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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부짖은' 안현수, 차가운 러시아마저 울렸다


입력 2014.02.16 00:28 수정 2014.03.05 10:07        데일리안 스포츠 = 이충민 객원기자

쇼트트랙 1000m 결승선 통과 직후 빙판에 입 맞추고 울부짖어

러시아 홈 관중들 '빅토르 안' 연호..안현수 스토리에 눈물도

차가운 감성으로 소문난 러시아 국민마저 울렸다.

한국에서 건너온 러시아 쇼트트랙 국가대표 ‘빅토르 안’ 안현수(29)가 울렸다.

안현수는 15일(한국시각)아이스버그 스케이팅 팰리스에서 열린 ‘2014 소치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1000m 결승에서 압도적인 레이스를 펼치며 금메달을 차지했다.

안현수와 함께 환상적인 ‘팀 전술’을 펼친 동료 그리고레프(32·러시아)가 2위, 네덜란드 싱키 크네흐트가 3위를 차지했다. 이한빈이 준결승에서 탈락한 가운데 홀로 결승에 오른 한국의 신다운은 추월 과정에서 반칙을 범해 실격 처리됐다.

안현수는 레이스 초반 신중한 경기운영을 펼쳤다. 신다운과 함께 하위그룹으로 쳐져서 틈을 노렸다. 그러나 7바퀴 남겨두고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갔다. 안현수가 폭발적인 스퍼트를 가하면서 단박에 선두로 올라섰다. 장내는 러시아 혼 관중의 함성으로 떠나갈 듯했다.

한국 쇼트트랙 선수들을 응원하기 위해 경기장을 찾은 김연아-이상화-박승희 등이 파도타기 응원도 했지만, 러시아 관중 위력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4~5바퀴를 남겨두고 안현수는 팀 동료 그리고레프와 안정적인 선두그룹을 형성했다. 무리하지 않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정교한 작전을 펼쳤다. 서로 안쪽과 바깥쪽을 번갈아 타면서 3위권 싱키 크네흐트, 우다징, 신다운의 추월을 사전에 차단했다. 급기야 추월 길이 막힌 신다운은 안쪽으로 무리하게 파고들다가 싱크와 충돌하고 말았다.

‘쇼트트랙 천재’ 안현수가 러시아 대표이기에 가능한 전략이다. 무엇보다 안현수는 급가속이 가능한 선수다. 최저 시속에서 최대 시속으로 끌어올리는 시간이 매우 짧다. 클러치-급브레이크-클러치를 번갈아 밟으며 속도를 자유자재로 조정한다. 이 기술을 바탕으로 시간차 추월까지 보여준다.

여유 있게 1위로 들어온 안현수는 두 손을 번쩍 들고 포효했다. 장내는 전율의 환호로 메아리쳤다.

안현수는 결승선을 통과한 직후 엎드려 빙판에 입을 맞춘 뒤 환희와 슬픔이 교차한 통곡의 고함을 질렀다. 아버지 안기원 씨와 결혼을 앞둔 연인 우나리 씨만 울먹인 게 아니었다. 러시아 관중도 눈시울을 붉혔다. 특히, 자원봉사 여성은 안현수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안현수도 경기 후 인터뷰에서 “러시아 관중들의 열광적인 함성을 들으니 선수로서 살아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면서 “정말 영광이다”라는 소감을 전했다.

안현수는 이미 러시아에서 국가적 영웅이다. 러시아 유력 일간지는 1면에 안현수 사연을 소개했다. 해외 주요 외신도 안현수의 한 맺힌 금메달을 긴급속보로 타전했다. 한국에서 파벌 논란에 휩쓸려 좌절한 안현수의 비통한 사연이 세계로 뻗어나간 것이다.

미국 쇼트트랙 전설 안톤 오노(NBC 해설위원)는 취재진과의 인터뷰서 “한국이 왜 안현수를 버렸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면서 “그러나 러시아에서 웃음을 되찾은 안현수를 보니 (동료로서)마음이 놓인다”며 “전·현 통틀어 (김동성, 진선유와 함께) 불멸의 천재 쇼트트랙 선수다. 앞으로는 행복한 일만 있기를 바란다”고 기원했다.

전 세계가 인정한 ‘쇼트트랙 황제’를 떠나보낸 한국은 그야말로 '웃픈' 밤이다.

한편, 화가 난 한국 네티즌들은 안현수의 금메달 소식을 축하하면서도 빙상연맹을 맹비난하며 홈페이지를 찾아 포화를 날리고 있다. 그마저도 홈페이지가 마비돼 분풀이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네티즌들은 "세계 정상의 기량을 갖춘 안현수를 빙상연맹이 버렸다" “빙상연맹은 대체 뭘 한 것이냐” “금메달의 기쁨이 아니라 금메달의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될 것”이라며 비난의 수위를 높이고 있다.

이충민 기자 (robingibb@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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