하는 단체’라는 것을 개개인에게 알려줬다는 것이라고 본다. 우리 회원수가 1000명이 조금 넘는데 근래에 한 보좌진 체육대회에서 850명 정도 참여했으니 예전에 비하면 훨씬 조직력이 강화된 것이다.

또한 우리 내에서의 약자인 인턴에 대해 개선할 점을 적극적으로 찾아 개선하고자 했다. 내가 인턴 출신이기도 하다. 성과를 보면 세 가지가 있는데 ① 일반 보좌진과 인턴 간 신분증 색깔이 다른 것을 같게 했고, ② 선거 당시 보좌진과 같은 일을 함에도 불구하고 공무원이 아니라서 수당을 받을 수 없는 인턴을 위해 민보협 임시총회를 열어 보좌진들이 받은 수당을 내놓아 인턴들에게 나눠줬고, ③ 인턴은 후생관에서 결혼식을 못하는데 할 수 있도록 했다.

첫 번째 문제는 사회적으로 ‘2등 국민’으로 만들어버리면 사람이 가진 역량을 다 발휘를 못하는 것 아니겠느냐는 생각이었다. 두 번째 문제는 같은 일을 했는데 누구는 수당을 받고, 누구는 받지 못하는 것은 사회로 보면 정규직과 비정규직 관계로 우리가 그걸 계속 고치자고 했으니 우리부터 실천하자는 것이었다. 민보협은 2009년부터 인턴을 정식회원으로 인정하고 있고, 옛날에 내가 겪었던 설움을 후배들이 안 겪게 한다는 것에 대해서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이 있다.”

- 반대로 부족했으니 좀 더 잘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무엇인가.

“대통령선거에서 진 게 제일 아쉽다. 민보협회장으로서 문재인 (대선 당시) 후보 조직특보도 맡아서 했었는데. 또 하나는 보좌진 3급 신설을 못한 것이다. 옛날에는 국회가 ‘통법부’(정부가 만든 법안을 그대로 통과)라는 오명이 있었지만, 현재는 정부를 견제하고, 국회의 정상적 기능을 찾아가려는 노력을 무던히 한다고 생각한다. 이에 맞춰 보좌진 위상도 어느 정도 맞춰져야 한다. 4급 보좌관을 중앙부처로 따지면 과장급이고, 기획실장, 차관 등과 업무협의를 계속하는데 우리들 직급이 4급에 계속 머무르는 것은 국회 위상과도 맞지 않다.

4급 보좌관이 현재 2명인데 이중 1명을 3급으로 올리게 된다면 조건을 좀 까다롭게 해야 한다. 능력이나 자격이 없는 사람이 3급이 되는 것을 우리 스스로도 원하지 않고. 하지만 대선 국면이 있었고, 지고 나서는 이걸 얘기하기가 정치상황적으로 전혀 가능성이 없는 시기더라. 또 하나는 선진의회라고 하는 보좌진들과 교류를 하면서 의회 선진화 방안에 대해 얘기하고 싶었는데 못했다. 이 또한 대선에 올인해야 하는 상황이라 그랬다.”

윤재관 민주당 보좌진협의회 회장.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윤재관 민주당 보좌진협의회 회장.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 민보협만의 인재를 키우기 위해 어떤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가.

“일단 민보협 운영진이 50명인데 나 때부터 의도적으로 대표성을 가진 사람들이 들어오도록 했다. 직급이나 하는 역할도 다 다르기 때문에 특히 의사결정구조에 있어 하위직급들에 대한 배려가 부족할 수 있으니 다양한 직능이 민보협 안에서 자기 의견을 낼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놨다. 그리고 인턴들 중 소위 ‘싹수가 있다’는 인턴들은 우리끼리 도제를 시킨다. 만약 법안을 만들게 되면 그런 친구들에게는 이런 건 문제가 있을 수 있다, 이런 건 보강하는 게 좋겠다고 코멘트를 해준다. (결국) 공식적인 기구가 있다기보다는 내부적으로 키워가는 시스템이다.”

