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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대통령 정치 고비마다 정공법 이번도 통할까


입력 2013.09.13 15:36 수정 2013.09.14 00:45        김지영 기자

사학법 개정안 세종시법 개정안 뚝심으로 막아

"통큰 모습 보이며 결과 도출하면 리더십 부각"

한 달 넘게 지지부진했던 대통령과 야당 대표 간 회담이 성사됨에 따라 박근혜 대통령의 리더십이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박 대통령은 지난 12일 민주당 측에 대통령과 여야 대표가 참석하는 3자회담을 제안했다. 이에 김한길 민주당 대표는 13일 수용 의사를 밝혔고, 청와대는 즉각 환영의 뜻을 내비쳤다.

앞서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비서관은 12일 춘추관에서 브리핑을 갖고 “여야 대표 3자회동을 통해 국정 전반의 문제와 현재의 문제점 등을 국민에게 투명하게 공개하고 대화에 임하고자 한다”면서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가 5자회담과 양자회담의 절충안으로 제안했던 3자회담에 대해 수용 의사를 밝혔다.

3자회담 제안 배경에 대해 이 수석은 “5자회담이든, 3자회담이든 대통령이 여야 지도부를 만나는 것 자체가 국사다. 박 대통령의 입장에서 그 원칙에는 변함이 없다”면서 “다만 정치권에서 3자회담에 대한 의견들이 있어왔고, 그렇다면 그 자체도 ‘투명하게’라는 원칙하에 큰 차이가 없다고 판단해 수용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박 대통령은 지난달 민주당에 5자회담을 제안한 뒤, 한 달 가까이 같은 방침을 고수하고 있었다. 하지만 국회가 파행을 빚고, 민생법안 처리가 지연됨에 따라 박 대통령도 고육지책으로 양보를 택한 것으로 보인다.

이번 3자회담 성사는 다방면에서 의미하는 바가 크다. 정부와 국회 간 소통은 당연하다 할 만큼 통상적인 일이지만, 새 정부 들면서 청와대와 야당 간 관계는 급속도로 얼어붙어 풀릴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었다. 이런 점에서 박 대통령의 결단은 꼬일대로 꼬인 정국을 풀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나 마찬가지였다.

같은 맥락에서 이번 3자회담 합의 과정에 가장 돋보인 건 박 대통령의 리더십이다. 앞서 박 대통령은 한나라당 대표 시절이던 2004년부터 고비마다 원칙과 신뢰의 리더십으로 정국을 타개했다.

박 대통령은 2005년 정부·여당이 사학법 개정안을 통과시키면서 사회적 혼란이 극에 달하자 장외투쟁을 선언, 정치 일정을 전면 중단한 지 53일 만에 개정안 전면 재논의라는 양보를 받아냈다. 또 2009년 정부가 세종시법을 개정하려 할 땐 “국민과의 약속이니 지켜야 한다”고 강조하며 개정안 처리를 막아냈다.

정치적 유연성도 돋보였다. 박 대통령은 때에 따라 원칙을 훼손하지 않는 한도 내에서는 자신의 입장을 굽히면서 타협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달 정부의 세제개편안 전면 재검토다.

박근혜 대통령이 12일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을 통해 여야 대표 3자회동을 국회에서 열자고 공식 제안했다. 현직 대통령이 청와대가 아닌 국회에서 야당과 정국 교착을 풀기 위한 회담을 갖자고 제안한 것은 이번이 최초다. ⓒ연합뉴스

박 대통령은 공제방식 전환을 통한 조세체제 합리화로 부족한 세원을 확충한다는 기본 입장은 견지하면서도, 서민의 부담이 가중될 수 있다는 우려가 지속적으로 제기되자 개편안 전면 재검토를 지시했다. 결국 정부는 세 부담이 증가하는 기준선을 기존 3450만 원에서 5500만 원으로 상향, 사실상 야당의 손을 들어줬다.

