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초실종 참여정부 언젠 기록이 역사라더니
노 전 대통령 재임기간 내내 기록 중요성 강조
남북회담 대화록 증발에 관계자들 제각각 딴소리
‘기록은 역사입니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지난 2008년 4월 11일 국가기록원 나라기록관 개관 때 써 보낸 문구로 그가 기록을 얼마나 중요시했는지 그대로 드러난다. 하지만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실종논란 과정에서 참여정부의 말과 행동은 달랐다는 게 여실히 드러났다.
노 전 대통령은 같은 해 1월 22일 국가기록원을 방문한 자리에서 “앞으로 대통령기록관에 이관될 참여정부의 대통령기록물은 공무원은 물론 연구가들, 일반 국민에게 제공돼 국가정책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소중한 자산이 될 것”이라며 가장 많은 기록물을 남긴 대통령으로 자부심을 보였다.
노 전 대통령은 대통령 사저에서 몇 사람이 모여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도 녹음기로 녹음할 정도로 기록을 철저히 남겼다. 그만큼 기록에 대한 중요성도 강조했다.
참여정부 초기인 2003년 6월 23일 노 전 대통령은 수석비서관 및 보좌관회의에서 국정원 간부들의 얼굴이 담긴 기념사진이 한 인터넷언론에 공개된 것에 대해 “있을 수 없는 일이며 과오가 있는 만큼 국정원과 함께 진상을 명확히 조사해서 냉정하게 책임을 물어라”고 지시했다.
그는 특히 국정원 기념사진의 유출 사실을 보고받고 ‘비밀’이 유출된 것도 문제지만 국정기록물인 청와대의 사진자료가 아무런 기준 없이 취급돼온 데 격노했다는 후문이 전해지고 있다.
‘노무현의 그림자’인 문재인 민주당 의원의 자서전 ‘문재인의 운명’에도 노 전 대통령이 기록을 얼마나 소중히 여겼는지가 소개돼 있다.
문 의원은 해당 자서전 375페이지와 378페이지에서 “2007년 12월 대선 이후부터 퇴임 일까지 두 달여 대통령은 더 분주했다. 기록물을 꼼꼼하게 정리하고 마무리 해 가급적 남김없이 이관하라는 당부였다”며 “방대한 기록물을 정리해 넘기는 작업을 (내가) 직접 독려하며 마무리했다”고 적었다.
문 의원은 또 “대통령은 임기 초부터 기록물에 집착했다. 성공과 좌절의 5년 기록이 역사적 평가의 자료가 되는 것은 물론, 다음 정부들에 의해 잘 활용되길 바랐다”면서 “대통령의 깊은 뜻은 이해하지만 양이 너무 방대해 몇 주일씩 밤을 새워야 해 비서관과 행정관들의 불만이 많았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렇게 기록에 대한 자신감을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찾는 과정에서 드러난 참여정부 인사들의 말과 실제 행동은 앞뒤가 전혀 맞지 않다는 점이다. 심지어는 노 전 대통령의 지시로 1급기밀인 대화록을 파기했다는 관련자의 진술도 나왔다.
지난 2007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기록 담당으로 배석했고, 정상회담 회의록의 최종본을 작성한 조명균 전 안보정책비서관은 최근 검찰에서 “노 전 대통령의 지시로 이지원(e-知園) 시스템에서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을 삭제했다”는 취지의 진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 전 비서관의 말이 사실이라면 ‘역사는 기록이다’고 주장했던 노 전 대통령이 스스로 역사를 삭제한 것이 된다.
조 전 비서관이 언급한 이지원도 논란거리다. 당초 참여정부 인사들은 이지원에 삭제 기능이 없기 때문에 대화록을 삭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22일 ‘동아일보’에 따르면 지난 2008년 1월 청와대는 외부용역을 줘 △대통령 일지 △대통령 업무주제 △업무처리방법 지시사항 △과제관리 이력 등 53개 항목을 삭제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이지원에 설치했다. 이는 2007년 7월 청와대 김모 비서관이 작성한 한국정보화진흥원의 ‘이지원 기록물보호체계 구축 사업계획서’에 기재된 내용이다.
결국 노 전 대통령은 임기 종료 한달 전 53개 항목에 대한 삭제 기능을 추가한 것이다.
2007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대통령비서실장이자 정상회담 준비위원장인 문 의원의 말 뒤집기도 논란이다.
문 의원은 국정원이 공개한 대화록은 원본이 아니라며 국가기록원에 보관된 원본을 공개하자고 주장했다. 이후 국가기록원에서 대화록을 찾지 못하자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우리는 온갖 핍박을 당하고 기록을 손에 쥔 측에서 마구 악용해도 속수무책(으로) 우리의 기록을 확인조차 못하니 말이 되느냐”고 말했다. 새누리당과 국가기록원이 회의록을 숨기고 있다는 투였다.
여야가 기록물에 대한 전수조사를 벌인 끝에 대화록은 없는 것으로 결론 내려지자 문 의원은 “새누리당은 국정원이 공개한 회의록이 진본이라는 입장이었으니 국가기록원에서 회의록을 찾지 못했다고 해서 사실 판단에 어려움이 있을 리 없다”며 사실상 국정원에서 보관중인 대화록이 원본이라는 주장을 폈다.
그는 지난 23일에는 “국가기록원에서 정상회담 회의록을 찾지 못한 상황은 국민들께 민망한 일이다. 이제 NLL 논란은 끝내야 한다”고 일방적으로 선언했다. 원본 공개를 주장하다가 끝내 대화록을 찾지 못하자 입장을 180도 바꾼 것이다.
이와 관련, 윤상현 새누리당 원내수석부대표는 지난 25일 기자간담회에서 “(대화록과) 관련된 노무현 정부 청와대 근무했던 사람들의 말이 다르다. 사람마다 다르고 또 상황에 따라 말이 달라진다”며 “누가 한 말이 맞고, 언제 한 말이 맞는지, 모두가 사실과 다른 말인지 도무지 알 길이 없다”고 지적했다.
©(주) 데일리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