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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대 노인 죽음마저 파업의 명분으로 삼는가?


입력 2013.12.19 14:16 수정 2013.12.19 14:46        데스크 (desk@dailian.co.kr)

<칼럼>안전사고 사과 없이 해묵은 '민영화' 억지

박원순은 과연 지하철 파업을 막은 만능해결사?

지난 17일 퇴근길 3호선 대화행 지하철 안, 서있는 승객들의 몸이 계속 휘청거린다. 정차하는 정류장에 다다를 때마다 다리에 힘이 잔뜩 들어간다. 순간 “혹시 몇 시간 교육받고 급하게 투입된 대체인력인가? 사고 나진 않겠지?”라는 불안이 엄습했다.

며칠 전 지하철 4호선 승강장에서 대체 투입된 미숙련자의 실수로 80대 승객이 사망했다. 이 인명사고에 철도노조는 한마디 사과조차 없다. 되레 철도는 공공성과 안전이 중시되는 부분이라며 파업의 의미를 새삼 일깨워주는 사건이라며 되받아친다. 노조는 고작 자신들의 파업을 정당화시킬 명분 중 하나쯤으로 이용하려 든다. 한 사람의 목숨을 앗아간 인재이건만, 시민들에게 불안감을 조성하며 으름장을 놓는 어이없는 상황이다.

‘우리는 시민의 발입니다’ ‘여러분을 안전하게 모시겠습니다’라고 말하던 그들이 지금은 시민의 발을 묶고, 시민의 안전을 볼모삼아 위험한 거래, 위협적인 협박을 하고 있다. 그들의 최종 목표는 하나다. 수서발 KTX 자회사 설립 취소다. 그러니 노조 입맛에 맞춰 거래가 성사될 리 만무하고, 날마다 철도파업 최장 기록이 경신되고 있다. 그런데 일반 시민들이 볼 땐 아리송하다. 수서발 노선 하나 더 생기면 노조 일자리 늘고 규모 커져서 좋은 거 아닌가?

그렇다. 일반 상식으론 이해가 안 되는 그들만의 뭔가가 있다. 바로 노조의 ‘밥그릇 챙기기’와 ‘기득권 사수’ 그리고 ‘경쟁 거부’이다. 자회사 노선이 추가 운행되면 수입이 분산돼 철도노조는 인원감축과 구조조정 바람을 피할 수 없게 된다. 또한 독점구도가 깨지면 생전 해본 적 없는 서비스 경쟁에 뛰어들어야 한다. 독점 권력에 취해있던 코레일이니 언감생심 생각하기조차 싫은 건 당연하다. 그러나 코레일은 17조원의 부채를 안고 수 천억원의 영업적자로 매년 국민 세금을 앗아가는 상황이다. 그러니 철도노조의 불법파업에 국민들이 쓴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다. 참으로 주제파악 못하는 염치없는 노조 아닌가.

속마음은 ‘잇속챙기기’이나 겉으로는 ‘민영화’ 반대를 내세우는 노조다. 공공노조가 온갖 얼룩을 입히고 갖가지 허무맹랑한 괴담으로 더럽힌 용어가 바로 ‘민영화’이다. 십 년 전부터 정부의 공기업개혁 시도마다 노조가 한껏 재미봤던, 선동거리로 애용했던 ‘민영화’이다. 그러기에 수서발 KTX가 100% 공공자금으로 세워짐에도 노조는 해묵은 ‘민영화’ 프레임으로 맞서고 있다.

안타깝게도 거짓으로 진실을 가리는 세력이 철도노조만이 아니다. 갈등을 풀어야 할 정치권이 불법 파업에 동조하고, 민영화 반대에 맥을 같이했던 좌파단체들이 파업정당화를 거든다. 철도노조로선 든든한 지원부대가 생긴 셈이다. 그러나 KTX 자회사 설립은 노사간 협상대상도 아닐뿐더러, 이들 외부 세력의 개입으로 오히려 정부정책 반대라는 또다른 불씨로 점화되고 있다. 어디까지나 노사 간 해결해야 할 문제이거늘 대선 1주년을 전후하여, 국정원 댓글사건 시위와 철도노조 파업이 만나 반정부 투쟁으로 거대하게 번질 조짐이다. 철도노조뿐 아니라 불법파업에 동조하고 파업 장기화를 부추긴 세력들에게도 그 책임을 반드시 물어야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들 면면을 보면, 입만 열면 ‘서민’ ‘국민’을 외쳤던 세력이다. 이참에 ‘친서민’ 수식어 떼어 버리게 하고 ‘귀족노조 동지세력’ 새 이름표를 붙여주는건 어떨까.

