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스 커피클럽 '핸드드립' 고급화로 이어질까
<르포>에스프레소와 핸드드립의 어정쩡한 존재감...커피전문가 아닌 컨설턴트, 마케터 출신 경영진
21세를 눈앞에 둔 1990년대 후반, 한국 커피시장은 크나큰 지각 변동을 겪었다. 크림과 설탕이 잘 배합된 인스턴트커피가 주류를 이루던 커피시장에 '에스프레소 커피 전문점'들이 속속 생겨난 것이다.
이전까지 '커피는 달다', '커피는 부드럽다'로 정의되던 시장에 '커피는 진하다'는 새로운 정의가 에스프레소 커피전문점들에 의해 생겨나게 된 것.
그 선두주자는 '커피 제왕' 미국의 스타벅스가 1999년 국내에 상륙하면서 본격화됐다. 이후 한국 커피시장은 스타벅스를 추종하는 에스프레소 커피전문점들의 독무대로 변해갔고 바리스타라는 직업도 국내에 본격 소개됐다.
하지만 이에 대한 반발도 동시에 진행됐다. 바리스타가 되고 싶고 개성이 담긴 개인 커피전문점을 내고 싶은 이들이 생겨나게 된 것.
하지만 이들은 거대화된 에스프레소 커피전문점들과 경쟁하기 쉽지 않았고 차별화가 절실했다. 그래서 이들은 직접 로스팅 기계를 들여와 커피전문점에 생두를 볶고 기계가 낼 수 없는 '손맛'을 뽐낼 수 있는 '핸드드립'을 선택한 것이다.
지금 홍대 주변이나 상수동 등에 우후죽순 생겨난 개인 커피전문점들이 이런 거대 커피전문점들의 반발로 생겨난 것이다. 또 핸드드립의 원조가 일본은 아니지만 대세가 일본으로 넘어가면서 한국의 핸드드립은 일본식을 쫓아갔다.
하지만 최근 커피시장은 또 다른 변화를 맞고 있다. 한국에 에스프레소 커피를 소개한 거대화된 에스프레소 커피전문점들이 개인 커피전문점들의 전유물로 비춰졌던 '핸드드립'을 수용하고 있는 것이다.
스타벅스가 국내에 '클로버'머신을 가져와 에스프레소와 핸드드립의 중간단계인 '리저브'를 소개하며 물꼬를 텄고 최근에는 할리스커피가 '커피클럽'을 오픈하며 핸드드립을 전면에 내세웠다.
커피전문점은 아니지만 SPC그룹의 직영 파리크라상과 CJ푸드빌의 직영 라뜰리에 뚜레쥬르 등에서도 핸드드립 커피를 선보이고 있다.
이들이 핸드드립 시장에 진출하며 내세운 것은 '고급화'이며 고급 원두를 쓴다는 이유로 커피 한잔 가격을 최대 7500원대로 책정했다.
스페셜티 및 COE(Cup of Excellence) 원두를 써서 가격이 비싸진 건 이해하지만 에스프레소보다 핸드드립이 고급이라고 할 수 없다.
결국 스타벅스나 할리스커피의 핸드드립 시장 진출은 커피가격 우회인상인 동시에 개인들이 운영해오던 핸드드립 커피전문점까지 잠식하겠다는 '골목상권 침해'와도 맥을 같이 한다 볼 수 있다.
지난 20일 대학로에 오픈했다는 할리스의 커피클럽을 찾았다. 커피클럽을 자리한 곳은 과거 한 시대를 풍미하고 새로운 문화 지형도를 형성했던 '민들레영토'가 있던 자리라 묘한 느낌을 줬다.
기존 갈색 벽돌에 철제로 장식한 익스테리어는 뉴욕 미트패킹 거리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디자인을 차용했다. 실내 역시 미국식의 노출 콘크리트를 적용했다. 한국에서는 CJ푸드빌에서 운영하는 레스토랑에서 주로 이런 디자인을 사용해왔고 새로울 건 없어 보였다.
커피클럽의 핸드드립 원두는 '2014 썸머 블렌드', '케냐 은고마노 AA', '에디오피아 모모라G1', '콜롬비아 토리마 슈프리모', '과테말라 엘 리모날 COE #7' 등 5가지 원두를 갖추고 있었다. 스타벅스 리저브 원두는 해외에서 수입하지만 커피클럽 원두는 생두를 수입해와 국내에서 로스팅 한다. 어느 것이 우월한지는 가늠하기 힘들다.
