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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 손해 보더라도 노조 파업에 맞서라"


입력 2013.08.21 16:17 수정 2013.08.21 17:25        박영국 기자

파업 앞세운 노조 요구안 다 들어주면 다른 기업에도 나쁜 전례 남겨

20일 현대자동차 노조가 부분 파업에 돌입한 가운데 파업 집회가 열린 1공장 앞에서 조합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이번엔 현대차가 밀리면 안 된다. 현대차가 노조의 비상식적인 요구사항을 다 들어주면 다른 기업에서도 그게 기준점이 된다. 파업으로 손실을 입더라도 연례행사처럼 파업을 벌여 무리한 요구를 관철하겠다는 노조의 행태를 바로잡아야 한다.”

20일과 21일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 노조의 연이은 파업 소식을 접한 한 재계 관계자는 마치 자신이 속한 기업의 일인 양 흥분해가며 기자에게 열변을 토했다.

그가 남의 회사 일에 이처럼 깊은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바로 현대차 노사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이 다른 모든 기업의 노사관계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현대차 노사 관계는 단일기업 벗어나 ‘전국구 사안’

국내 양대 노총 중에서도 기업과 잦은 마찰을 일으키는 쪽은 강성으로 분류되는 민주노총이다. 민주노총의 주력은 금속노조고, 금속노조에서 가장 많은 조합원이 소속된 조직이 바로 현대차노조(금속노조 현대차지부)다.

현대차는 국내 제조업 분야 최대 규모의 인력을 고용하고 있는 사업장이자, 가장 높은 수준의 임금과 복지제도를 갖춘 회사다.

민주노총 내에서의 위치나, 조합원 규모, 임금·복지수준 등 모든 면에서 대한민국 노조를 대표하는 게 현대차 노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때문에 다른 사업장 노조원들의 관심도 모두 현대차 임단협 과정과 결과에 쏠릴 수밖에 없다.

일단 현대차 노조가 회사로부터 요구사항을 이끌어내면 당장 현대차 그룹 내 모든 제조업 계열사들에 영향을 미친다. 21일부터 부분파업에 들어간 기아차 노조도 현대차 노조와 거의 동일한 수준의 요구사항을 회사측에 제출해놓고 있다.

다른 계열사들도 현대·기아차만큼은 아니지만, 그에 준하는 수준을 요구한다.

현대차 계열사 한 관계자는 “현대차 노사간 임단협 결과는 일종의 마지노선으로 작용해 다른 계열사들이 그걸 넘어서지는 못하지만, 마지노선이 높아질수록 다른 계열사 노조들의 요구사항도 그에 맞춰 상향 조정된다”고 말했다.

총 10만명에 육박하는 현대차그룹 계열사 노조가 사측에 어떤 요구안을 내놓아 관철시키면 그건 국내 노동계에서 일종의 ‘판례’와 같이 적용된다.

이를테면, 올해 임단협에서 현대차 노조가 요구한 일명 ‘재수지원금(공식 명칭은 대학 미취학 자녀 지원금) 1000만원’ 항목이 현재로서는 ‘상식에 어긋나는 요구’라며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지만, 만일 현대차에서 이를 수용하고, 기아차를 비롯한 계열사들이 이를 따르면, 다른 기업에서도 ‘상식의 범주’에 포함돼 노조가 당당히 요구할 수 있게 되는 식이다.

결국, 현대차 노사간 힘겨루기는 단일 기업 내의 사안이 아닌, 전국구 급의 사안이라고 할 수 있다. 전국의 모든 노동자들은 현대차 노조가 얼마나 받아내는지를 바라보고, 전국의 모든 기업들은 현대차가 얼마나 버티는지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현대차 노조 계파간 ‘집권경쟁’이 임단협 교섭 난항과 파업으로 이어져

이처럼 막중한 사안임에도 불구, 현대차는 그동안 노조의 요구에 무기력하게 끌려 다니는 모습을 보여 왔다. 현대차 노조 평균연봉이 1억원에 육박하고, 올해는 여기에 1억을 더 얹어달라는 요구가 나오게 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하지만 현대차 입장에서는 무작정 노조와 맞서기도 쉽지 않다. 당장 라인을 몇 시간만 멈춰도 하루에 수백억원의 손실이 발생하는데, 국내에서는 노조가 너무 쉽게 합법적으로 파업을 실시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보장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임단협 등에서 노사간 이견이 발생하면, 노조는 노동쟁의 발생 결의 후 사측에 서면 통보한 뒤, 노동위원회에 노동쟁의 조정 신청을 하고 10일 간의 조정기간만 거치면 조합원 찬성 하에 합법적으로 파업을 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노동위원회 산하 조정위원회가 조정안을 내놓기도 하지만 강제 사항은 아니다. 노조의 요구에 무리가 있건 없건, 사측과의 교섭이 결렬된 상태에서 노조가 마음만 먹으면 파업을 할 수 있다는 의미다.

