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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기암' 복거일 "이기려하지 말고 안지려고 하라"


입력 2014.07.05 09:56 수정 2014.07.05 10:29        김소정 기자

<인터뷰>간암 말기 치료거부 집필 몰두 한달에 한권 꼴

"자유주의자된 이유? 개인이 자유롭게 사는 세상 위해"

복거일 소설가. ⓒ데일리안 홍효식 기자

“독일의 철학자 게오르그 짐멜은 ‘지도자는 추종자의 노예다’라고 했다. 아무리 위대한 지도자도 추종자의 노예라는 말이다. 본래 대통령의 레임덕도 지도자와 추종자들과의 관계에서 나온다.”

자유주의 논객이자 소설가 복거일 씨(68)가 항암치료를 거부한 채 시한부 삶을 글쓰기에 매진하겠다고 밝힌 이후 더욱 왕성한 활동을 보이고 있다. ‘리지웨이, 대한민국을 구한 지휘관’을 비롯해 그가 펴낸 책이 올해 들어 벌써 네권에 달한다. 자신의 작품을 영어로 직접 옮겨서 싱가포르에서 출간한 소설 ‘더 조비언 세잉스'(The Jovian Sayings)와 희곡 ‘디 언포가튼 워'(The Unforgotten War)를 합치면 6권으로 최근 한달에 한권꼴로 복거일 작가의 책이 출간되고 있다.

간암 판정 사실에 대한 충격 또 슬픔은 그가 이런 사실을 글로써 공개한 자전소설 ‘한가로운 걱정들을 직업적으로 하는 사내의 하루’를 끝내면서 함께 종지부를 찍은 듯했다.

그는 자신의 건강에 대한 걱정대신 우리 사회의 건강에 대한 걱정을 하기로 작정한 듯이 27일 기자와의 만남에서 문창극 총리 후보자 낙마와 정홍원 총리의 유임에 대한 이야기로 인터뷰의 포문을 열었다.

문 후보자가 국회 청문회에 서보지 못한 채 스스로 자진사퇴를 할 수밖에 없었던 당시 상황에 대해 그동안 보수 우파 지식인들 사이에서 비난의 목소리가 많았다. 여기에는 언론의 선동적인 왜곡보도가 나쁜 여론을 조성하면서 발언의 진위를 가리는 절차조차 무시된 것에 대한 비판이 담겼다.

이에 대해 복거일 작가는 “야당이 반대하고 여론이 나쁘다고 상처 입은 총리 후보자에게 청문회에 서볼 기회도 안 주고 그냥 내보낸 것은 왜곡된 선전선동을 반대하는 우파 지식인들의 주장을 저버린 것”이라고 단언했다.

복거일 소설가. ⓒ데일리안 홍효식 기자
또한 문 후보 낙마 이후 정 총리를 유임시킨 조치에 대해서도 그는 “참으로 무기력했다”고 쓴소리를 내뱉었다. “세월호 사태를 책임지기 위해 상징적으로 물러난 총리를 다시 유임시킨 것을 국민에게 어떻게 설명할 것인지 이해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그는 “잇따라 총리 후보가 청문회에 서보지도 못하고 조작된 여론에 밀려 낙마를 했는데 차라리 열번이라도 신임 총리를 다시 고르든지 정 안되면 총리 대행을 세우는 것이 나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정 총리를 유임시키는 일 만큼은 하지 말았어야 했지만, 이미 사의를 표명한 총리를 재기용하려면 최소한 대통령이 카메라 앞에 서서 국민에게 이해를 구했어야 했다”고 안타까움을 피력했다.

그는 내친 김에 논란이 됐던 문 후보자의 발언에 대해서도 조목조목 짚었다. 맨 처음 논란이 됐던 문 후보의 ‘책임총리는 들어본 적 없다’는 발언에 대해 그는 “난 이 말이 정답이라고 본다. 이는 ‘헌법대로 하면 된다’는 의미로 이해했다”고 말했다. “당시 문 후보는 ‘책임총리는 법에서 정한 용어가 아니라는 의미이고, 임명되면 헌법과 법률이 정한 권한과 책임을 성실히 수행할 것’이라는 부연 설명도 했다. 그의 애초 발언은 헌법에 대한 존중과 자신을 발탁한 대통령에 대한 예의 또, 자신에 대한 겸허한 인식이 담긴 모범 답안이었다“는 것이 그의 해설이다.