- 보좌진으로서 살면서 가장 뿌듯했던 일은 무엇인가.

“10년 동안 보험회사와 싸웠던 장개숙 씨를 도와줬던 일이다. 내가 2007년도에 4개월여에 걸쳐 보험회사와 그 자문위원, 법원 신체감정의의 관계에 대해 밝힌 적이 있다. 보통 보험회사와 소비자가 소송이 붙었을 때 99% 보험회사가 재판에서 이기는데 재판부가 위촉한 신체감정의 대부분이 보험회사로부터 매달 용돈 받고, 자문위원 역할을 하는 분들이 많다. 아무래도 팔이 안으로 굽지 않겠나.

당시 좀 개선이 됐다가 시간이 지나니 제자리로 돌아왔는데 이후 장씨가 이런 일로 10년 동안 싸웠는데 안돼서 날 찾아왔다. 그 일을 했을 때와 다른 의원실에 있었는데 수소문해 찾아왔더라. 도와줄 수 있느냐고 해서 당연히 그럴 수 있다고 하고 확인서도 써줬더니 그분이 내 앞에서 닭똥 같은 눈물을 1시간 동안 흘리더라. 이후 내가 비례대표 공천 신청을 하니 공천위원들에게 추천 편지를 써주기도 했다. 이때 정치가 모든 것을 다 해결할 수는 없지만, 말을 들어주고 공감해주는 마음만으로도 대단히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 이 또한 반대로 마음 아팠던 기억을 끄집어내본다면.

“예전에 ‘바다이야기’ 사건이 있지 않았나. 당시 내가 모시던 의원의 의원실로 지역 주민인 한 어머니가 전화를 하셔서 ‘대통령을 갖고 있는 집권당 의원의 지역사무실 건물 안에 ‘바다이야기’가 있는데 그것 때문에 우리 아들은 몇 천만원을 까먹고 폐인이 됐다. 그걸 그냥 놔뒀느냐’고 하더라. 일주일에 2~3일은 가는 지역사무실이었는데 그런 게 있다는 것을 그때야 알았다. 당시 내가 여기서 도대체 뭐하고 있는 사람인지 자괴감이 들고, 창피했다. 이후 경찰서에 얘기해 폐쇄시켰다. 최근에도 우리 의원(장병완 의원) 지역사무실에 다단계판매하는 곳이 있어 옛날 생각이 나 (바로) 폐쇄시켰다.”

- 민주당에서 ‘갑을관계’에 대해 많이 얘기하는데 사실 의원과 보좌진 간 관계에서는 의원이 ‘절대갑’ 아니냐. 이에 대해 민보협에서 대처하는 것은 없나.

“우리가 어떻게 대처하고 있다고 하는 것까지 말할 것도 없고, 그럴만한 수단도 없다. 하지만 여기가 나름대로 아주 좁은 세계이다보니 그런 의원 밑에는 좋은 사람이 안간다. 우리 간 그렇게 구전이 된다. ‘어느 의원 밑에 가면 6개월을 버티기 어렵다.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기 어렵다. 웬만하면 가지말자’고 한다. 의원이 우리들을 선택하는 것이지만, 우리들도 우리가 모실만한 의원인지 판단을 한다, 회사를 어디로 갈지 판단하듯이. 보좌진을 종을 부리듯 부리려는 분들은 ‘롱런’하지 못한다. 좋은 사람들이 와 좋은 일을 할 상황이 못되니 롱런을 하겠나.”

- 그렇게 서로 간 정보를 공유하다보면 보좌진들 간에도 초당적인 모임이 있지 않나.