파업으로 안한 안전사고로 80대 노인이 목숨을 잃는 상황까지 벌어진 철도노조의 파업에 대한 국민적 분노가 높아지고 있는 실정이다.(자료사진) ⓒ데일리안 홍효식 기자

한편, 철도파업 장기화 상황에서 다행히 서울메트로 노사가 극적 타결을 봤다. 서울메트로 노조는 파업돌입 몇 시간을 앞두고 철회했다. 팽팽한 마라톤 협상에서 접점을 찾지 못하던 차에 서울시가 중재에 나서면서 노사간 이견이 좁혀졌다고 한다. 막바지에 박원순 시장까지 직접 협상장을 방문하여 독려하자 불과 10여분 만에 노사가 합의했다. 수도권 교통대란과 시민들의 큰 불편을 예방했다는 점에서 안도감은 든다.

서울메트로 타협의 해결사로 박 시장이 지목되고 몇몇 언론에서는 박 시장의 갈등 해결, 타협 능력에 찬사를 보낸다. 하지만 협상체결 내용을 들여다보고도 과연 박수를 칠 수 있을까? 파업을 철회했다는 이유만으로, 파업을 무기로 잇속을 챙겨간 노조의 행태를 묵과해도 될까? 박 시장이 정말 갈등 조정의 만능 해결사란 칭송을 받을 만한가?

서울메트로 임단협 개정은 한마디로 ‘귀족노조 보장합의서’이다. 퇴직금 누진제를 폐지하는 대신 호봉 가산과 복지포인트 증액 등으로 50% 수준에서 보전받게 하고, 임금도 지난해 총 인건비 대비 2.8% 인상하기로 했다. 겉으로는 여론에 패배한 척, 시민을 위해 양보한 척 하나 사실상 노조가 얻은 수확은 크다. 서울메트로는 58개 지방공사 중 최악이다. 재무상태가 지난 5년간 총 8500억원 영업손실을 냈고 현재 자본금의 85%가 잠식됐고 이자비용도 충당 못하는 판에 2900억원의 임직원 성과급 잔치를 벌였다. 회사가 문 닫기 직전인데 한심하게 임금인상 논의나 하다니 어이가 없다. 코레일 철도파업을 틈타 제대로 한 몫 챙겼으니, 노조는 지금쯤 입이 귀까지 찢어지게 웃고 있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뜻밖의 수혜자는 박원순 시장이다. 17차례 결렬을 맞았던 서울메트로 노사 협상이 박 시장이 파견한 주진우 특보에 의해 급물살을 탔고 박 시장의 깜짝등장 직후에 상황이 종료됐다. 박 시장에 대한 칭송물결이 일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예정된 시나리오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된다. 협상이 타결되자 박 시장은 서울메트로 노사양측 중간에 서 기념사진을 찍고 SNS를 통해 자신의 치적을 자랑했다. ‘박원순 시장표’ 퍼포먼스가 연출됐다는 소문이 그냥 나온 게 아닌 듯하다. 또한, 지금 서울지하철노조를 이끌고 있는 박정규 위원장이 1999년 불법파업으로 해직됐다가 박 시장이 취임 후 복직시켜준 사람이란 사실을 감안한다면 그런 의심도 충분히 살 만하다.

최장기 기록을 갈아치우는 철도노조의 파업, 그리고 파업돌입 협박으로 뒷거래에 성공한 서울메트로를 보면서 한 가지 공통점이 보인다. 다수 시민이 서비스 대상자이고 그 서비스 제공자가 공공기관일 때 특히 독점구조일 때, 노조의 파업은 극렬해지고 뻔뻔해진다. 바로 시민들이 파업의 볼모가 되기 때문이다. 노조는 시민을 인질로 삼아 떼 부리며 노조 이익을 어떻게든 관철시키려 든다. 공기업 민영화가 시급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런 악습 때문이다. 그런데 민영화에서 한참 후퇴한 자회사 경쟁체제 도입에 철도노조가 브레이크를 거니 기가 찰 노릇이다.

그동안 강성노조에 끌려다닌 나약한 정부들이었으나, 이번 만큼은 오만한 노조의 버릇을 단단히 고쳐놔야 한다. 마지못해 정부가 손 내미는 전략으론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다. 최근 파업 장기화로 인내심의 한계를 겪는 지인에게 분을 좀 삭힐 방안을 제안했다. 지하철 승강장에 노조 맘대로 붙인 노조옹호, 거짓선동 포스터 옆에다가 ‘안녕못함 대자보’를 붙이라고 했다. 공공노조의 불법파업 관행을 자를 수만 있다면 시민들이 불편을 감수해도 되지 않을까.

공공노조의 ‘파업권력’을 무력화시킬 방안은 정부의 강경대응 뿐이다. 정말 미미한 공기업 개혁조차 노조파업으로 맞서는 이 악순환의 고리를 이젠 반드시 끊자. 비록 정부의 노조 떼법 고치기 의지가 개개인의 신년계획만큼 지키기 힘든 약속이 될지 모르지만, 지금은 일단 정부를 믿어 보자.

글/박주희 바른사회시민회의 사회실장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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