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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놈이 죽일놈" 세월호 참사 이젠 '집단 증오' 혈안


입력 2014.04.26 10:11 수정 2014.04.26 12:12        김수정 기자

일제히 증오 뿜어낼 대상 찾아다니며 '광기'

'나는 타인의 안전을 고려하는가' 성찰 필요

“선장, 선원 모조리 죽여라.”
“이게 다 정부 탓이다. 박근혜 물러나라.”
“이 와중에 정치인들이 제대로 하는 게 뭐가 있냐. 사퇴해라.”


세월호 참사로 야기된 우리사회 내 ‘집단적 트라우마’ 현상이 시간이 흐를수록 ‘집단적 증오’로 변질되는 모양새다. 이는 실종자와 그 가족들에 대한 슬픔과 걱정, 해당 선장과 정부를 향한 분노 등 다양한 감정이 혼재됐던 사건 초기 양상과는 달리 점점 극단적인 ‘증오의 정서’만이 사회 전반에 걸쳐 증폭되는 실정이다.

현재 국내 모든 인터넷 공간은 그야말로 ‘세월호 참사’로 도배됐다고 할 만큼 모든 이슈가 이번 사고에 집중된 상황이다. 하지만 사건 발생 10일이 지날 때까지 향후 대책에 대한 사회적 공론의 장은 거의 전무한 반면, 자신과 다르다는 이유로 특정 인물이나 집단을 겨냥한 무분별한 비난만이 쏟아지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이 과정에서 여론과 언론을 통해 끊임없이 ‘증오의 대상’도 확대, 재생산된다는 점이다.

직장인 양모 씨(30)는 “세월호 사태와 관련해 아직도 해당 선장과 정부의 안일한 대응에 분개하지 않을 수 없다”며 “무슨 일이 있더라도 이번 사고만큼은 그 책임소재를 분명히 밝혀내 엄벌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양 씨는 이어 “하지만 요즘 인터넷을 보면 ‘과연 이 나라가 괜찮을까’ 싶을 정도로 온갖 증오와 분노만이 난무한 것 같다”며 “지금 상황에서는 주말에 잠시 쉬려고 여행을 가는 것도, 퇴근 후 술을 먹는 것도 손가락질 당할 것 같은 심정”이라고 전했다.

자영업에 종사하는 김모 씨(57)도 “요즘은 TV만 틀었다하면 24시간 내내 세월호 사태를 전달한다”며 “물론, 아직도 바다 속에서 사투를 벌일 아이들 생각을 하면 가슴이 아프지만 솔직히 이를 바라보는 것도 점점 지친다. 그 어떤 뉴스에도 이번 사고에 대한 ‘탓하기’ 보도만 나오지 도대체 앞으로 어떻게 이 사태를 수습할 수 있을지, 구체적인 대안은 뭐가 있는지는 도통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이라고 토로했다.

김 씨는 그러면서 “잘못은 잘못대로 꼬집고, 합리적인 대응책을 듣고 싶은데 매일같이 욕하는 뉴스만 보니 나조차 부정적인 생각만 든다”며 “이 와중에 서로 헐뜯는 정치인들도 답답하긴 매한가지다. 가뜩이나 이번 사고로 낙심했을 어린 청소년들이 더 이상 뭘 보고 배울지 한탄스럽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최근 정치권은 세월호 침몰 참사와 관련된 ‘뒷북 입법’에 나서면서 한편으론 ‘네탓 공방’을 벌이고 있어 빈축을 사고 있다. 그동안 말을 아꼈던 새정치민주연합은 정권 책임론을 조심스레 꺼내들기 시작했고, 새누리당 역시 정부여당의 책임에 대해 인정하면서도 김상곤 전 교육감의 경기도교육청을 겨냥, 맞대응에 나서면서 여론의 따가운 눈초리를 받고 있다. 그 누구보다 사태 수습에 힘을 모아야할 국회의원들조차 ‘책임 전가’에만 급급한 구태를 보이고 있는 셈이다.