“동호회 중심이다. 연구를 해야 하는 초당적 모임은 잘 안 된다. 다른 당 사람들을 만나 얘기하다보면 ‘차이’에 대한 느낌이 확 온다. 또 솔직히 말하면 18대 때 미디어법, 예산 투쟁 등으로 너무 세게 싸웠다. 우리들이 몸싸움을 그냥 하는 것 같나. 아니다. ‘이걸 막아야 피해보는 국민이 적다’는 신념이 있어 국회 로텐더홀을 지키며 싸우는 거다. 어쨌든 그런 일이 있고나서부터는 초당적인 모임이 잘 안 된다. 또 당시 내가 너무 세게 싸웠어서 그런지 초당적 모임에 대한 생각이 특별히 없다. 아예 생각이 다르니까.”

- 최근 일부 ‘에이스 보좌관’이 대기업 특채로 선출되는 경우가 종종 있어 기업의 정치권 내 정보 캐내기가 가능해진다는 문제제기가 나오는데 이에 대해선 어떤 생각인가.

“최근 이 질문을 아주 많이 받았고, 대다수가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더라. 하지만 나는 반대로 생각한다. 국회가 힘이 강화됐다고 하더라도 기업에서 국회 사람들이 시원찮거나 변변찮았다면 뽑아갔겠나. 국회를 구성하는 인재들이 예전보다 양질이기 때문에 뽑아갔다는 생각이다. 특히 국회의원 보좌진만큼 종합적으로 사고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다. 정책, 정무, 의전 등을 담당할 수 있다. 우리 세계에선 기본적으로 요구받는 게 ‘종합적인 역할’이다. 결국 국회 위상이 강화되면서 국회 ‘맨파워’ 자체도 성장했다는 걸 증명한다고 본다.”

- 장병완 의원이 민보협회장 활동을 많이 이해해주나. 일각에서는 의원들이 보좌진들의 다양한 활동들을 탐탁지 않게 여긴다는 얘기도 많다.

“내가 민보협회장을 하는 것을 아주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전적으로 지지를 해주신다. 작년에 내가 비례대표 공천 신청을 했었는데 그때가 의원이 제일 바쁠 때였다. 어떤 의원 같으면 ‘너랑 나랑 같이 놀려고 하느냐’는 생각으로 기분이 나쁠 수도 있을 것 아니냐. 하지만 우리 의원은 보좌진 간 비례대표 공천 경선에서 내가 1등 했다는 것을 동네방네 소문내고 다녔다. 당시 공천과 관련돼 서울에 며칠을 더 있어도 우리 의원은 전혀 그런 것에 대해 개의치 않아했다. 사실 이런 게 민주당과 타당이 다른 게 아니냐는 생각이 든다. 의원과 보좌진 간 관계를 상하수족의 관계보다는 동지나 파트너로서의 관계로 가져가려는 의원들이 아주 많다.”

- 과거에는 ‘정치인 등용문’으로 보좌진의 길을 택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으로 아는데 지금도 그런 추세인가.

“이제는 양분화가 되더라. 예전에는 국회 보좌관이라고 하면 평균 재직기간이 대단히 짧았지만, 요새는 10년 넘은 사람이 허다하다. 국회 내 전문성이 강화되고, 상시국회가 되다보니 지속적으로 무얼 하려면 머리에 뭔가 든 사람이 있어야하고, 그렇게 성실성 등을 인정받은 사람들은 계속 보좌관 생활을 한다. 이렇게 직업적으로 하는 사람들이 한 부류고, 또 한 부류는 자신이 공직후보자가 돼 출마하겠다는 사람이다.”

윤재관 민주당 보좌진협의회 회장.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윤재관 민주당 보좌진협의회 회장.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 향후 국회의원이 된다면 가장 먼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가.

“우리 아버지가 과거 동네에서 아주 큰 가구점을 했는데 보루네오와 같은 대기업 가구시장이 진출하면서 속수무책으로 망했다. 내가 그걸 보고 자란데다가 국회 정무위원회 일을 8년 정도 하면서 공정거래위원회 등을 담당했기 때문인지 나중에 국회의원이 되면 공정하게 경쟁하는 사회의 룰을 만드는 일을 정말로 해보고 싶더라. 소위 지금 말하는 ‘경제민주화’가 그것인데 지금의 경제민주화를 지속·강화시키고 싶다. 누구는 뼈 빠지게 일해도 달성할 수 없는 것을 재벌이기 때문에 일면 하에 달성할 수 있는 것은 정당한 사회가 아니지 않느냐. 아울러 (이를 위한) 법적인 전문지식이 부족하다고 느껴 2009년도에 법학과 박사과정에 입학해 공정거래법을 전공하고 있다.”

