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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국부는 김일성? '인간백정' 슈티코프


입력 2013.10.20 10:24 수정 2013.10.20 10:29        데스크 (desk@dailian.co.kr)

<굿소사이어티 서평>마르크스부터 카스트로까지 공산주의 흥망성사

'코뮤니스트' 로버트 서비스 저/교양인 간
"지금 레닌은 살아있는 모든 사람들보다 더 생생하게 살아있다."

러시아의 한 시인이 했다는 이 말은 레토릭이 아니라 방부(防腐) 처리된 시신을 비꼬는 것이다. 블라디미르 레닌이 사망한 것은 1924년 초인데, 사후 즉각 시신 방부 처리가 된 이후 90년 째 건재하고 있다. 위기는 소비에트 붕괴 당시였다. 보리스 옐친이 시신 매장을 제안했으나 여러 가지 이유로 뜻을 못 이뤘다. 되살아난 이후 2004년 대대적으로 시신을 손보았는데, 요즘은 그 어느 때보다 젊어 보이는 쪽으로 얼굴 화장을 했다. 또 18개월마다 특수 제작된새 양복으로 갈아입는다.

흥미로운 건 매력적인 책 '불멸화위원회'(존 그레이 지음, 이후 펴냄)가 전하는 관련 정보이다. 레닌 시신 방부처리 제안은 레닌의 후계자 스탈린이 들고 나왔는데, 중요한 건 당시 모스크바의 독특한 분위기였다. 그때는 자연과학의 힘으로 죽음까지도 극복할 수 있다는 낙관적 믿음이 깔려 있었고, 위대한 정치지도자 레닌을 어떻게든 되살려낼 수 있을 것으로 누구나 생각했다. 초기 공산주의자들이 가졌던 멘털리티에 대한 많은 암시를 던져준다.

저들은 유토피아의 꿈과 휴머니즘의 비전을 가지고 있었다. 총체적 사회개혁의 비전이 컸고, 그래서 혁명에 헌신했으리라. 또 근대과학의 잠재력을 극한으로 끌어올리고자했다. 문제는 그게 지나쳤다. 공산주의적 인간형으로 사람을 개조시키거나, 죽은 자를 살려낼 수 있다는 주술적 신앙으로 치달았다. 20세기사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공산주의는 그래서 위험했고, 그 결과 자멸했다. 맞다. '불멸화위원회' 저자의 지적대로 볼세비키즘, 공산주의란 차라리 종교운동으로 봐야(168쪽)할지도 모른다.

공산주의는 차라리 종교운동에 속한다?

이달에 리뷰하는 책 '코뮤니스트'(로버트 서비스 지음, 교양인 펴냄)는 사회혁명이자 종교운동이었던 공산주의의 전개와 몰락과정을 다룬 묵직한 책이다. 부제는 '마르크스에서 카스트로까지, 공산주의 승리와 실패의 세계사'. 냉전시대처럼 자본주의 편이냐, 공산주의 쪽이냐는 편 가르기 없이 냉정하게, 그리고 지적으로 분석하는 게 특징이다. 실제로 800쪽 넘는 분량에 정보가 방대하다. 공산주의 대하드라마를 이처럼 포괄적으로 다룬 책도 드문데,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이유는 많다.

우리 근현대사를 접근할 때 공산주의라고 하는 이념, 그리고 이를 둘러싼 갈등을 외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건 1919년 3.1운동까지 거슬러 올라가니 거의 100년 역사를 기록한다. 현실적으로 실패국가 북한이라는 변수도 있다. 그들과 여전히 대치하고 있는 국면에서 공산주의의 빛과 그림자는 여전히 새롭게 분석돼야 한다. 북한, 저들의 왜곡된 정치구조의 족보와 유래, 그리고 놀라운 폭력성, 무엇보다 종주국이 거꾸러진 지 20여년을 넘긴 지금까지도 숨이 붙어있는 생명력에 대한 암시도 이 책에서 받을 수 있다. 이 땅 사회갈등의 한 축인 '역사의 찌꺼기' 종북세력 문제도 '코뮤니스트'를 읽는 내내 머리 한켠에서 떠나지 않는 요소이다.

이들을 너른 시야에서 이해해야할 필요성은 여전한데, 저자는 영국 옥스퍼드대 역사학 교수이다. 러시아 근현대사의 권위자이며 특히 혁명사 분야에서 업적을 인정받았다. 이 책을 관류하는 관점은 공산주의 체제는 나라별로의 편차에도 불구하고 근본적으로 닮은꼴이라는 점이다. 조금 전 언급대로 공산주의 체제는 놀라운 유토피아적 비전과 사회개조의 비전을 가졌으면서도, 역사의 균형감각과 자기 조절 능력이 없어 이내 국가테러의 철권을 휘두르는 쪽으로 치달았다. 모든 나라가 그러했다.

