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차 '중고차 사업' 진출에 완성차 '긴장'
품질 인증하고 무상보증 얹어주는 인증 중고차, 국산차서 수입차 넘어가는 '징검다리' 역할
수입차 업계가 ‘인증 중고차’ 사업에 잇달아 진출하면서 완성차 업계가 긴장하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자사 고객 케어’ 차원이라지만, 근본적으로는 수입차 시장의 ‘파이’를 확대하려는 움직임으로 파악되고 있기 때문이다.
토마스 쿨 폭스바겐 코리아 사장은 지난 25일 기자간담회에서 내년 중고차 사업에 진출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파이낸싱 차원에서 기존 고객들이 폭스바겐의 새 차로 바꾸고 싶을 때 폭스바겐 코리아가 기존 차량을 중고차로 구매하는 프로그램을 내년 중 도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쿨 사장이 언급한 중고차 사업은 BMW의 BPS나 메르세데스 벤츠의 스타클래스와 같이 해당 브랜드의 한국 법인이 중고차를 매입해 품질을 인증한 후 판매하는 방식이다. 수입차 업계에서는 BMW와 벤츠 외에 페라리, 포르쉐 등 슈퍼카 브랜드가 인증 중고차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수입차 업체들이 인증 중고차 사업을 진행하는 가장 큰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우선은 수입 중고차 가격 하락을 막기 위함이다.
차량 구매 후 잔존가치 유지 여부는 새 차를 구매하는 입장에서도 크게 신경 써야 할 부분이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수입차는 3년 타다 팔면 반값으로 떨어진다’는 게 정설화 돼 있다.
쿨 사장이 중고차 사업 진출을 선언하며 ‘재구매 고객’을 언급한 것도 이 때문이다. 폭스바겐 차량을 구매하는 소비자에게는 차량 교체시 손해를 보지 않도록 하겠다는 것.
그렇다면, 수입차 업체가 ‘기존 고객을 위해’ 구매한 중고차를 판매하는 과정에서는 전혀 이득을 보지 않는 것일까. 오히려 중고차가 계속 시장에 돌면 새 차 판매에 마이너스로 작용하는 것은 아닐까.
여기에 수입차 업계의 노림수가 숨어있다.
독일계 한 수입차 업체 관계자는 “일단 한 번 수입차를 몰아본 소비자는 스스로의 경험은 물론, 외부 시선 때문이라도 국산차로 되돌아가기가 힘들다”며, “중고차는 상대적으로 가격 장벽이 낮은 만큼 중고차로라도 수입차를 타보는 사람이 많다면 수입차 업계의 파이는 그만큼 커진다”고 지적했다.
그런 의미에서 수입차 업체의 중고차 사업 진출은 ‘수입차 업계의 파이’를 키운다는 의미도 내포돼 있다.
기존 중고차 시장을 통해서는 소비자를 수입차로 끌어들이기 힘들다. 그동안 중고 시장에서 수입차 가격이 급격히 떨어졌던 원인 중 하나는 중고차의 대부분이 워런티(무상보증) 프로그램이 끝난 차량이라는 점 때문이다. 가뜩이나 비싼 수입차 수리비가 부담이 되는데, 중고차 시장을 기웃거리는 소비자 입장에서 무상보증도 안되는 수입차를 떠안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또, 시장 자체가 국산차에 비해 작은데다 고가인 만큼, 허위 매물이나 주행거리 조작, 사고이력 위조 등에 대한 우려도 상대적으로 크다.
인증 중고차는 일반 중고차 시장에서 구매하는 차량보다 가격이 비싼 대신 이같은 단점들을 해소해준다.
BMW의 BPS나 메르세데스 벤츠의 스타클래스는 중고차 매입시 주행거리와 사고이력 등을 철저히 관리하며, 엄격한 자체 정밀점검을 통과한 뒤에야 인증을 내준다. 그렇게 인증된 중고차는 1년의 무상보증을 얹어 소비자에게 판매한다. BMW와 벤츠 모두 비슷한 시스템이다.
수입차 업체 관계자는 “수입 중고차를 꺼림칙하게 생각하는 소비자에게 수입차 브랜드의 인증과 1년의 워런티는 상당한 유인 요인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같은 ‘인증 중고차’ 사업에 폭스바겐이 뛰어들었다는 것은 상당히 의미가 크다.
기존 인증 중고차를 운영하던 BMW, 벤츠 등이 고급 브랜드인데 반해 폭스바겐은 상대적으로 진입 장벽이 낮은 대중 브랜드다. 2000만원대 중반의 소형차부터 시작해 주력 라인업이 3000만~4000만원대에 포진해 있다.
BMW나 벤츠는 중고차라도 만만한 가격이 아니지만, 폭스바겐은 중고로 감가가 이뤄지면 동급 국산차 가격으로도 구매가 가능하다. 완성차 입장에서는 더 넓은 시장을 공략당할 여지가 있는 것이다.
국내 완성차 업체 한 관계자는 “인증 중고차를 통해 수입 중고차 시장이 활성화되면 수입차에 관심은 많지만 살 능력은 안되는 사회 초년생들이 수입차 시장으로 유출되는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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