현대차 노조는 지난 26년간 22차례나 파업을 진행해 왔다. 2009~2011년 사이 3년간 무파업 기간이 있었지만, 이때도 파업을 위한 노동쟁의 절차는 밟아왔다.

현대차 노조가 계속해서 무리한 요구를 내놓고 정례적으로 파업을 벌이는 배경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올해 임단협 요구안 중 일부 항목에 대해서는 조합원들 사이에서도 너무 무리한 게 아니냐는 얘기가 나오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관련,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집단이기주의와 함께 노조내 계파갈등도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며, “올해의 경우 9월 노조 임원선거를 앞두고 각 계파들이 자기 계파 인사의 당선을 위해 무리한 요구와 파업을 부추기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노조원이 4만6000명에 달하는 현대차 노조 내 권력 구도는 국내 정치계의 축소판이라고 할 수 있다.

현대차 노조는 2년에 한번씩 수장 격인 금속노조 현대차지부장과 수석부위원장, 사무국장을 러닝메이트 방식으로 선출하는 집행부 선거를 실시하며, 정치권의 ‘당(黨)’에 해당하는 ‘계파’에서 서로 집권을 위한 경쟁을 벌인다.

현 집행부가 속한 계파는 여당이고, 그렇지 못한 계파는 야당인 셈이다. 정치권에서 정쟁을 벌이듯 현대차 노조 계파간 정쟁도 심하다. 특히 선거를 앞두고는 더욱 그렇다.

원칙적으로 현대차 노조 집행부의 연임은 가능하지만, 역대 현대차 노조 집행부 선거에서 기존 집행부가 재선된 경우는 단 한 차례도 없었다. 그만큼 ‘정권 교체’가 빠르게 이뤄지고, 표심을 끌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다는 얘기다.

노조가 회사측에 큰 폭의 임금인상과 강력한 복지제도를 요구하는 것도 이같은 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다. 지난해 총선과 대선 때 여야가 서로 경쟁하듯 포퓰리즘적인 복지 공약을 내놓은 것과 마찬가지로 보면 된다.

이같은 현대차 노조 내부의 정치 다툼이 임단협 교섭 난항과 파업으로 이어져 현대차는 물론, 현대차그룹 계열사, 나아가 국내 전체 산업계가 휘둘리고 있는 셈이다.

생산성 떨어지고, 임금 높고, 파업 잦은 곳에 누가 남아있나

냉정한 시각에서 보면 지금 현대차 노조의 행보는 상당히 위험하다. 언제까지 현대차가 국내에서 강성 노조를 다독이며 대규모 공장을 가동할지에 대해 지나치게 낙관하고 있는 것 같다.

현대차는 국내에 본사를 두고 있지만, 엄밀히 말하면 세계 곳곳에 생산 및 영업 네트워크를 갖춘 글로벌 기업이다. 상식적으로 여러 곳에 공장을 두고 있는 회사가 굳이 생산성도 떨어지고, 임금도 높고, 파업도 잦은 곳에 물량을 집중할 이유는 없다.

툭하면 파업 등 생산차질로 국내 수출물량이 감소해 해외 생산물량으로 메꿔야 하는 상황인데, 한국 공장에 굳이 높은 비중을 가져가는 게 기꺼운 일은 아닐 것이다.

최근 GM이 쉐보레 크루즈 후속모델 등 주력 차종의 생산지를 한국지엠에서 다른 지역으로 변경한 것도 국내 공장의 생산성 및 임금 측면의 고려와 무관치 않다.

물론, “국내는 생산성도 떨어지고 임금도 높고 파업도 잦으니 생산물량을 해외로 돌려야 한다”는 식의 얘기가 외부에서 들려올지언정 현대차가 직접 입에 담지는 못한다.

고용률에 민감한 정부와, 노동계의 표를 의식한 정치권이 그런 발언을 한 기업을 가만 둘리 없다.

하지만, 정부도, 정치권도, 노동계도 생존의 기로에 놓인 기업의 해외 탈출까지 막지는 못한다. 이미 우리는 한때 미국의 대표적인 자동차 공업도시였다가 파산 도시로 전락한 디트로이트의 사례를 알고 있다. 단기적인 몇 가지 요인이 언급되고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미국 자동차 회사인 GM과 포드, 크라이슬러가 해외로 생산시설을 이전한 결과다.

재계 한 관계자는 “지금이야 현대차가 좋은 실적을 내고 있으니 국내 공장의 고임금과 잦은 파업을 감수하면서도 버틸 수 있지만, 점점 대내외적 경영환경이 악화되고 있는 상황”이라며 “불확실한 미래에 대비하는 게 시급한데, 계속해서 노사 관계가 걸림돌이 된다면 회사는 생존이 불투명해지고, 노조는 자승자박을 하는 꼴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박영국 기자 (24py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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