그는 이어 “우리가 대통령제를 택하면서 부통령 대신 총리제를 택한 것은 애초 설계가 잘못된 것인 만큼 말썽이 나게 마련”이라며 현 정치 체제의 모순도 짚었다. “대통령과 러닝메이트로 선거에 나가서 국민들의 선택을 받아 당선되는 미국의 부통령은 상원의원까지 겸하니까 존립 기반도 갖지만, 우리의 경우 국민의 선택이 아니라 대통령의 지명으로 총리를 인선하면서 야당의 주장대로 책임총리를 하라는 것은 현 제도 하에서 요구할 수 없는 권한”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또 복거일 작가는 문 후보의 ‘일제 지배와 남북분단은 하나님의 뜻’이란 발언에 대해서도 “언뜻 들으면 이해가 안 되는 얘기이지만, 찬찬히 맥락을 살펴보면 우리 역사를 기독교적 세계관으로 해석한 것으로 함석헌 선생의 ‘뜻으로 본 한국역사’와 그 맥락이 맞닿아 있다”고 했다.

그는 “‘뜻으로 본 한국역사’에서 함 선생은 ‘왜 우리는 그렇게 고난을 겪었을까? 라는 고뇌 끝에 찾은 답은 섭리였다라고 말하고 있다. 우리 역사의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깨달음을 말하는 것이다. 기독교 신자에게도 이 답을 찾는 것은 쉽지 않지만, 참으로 힘찬 역사관인 것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아울러 문 후보의 ‘일본의 위안부에 대한 사과는 필요없다’고 한 발언에 대해서도 “이는 국제외교관계를 고려한 측면에서 나온 얘기로 진정성 없는 일본의 사과는 필요없다고 한 것”이라면서 “강단에서는 여러 견해를 표출할 수 있다. 다양한 견해를 소개하고 학생들과 토론하면 된다. 그렇다고 국론으로 채택하자는 주장도 아니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물론 복거일 작가의 이런 주장은 집단주의가 보여주는 단순하고 즉각적인 감정적 주장을 비판하는 자유주의 사상을 기반으로 한다. 사실 ‘자유’는 인류가 지향하는 보편타당한 가치이고, ‘자유주의’는 최근 4세기 동안 서양문명을 이끌어온 대표적인 사조이지만, 상대적으로 우리에게는 역사가 짧고, 척박한 환경을 가진 것도 사실이다.

복거일 소설가. ⓒ데일리안 홍효식 기자
복거일 작가는 자유주의를 가장 자연스럽게 체화시키고 한 단계씩 외연을 넓혀 주창하면서 우리 사회에서 자유주의의 선봉자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왜 자유주이자가 됐나’라는 질문에 “가장 쉽게 말하자면, 개인이 자유롭게 살게 하려면 권력이 아니라 사람이 자유로워야 한다. 권력은 정부에서 나오는 것이니까 정부의 몫을 줄이고 개인의 몫을 키워야 한다. 결론적으로 개인의 몫은 시장에서 나오는 것이므로 시장의 몫을 늘리는 방법으로 자유를 실현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그는 또 ‘어떻게 자유주의 선봉에 섰나’라는 질문에는 “소설가로 데뷔한 것이 80년대 말로 당시는 마르크시즘과 주체사상이 대학가를 휩쓸 때였다. 또 운동권의 한 축을 문학이 담당하면서 문인들의 자부심도 대단했다. 문인들은 주로 정치와 역사를 소재로 한 작품을 창작하면서 스스로 사회를 변혁시키는 주체로 생각했다. 문인들 대부분은 마르크스로 세상을 봤다. 하지만 나는 당시 문단에서 유일한 자유주의자였다. 경제학을 전공하면서 마르크시즘에 면역이 생겼던 것 같다. 마르크스의 ‘자본론’이나 ‘공산당 선언’ 등은 변두리 이론에 지나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좌파에 대해 “지도자의 말만 반복하는 게으른 세력”이라는 날선 비판도 가했다. 그는 “김남주 시인처럼 경제학 지식없이 마르크스의 저작만 읽으면 뚜렷한 목표의식에 멋진 문장과 기백에 반할 수 있지만 이념으로 똘똘 뭉쳐 개인보다 집단이익에 매몰되는 좌파를 받아들이기 힘들었다”면서 “김정일의 ‘기쁨조’처럼 집단의 목적을 위해서는 객관적인 도덕을 무시해도 된다는 집단주의는 과거 우리 운동권 출신 인사들 사이에서도 통용됐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후보 단일화에 실패해 교육감선거에서 패배한 일을 들어 ‘우파의 본색’에 대한 설명도 이어갔다. “애초 우파에게 있어서 후보 단일화는 체질에 안 맞는 것”이라고 단서를 다는 그는 “우파는 좌파 진영에서 더 훌륭한 인물이 나오면 스스로 물러날 줄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사회의 자정기능을 믿어야 한다”고 했다. “좌파 출신 지도자가 잘 못하면 국민은 또다시 우파 지도자를 선택할 것이므로 이렇게 개개인의 선택을 존중하는 것이 우파의 본연의 모습”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경제학을 전공한 소설가다. 당시 사회의 조류를 거슬러 자유주의를 주창하다보니 이런저런 토론장에 자주 불려다녔고, 그러다보니 자유주의 진영의 논객이 됐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문단에서는 평가가 나빴던 것도 사실이다. “주변 사람들로부터 ‘이념이 다르고, 자주 논객으로 나서다보니 평가를 못 받는다’는 위로도 심심찮게 들었지만 내게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고 말하는 그는 “원래 작가는 나쁜 비평도 묵묵히 들어야 하는 훈련이 되어있다. 견딜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논객으로서 우파를 대변하면 비난을 받는 것 역시 나를 견디게 한 힘이었다”라고 고백했다.