세월호 침몰 9일째인 24일 저녁 전남 진도군 팽목항에 세월호 실종자의 무사귀환을 기원하는 노란리본이 달려져있는 가운데 진도 앞바다에 해가 저물어 가고 있다. ⓒ데일리안 홍효식 기자

“안전불감증과 언론의 승마보도가 분노 불렀다”

사회교육 전문가 상당수는 여론의 증오현상과 관련, 우리사회의 만연한 ‘안전불감증’과 언론의 자극적인 승마보도가 화를 키웠다고 입을 모은다.

박주희 바른사회시민회의 사회실장은 25일 ‘데일리안’과의 통화에서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참사 대부분이 ‘자연재해’보다는 ‘인재’로 인한 사고였다”며 “당연히 그 사고의 단초가 된 사람 혹은 사태를 제대로 수습하지 못한 정부를 향해 분노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박 실장은 이어 “하지만 더 근본적인 문제는 정부를 포함, 우리 사회 내 아직까지 팽배한 ‘안전불감증’이 여론의 감정을 더 자극한 것 같다”며 “가령, 일본의 경우는 잦은 지진사태에 대비해 온 국민이 수시로 대비훈련을 하고 있기 때문에 대지진이 발생해도 부정적으로만 생각하기 보다는 일단 향후 대책을 모색하려는 의식이 강하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는 사고만 발생마다 대응책을 논의하기 보다는 ‘책임 공방’에만 급급한 경우가 많은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는 그러면서 “서로 ‘남 탓’만 하는 과정에서 당연히 증오심이 커지지 않겠느냐”며 “이 속에서 합리적으로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지 논의하려는 움직임조차 배격당하기 쉽다”고 전했다.

이성호 중앙대 교육학과 교수도 “어처구니없는 이번 사태에 대한 우리 국민의 강도 높은 비난은 온당하지만 자칫 이것이 사회 전반에 걸친 ‘증오’로 흘러서는 안 될 것”이라며 “사고를 유발한 당사자에 책임은 강도 높게 묻되, 이제는 우리 국민이 향후 대책에 대해 사회적 합의를 논의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더욱이 이번 기회를 발판으로 여전히 우리 사회에 내재된 ‘안전불감증’ 의식도 확실히 고쳐야 한다”며 “무조건적인 비난과 증오심을 내세우기 보다는 한번쯤 스스로 ‘나는 타인의 안전을 고려하는가’ 되물어 보고 반성할 필요가 있다. 상대에 대한 이해와 배려, 인정이 뒷받침 된 사회에서 극단적인 증오 현상은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두 사람은 여론의 증오심이 증폭되는 배경에는 일부 언론의 성급하고 자극적인 보도형태를 꼬집기도 했다.

박주희 실장은 “언론이 국민에게 사건을 정확하게 전달할 의무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마치 실시간 경마보도를 하듯 재난보도를 한 것은 문제가 있어 보인다”며 “서로 속보를 다투다보니 미처 확인되지 않은 오보가 나는 것은 물론이고 사건과 관련, 자극적인 장면들을 끊임없이 보여줌으로써 이에 노출된 여론을 더 분노하게 하는 경향이 있다”고 주장했다.

박 실장은 “외국에서는 재난보도에 경우, 무분별하게 속보를 남발하기 보다는 정확한 사실에 근거해 향후 얼마나 더 피해를 입을지, 어떻게 대비해야하는지에 대해 객관적으로 보도하는 것으로 안다”며 “반면, 최근 우리 언론의 뉴스 상당수는 그와는 상당한 차이가 있어 문제가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성호 교수도 “사안의 중대함은 차치하고서라도 10일 넘게 거의 모든 TV채널이 24시간동안 내내 재난방송을 하는 나라가 어디있느냐”며 “더 큰 문제는 해당 보도 상당수가 똑같은 내용을 반복하는 것도 모자라 일부 언론은 ‘마녀사냥’식 보도도 서슴지 않고 있다. 상식적으로 이를 접한 여론이 증오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아울러 그는 “분노와 증오의 메커니즘만 양산되는 사회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의 정서에 결코 긍정적으로 작용되기 힘들다. 아이들 역시 이것을 되풀이할 공산이 크다”며 “오히려 지금에라도 잘못된 점은 명확히 지적하되, 감정적으로만 대응하기보다 합리적인 대응책을 마련하는 사회적 합의과정을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가르쳐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수정 기자 (hohokim@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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