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측에 '강경대응' 명분 준 현대차 노조의 '무리수'
'재수지원금' 등 몰상식 요구로 여론 등돌려
윤여철 노무총괄 부회장 "죽는다는 각오로"
현대자동차 노조가 궁지에 몰렸다. 임금 및 단체협약 교섭 요구조항에 무리한 조건을 끼워 넣는 일도, 그걸 회사가 수용하지 않으면 파업 절차에 돌입하던 일도 매년 해오던 연례행사다. 지금까진 그게 잘 먹혔다. 하지만 이번엔 상황이 달라졌다.
그동안 파업으로 생산라인 가동을 중단하고 하루에 수백억원씩 손실을 안기면 순순히 무릎을 꿇던 회사측이 이번에는 돌연 강경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의 노무를 총괄하는 윤여철 부회장은 지난 21일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파업에 밀려 노조 요구를 수용하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며, 단호하게 원칙적으로 대응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그는 또 “나는 이미 죽었다가 다시 산 사람”이라며 “죽는다는 각오로 대처할 각오가 돼 있다”고도 언급했다.
윤 부회장은 지난해 1월 부회장직에서 사퇴했다가 올해 4월 다시 복귀했다. 자리보전에 급급해 노조의 무리한 요구를 들어줘가면서까지 파업 사태를 서둘러 수습할 이유가 없는 게 윤 부회장의 현 상황이다.
윤 부회장이 이같은 발언을 공식적으로 표명한 점을 보면 현대차그룹 경영진의 의지도 노조에 대한 강경 대응 쪽으로 기운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는 매년 노조 파업에 따른 생산 차질로 수천억원의 손실을 입는 것은 물론 이를 빌미로 전개되는 노사협상에서도 노조에 끌려 다니면서 임금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행태가 되풀이되고 있다. 이미 1인당 평균임금이 1억원에 육박하지만, 임금이 아무리 높아져도 노조는 매년 도를 넘는 인상을 요구한다.
때문에 현대차그룹 경영진도 이제는 파업으로 인한 손실은 손실대로 감수하고, 임금은 임금대로 치솟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겠다는 결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이같은 여건을 만들어준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현대차 노조다.
노조는 올해 임단협에서 기본급 6.9% 인상, 회사순이익 30% 성과급 지급, 상여금 800% 지급 등 과도한 요구는 물론, 이른바 재수지원금(자녀 대학 미취학시 기술취득지원금) 1000만원 지급이라는 기상천외한 아이디어까지 내놓았다.
현대차 노조원 연봉의 절반도 못 벌면서 자녀 학자금 걱정에 주름살이 깊어지는 서민들이 들으면 기가 막힐 일이다.
실제, 현대차 임단협 관련 기사에는 노조를 비난하는 댓글이 줄을 잇고 있다. 대부분 “노조가 배가 불렀다”, “노조에 다 퍼주니 현대차 가격이 비싸져 소비자만 피해를 본다”, “현대차는 차라리 한국공장 폐쇄하고 외국으로 떠나라”, “어려운 협력업체 사정은 안중에도 없는 귀족노조”라는 식의 비난이다.
노동운동은 명분이 분명해야 한다. 최소한 ‘노조가 악덕기업에 착취당하는 피해자’라는 그림은 그려져야 한다.
하지만, 현대차 노조의 현 임금수준과 올해 요구수준은 ‘착취’와는 거리가 멀다. 연봉 1억에 추가로 1억을 더 얹어달라고 투쟁에 나선 노동자에게 동정표를 던져줄 국민은 없다.
이처럼 여론이 노조에 등을 돌리니 현대차도 노조에 강경 대응할 명분을 얻었다. 일반 국민들 사이에서도 현대차가 차라리 국내 공장을 폐쇄하고 귀족노조를 길거리로 나앉게 한 뒤 해외로 이전하는 게 낫겠다는 소리가 나올 정도다.
재계와 산업계에서는 말할 것도 없다. 재계 한 관계자는 “그동안 현대차가 귀족노조를 키워오며 업계에 나쁜 관행을 만들어온 만큼 이제 스스로 책임을 지고 악습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며 현대차의 강경 대응을 독려했다.
임단협 타결이 미뤄져 파업이 장기화되면 손실이 확대되겠지만, 이참에 ‘연례 파업’과 ‘회사측의 요구 수용’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다면 어느 정도의 손실은 감수할 만한 가치가 있다.
파업으로 인한 국내 공장에서의 생산 차질을 해외 생산으로 충당하는 비중이 많아질수록 생산의 중심을 해외로 옮겨야 한다는 당위성도 높아질 것이고, 이는 역으로 노조에게 압박으로 작용하게 된다.
윤 부회장 입장에서도 파업을 단기간 내에 수습하는 것보다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나쁜 관행을 없애는 쪽이 높은 성과로 평가받을 수 있다.
추석 연휴 이후로 예정된 노조 집행부 선거가 임단협 교섭의 변수로 지목되고 있지만, 사측이 장기 파업을 견딜 의지만 있다면 오히려 유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현 노조 집행부는 강성노조로 분류되고 있고, 그동안 현대차 노조 집행부가 연임을 한 사례가 단 한 번도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집행부 선거 이후 새로운 노조 집행부와 다시 협상 테이블을 꾸리는 게 노사간 좀 더 합리적인 결과를 도출해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재계 한 관계자는 “현대차 노조가 올해 임단협 요구안에서 무리한 조항들을 들고 나오면서 회사측에 강경 대응의 명분을 줬다”며, “무조건 파업을 앞세워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조의 나쁜 관행을 깨기에 이번이 절호의 기회”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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