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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산②]‘일본판 히딩크?’ 의리 벗어던질 사무라이 재팬


입력 2014.07.15 11:09 수정 2014.07.15 11:37        데일리안 스포츠 = 김윤일 기자

자케로니와 재계약 포기, 아기레 역대 최고액 영입

의리보다는 실리축구, 2002년 히딩크와 닮은꼴

일본 축구는 뼈를 깎는 반성으로 대대적인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 연합뉴스

브라질 월드컵 조별리그 탈락 충격에 휩싸인 일본 축구가 대대적인 변화를 꾀하고 있다.

일본은 이번 월드컵에서 1무 2패로 C조 최하위에 처져 당초 기대했던 4강의 꿈이 물거품 되고 말았다. 특히 일본은 지난해 벨기에, 네덜란드와의 평가전에서 1승 1무를 거두는 등 기대감이 하늘을 찔렀지만 막상 본선에 돌입하자 힘 한 번 쓰지 못하고 참혹한 결과를 받아들여야 했다.

그러자 일본 축구협회는 통렬한 반성과 함께 발 빠른 수습 작업에 나서는 모습이다. 일본은 대표팀이 귀국하자마자 지난 4년간 팀을 이끌었던 알베르토 자케로니 감독과의 재계약을 포기했다. ‘티키타카’를 표방한 일명 ‘스시타카’라는 공격 일변도 전술의 한계가 뚜렷하게 나타난 데다, 대세로 떠오른 압박 위주의 세계 축구 흐름에 뒤처진다는 분석이 나왔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가장 먼저 서두른 작업이 차기 감독 내정이다. 그리고 그들의 선택은 멕시코 출신의 하비에르 아기레(55) 감독이다. 다음 주중 공식발표가 나올 예정이며 연봉은 일본 축구 역사상 최고 수준인 2억 5200만엔(약 24억원)에 이른다. 계약기간도 자케로니 감독과 마찬가지로 4년이 주어져 보다 큰 그림을 그릴 수 있을 전망이다.

그렇다면 일본은 왜 아기레 감독을 선택했을까. 이는 혼돈 속의 한국 축구가 참고할만한 사항이기도 하다.

아기레 감독은 수비 위주의 실리 축구를 구사하는 지도자로 알려져 있다. 탄탄한 수비를 바탕으로 한 빠른 역습이 주된 전술이라 할 수 있다. 강팀보다는 주로 약체 전력에 어울릴 만한 작전이다. 이는 일본이 세계 축구 속에서 자신들의 나약함을 깨달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즉, 겉멋을 걷어내고 철저하게 실리를 추구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로 분석된다.

실제로 아기레 감독은 2002년 한일 월드컵 이후 스페인 오사수나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지휘봉을 잡으며 의미 있는 행보를 보였다. 만년 약체팀이었던 오사수나는 2002-03시즌 아기레 감독이 팀을 맡자마자 코파 델 레이(국왕컵) 준결승에 올랐고, 그로부터 3시즌 뒤 리그 4위에 오르며 UEFA 챔피언스리그 출전 티켓을 따냈다. 별다른 스타플레이어 하나 없이 일군 성과였다.

이후 2006년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로 팀을 옮긴 뒤에는 주포 페르난도 토레스의 이적으로 공격에 구멍이 생기자 세르히오 아게로라는 아르헨티나의 신성을 주전 공격수로 성장시켰고, 한 물 간 선수로 평가받았던 디에고 포를란은 2008-09시즌 리그 득점왕에 오르며 화려한 부활을 알렸다. 특히 2001-02시즌 우승 이후 10위권으로 밀려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는 아기레 감독이 지휘한 동안 7위-4위-4위로 급격한 성장세를 보였다. 따라서 아기레 감독은 팀을 파악할 충분한 시간만 주어진다면 기대 이상의 성적을 내는 감독으로 각광받았다.

의리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점도 주목해야할 부분이다. 아기레 감독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를 떠난 뒤 2009년 조국인 멕시코 대표팀의 사령탑으로 부임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이후 두 번째 대표팀 수락이었다.

이때의 행보가 그야말로 파격적이다. 아기레 감독은 자신의 스타일과 맞지 않는 선수라면 이름값에 상관없이 과감히 내쳤다. 실력이 뛰어나고 몸값이 아무리 높아도 아기레 감독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대표적인 선수가 멕시코 미래라 불렸던 조나단 도스 산토스(지오바니 도스 산토스의 동생)와 ‘치차리토’ 하비에르 에르난데스(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대한 외면이다.

개성이 강했던 도스 산토스는 지역예선에서의 활약에도 불구하고 2010 남아공 월드컵 최종 엔트리에 들지 못했고, 멕시코 내에서 인기 절정의 선수였던 에르난데스 역시 교체로만 출전했다. 급기야 지역예선 내내 주전 골키퍼였던 기예르모 오초아는 대회 기간 내내 벤치만 지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멕시코는 개최국 남아공과 프랑스를 제치고 조 2위로 16강에 오르는 성과를 거뒀다.

일본 역시 이 부분에 대해 기대 반, 우려 반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일본은 이번 월드컵에서 팀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혼다 케이스케와 가가와 신지가 최악의 부진을 펼쳤다.

본선 개막 직전까지 심각한 부진에 빠져있던 혼다는 코트디부아르와의 조별리그 1차전에서 선제골을 넣었지만 이후 침묵했고, 가가와는 아예 존재감마저 드러내지 못했다. 대회 전 이들을 빼야한다는 일부의 목소리가 있었지만 자케로니 감독은 이름값에 기대 끝까지 믿음을 실어줬다.

현재 일본 내에서는 혼다와 가가와가 아기레 감독의 플레이스타일에 맞지 않는다면 대표팀에서 제외될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2명의 스타플레이어가 동시에 빠진다는 것은 흥행 면에서도 큰 타격이 될 수 있지만 대부분의 일본 언론들은 뼈를 깎는 아픔이 있어야만 성장할 수 있다며 지지를 보내고 있다.

지난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한국의 4강 신화를 이룬 거스 히딩크 감독이 떠오르는 장면이다. 당시 히딩크 감독은 부임 후 9개월 동안 캡틴이자 정신적 지주였던 홍명보 제외라는 초강수로 길들이기에 성공했고, 평가전에서 돌출행동을 했던 골키퍼 김병지는 더 이상 출전 기회를 얻지 못했다. 최종 엔트리 구성도 이름값보다는 철저하게 팀 스타일에 걸맞은 선수들을 발탁, 무명의 박지성이 스타로 떠오르기도 했다.

김윤일 기자 (eunice@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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