그가 2년 반 전 말기암을 선고받고 쓰기 시작한 ‘한가로운 걱정들을 직업적으로 하는 사내의 하루’에서 주인공 ‘현이립’은 바로 자신이다. 작가로서 글을 계속 쓰기 위해 암치료를 거부한 이립은 아내가 집안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을 비운 어느 봄날 하루 산책길에 나섰다. 불광천에서 한강으로 이어지는 산책길에서 만난 자연풍경과 사람들 얘기에 평생을 통해 얻은 지식과 사회에 대한 통찰이 책 속에 담겨 있다.

그는 책의 첫 부분에 ‘자신의 삶이 최악의 경우를 맞았는데, 바뀐 것이 없는 듯 일상적 행위들을 그대로 한다는 것이 영 서툴렀다. 자신이 하는 일들이 무대 위의 연기처럼 느껴졌고 자신의 입에서 나온 말들은 대사처럼 들렸다’는 글로 암선고에 대한 첫 충격을 전하고 있다.

그리고 그는 책의 맨 마지막에서 ‘그의 얼굴에 성취감이 잔잔한 웃음으로 배어나온다. 내년 봄을 기약할 수 없는 사내가 이 우주의 나이인 137억년의 10억 곱절의 10억 곱절이 되는 세월 뒤에 나올 일을 걱정하는 것이다. 한가로움도 그만하면, 성취라 할 수 있다’고 썼다.

복거일 소설가. ⓒ데일리안 홍효식 기자

책에서 그는 이립을 ‘쇠약한 오디세우스’로 불렀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트로이 전쟁에서 목마를 고안한 영웅인 오디세우스는 본질적으로 지식을 추구한 사람이었다. 복거일 작가를 잘 아는 사람들은 그를 ‘지식의 성직자‘라고 부른다.

“암말기 선고를 받은 뒤 처음 든 생각이 20년 전 대하소설을 쓰기로 해놓고 3권째를 끝으로 더 이상 쓰지 못한 것이다. 독자들과의 약속은 영영 못 지키겠구나 싶었다”는 말로 암치료 대신 글쓰기를 택한 자신의 얘기를 풀어놓던 그는 어느새 다시 자유주의자로 돌아가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 한토막을 전했다.

“인생에서나 바둑에서나 이기려고 공격하면 위험해지게 마련이다. 이기려고 하지 말고, 안 지려고 해야 한다. 논쟁을 할 때에는 굳이 상대방을 설득하려고 하지 않아야 한다. 논쟁을 하다가 합의를 못 보면 그것으로 그만이다. 조급해하지 말고 신념을 갖고 관점을 얘기하면 된다. 그것이 자유주의자의 본모습이다.”

김소정 기자 (bright@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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