이처럼 박 대통령은 소속 정당의 집권 여부나 자신의 위치에 상관없이 일관된 원칙을 견지해왔고, 이는 대부분 정부와 국회 간 타협이라는 긍정적인 결과물로 나타났다. 이 때문에 박 대통령에겐 국회의원 시절부터 ‘원칙의 정치인’, ‘신뢰의 정치인’이라는 영광스런 수식어가 따라다녔다.

이번 3자회담 협상 과정에서도 박 대통령이 보여줬던 모습은 한결같았다. 박 대통령은 민생과 경제가 어려운 만큼, 민생회담을 개최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그러나 민주당 측은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사태를 회담 의제로 못 받으며 박 대통령과 김 대표 간 양자회담을 촉구했고, 이는 국정 마비라는 결과로 나타났다.

결국 박 대통령은 민생의 활로를 모색한다는 회담 취지는 퇴색시키지 않으면서도 정국현안 논의 등 민주당의 입장을 대폭 수용해 3자회담 합의라는 결과를 이끌어냈다.

이와 관련, 이 수석은 “취임 후 현재까지 대통령의 통치철학이자 신념은 모든 것을 투명하게 국민들에게 밝히고, 뒷거래나 부정부패와 관련된 어떠한 것에 대해서도 타협하지 않고 청렴과 소신을 갖고 임한다는 것”이라면서 이번 3자회담이 국민과 정치권의 의구심을 털고 나가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결국 민주당의 원한다면 국정원 사태 등에 대해서도 얼마든지 논의하고, 해결책을 모색할 수 있단 뜻으로 풀이된다.

특히 이 수석은 박 대통령의 양보를 택한 이유에 대해 “어떤 현안들에 특정하지 않고 국정운영, 국회운영, 정부운영 등을 둘러싸고 제기됐던 문제들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화를 나눠 해결하겠다는 박 대통령의 강한 의지의 표현”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회담이 합의되기까지 과정과 회담 개최 시기는 아쉬운 대목이다.

이정희 한국외국어대학교 정치학과 교수는 “회담이 합의된 것 자체는 그동안 잘 안 되던 것이 풀렸으니 긍정적으로, 높이 평가할 부분”이라면서도 “다만 대통령의 통상 일정처럼 수시로 이뤄져야 할 여야 대표와 만남이 신문 헤드라인을 장식한다는 것은 아직도 우리 정치가 상식적인 수준에도 못 미친다는 것을 말해준다”고 지적했다.

박상철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교수는 “서로 생각을 가지고 판을 만들겠다는 의도가 아니라 정기국회 등에 떠밀려 성사된 면이 크다”며 “박 대통령의 소통의 문제, 의회와 대화에 소극적인 모습은 앞으로도 큰 과제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런 면에서 대통령이 여의도 정치를 소모적으로 인식하는 한계를 노출했다”고 평했다.

다만 박 교수는 “회담의 결과가 좋게 나올 가능성이 상당히 높은데, 서로 한 발자국씩 양보해서 좋은 결과를 도출하면 오히려 박 대통령의 리더십이 부각되는 결과를 얻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편, 이번 3자회담 합의로 향후 얼어붙은 정국도 활로를 찾을 전망이다. 박 대통령이 순방 결과 보고와 회담 장소로 국회를 택한 건 민의의 전당인 의회를 존중하겠다는 의미인 만큼, 이번 회담은 그 자체만으로도 청와대와 의회 간 관계 개선의 단초가 될 것으로 보인다.

가장 중요한 것은 회담의 결과다. 박 대통령의 민생 의제와 김 대표의 국정원 의제가 얼마만큼 서로의 공감을 얻고, 결론에 반영되느냐에 향후 정국의 향방이 갈릴 수 있기 때문이다. 민생·경제 관련 법안 처리 시점과 국정원 개혁의 강도 등이 모두 이번 회담에 따라 결정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김지영 기자 (jy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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