중국의 마오쩌둥에서 크메르루즈의 폴 포트에 이르기까지 공산주의 역사가 대량학살과 인권 유린의 스캔들로 얼룩져온 것은 그 때문이다. 옛 소련에서 동유럽 그리고 지금의 쿠바, 북한에 이르기까지 정치 사회적 시스템도 너무도 닮은 것도 우연이 아니다. 우선 일당독재. 즉 경쟁정당을 없애거나 무기력하게 만들어 다원주의를 스스로 제거한다. 종교 문화 시민사회를 과도하게 짓밟는 공격성, 즉 '증오의 문법'도 특징이다. 사법과 언론의 자율성을 제거하는 수순은 혁명 초기부터 거의 예외없이 펼쳐진다. 그리곤 반체제 인사들을 강제노동수용소에 집어넣고, 보안경찰과 정보원의 막강한 네트워크를 수립한다.

역사 이래 어떤 사회도 이처럼 극단적이지는 않았다

이 과정에서 급기야 정치 도그마의 무오류성을 주장하는 단계로 나간다. 저자의 말대로 공산주의 지도자들은 어느 나라이건 "자기들이 인간사에 관한 무결점의 과학자라고 과시"하곤 했다. 이런 특징 때문에 공산주의 체제는 단순히 권력집중이 심한 독재체제로 분류할 순 없다. 인류사에 등장한 전무후무한 무소불위의 전체주의 사회이다. 역사 이래로 어떤 사회도 사회통제를 이처럼 극단적으로 몰아간 적은 없었으니 실로 공포스럽고, 실로 전율 넘치는 역사경험이었다.

막강한 근대 행정력과 거미줄 같은 관료체제, 전 국가를 묶는 강력한 통신수단을 틀어쥔 국가 행정력이기에 전율 넘치는빅브라더 국가를 등장시키는 것이다. 역설이다. 가장 인간다운 세상을 추구한다던 이념, 숱한 젊은이들과 지식인들을 매료시켰던 이념이 짧은 기간 안에 처참한 인간지옥으로 급전직하하다니. 인간 해방의 꿈으로 뭉친 공산주의 동지들이 왜 서로를 의심하고 증오하면서 그토록 집요한 권력투쟁에 매달리게 되었을까? '코뮤니스트'는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공산주의라는 이념의 태동과 발전, 성공과 몰락을 전 세계적 범위에서 조망하는 책이다.

우리의 시야를 가려왔던 역사의 먼지가 내려앉은 지금 차분히 되돌아보면 공산주의의 혁명적 열정이란 실로 역사의 미망(迷妄)이었다. 목표를 위해 억압과 폭력까지 용납했던 '제도화된 테러' 시스템이었기 때문이다. 저들은 승리를 쟁취하자마자 거의 모든 곳에서 분열을 재촉했다. 이상을 지키려다 현실과 타협하고 이상을 배반하는 자기모순이 이어졌다. 자유롭고 평등한 낙원의 꿈은 비참하고 가혹한 독재로 굳어져 산산이 부서졌다. 실로 아이러니가 아닐까?

1980년대 말만해도 공포의 핵 시계가 우리 머리 위에서 재깍거렸다. 핵 겨울의 도래와 인류 절멸의 스멀거리는 공포가 지구촌을 사로잡았다. 쿠바 혁명이 1959년의 일이고, 베트남 적화통일이 1975년이었다. 그리고 1980년대 내내 공산주의라고 하는 유령이 역사무대에서 출몰했다. 그런 공산주의가 그토록 쉽게 퇴장하리라고 예견했던 이는 거의 없었다. 공산주의 체제는 소련에서 처음 실현된 지 70년을 약간 넘겨 도미노처럼 붕괴하기 시작했다.

공산주의 적들조차 이 대몰락에 깜짝 놀랐다. 역사상 가장 혁신적이고 매혹적이었던 이념은 순식간에 영향력을 상실해 갔고, 참담한 실상이 드러났다. 적지 않은 이들이 그걸 묻는다. 만일 현실 사회주의의 첫 모델을 후진국 러시아이 아닌 서유럽 쪽에서 만들었더라면, 국가테러로 유지되는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등장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고. 말이 아주 안되는 게 아니다. 테러, 독재, 음모주의, 중앙집권주의, 교조주의 따위란 혁명 반혁명세력 사이의 밀고 당김이 지독했던 제정 러시아 특유의 사회 분위기에서 생성됐다.

계몽주의의 지적 유산이 강한 서유럽에서 현실공산주의가 싹 텄더라면, '인간의 얼굴을 한' 유로코뮤니즘 같은 정치실험이 일찌감치 가능했으리라고 예견할 수도 있다. 그들은 또 말한다. 레닌의 후계자로 스탈린 대신 보다 유연한 트로츠키나 지노비예프, 혹은 부하린 등이 등장했더라면 상황이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이 또한 한가한 예측이다. 볼세비키 혁명 직후 정보보안을 담당하는 체카(Cheka)를 설치해 '혁명 보위'에 나섰던 게 바로 레닌이었다. 체카는 모든 형태의 반혁명과의 투쟁을 위해 만들어진 악명 높은 보안경찰이었다. 사실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장점을 변호해온 인물도 레닌이다.

