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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정권은 '수립'됐는데 대한민국은 하늘에서 뚝?


입력 2014.08.15 09:53 수정 2014.08.15 10:16        조성완 기자

역사교과서 유일하게 '건국' 표현했던 교학사도 끝내 삭제

대한민국 건국 부정하면서 북한 정권 정통성 인정하다니

1951년 4월 대구에서 국군을 열병하는 이승만 대통령.ⓒ연합뉴스

대한민국의 건국일인 1948년 8월 15일이 한국사 교과서에서 사라지고 있다. 오히려 일부 교과서에서는 대한민국 정부보다 북한 정권에 정통성이 있는 것처럼 표현해 10대들이 왜곡된 역사관을 가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건국’은 국가의 필수 요소인 국민·영토·주권을 갖추고 세계로부터 독립국가로 인정받는 것을 의미한다.

대한민국은 1945년 8월 15일 일제 식민지배로부터 벗어났지만 곧바로 미 군정이 실시돼 독립국가로 인정받지 못했다. 이후 1948년 8월 6일 이승만 대통령은 ‘8·15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유엔한국임시위원단에 정식으로 통고했다. 학계에서 1948년 8월 15일을 건국일로 주장하는 이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한국사 교과서는 이 같은 대한민국 건국일에 대해 단순히 ‘정부의 수립’ 정도로 표기하고 있다.

1950년대 이래 현행까지의 국사 교과서를 분석한 정경희 박사(전 탐라대 교수)에 따르면 국정교과서가 채택됐던 지난 1974년 3차 교과서부터 1996년 6차 교과서까지는 1948년 8월 15일(8·15)에 대해 ‘대한민국’의 수립 또는 성립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6차 교과서의 경우 “제헌 국회는 이승만을 대통령으로, 이시영을 부통령으로 선출했다. 이어서 이승만 대통령은 정부를 구성하고 ‘대한민국’의 수립을 국내외 선포했다”고 서술하고 있다.

하지만 2002년부터 발행된 7차 교과서부터 현재까지는 대한민국 ‘정부’의 수립(법문사, 천재, 미래엔, 금성) 또는 출범(삼화, 두산동아) 등의 표현을 주로 사용하고 있다. 일부(금성)는 ‘닻을 올렸다’고 표기했다.

2002년 발행된 금성의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에는 “마침내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닻을 올렸다. 그러나 남한만의 정부가 세워진 것은 통일 민족 국가의 수립이 실패로 돌아갔음을 뜻하였다”고 설명돼 있다.

국정 교과서가 ‘대한민국’에 중점을 두면서 한 나라의 건국에 중점을 뒀다면, 이후 나온 교과서들은 ‘정부’에 무게추를 실으면서 건국의 의미를 사실상 삭제한 것이다.

정 박사는 13일 ‘데일리안’과의 통화에서 “역사학계 일각에서 ‘건국’을 부정하고 ‘정부 수립’에 지나지 않는다고 격하했는데, 그것이 최근의 국사 교과서에 고스란히 반영됐다”고 지적했다.

그나마 8·15에 대해 ‘건국’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던 교학사의 한국사 교과서는 교육부의 수정권고 조치에 따라 해당 표현을 삭제했다.

당초 교학사 검정본 307쪽에는 “이로서 대한민국 정부는 미군정으로부터 통치권을 인수하고 유엔으로부터 인정받은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로 건국의 출발을 하게 됐다”고 표기돼 있었지만 교육부로부터 ‘건국이 아닌 정부 수립 등으로 수정 필요하다’는 수정 권고를 받았다.

“대한민국은 제헌 헌법에도 명시하고 있듯이 3.1 운동 결과 수립된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법통을 계승하여 수립됐다. 따라서 건국이란 용어는 적절하지 않다. 집필 기준 등에 의거해 ‘건국’이 아닌 ‘정부 수립’ 등으로 수정이 필요하다”는 게 교육부의 입장이었다.

결국 교학사는 수정본에서 ‘건국’이라는 표현을 삭제했다. 이를 두고 조갑제 ‘조갑제닷컴’ 대표는 “기자생활 44년에 대한민국 공무원으로부터 들어본 가장 황당한 말”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정 박사는 “한국사 교과서에 고려와 조선도 건국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데, 대한민국만 건국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며 “교학사만이 건국이라고 했는데, 교육부의 수정 권고안으로 인해 눈물을 머금고 삭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수립? 그럼 대한민국은 하늘에서 떨어졌는가?”

더욱 큰 문제점은 대한민국 건국을 부정하는 일부 교과서들이 북한 정권의 정통성에 대해서는 인정하는 듯한 반헌법적 표현을 사용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헌법 제3조는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즉, 북한은 대한민국의 영토를 불법 점거한 반국가단체이기 때문에 국가성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북한은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한 대화와 협력의 동반자임과 동시에 대남적화노선을 고수하면서 우리 자유민주체제의 전복을 획책하고 있는 ‘반국가단체’라는 성격도 함께 갖고 있다”는 헌법재판소의 해석도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정 박사는 “6차 교과서까지는 대한민국을 국가로, 북한을 정권이라고 했지만 7차 교과서부터는 대한민국을 정부 수립, 북한은 정권 수립으로 해서 한반도에 2개의 정부가 있는 것처럼 표현 돼 있다”며 “최근 8종 교과서에서는 대한민국은 수립, 북한에 대해서는 건국이라고 하면서 완전히 뒤집어졌다”고 주장했다.

역대 한국사 교과서의 남북한 서술 변화를 살펴보면 국정 교과서에서는 ‘대한민국의 성립, 북한의 단독 정권(5차, 1990)’, ‘대한민국의 수립, 북한만의 단독 정부(6차, 1996)’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7차(2002년)와 현행 교과서에서는 대한민국의 건국은 인정하지 않으면서 오히려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는 듯한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7차의 경우 금성의 ‘근현대사’에서는 ‘대한민국 정부의 수립, 북한에 또 다른 정부가 들어서다’라고 각각 서술돼 있으며, 현행 교과서(두산동아)에서는 ‘대한민국 정부가 출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수립’이라고 표기돼 있다.

정 박사는 금성 교과서 265쪽의 ‘남한에서 단독 정부 수립의 움직임이 표면화되자 북한도 정부 수립을 위한 준비에 박차를 가했다’는 표현에 대해 “단독 정부 수립의 책임을 전적으로 남한에 지운 것으로, 남한과 북한을 대등하게 간주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북한은 남한에서 총선거가 실시되자 곧바로 정부 수립에 나섰다. 8월 25일에는 남북 인구 비례에 따라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을 뽑는 선거를 실시했다’는 두산동아 교과서 273쪽의 표현에 대해서도 “남한의 5·10 총선거는 ‘남한만의 총선거’로 서술하고, 북한의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는 남북한 전체의 선거로 서술했다”고 비판했다.

자칫 잘못하면 “정통성이 북한에 있는 것으로 해석될 소지가 다분하다”는 주장이다.

정 박사는 “건국이라는 말이 교과서에서 사용되지 않으면서 학생들은 대한민국의 건국이 언제인지도 모른 채 북한의 수립에 대해서는 공부를 하고 있다”며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얼마나 어렵게 세워졌는지도 모르고 그저 하늘에서 떨어진 나라인 줄 알 것”이라고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조성완 기자 (csw4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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