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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원맨쇼? '명량'이 왜곡한 12척의 진실


입력 2014.08.01 08:48 수정 2014.08.01 12:03        김헌식 문화평론가 (codessss@hanmail.net)

<김헌식의 문화 꼬기>명량대첩을 격투기로 만들다니

영웅도 좋지만 이순신 혼자 고군분투해서 이겼다고?

영화 '명량' 포스터.ⓒCJ엔터테인먼트
영화 '명량'의 사학적 기여는 12척의 배와 그 배의 책임자들이 누구인가를 밝히고, 그에 따라 노량 해전에 임하는 이순신에게 장애가 컸을 것이라는 점의 부각이다. 왜 그들은 이순신을 잘 따르지 않았을까. 영화에서 부각이 안된 부분은 그 배들이 누구의 명령을 받았던 배들이었느냐 하는 점이다. 이순신이 장계에서 올린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있다'는 대목에서 등장하는 12척은 엄밀하게 말하면 이순신의 배가 아니다. 경상 우수사 배설이 칠천량 해전에서 이끌고 도망친 배들이다.

여기에서 도망친다는 말은 배설이 직접 품에 안고 도망쳤다는 말이 아니다. 판옥선 12척이 플라스틱 모델이 아닌 바에야 이는 가능하지 않다. 각각의 판옥선은 지휘권이 있다. 전투선인 판옥선은 각 지역의 수군절도사가 20여척씩 지휘하게 되어 있다. 따라서 배설이 끌고 나온 배들은 경상우수사의 지휘를 받는 배들인 것이다. 즉 배설의 함대다. 그렇다면 배설의 명령을 듣던 함대인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배설이 명량 해전을 반대했다면 12척의 배들이 전투에 임하는 것이 어려울 수도 있다. 더구나 조정에서는 남은 병사들을 이끌고 육군에 합류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이에 이순신은 이 명령을 반대하고 독자적인 해전을 준비한다. 물론 이같은 내용을 장계를 통해 조정에 보고한다. 이 보고에서 그 유명한 12척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영화 '명량'에서는 이 11척의 지휘관들이 통제사 이순신의 작전에 일관되게 협조하지 않는 행태를 그려낸다. 이 때문에 대장선의 이순신이 구루시마 함대에 맞서서 홀로 백병전하는 장면을 크게 그려낸다. 물론 ‘난중일기’에는 초기에 다른 배들이 조금 망설인 내용만 사실에 나와 있다.

11척의 배들이 완고히 비협조적이었다는 점은 전투 지휘 체계상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물론 실록 등의 다른 기록들에는 13척이라는 기록도 많다. 녹도 만호 송여종이 이끄는 함선이 칠천량 해전에서 간신히 살아 나중에 합류하기 때문이다. 일본측의 기록에도 13척이라고 되어 있다.

영화에서는 오로지 이순신 함선만 앞에서 싸우는데 이순신은 함선 하나로 직접 해상 격투를 불사한다. 그런데 백병전을 불사하는 이순신 함선의 전투는 현대적인 상상력이 지나친 감이 있다. 구루시마를 직접 베는 것도 아니다. 이순신은 일본 함대를 만나면 절대 맞붙어 싸우지 말 것을 항상 주지시켰다. 이유는 몇 가지로 압축된다. 

하나는 왜적이 칼 싸움에 능하기 때문이다. 조선 시대에 무과에는 칼쓰기가 없었다. 무과에서 중요하게 시험한 과목들은 활쏘기였다. 조선은 칼의 나라가 아니라 활의 나라였다. 활은 거리가 있을 때 유리하지만 근접에서는 불리하다. 사무라이 문화는 칼의 문화다. 칼은 근접 싸움에서 유리하다. 따라서 칼을 잘 쓰는 왜적과 붙는 것은 조선 수군에게 불리하다.무엇보다 판옥선은 일본의 전투선보다 높아서 높은 위치에서 사격을 할 수 있었고, 이런 점 때문에 맞붙어 싸우는 것보다 유리했다.