실제로 레닌은 자신의 사망 훨씬 직전인 1920년대 초 일당독재와 유일 이데올로기로 무장한 중앙집권 국가의 틀을 세웠던 주인공으로 이 책에서 확인된다. 부하린의 경우도 그렇다. 그는 파리 한 마리도 죽이지 못하는 유약한 사람이었고, 동물애호가이자 화가였다. 그런 부하린은 독재와 테러정책을 포기하지 않았고, 소비에트 초기 볼셰비키가 저질렀던 폭력의 대부분을 묵인했다. 현실정치로서의 사회주의 공산주의의 성공과 실패란 몇몇 역사적 상황이나 사악한 지도자의 탓이라기보다는 구조적인 원인이 있다는 것이다. '코뮤니스트'는 말한다. '평등한 낙원'을 꿈꾼 공산주의는 태생적으로 비극적인 전체주의의 씨앗을 갖고 있다.

거대한 수수께기 북한에 대한 많은 암시

안타깝게도 그런 공산주의는 21세기 한반도에서 현재진행형이다. 역사의 흔적기관 혹은 끝물로서 북한이라고 하는 기형적 체제로 잔명을 유지하고 있다. 무려 200만 명에서 300만 명에 이르는 자국민을 굶겨죽인 나라, 20년 넘게 산소호흡기로 연명되는 북한은 정말 수수께끼이다. 놀랍도록 오래 지속되는 분단상황에서 핵무기로 무장한 그들은 초강대국 미국에게 턱없는 "워싱턴 불바다"를 위협하고 있다. 그런 북한 체제에 관한 정보가 '코뮤니스트'에 많이 담긴 것은 아니다. 북한보다는 차라리 쿠바에 관한 서술분량이 많다. 세계공산주의사에서 북한이 담당했던 역할은 그만큼 미미하다는 걸 보여준다.

하지만 이 책에는 지금과 예전의 북한에 관한 많은 암시를 얻을 수는 있다. 저자의 강조대로 공산주의는 구조적으로 닮은꼴이기 때문인데, 그건 우연이 아니다. '망치로 정치하기'(박성현 지음)에 따르면, 해방 직후 소련 군정청 사령관 슈티코프야말로 북한의 국부(國父)이자, 숨은 디자이너였다.

김일성을 발탁한 것도 그였지만 그는 거의 '인간 백정' 수준의 잔혹한 인간이었다. 그의 성격을 말하는 게 아니다. 악덕으로 뭉쳐진 '미스터 볼셰비키'의 성장과정 덕분에 소련의 파워엘리트가 됐다는 게 중요하다. 실제로 그는 1930년대 스탈린의 숙청 바람 때 레닌그라드의 고참 당원들을 가장 많이 죽였다. 그 공로로 20대 나이에 레닌그라드 시당 위원이 되었다. 스탈린 체제의 2인자로 군림했던 즈다노프의 사위가 되었던 것도 그런 맥락이다.

"슈티코프는 900일 동안 이어진 레닌그라드포위전 때 간첩 색출, 배급물자 배급, 외부로 통하는 비밀통로 관리를 맡았다. 레닌그라드 시민의 생사여탈권을 휘두른 저승사자였다. 이 과정을 통해 슈티코프는 백정의 한계를 넘어 공작, 음모, 고문, 처형의 예술을 익혔다. 그는 이 예술을 사용해서 김일성을 발탁하고, 북한을 만들었다. 북한의 국부는 슈티코프였으며, 김일성은 그의 충직한 실무 대행자로 출발했다."(76쪽)

이 책의 주장을 받아들인다면, 인류사에서 가장 가혹한 북한의 전체주의 속성이 조금 더 분명해진다. 많은 이들이 지적한다. 저들의 주체사상은 신봉자 숫자나 신정(神政)체제 때문에 세계 10대 종교로 분류될 정도라고. 미국 종교 통계사이트 애드히런츠닷컴(adherents.com)이 예전에 그렇게 발표했다.

신자 21억 명을 거느린 기독교, 이슬람교(13억 명), 힌두교(9 억 명), 불교(3억 8천여 명)에 못지않은 종교이자, 거대한 프랑켄슈타인 정치체제라는 지적이었다. 확실히 북한은 20세기 역사에서 미끄러진 실패국가인 그들이란 생각하면 할수록 우리시대의 시한폭탄이 맞다. 아까 언급했던 책 '불멸화위원회' 저자의 지적대로 공산주의란 차라리 종교운동으로 봐야하는데, 가장 종교적이고 잔혹한 북한, 서울과 워싱턴 불바다를 호언하는 저들의 집단심리를 구조적으로 파악하는데 '코뮤니스트'가 도움이 되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글/조우석 문화평론가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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