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부족으로 학력평가 못 보는 서울 고등학생 '뭥미'
서울시 의회 야당 의원들 예산 삭감, 전국 실력 확인도 어려워
서울시교육청의 예산부족으로 서울지역 고등학교 1·2학년 학생들이 9월 예정된 전국연합학력평가를 치르지 못하게 됨에 따라 이에 따른 부작용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지난해 말 서울시교육청은 올해 고등학교 학력평가를 네 차례 치를 수 있도록 예산을 신청했지만 서울시 의회 야당 의원들은 “시험을 자주 본다고 학생들의 성적이 향상되는 것은 아니다”라는 논리로 관련 예산을 삭감했다.
현재 서울시 교육청은 올해 단 두 차례의 학력평가 예산만 확보했고 추경을 통해 학생들이 11월 학력고사는 볼 수 있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30일 서울시교육청과 전현직 서울시의회 교육위원회 소속 의원에 따르면 기존에 네 차례 진행되던 학력평가는 곽노현 교육감 취임 이후 두 차례로 줄었고, 이후 문용린 교육감이 당선되면서 지난해 세 차례로 늘었다. 문 교육감 당선이후 세 차례로 늘어난 것도 추경을 통해서였다.
교육환경이 타 지역에 비해 양호한 서울 지역의 학생들을 제외하고 학력평가를 치르면 전국학력평가라는 취지에 맞지 않을뿐더러 갖가지 부작용도 우려되는 상황이다.
2013년 기준, 전국 고등학교의 수는 2322개교이며 서울 내의 고등학교의 수는 318개다. 서울을 제외한 전국에서 학력평가를 치를 경우 서울 내 고등학교 학생들은 전국에서 자신들의 실력 수준을 정기적으로 가늠하기 힘들다.
실력의 변화가 심한 학생의 경우 정기적인 학력평가를 통해 자신의 실력이 전국에서 어느 정도 수준에 있는지 체크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자신이 지망하고 있는 학과가 요구하는 과목에 대해 전략적으로 공부할 수 있는 기회도 상실하게 된다.
서울 내 고등학생들이 전국학력평가에서 빠지게 되면 타 지방 학생들도 자신의 실력을 정확히 가늠하기 힘들다. 서울 지역의 학생의 경우 타 지역보다 양호한 교육환경이기 때문에 상위권 대학 혹은 학과를 지망하는 지방 학생들은 서울 학생들과의 실력 비교가 필요하다.
박주희 바른사회시민회의 사회실장은 ‘데일리안’과의 통화에서 “초등학생, 중학생의 경우 시간의 여유가 있고 예민하지 않은 시기지만 고등학생들은 자신이 전국에서 어느 수준에 있는지 수시로 확인해야 한다”면서 “전국연합학력평가는 고등학생들의 공부 방향 설정의 나침반과 같은데 서울지역 학생들만 학력평가 시험을 타 지역에 비해 적게 본다는 것은 형평성에도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박 실장은 "연합평가를 한번 치르는데 6억원 가량인데 올해 혁신학교에 배정된 금액은 47억, 무상급식은 5500억이다"라면서 "모든 고교생이 혜택을 보는 연합평가 6억원은 특정 인원만 혜택을 받는 혁신학교 예산 규모에 비해 미미한 숫자다. 평소 학력평가에 대한 진보 의원들의 부정적인 시각이 예산에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지난해 말 서울시교육청의 학력평가 예산심의 당시 삭감을 반대했던 전종민 전 서울시의원도 “학력평가 예산을 깎은 것은 자신의 학력수준을 모르고 완전히 깜깜한 상태에서 (자녀교육에) ‘묻지마 투자’를 하라는 얘기”라면서 “전국학력평가라는 것이 전국 학생들 사이에서 자신의 위치를 보고 전체 추세를 파악하는 것인데, 서울시 학생들이 빠지면 전국 학생들 간 수준 비교가 안 되는 부작용이 초래된다”고 비판했다.
이어 전 전 의원은 “이는 학력평가를 하지 않으면 학원 등 사교육을 통해 평가를 받는 등 오히려 사교육이 강화되는 결과를 초래할수도 있다”면서 “학력평가 축소로 인한 부작용에 대한 대안이 없다”고 덧붙였다.
반면 지난해 말 서울시교육청의 학력평가 예산 심의에 참여했던 새정치민주연합의 한 서울시의원은 “2010년부터 서울시 고등학생들이 두차례의 학력평가를 볼 수 있을 정도의 예산을 편성해왔다”면서 “학생들의 시험부담을 덜어주자는 차원에서 학력평가 예산을 재작년, 작년수준과 동일하게 유지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의원은 “학생들이 시험을 자주 봐야 자신의 실력을 가늠할 수 있다는 일부 학부모들의 의견은 동의하지만 거시적인 차원에서 봤을 때 학력평가 횟수의 차이가 아이들의 교육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지 않고 큰 의미도 없다고 본다”면서 “시험 준비만을 위한 교육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서울시 교육청에서도 네 차례 학력평가를 할 수 있도록 예산을 편성해 달라고 요청했었다”면서 “하지만 당시 서울시 교육위원회 의원들은 학생들에게 시험이라는 부담을 덜어주자는 공감대가 형성된 바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서울과 광주를 제외한 전국 지역에서는 연간 4회의 학력평가를 볼 수 있는 예산을 편성해 놓은 상황이다. 광주는 3회의 학력평가를 볼 수 있는 예산을 확보했다. 서울시교육청은 추경을 통해 오는 11월 전국학력평가를 치르게 한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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