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사건 물만난 민주당 적정선 넘으면 물먹는다
전문가들 특검정국 남발하다가 역풍 가능성 제기
"간첩 밝혀지면 이석기 건 재판 '대패의 지름길'"
국가정보원의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증거조작 의혹 사건이 여권의 6.4지방선거 필승 전략에 상당한 악재가 될 전망이다. 국정원의 휴민트였던 김모 씨에 의해 위조 논란을 일으켰던 문건들이 실제로 위조됐을 것이 확실시되는 등 사건의 베일이 벗겨질수록 국정원과 검찰의 결함들이 속속들이 드러나면서 두 기관을 옹호했던 여권은 곤란한 상황에 처하게 됐다.
야권은 책임자 처벌과 특별검사제 도입을 촉구하면서 공세에 나섰고, 새누리당은 특검 공격은 일축하면서도 잘못된 점이 있다면 바로잡아야 한다며 한발 물러섰다. 10일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한 박근혜 대통령은 모두발언에서 “검찰은 이번 사건을 한 점 의혹도 남기지 않도록 철저히 수사하고 국정원은 검찰 수사에 적극 협조해야 할 것”이라며 유감 표명을 했다.
하지만 야권에 역풍이 불 가능성도 적잖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전문가들은 해당 사건이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과 함께 일명 ‘공안 라인’으로 묶이는 남재준 국정원장이 잘려나갈 수도 있는 대형 사건이라는 점에 공감을 표하면서도 야권 또한 균형감 있게 입장 정리를 하지 않으면 오히려 ‘대패(大敗)의 지름길’을 걸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특검 도입 촉구로 유권자의 피로도를 높일 수 있는 것은 물론 현재 국정원으로부터 증거 조작을 당했다는 유우성 씨가 막바지에 가서 실제 간첩으로 밝혀질 경우, 야권은 ‘이석기 사태’에 이어 ‘종북(從北) 프레임’에 또다시 갇힐 수 있다고 지적한 것이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이날 ‘데일리안’과의 통화에서 “민주당이 지방선거에서 해당 사안을 화두로 삼게 되면 중도 또는 젊은층 표심을 잡는데 도움은 될 것”이라며 “새누리당에는 타격”이라고 했다. 황태순 정치평론가는 “박 대통령이 엄중 수사를 촉구한 것을 보면 남 원장의 거취까지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며 “해임사유가 충분하기 때문에 박 대통령이 남 원장의 해임으로 이 사안을 정면 돌파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조정관 전남대 교수 또한 “단순히 국정원이 흔들리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이 사건은 검찰 불신까지 같이 끼고 있다”며 “특히 이번 증거조작 의혹 사건은 지난 국정원 등의 대선개입 사건과는 달리 남 원장 하에서 일어난 사건이라 박근혜 정권이 책임져야 하기 때문에 지방선거가 양당구도로 가는 시점에서 여권에는 대단히 좋지 않은 사안”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곧바로 야권에 대한 우려가 나왔다. 황 평론가는 “호재를 만나 진격하는 것은 좋지만, 퇴로를 생각하고 국민의 눈을 생각하면서 적정선을 갖지 않으면 부메랑을 맞을 수도 있다”며 “2004년을 되돌아봤을 때 열린우리당이 압승한 것은 당시 한나라당과 새천년민주당이 무리하게 노무현 대통령을 탄핵했기 때문이다. 급격한 변화에 대한 거부감이 그런 방향으로 일을 이끈 것”이라고 했다. 그는 “정치에서는 균형감이 중요하다”고도 했다.
현재까지 국정원이 취한 행동이 잘못된 것은 맞지만, 향후 벌어질 사건들까지 내다봐야 한다는 조언이다. 하루만에도 여론이 바뀌는 현실을 감안했을 때 장기적 관점으로 혹시 있을지 모르는 경우의 수를 꿰뚫고 방안을 마련해놓지 않는다면 적진으로 던졌던 폭탄을 배로 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조 교수 또한 “(사람들이) ‘맨날 특검이냐’는 생각들을 할 수도 있다”고 야권을 향한 우려 섞인 목소리를 내는데 힘을 실었다.
반면 박 평론가는 “야당 지지자들은 한 번도 특검을 못해봤는데 피로도가 있겠느냐”고 언급했다. 앞서 민주당은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 사건과 관련, 장외투쟁과 24시간 비상국회 등을 통해 여권의 특검 수용을 끈질기게 촉구했지만 허수가 된 바 있다. 박 평론가는 “다만 새누리당 지지자들 사이에서는 피로도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안에는 안철수 중앙운영위원장이 점유했던 중도 우파까지 섞여있을 수 있다.
일단 현재까지 민주당과 새정치연합의 대응은 호평을 받고 있다. 지난 9일 김한길 민주당 대표와 안 위원장이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특검 도입을 촉구한 시기가 적절했다는 평이 나온다. 조 교수는 “당을 새로 만드는데다 지방선거를 앞둔 시점이라 장외투쟁도 할 수 없는 와중 적절하게 특검을 제기한 듯하다”며 “통합신당이 출범하고도 이 문제가 잘 해결되지 않고 있다면 강도 높은 공격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이날 회견 명칭을 ‘국정원 간첩 조작’에서 ‘국정원 증거 조작’으로 수정한 것도 적정했다는 평이다. 민주당과 새정치연합 실무진에서는 국정원이 증거 조작 의혹은 있지만, 간첩 사건 전체를 조작했다는 단정은 할 수 없다는데 공감대를 형성하고 회견 10분 전 현수막에 찍힌 문구를 고쳤다. 황 평론가는 “‘증거 조작’으로 (공격의 목소리를) 한 톤 낮춘 것은 (앞으로의) 호기를 놓치지 않으려는 냉정한 자세가 돋보였던 부분”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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