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과잉범죄화현상 심각…징역 대신 '벌금형'으로
한경연, '기업활동에 대한 과잉범죄화' 국제심포지엄 개최
"피해정도와 고의성 기준…공정거래법 일괄 적용 과잉범죄화" 지적
최근들어 국내서 기업활동에 대한 과잉범죄화 현상이 심각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따라서 피해정도와 고의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피해자가 없는 범죄에 대한 처벌은 다른 범죄들과는 달리 봐야 하며, 국가경제성장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바람직하지 않은 기업행위를 효과적으로 억제하는 방안으로는 징역형이 아닌 벌금제도라는 비형벌적 방안을 활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같은 주장은 한국경제연구원(원장 최병일)이 7일 오전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개최한한 ‘기업활동에 대한 과잉범죄화 : 경제성장에 주는 함의’라는 주제의 국제 심포지엄에서 제기됐다.
이날 심포지엄은 최병일 원장의 개회사와 한스-베른트 쉐퍼 독일 함부르그대 교수(유럽법경제학회 전 회장)의 기조연설을 시작으로, ‘한국의 과잉범죄화 및 국제사례비교’와 ‘유럽과 미국의 과잉범죄화 현황 분석’에 대한 주제발표 및 토론을 통해 전 세계적으로 증가추세에 있는 과잉범죄화의 원인과 한국의 현황에 대해 논의했다.
이날 한스-베른트 쉐퍼 교수는 ‘국부가 증가함에 따라 형법의 영역이 축소되어야 하는가’라는 제목의 기조연설에서 “기업행위에 대한 과잉범죄화 문제는 전 세계적인 현상”임을 지적한뒤 “경제발전에 따른 범죄화의 추이와 형법 적용의 한계”를 설명했다.
쉐퍼 교수는 “형사처벌에 관한 법경제학적 이론의 한계를 강조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정법 및 민법이 형법을 대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고 언급했다.
쉐퍼 교수는 “국가경제성장을 추진하면서 바람직하지 않은 기업행위를 효과적으로 억제하는 방안으로는 형벌적 수단인 징역형이 아닌 벌금제도라는 비형벌적 방안을 활용할 것”을 제안했다.
그는 “피해자를 적시할 수 없는 범죄행위에 대해서 다른 범죄와 같은 잣대를 적용하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며 “경제행위에 대한 비범죄화가 가장 필요한 분야”라고 강조했다.
이어 김일중 성균관대 교수는 ‘한국 과잉범죄화 : 공정거래법 사례를 중심으로’ 란 주제발표에서 “한국의 경우 행정규제의 과다한 적용으로 규제범죄자를 양산하는 과잉범죄화 현상이 심각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며 우려했다.
김 교수는 “피해 정도와 고의성이라는 두 가지 기준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범죄행위에 대한 처벌이 결정돼야 한다”는 법경제학적 이론적 바탕을 제시하며, “우리나라에서는 두 가지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경우의 행정규제 위반사례들도 무분별하고 과다하게 처벌되는 현상이 관찰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규제범죄의 과다한 형벌화로 인해 국민의 5분의 1, 성인의 4분의 1 이상이 전과자로 내몰리고 있는 과잉범죄화 현상이 발생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따라서 범죄억지 및 위반행위의 저지라는 고유목적을 위해 도입된 행정규제가 비형벌적 제재수단은 무시된 채 형벌적 수단에만 의존하는 행정규제 악용의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과잉범죄화 추이를 발생시키는 원인에 대해 김 교수는 “상대적으로 손쉽게 적용 가능한 규제범죄 처벌제도와 처벌을 결정하는 기관 내에서 규제범죄가 일반범죄에 비해 승진 등에 유리하게 설계돼 있는 유인구조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 교수는 “한국에서 발견되는 과잉범죄화 추이의 심각성은 각종 비교분석에서도 나타난다”면서 “실제 14개국의 1심 유죄판결비율을 비교했을 때 한국은 핀란드와 영국 다음으로 3위를 차지하고, 일반범죄자의 기소율이 31%인 반면 규제범죄자의 경우 거의 두 배인 61%에 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피해정도와 고의성’이라는 기준으로 볼 때 “경제력 집중억제 행위 등을 주 골자로 하는 한국의 공정거래법은 일괄적 형법 규정 적용의 문제점과 과잉범죄화 가능성 등의 문제를 안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공정거래위원회의 고발건수 중 불과 2.4%만이 기소되는 현실을 지적하고, 이것이 기업활동의 위반행위에 대해 일괄적으로 형사처벌을 적용하는 공정거래법이 과잉적 처벌조항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김 교수는 공정거래위원회가 부과한 벌금액수와 위반행위의 고의성을 실증분석해보면, 시장지배적지위의 남용행위 및 부당한 공정행위만이 형법의 적용영역에 포함되는 것으로 나타나고, 이를 불충족하는 경제력집중억제행위, 불공정거래행위, 그리고 사업자단체 금지행위에 대한 형법 규정은 비형벌화 등의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누노 가루파 미국 일리노이대 교수는 형사 제재방식이 다른 방식들에 비해 비교우위를 갖고 있는 분야와 특정한 범죄행위들에 대해 형사제재가 가해지는 이유를 이론적으로 설명하며, 입법자의 경향에 대해 설명했다.