- 만약 안철수 의원실에서 ‘러브콜’이 온다면.

“내 첫 직장이 민주당이었다. 지금 직장도 민주당이다. 내 꿈이 있다면 제일 마지막 직장도 민주당이었으면 좋겠다. 나는 그게 내 꿈 중의 하나다. 나는 천상 민주당 사람이고, 민주당이 갖는 가치의 지향점이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이고, 그걸 또 계승·발전시켜야 할 역할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안 의원이 내가 정말 뼛속 깊게 사랑하는 민주당과 같이 했으면 좋겠다.”

- 보좌진들에게 ‘뉴스레터’라는 걸 보내던데 아주 재밌더라.

“그전에는 없다가 내가 처음 만든 것인데 그동안은 각 의원실에 팩스를 보내는 것으로 연통을 했지만, 그걸 갖고는 대단히 부족했다. 소통을 더 강화해야 했다. 그래서 팩스를 보냈을 땐 1명만 보고 버릴 수도 있는데 이메일을 보내면 모든 사람이 같은 시간에 받아 볼 수 있으니 뉴스레터를 만들었다. (재미있게 하려고 한 것은) 편하게 얘기하는 쪽으로 가려고 했다. 그래야 민보협이 나와 관련 있고, 내 맘을 알아주는 단체라는 생각이 들지, 쓰는 언어부터 다르면 (거부감이 들고) 그렇지 않겠나.

또 내가 생각했을 때 선거 패인 중 하나가 민주당은 잘해놓고도 말하는 방식이 세련되지 못해 국민의 마음에 다가가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렇게 생각해 (뉴스레터를) 해 본 것인데 반응이 아주 좋았다. 회원으로서 나를 인정해준다는 의미도 있고, 내용이 딱딱하지 않아 읽을 만하고, 의원회관에서 생활하는 내용과 직결되는 내용들을 바로 알려주니 (각 보좌진들에게) 도움도 되지 않겠느냐.”

- 어떤 사안이 있을 때마다 연락하나.

“(대선 끝나고) 5개월 동안 15번 정도 보냈으니 사안이 있을 때마다 보내는 편이다. 중요한 사안들부터 소소한 내용도 되도록 알려주려고 한다. 민보협이 몇 명끼리만 모여서 하는 조직이라는 인식이 되면 안되니까.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는 만약 (공직후보자로) 출마하고 싶은 사람들은 민보협회장이 정말 좋은 트레이닝코스다. 내가 어느 집단, 어느 지역 대표자가 되고 싶다면 유권자들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조금은 미안한 얘기지만 실험해볼 수 있는 기회다. 회장으로서 지금도 어떻게 할지 계속 고민하고, 사람들이 좋아해줘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한다.”

- 임기가 끝날 때까지 소통에 방점을 둘 생각인가.

“그러려고 한다. 근래에는 뉴스레터만으로는 부족하더라. 지금 사회는 PC에서 모바일시대로 왔는데 뉴스레터도 PC버전이지 않느냐. 그래서 ‘민보협 어플리케이션’(앱)을 만들었다. 내일(14일)이나 다음 주 월요일(17일)에 개통할 것이다. 내 임기만 생각한다면 만들지 않았을텐데 다음 회장한테 물려줄 수 있는 걸 고민했다. 국회 내에서 앱을 만든 건 우리가 처음이라고 하더라.”

- 마지막으로 향후 포부에 대해 말해준다면.

“국회의원을 잘해 전문성을 인정받아 ‘공정거래위원장’을 한 번 멋있게 해보는 게 내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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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소영 기자 (cho11757@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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