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세금을 폭탄이라 공격하는 나라의 곳간은 텅텅
박대통령의 복지 공약 축소 만시지탄이나 당연한 선택
박근혜 정부의 복지공약이 수정됐다. 노인에 대한 무차별적 기초연금, 소득과 관계없는 무차별적 무상보육과 무상급식 등의 복지공약은 대선경쟁과정에서 나온 불량 정치상품이었다. 1% 이내의 정치경쟁에선 경제적 합리성에 기초한 정책공약보다 감성적 무상 복지상품에 치중할 수밖에 없는 것이 정치시장의 구조다.
복지확대정책을 집행하기 위해서는 국민들의 부담도 늘어야 한다. 그러나 정부는 복지공약과 함께 ‘증세없는 복지’란 정치 슬로건을 내세웠고, 결과적으로 국민들로 하여금 무상복지에 대한 환상을 심어놓았다.
복지공약 실현을 위해 제시한 ‘비과세 및 감면철폐 정책’은 애당초 증세정책이다. 증세란 세율과 과세기반에 의해 결정되며, 비과세 및 감면철폐 정책은 과세기반을 확대하는 정책이므로 증세정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세율인상없다고 증세없다는 주장은 애초부터 비논리적이었으나, 이런 감성적 용어로 인해 국민들의 무상복지에 대한 기대를 더 높여 주었다.
무상보육과 무상급식 정책으로, 해당 가구는 연간 300만원 이상의 혜택을 받지만, 세금으로 연간 16만원 인상하는 정부 세제개편안이 발표되었을 때 우리 사회는 심한 조세저항이 표출되었다. 중간소득 계층이 정부로 부터 연간 300만원 이상의 혜택을 받으면서, 16만원 부담도 하지 않겠다는 심보는 결국 ‘증세없는 복지’라는 정치용어로 인해 야기된 결과이다.
세금은 정부가 주는 혜택의 가격이다. 이런 사고를 가져야, 세금을 제대로 거둘수 있다. 미국 국세청 건물입구에 있는 글귀는 이를 잘 반영한다. “Taxes are what we pay for a civilized society. (세금은 문명사회를 누리는 대가를 지불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선 정부에서 제공하는 복지혜택의 대가가 아니고, 세금인상은 무조건 ‘세금폭탄’이 된다. 세금이 가격이 되지 않고, 폭탄이 되는 사회에선 재정적자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결국 우리 세대가 무상복지를 즐기기 위해서, 그 계산서를 우리 자식세대로 넘기는 것이다.
우린 지금 그리스, 스페인, 포르투갈 등의 국가에서 재정건전성 문제가 국가경제에 얼마나 중요한 정책과제인가를 교훈삼아야 한다. 이들 국가들의 문제발단은 모두 무상복지 확대에서 기인하였다. 그만큼 한번 확대한 무상복지정책은 정치구조상 절대 되돌릴수 없는 속성이 있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도입해야 한다.
국가경제가 성장하면, 복지지출도 확대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복지정책 방향을 논의할 때는 반드시 복지 종류별로 나누어 정책방향을 다르게 접근해야 한다. 복지는 빈곤층을 대상으로 하는 ‘빈곤복지’, 국민연금 및 건강보험처럼 국가에서 강제적으로 가입하게 하는 ‘사회보험 복지’, 보육 및 급식 등과 같은 ‘사회서비스 복지’의 세가지 형태로 나누어 정책방향도 다르게 접근해야 한다.
정치상품으로 복지정책을 여야당 할 것없이 확대경쟁하는 이유는 복지라는 용어에는 빈곤계층에 대한 정부의 따뜻한 배려라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으므로, 이를 정치세력이 선점하려고 경쟁하기 때문이다. 지금 정부에서 추진하는 무상복지 정책은 빈곤층을 대상으로 하는 ‘빈곤복지’가 아니고, 소득과 관계없이 고소득층에게도 무차별적으로 제공하자는 ‘사회서비스 복지정책’을 의미한다.
보육, 급식 등과 같은 사회 서비스는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선별적으로 제공되어야지, 부자들에게 무차별적으로 제공하는 것은 낭비다. 부자들은 스스로의 복지를 책임질 수 있는 경제적 능력이 있으므로 정부개입이 필요없는 계층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낙인효과 등과 같은 논리로 보편적 무상복지를 채택하는 것은 옳지 않는 방향이다. 벌써 초등학교 현장에선 무상 급식우유가 버려지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이는 학생의 도덕적으로 잘못된 것이 아니고, 무상복지정책으로 인해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낭비의 한 예뿐이다. 무상복지는 절대 무상이 아니고, 세금으로 충당되어야 한다. 이 세금이 국가경제에 무서운 경제비용을 야기하기 때문에 무차별적 복지지출을 자제해야 한다.
