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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가 사람을 죽인 판교공연 '무상'이 빚은 참사


입력 2014.10.18 07:59 수정 2014.10.18 16:02        김헌식 문화평론가

<김헌식의 문화 꼬기>서태지 노래서도 공짜 공약 비판

야외공연장에 대한 정책적 조치와 무료공연 자제해야

17일 오후 환풍구 덮개가 붕괴돼 수 십명의 추락 사상자가 발생한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판교테크노밸리 야외광장에서 사고 직후 소방관들이 구조 작업을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독자제공)

판교 공연장 참사의 원인 분석이 활발한데 깔대기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그 깔대기는 안전불감증이다. 원인 분석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단어가 안전불감증이기 때문이다. 가장 쉽게 떠올릴 수 있는 단어이기도 하지만 가장 공허한 단어일 수도 있다. 안전불감증에서 불감(不感)은 느끼지 못하는 일을 말한다.

안전에 대해 감각이 둔해지거나 익숙해져서 느낌을 갖지 못하는 병증이 안전불감증이다. 이는 안전의식에 대한 의식이 없음을 말하는 것이며, 안전에 대한 심리적 요인이 참사의 원인이라고 보는 관점이다. 물론 이런 심리적인 요인 때문에 참사가 일어난 측면이 있지만, 또 다른 측면도 중요하다. 공연장 참사에서 눈여겨봐야 할 두 가지 키워드는 야외공연장의 ‘공간성’과 ‘무료공연’이다.

판교 사고 현장의 공연 무대에서 불과 15m 떨어진 지점에 문제의 환풍구가 있었다. 환풍구는 상대적으로 높은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무대를 훤히 볼 수 있었다. 앞쪽과 달리 뒤편을 통하면 올라가기도 쉬웠다. 많은 사람들이 이 환풍구에 오를 가능성은 높았다. 하지만 환풍구의 깊이는 20여m에 이르렀고, 철판은 수십 명의 사람이 올라갈 경우 하중을 견디기 힘들었다. 사전에 정확한 위험진단은 존재하지 않았고, 이를 관리해야 할 안전요원도 없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설령 있었다해도 안전요원의 존재는 당시 공연 상황에서는 무용지물일 수 있었다.

안전불감증의 맥락에서 환풍기에 올라간 행위를 옳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사람은 일정한 상황에 처하면 그 상황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다. 또한 여러 사람이 있으면 동참의식이 높아지고 비록 위험을 인지해도 “설마~”하는 심리가 강해질 수 있다. 이를 가리켜 흔히 군중심리라고 칭할 수 있다. 이번 사건에서는 단순한 군중심리보다는 야외 공연장의 공간 심리가 작용했다. 주목해야 할 것은 공간의 '적합성'과 그 공연의 성격이 사람들의 관람행태에 영향을 미치는 '쏠림 효과'이다.

공연장에서 가장 빈번한 사고 유형은 압사사고이다. 압사사고는 단지 사람이 많기 때문에 일어나지는 않는다. 이런 사고 유형은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리면서 무게중심이 무너진 쪽에서 일어난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왜 몰리는가이다. 관람객이 많이 몰리는 이유는 자기 자리를 지키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유독 압사사고가 많이 일어나는 경우는 야외공연이 많고 특히 무료공연인 경우에 위험하다. 무료공연은 좌석이 정해지지 않고 먼지 입장하는 순서에 따라 좌석이 정해진다. 따라서 좋은 자리를 잡기 위해 경쟁이 이뤄지고, 이에 특정한 자리를 위한 관객 쏠림이나 쇄도 현상으로 압사사고 일어난다.

또한 야외 공연의 경우 연예인들이나 가수를 보기 위해서 몰려드는 군중 쏠림 현상이 강하게 일어난다. 예컨대, 인기 걸그룹이 등장할 때, 야외 공연이면서 무료 공연인 경우에는 전혀 예상치 못한 군중 밀집 현상이 일어난다. 주변에 산개되어 있던 사람들이 일시에 특정 연예인을 보기위해 몰려들기 때문에 오픈 된 공간일 경우 순간적인 통제 상실이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

그런데 이번 사고는 압사가 아니라 추락사였다. 환풍구에서 사람이 떨어진 것도 결국에는 쏠림 현상과 연관되어 있다. 앞에 사람이 많이 몰려 있었기 때문에 그 관람군중은 환풍기에 올랐다. 여기에 인기 걸그룹이 무대에 오르자 한꺼번에 사람들이 환풍구에 올라가면서 참사가 일어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이런 일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애초에 무방비의 오픈 공간의 공연이 철저하게 관리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이런 무료 공연 자체에 대한 검토가 더 필요하다. 무료 공연은 시민을 많이 끌어 모으기 위한 것이므로 오픈 공간을 지향한다. 오픈 공간을 만들어야 시민 누구나 참여하는 공연 환경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시민들의 문화 향유권을 널리 보장하는 문화정책적 조치로 보인다. 그런데 그 목적이 정말 오로지 많은 시민들에게 공연을 보여주려는 것일까. 무료 공연을 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많은 시민들이 참여했다는 숫자 자체가 주최나 주관기관의 하나의 실적이 되기 때문이다.

공짜 공연은 누구에게나 오픈 되어 있지만 언제나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즉 공짜 공연 자체가 갖는 위험을 성찰해야 한다. 이번 판교 공연도 무료였고, 무제한 오픈 공연이었기 때문에 참여자들도 무방비의 심리 상태로 공연장에 임하였다.

서태지 '크리스말로윈'은 크리스마스 산타라는 선한 사람의 행위가 악한 행위가 될 수 있다는 상대적인 관점을 통해 사회를 비판하고 있다. 우리는 크리스마스가 되면 산타에게 선물을 바란다. 하지만 그 선물은 공짜 심리에 기반을 둔다. 무료로 제공되는 선물은 사람들을 수동적이고 나태하게 만들며, 사람들을 노예로 만들 수 있다.

위정자들의 공짜 공약은 그야말로 공약(空約)이다. 무료공연은 사람들의 목숨까지도 앗아가게 만들었다. 무료공연은 되도록이면 없어야 한다. 콘텐츠 산업과 저작권을 강조하면서 정작 이런 무료 공연은 생색내기용으로 사람들을 끌어모으는데 이용하고 그 모으기는 이런 대형사고의 원인이 됨을 간과할 수 없다.

무엇보다 이번 판교 공연장은 사실상 공연을 할 수 없는 부적합의 공간이었다. 부적합의 공간에 공연을 관람하는 사람은 누구나 위험에 노출되어 버린다. 그런데 이런 공간은 전국에 너무나 많다. 문화예술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고 이를 각 지자체에서 반영하는 일이 많아지면서 야외 공연을 할 수 있는 복합적인 광장들이 많이 조성되거나 만들어졌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모일 경우, 사고를 일으킬 위험요인이 있는지 전혀 고려되지 않고 있다. 이번 참사처럼 위험 환풍기 시설이 너무 가까워 사고 유발요인인데도 공연을 했다. 차제에 이런 공간에 대해서 일제 점검이 필요하다. 야외 공연장으로 적합하지 않은 공간은 폐쇄하거나 개선해야 한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적절한 인원과 규모를 정하고 이에 맞추어 공연이 이루어지도록 전국시도에 조치를 취해야 한다.

글/김헌식 문화평론가·동아방송예술대 교수

김헌식 기자 (codesss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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