두번째 왜적은 조총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활보다 우월한 살상력을 보였다. 대신 조선에는 조총을 이길 수 있는 함포들이 많고 다양했다. 조선 함대는 왜적과 맞붙지 않고 함포 사격을 통해 타격했다. 이것이 조선이 선을 보인 세계 최초의 함포 해전이었다. 또한 조선 배는 판옥선으로 일본의 배들보다 튼튼했고 좌우 회전이 강해서 거친 바다 흐름에 잘 견뎌내었다. 따라서 물길을 이용하여 왜적들의 배를 곤경에 빠뜨리는 것이 유리했다.

세번째 왜군은 본래 해군이 없고 해군에 해당하는 군사들을 해적으로 채웠다. 따라서 해적들은 포악하고 해전에 능했다. 특히 등선육박전에 강했다. 갈고리를 상대방의 배에 걸고 타고오르며 무자비한 살상을 가하는 것이다. 등선 육박전은 캐리비안 해적에 많이 등장했던 것이다. 영화 '명량'에서는 이런 할리우드 해전 양식을 빌려오고 있다. 하지만 이는 이순신의 해상 전법의 원칙들과는 많이 달랐다. 과연 조선 수군이 악랄한 해적과 백병전에서 이길 수 있었을까. 영화에서 처럼 두려움에 떨고 있는 데 말이다.

심지어 이순신은 수군 지휘관들에게 어려움을 당할 때 육지로 도망가지 말 것을 명령한다. 육전에서 왜군에게 불리하기 때문이다. 원균의 경우 칠천량에서 패하고 육지로 도주하는 바람에 험한 꼴을 당하게 된다. 왜적들은 원균의 수급을 얻어 의기양양하게 자신들의 진영으로 돌아갔다. 영화처럼 이순신 대장선이 혼자 붙어 싸웠다면, 즉시 왜적에게 참살당했을 것이다.

이러한 맥락들을 하나하나 언급해 보이는 것은 이순신 함선이 벌이는 전투 장면들이 너무 할리우드 영화 방식이기 때문이다. 해상의 진법을 통한 구체적인 전투보다는 1인 원맨쇼를 보는 듯하기 때문이다. 많은 사료가 없는 관계로 상상력을 통해 구성해야 하지만, 영화에서 대장선이 혼자 벌이는 해상육박전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판옥선이 마치 거북선 이상으로 튼튼해 보인다. 이렇게 과장하고 영웅화해도 문제는 되지 않을것이라 판단했을 것이다.

한국 사람들은 이순신을 신처럼 만들어도 이의제기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고군분투를 그리고 있지만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을 영상으로 옮기면서 진짜 같은 허구를 만들어 내어도 이에 반대하는 관객들이 지탄의 대상이 될 것이다. 일본의 극우화와 세월호 참사로 무기력해진 분위기에 민족적 그리고 국가적 자신감을 불러 일으켜줄 내용이 들어 있으니 영화 '명량'은 흥행에 성공하니 말이다. 그렇다고 드라마 '정도전'처럼 시청률이 모든 역사적 맥락을 옳게 그린 것으로 합리화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영화 '명량'은 이순신을 너무 멋진 해상 격투의 신으로 만드는 바람에 류승룡이라는 배우를 형편없게 만들었다는 평가를 들어야 했다. 물론 이것에만 그치는 것은 아니었다. 이순신이 영웅적으로 구루시마를 궤멸하여 조선 함대 전체를 고무 시켰다면, 그제서야 본격적인 전투가 오래 지속 되어야 하는데 곧 전투는 싱겁게 끝나 버린다. 

명량 해전을 오로지 이순신 혼자만의 고군분투로 그린 것은 당시 참여 했던 많은 병사들과 지휘관들도 무참하게 만드는 일임에 분명하다. 명량 해전에서 그들은 분명 어려운 상황에서 합심하여 명량 대첩이라는 승리를 이끌어냈기 때문이다. 왜적 330여척의 배 가운데 전투선은 130척. 이중에 명량에서 격침한 것이 30여척이다. 

글/김헌식 문화평론가· '위인전이 숨기는 이순신 이야기', '일상에서 읽는이순신 리더십 이야기'의 저자

김헌식 기자 (codesss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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