복지확대정책을 집행하기 위해서는 국민들의 부담도 높여야 한다. 현 정부는 재원조달을 위해 ‘세출개혁’과 세입개혁으로 ‘비과세 및 감면철폐’와 ‘지하경제 양성화’ 정책을 제시하였다. 복지공약을 수정하기 보다는 실현할수 있는 재원확보에 정치적 선택을 하였다. 그러나 세출개혁을 애기했지만, 공공부문 개혁에 대한 어떠한 청사진도 제시하지 못했다.
일반적으로 정권 초기에는 공공부문 개혁을 핵심과제로 삼지만, 이번 정부는 개혁방향도 제시하지 못하면서 세출개혁을 통해 82조원을 확보하겠다는 감성적 의지만을 보여주었다. 또한 세입개혁으로 비과세 및 감면철폐 정책은 원칙적으로 옳지만, 이는 이론공간에서 가능한 얘기다.
정치권과 관료사회가 힘을 가지는 이유는 이익집단에 대한 비과세 및 감면제도를 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모든 비과세 및 감면조항은 형평성 혹은 특정경제행위 및 경제분야로 유인하려는 정책수단으로 활용된다. 그러므로 비과세 및 감면철폐를 통한 재원확보는 철부지 이론가들 사이에 유행하지, 정치적 과정을 이해하면 거의 불가능해 진다. 정부에서 비과세 및 감면철폐정책을 발표하는 이후에도 국회에선 이를 연장하는 법안이 계속적으로 올라오고 있는 현실을 보면, 잘 이해할 수 있다.
지하경제 양성화 정책도 원칙적 바른 방향이다. 따라서 모든 정권에서 이 정책을 단골로 제시하였으나, 정치적 지지를 유도할 수 있는 감성적 정책일 뿐이다. 한국의 지하경제 규모가 GDP 대비 25% 수준이란 학자들의 연구결과를 토대로 재원 마련하겠다는 주장은 순진하기 짝이 없다.
학자들의 순수한 연구결과를 실제 지하경제 규모로 오인하고 정책 목표액이 되면, 서민계층이 더 어려워진다. 과거의 모든 정권이 지하경제 양성화를 주장했지만, 그 효과는 미미했다. 그만큼 행정비용이 많이 들고, 정책대비 효과성도 낮았다. 지하경제를 파악하는 세무조사란 정책수단의 행정비용은 소득계층별로 차이가 난다.
즉 고소득층에 대한 세무조사 행정비용은 높고, 서민계층은 낮다. 포장마차를 세무조사해서 탈세 파악하는 것이 전문직 자영자 계층보다 훨씬 쉽기 때문에, 세무조사란 정책수단을 강화할수록 서민이 더 괴로워지는 것이 지하경제의 구조다. 따라서 처음부터 지하경제 양성화를 통해 구체적인 복지재원을 마련하겠다는 정책방향은 잘못된 것이다. 그저 정치적 의지만을 보여주고 정권기간동안 세수확보 수단과는 무관하게 꾸준히 실행하면 되는 정책이었다.
복지공약을 위해 정부가 제시했던 재원 마련 방안은 현실화되기 어려운 방향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정부에서 복지공약을 축소하겠다는 변화를 보여주었다. 올바른 방향이다. 지금까지 복지공약을 위한 국민부담에만 정책 초점을 주었지만, 이제 현재의 국민부담 수준 하에서 현실적으로 가능하도록 복지공약을 대폭 수정하는 쪽으로 정책방향을 바꿔야 한다.
재정건전성이란 국가미래를 위한 제약조건 하에서 수정된 복지정책의 청사진을 제시해야 한다. 대통령이 국민에 대한 약속보다, 국가의 미래를 위해 선택할 수밖에 없었음으로 솔직하게 시인해야 한다. 대선과정에선 모든 후보들은 일정수준의 포플리즘 정책을 생산해 낸다. 정치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과정이다.
그러나 대통령이 되면 다른 논리로 접근해야 한다. 어차피 공약이란, 국정경험도 없는 후보자들이 내세우는 의지일 뿐, 공약실현 때문에 국가미래를 망칠 수는 없다. 대통령이 되어, 복지공약에 대한 구체적인 재원마련이란 측면에서 검토하면, 재정건전성 문제와 장기적 경제성장의 한계라는 문제들이 보인다.
공약과 국가미래를 위한 정책방향이 괴리를 가질 때, 대통령이 어느 쪽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국가운명이 갈린다. 대국민 공약을 수정하는 것은 정치인으로서 매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약보다 국가미래를 선택할 때, 그 나라의 미래는 밝다. 앞으로 야당의 정치공세는 치열해 질 것이다. 진솔되게 대국민 사과와 수정한 복지정책에 대한 청사진을 제시하면서, 지속적으로 국민을 설득해야 한다.
글/현진권 한국경제연구원 사회통합센터 소장·한국재정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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