가루파 교수는 여러 가지 제재방식 중 형법으로 다스려야하는 것은 처벌의 대상이 되는 활동이 (공적으로) 해로운 영향을 끼치고, 다른 방식에 비해 더 효율적인 억제방식이어야 한다고 법경제학적 형벌화 이론을 제시했다.
따라서 만일 이러한 두 가지 형벌적 기준에 부합하지 않을 경우에는 형벌이 아닌 민법적 제재방식을 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경제활동에 대한 제재방식으로 형벌을 사용할 경우는 경제활동으로 사회가 얻는 혜택에 비해서 형벌적 제재로 인해 발생하는 비용이 낮을 때에만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이날 오후에는 가루파 교수의 사회로 ‘유럽과 미국의 규제범죄와 과잉범죄화’ 세션에서 페르난도 고메즈 스페인 폼페우 파브라대 교수, 헨릭 난도 덴마크 코펜하겐 비지니스 스쿨 법학과 교수, 그리고 조안나 쉐퍼드-베일리 미국 에모리대 교수가 발표자로 나섰다.
오후 세션의 첫 번째 발제자로 나선 고메즈 교수는 ‘범죄화의 다양한 측면들: 스페인의 사례들을 중심으로’라는 제목의 발표에서 스페인의 과잉범죄화 사례와 데이타를 중심으로 유럽의 과잉범죄화 추이를 설명했다.
고메즈 교수는 “과잉범죄화 현상을 모든 방면에서 동일하게 분석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면서 “사회적 분위기 혹은 경제적 상황에 따라 범죄화의 사회적 요구가 달라지는 점을 고려해 과연 과잉범죄화가 발생하고 있는지를 분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형벌을 결정할 때 수반되는 사회적 비용을 고려해 볼 때, 비범죄화는 사회적 후생을 증가시키는 것이 분명하나 그로인해 발생할 수 있는 제재의 효과 감소에 대한 분석도 함께 수반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두 번째 발제자인 헨릭 란도 덴마크 코펜하겐 비지니스스쿨 법학과 교수는 ‘덴마크의 과잉범죄화 위험: 독점금지법과 금융시장 규제를 중심으로’라는 발표를 통해 덴마크를 포함해 수많은 국가들에서 최근 관찰되고 있는 경제활동 및 규제범죄에 대한 과잉 처벌 경향을 설명하고 이러한 과잉범죄화 추이의 주요 원인들을 독점금지법과 인사이드 트레이딩과 같은 금융시장에서 발생하는 범죄를 예로들어 설명했다.
헨릭 란도 교수는 “경제적 범죄행위에 대한 제재효과를 극대화시키기 위해서는 중형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일관된 법적용이 더욱 중시된다”고 주장하며 “법집행자가 과잉범죄화의 유혹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과잉적 처벌의 경우 도리어 그에 대한 피해보상 또한 고려대상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제시했다. 또한 “과잉범죄화의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서는 법집행당국의 질적인 면을 개선시킬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번 심포지엄의 마지막 발표자로 나선 조안나 쉐퍼드-베일리 미국 에모리대 교수는 미국에서 발생하고 있는 기업활동에 대한 과잉범죄화 현상을 설명하고 현재 미국에서 발생하고 있는 과잉범죄화의 원인으로 법적 조항의 과다와 조항의 경직된 유지를 언급하며, 특히 수많은 형법 조항을 유지시킴으로써 사적이득을 취할 수 있는 법집행자의 경제적 유인구조를 과잉범죄화의 근본적 문제로 지목했다.
또한 기업활동에 대한 범죄화로 인해 발생하는 각종 부의 이전 및 비용의 전가현상을 사회적 비용의 일부분으로 설명하며, 범죄화로 인해 정부가 기업이나 피해당사자에게 전가시키는 비용의 문제에 대한 심각한 우려를 피력했다.
세퍼드-베일리 교수는 수많은 법적 조항의 생산과 유지로 인해 발생되는 법준수비용에 대한 논의 또한 간과해서는 안될 과잉범죄화의 문제점으로 지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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