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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 희망버스, 알고 보니 2년 전 아이유가...


입력 2013.07.19 14:04 수정 2013.07.19 15:17        박영국 기자

2011년 대국민 희망 캠페인 '버스 콘서트' 명칭 '희망버스' 될 뻔

현대차그룹과 희망버스의 묘한 인연이 화제다. (위)2011년 현대차그룹 '버스 콘서트' TV 광고에서 가수 아이유가 시내버스에 올라 열창하고 있다. (아래)17일 오전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열린 '현대차 희망버스 종합계획발표' 기자회견에서 한 참가자가 버스모양의 피켓을 들고 서 있다.ⓒ현대자동차그룹/연합뉴스

오는 20일 ‘현대차 희망버스’라는 이름이 붙은 100대의 버스가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을 향한다. ‘희망버스’는 현대차에서 제작한 버스 브랜드 명칭이 아니다. 울산공장에서 철탑농성중인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지원하기 위해 노동단체와 진보권 인사 등 현대차로서는 반갑지 않은 손님들을 태운 버스다.

아이러니하게도 현대차는 약 2년 전 대국민 사회공헌 프로젝트에 ‘희망버스’라는 이름을 사용할 것을 검토했었다. 물론, 노동계의 대표적인 투쟁 방식 중 하나로 자리 잡은 ‘희망버스’와는 궤를 달리한다.

지난 2011년 7월 가수 아이유와 이범수가 시내버스에 올라 일반 시민들을 대상으로 게릴라 콘서트를 벌이는 TV 광고 캠페인이 등장해 화제를 모았다. 현대차그룹이 일상에 지친 시민들에게 희망과 감동을 선사한다는 의미를 담아 만든 일종의 사회공헌 광고였다.

당시 현대차그룹은 자사의 대표적인 사회공헌 사업 중 하나인 ‘기프트카 캠페인(자동차가 필요한 저소득층 이웃에게 자동차를 제공하는 사업)’과 연계해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는 기업’이라는 이미지를 구축하기 위해 해당 광고를 만들었다.

이 캠페인의 명칭은 ‘버스 콘서트’로 결정됐지만, 프로젝트 추진 과정에서 몇 가지 안이 검토됐었다. 현대차그룹 관계자에 따르면, 그 중 하나가 바로 ‘희망버스’였다.

프로젝트가 추진될 당시만 해도 ‘노동계 버전 희망버스’는 존재하지 않았고, ‘버스에 탄 시민들에게 노래로 희망을 선사한다’는 게 프로젝트 콘셉트였기 때문에 ‘희망버스’라는 명칭이 붙었다 한들 전혀 이상할 게 없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현대차그룹이 ‘희망버스’를 캠페인 명으로 정하지 않은 것은 다행이었다.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사태로 촉발된 ‘노동계 버전 희망버스’가 등장한 게 같은 해 6월이었기 때문이다. TV 광고 기획과 영상 제작을 거쳐 전파를 타기까지 수개월 씩 걸린다는 점을 감안하면 한진중공업행 1차 희망버스가 출발한 6월 11일에는 이미 ‘현대차그룹 버전 버스콘서트’ 광고가 완성단계에 이르렀을 가능성이 높다.

현대차그룹이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한쪽 희망버스에서는 국민 여동생 아이유가 인기가요를 부르고, 다른 한쪽 희망버스에서는 노동권과 진보단체 인사들이 민중가요를 부르는 웃지못할 상황이 벌어졌을 수도 있다.

그렇게 끝나는가 싶었던 현대차와 ‘희망버스’의 인연은 2년이 지난 지금 시점에서 다시 이어지게 됐다. 물론, 현대차 입장에서는 ‘악연’이라 할 만하다.

20일 오전 서울에서 50대, 부산과 경기도 등 각 지역에서 50대가 출발하는 현대차행 희망버스에는 일반 시민들과 함께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 한진중공업 및 쌍용차 해고노동자, 인천공항 비정규지부, 서울다산콜센터지부, 케이블비정규지부 등 노동계에서도 대거 탑승한다.

정지영 영화감독, 박노자 교수, 노종면 YTN 해직기자, 박재동 화백, 이시백 소설가, 박래군 인권운동가, 권영국 변호사 등 진보권 인사들도 탑승자 명단에 포함돼 있다.

이와는 별도로 서울역에서 출발하는 123석 규모의 희망열차에는 대표적인 진보권 인사인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이 울산행을 이끈다.

이들 중 누구도 현대차와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있는 이는 없다(현대차 ‘고객’일 가능성까지는 배제할 수 없지만). 즉, 이번 희망버스는 노동계 입장에서는 ‘동지의 투쟁에 함께한다’는 취지지만, 현대차를 비롯한 경영계 입장에서는 ‘외부세력 개입’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이미 지난 18일 “한진중공업 희망버스의 사례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외부세력의 개입은 노사관계를 더욱 극단으로 치닫게 하고, 회사의 경영을 어렵게 할 뿐이다. 현대차 희망버스는 법원으로부터 퇴거명령까지 받은 불법고공농성장을 방문해 불법행위를 응원하고 조장하는 것으로 즉각 중단돼야 한다”는 내용의 공식 입장을 발표하기도 했다.

울산지역 경제, 시민, 사회단체 등으로 구성된 ‘행복도시 울산만들기 범시민추진협의회(이하 행울협)’도 18일 ‘희망버스 울산 방문 시도를 즉각 중단하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하지만, 경영계나 지역 시민단체 입장이 어떻든 현대차 희망버스는 강행될 것이고, 280여일째 고공농성이 이어지고 있는 울산공장 철탑은 다시 한 번 이슈화될 가능성이 높다. 노동계의 노림수대로 정치권까지 확산될 수도 있다. 여의도에서 몇 분이 내려와 눈물이라도 흘려준다면 노동계로서는 대박이고 현대차로서는 쪽박이다.

2년 만에 다시 이어진 현대차와 희망버스의 질긴 인연이 어떤 결과를 낼지 궁금해진다. 현대차는 울산공장 내 경비·보안직원은 물론, 아산·전주공장 보안직원까지 동원해 희망버스를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고 한다.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 수천 명이 모이면 험한 꼴이 벌어질 여지가 높다.

최소한 버스 안에서 국민 여동생 아이유가 노래 부르고 시민들이 박수치며 따라하는 식의 흐뭇한 분위기는 기대하기 힘들 것 같다.

박영국 기자 (24py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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