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면 세운 한국농구 '타도 중국' 능사 아니다
런던올림픽 남녀동반 탈락 아픔 씻어..나란히 농구월드컵 티켓 따내
'중국 독주 균열' 일본-필리핀에 패배..아시아 상향평준화 조짐
한국농구의 2013년 국제대회 일정이 모두 막을 내렸다.
지난 2012년 남녀 동반으로 런던올림픽 본선진출에 실패하며 체면을 구겼던 한국농구는 올해 나란히 농구월드컵 진출권을 따내며 최소한의 자존심을 회복했다.
남자농구의 경우, 1998년 그리스 세계대회 이후 무려 16년만이자 프로화 이후로는 처음 획득한 농구월드컵 티켓이라 더욱 값진 의미가 있다. 여자농구 역시 일본 벽에 막혀 정상탈환에는 실패했지만, 런던올림픽 좌절의 아픔을 다소 치유했다. 방열 신임회장 체제로 첫 해를 치른 대한농구협회 입장에서도 어느 정도 체면을 세울 수 있게 됐다.
'한국형 농구'의 부활 가능성을 발견했다는 것도 성과라고 할 수 있다.
종전 폭발적인 스피드와 외곽슛을 바탕으로 아시아를 주름잡았던 한국농구는 90년대를 이끈 황금세대들이 노쇠하면서 한동안 하락세를 그렸지만, 2013년 아시아 대회를 통해 오랜만에 경쟁력을 입증했다. 남녀모두 높이의 열세와 대형스타 부재라는 약점을 안고도 전방위 압박을 통한 강력한 수비농구를 앞세워 강팀을 괴롭히는 저력을 과시했다.
하지만 현장에서의 눈물겨운 노력과 성과에도 아쉬움 또한 크다. 남녀 모두 그간 아시아 최강으로 꼽히던 중국을 넘어섰음에도 정작 필리핀과 일본 등 예상 밖의 팀에 덜미를 잡혀 우승에 실패했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종래 한국농구의 목표가 ‘타도 중국’이었다면, 이제는 아시아농구도 상향평준화 됐다는 것을 새롭게 깨닫게 했다.
아시아농구에서 중국의 독주시대는 이미 끝났다. 남자농구의 경우, 2000년대부터 중동세의 약진이 중국을 능가하기 시작한 지 오래다. 올해 아시아대회 우승을 차지한 이란은 최근 4번의 대회 중 세 번이나 우승을 차지하는 저력을 입증, 아시아농구의 새로운 절대강자로 떠올랐다.
이밖에도 카타르, 대만, 필리핀 등은 '귀화선수'라는 카드로 전력을 끌어올리며 아시아농구의 다크호스로 부상하고 있다. 이런 팀들에 비해 개인능력이나 선수층, 인프라에서 앞선다고 할 수 없는 한국농구로서는 더욱 험난한 행보를 예상한다.
여자농구의 경우, 이번 대회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현상은 역시 일본의 약진이다. 아시아농구는 한중일의 3강 구도가 여전히 견고하지만 종래 '중국>한국>일본'으로 이어지는 서열이 뚜렷했다면, 1~2년 사이에 이런 균형은 급격히 무너지고 있다. 일본은 이번 대회에서 에이스 오가 유코를 제외한 나머지 선수들이 모두 20대로 구성될 만큼 팀이 젊고 강해졌다.
그에 비해 한국 여자농구는 여전히 30대 베테랑들에 대한 의존도가 높았다.
선수생활이 많이 남지 않은 변연하와 신정자 같은 선수들은 지금도 대체할만한 후보조차 보이지 않는 게 현실이다. 중국은 이겼지만 일본에 이어 대만에도 덜미를 잡힐 만큼 한국의 전력은 사실상 불안정했다. 그나마 젊은 선수들이 이끄는 중국이나 일본이 2~3년 후가 더 무서워질 팀이라면 세대교체가 불확실한 한국은 정반대라는 게 가장 큰 문제다.
향후 국제경쟁력 강화를 위해 남녀 모두 시급한 과제는 대형 센터의 발굴이다. 남녀농구 모두 이번 아시아선수권에서 높이의 열세를 절감했다. 남자는 그나마 김종규-이종현 같은 차새대 선수들을 어느 정도 발굴했다. 최근에는 아시아농구의 흐름에 발맞춰 귀화선수를 영입하는 주장도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여자농구의 경우는 문제가 좀 더 심각하다.
이번 대표팀에서 최장신 하은주가 부상으로 하차하면서 엔트리에 190cm 이상의 장신센터가 전무했다. 선수수급 자체가 날로 어려워지는 한국여자농구에서 아마추어까지 둘러봐도 중학생 센터 박지수(193cm) 정도를 제외하면 주목할 만한 장신 유망주가 보이지 않을 만큼 선수층이 얇다. 대표팀의 경쟁력을 위해서는 당장 아마농구부터 살리기 위한 노력이 시급하다.
대표팀에 대한 장기적인 기획과 투자도 절실하다. 이번 아시아대회에서 어느 정도 성과를 올리기는 했지만, 여전히 대표팀 운영에 대한 체계적인 지원이나 중장기적인 비전이 없다는 점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평가다.
선수차출과 관리에 대한 프로-협회의 유기적인 공조체제가 이뤄지지 않아서 매년 발생하는 국가대표 선수들의 차출과 부상을 둘러싼 잡음도 계속되고 있다. 당장 2014년만 해도 남녀 모두 농구월드컵과 아시안게임 일정이 중복돼 대표팀 운영을 이원화 해야 하는 등 여러 문제가 산적해있다. 국제경쟁력 회복을 위해서는 남녀 모두 아직 갈 길이 먼 한국농구의 현 주소다.
©(주) 데일리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