가격은 4500원에서부터 7000원대였고 한편에 따로 원두도 판매하고 있었다. 가격은 기존 원두 대비 1.5배 정도 비쌌다. 할리스커피에서 판매되는 기존 원두도 국제 열대우림 동맹(Rainforest Alliance)의 인증 농가에서 수확한 원두를 쓰고 있어 질이 안 좋은 것은 아니다.
스타벅스 리저브는 한때 커피한잔 마시기 위해 1시간 가량 기다린 적도 있었지만, 커피클럽은 3분 안에 나왔다.
핸드드립 방식은 커피를 갈고 또 천천히 내리는 '슬로우 커피'를 지향하는데 3분이라는 시간은 좀 짧아 보였다.
그래서 이들은 '푸어오버(Pour-Over)'라는 표현을 자주 썼다.
쉽게 말해 핸드드립은 드리퍼에 물줄기를 내리는 동안 시간과 테크닉이 필요하고 그 사이 여러 변수로 인해 '세상의 한잔뿐인 커피'가 되지만 '푸어오버'는 드리퍼에 물을 막 붓는 방식이다.
핸드드립보다 캐주얼한 방식으로 시간도 적게 걸리고 맛도 균일한 편이다. 하지만 핸드드립의 정수라 할 수 있는 '장인정신'은 느낄 수 없다.
'케냐 은고마노AA'를 주문해서 맛을 봤다. 최근에 로스팅한 원두에 주문과 동시에 매장에서 바로 원두를 갈아서 내린 거라 신선했다. 케냐 은고마노 원두의 특성인 신맛도 그대로 전해졌다.
하지만 최고급원두에 핸드드립으로 내린 것 치고는 입안에 남는 여운이나 복잡 미묘한 커피 맛을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이는 커피의 맛은 원두에만 있는 것이 아닌 컵에도 있을 수 있는데 종이컵에다 바로 내리는 모습은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다.
또 커피클럽이 지향하는 바는 미국식의 핸드드립을 지향하는 것 같았지만 커피 추출 기구는 일본의 칼리타나 하리오 제품을 사용하고 있어 미국식인지 일본식인지 애매함을 줬다. 어느 나라 스타일을 지향하는지 명확히 할 필요가 있어보였다.
또 일본에서 넘어온 핸드드립은 대를 이어가는 장인정신을 요하지만 커피클럽의 바리스타들은 '전문 바리스타 교육과정을 이수한 직원들'이라고 한다.
대학로라는 장소도 핸드드립 커피전문점을 오픈하기는 부적절했다는 판단이다. 대학로는 짧은 시간 머물다 가는 사람들이 많은 곳이다 보니 유명 맛집이나 커피마니아들이 모이는 곳이 아니다. 그나마 대학로 '학림다방'이 오랜 시간 한 자리에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찾아간 날도 금요일 저녁 무렵인데도 불구하고 3층짜리 건물에 3층에는 손님이 한명도 없었고 2층에도 텅 빈 좌석들이 많았다.
진정한 커피클럽을 지향했다면 커피마니아들과 전문 바리스타들이 모여 있는 홍대 주변이나 한남동쪽이 더 좋은 입지였다고 본다.
결론을 얘기하면 '커피클럽'의 콘셉트는 전혀 새로울 것이 없는 에스프레소와 핸드드립의 어느 것도 성취하지 못한 정체불명의 어정쩡한 위치에 자리한다는 점이다.
그나마 스타벅스 리저브는 모든 걸 해외에서 공수하다보니 국적이라도 분명하다.
이는 할리스커피(할리스에프앤비)의 최대주주가 커피전문가들이 아닌 IMM 프라이빗에쿼티라는 사모펀드라는 점과도 무관치 않아 보인다.
특히 신상철 할리스커피 대표 역시 커피전문가가 아닌 컨설턴트 출신에다 지난해 합류해 커피클럽을 주도했다는 이지은 마케팅본부장도 로레알과 보스턴컨설팅 출신의 마케팅 전문가다.
할리스커피는 국내 토종 프랜차이즈 커피전문점으로 스타벅스보다 1년 앞서 에스프레소를 국내에 소개한 선도적 회사다. 할리스커피가 커피클럽을 통해 고급화를 꾀하고자 한다면 핸드드립에 대한 보다 본질적 접근 및 재조정이 필요하다고 조언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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