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통법 파국, 무엇이 문제인가(상)-안이한 정책 이면엔 '통피아'도 한몫>
정책실패 인정 대신 반기업정서만…재개정 대신 통신요금경쟁체제로
단말기 유통구조 개선법(이하 단통법)이 시행된지 3주가 지났지만, 이를 둘러싼 논란은 여전히 뜨겁다. 단통법 시행 전후로 소비자-판매자-제조사들은 전례없이 꽁꽁 얼어붙은 통신시장 때문에 원성의 목소리가 높다. 정부는 시장경제 원리를 이해못한 졸속정책이라는 비난을 조기 진압하려다 되레 정책실패의 책임을 기업탓으로 돌린다는 따가운 눈총까지 받고 있다. 정부의 말대로 시간이 흐르면 해결될 수 있는 것일까. 아니면 분리공시와 완전자급제 등을 보완해 재개정하면 파국이 진정될 수 있을까. 단통법 논란의 핵심을 진단하고, 해결방안을 모색하는 시리즈를 3회에 걸쳐 살펴본다. < 편집자 주 >
소비자의 통신부담을 덜어주겠다는 취지로 도입된 단통법이 오히려 소비자 부담을 가중시킬 뿐만 아니라 시장의 자유로운 경쟁을 옭아매는 과잉규제란 지적이 거세지고 있다. 따라서 기존 단통법은 ‘악법’이니, 재개정할 것이 아니라 즉각 폐지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특히 박근혜 정부가 최근 기업활동을 저해하는 규제를 완화하는 규제완화정책은 물론 공정거래법의 기본취지에도 역행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병태 카이스트 경영대학 교수는 "단통법은 공정거래법의 기본취지인 불공정 가격담합을 처벌하고, 시장경쟁을 촉진해야 하는 정부의 역할에도 역행하는 법”이라며 “단통법은 즉각 폐지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규제푼다더니 현실은 과잉규제·담합조장
박근혜 정부는 올해들어 경기침체가 장기화되자 기업활동에 저해되는 각종 기업규제들을 풀어주는 규제완화정책을 적극 펼치고 있다. 하지만 단통법은 이런 기조와는 정반대의 행보를 걷고 있다. 특히 시장경제를 무시한 안이한 정책으로 통신시장에 혼란만 가중시키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20여년 전부터 도입된 '요금인가제'와 '보조금상한제'다. 업계 안팎에서는 이는 시장경제를 무시한 ‘정부주도의 담합’과 ‘과잉규제’로서 정부가 앞장서 공정거래법을 위반하는 정책인 만큼 모두 폐지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1991년 도입된 요금인가제는 선두 업체에 비해 불리한 시장환경에 놓인 후발업체를 지원하기 위한 것이다. 시장 점유율이 50%에 이르는 SK텔레콤이 정부의 요금 승인을 받으면 KT와 LG유플러스가 여기에 맞춰 요금을 책정하고 있다. 이 제도가 23년간 이어져오면서 이미 3위 사업자마저 매년 6000억원 이상의 영업이익과 1000만명이 훌쩍 넘는 가입자를 확보했다.
이번 보조금 상한제도도 마찬가지다. 스마트폰 가격 자체는 높지만 여러 기기가 통합된 스마트폰의 특성이 오히려 가계의 전자제품 지출을 줄여주는 효과가 있는데 이를 고려하지 않고 과소비라고 단정짓고, 과잉규제를 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 교수는 “모든 소비자가 같은 정보를 갖고 구매에 나설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며 “시장경제 원리에 대한 몰이해로 단통법이 잘못된 반기업정서만 부추기고 제조사에 피해를 주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애초에 제시한대로 가계 통신요금인하가 목적이었다면, 가격과 품질경쟁을 유도하는 정책을 펴야한다. 차라리 독과점적 통신사의 반경쟁행위와 불공정행위를 규제하는 것이 합당하다는 것이다.
사실 방송과 통신은 정부의 소유로 된 전파 사용권한은 특정기업에 주고 사업권을 주었기 때문에 규제의 근거가 있다. 하지만 단말기는 다른 상품과 동일한 공산품이다. 이 공산품의 거래에 대해 과도한 규제를 할 이론적, 역사적 근거는 희박하다.
단통법은 공정거래법의 기본취지 즉 불공정 가격담합을 처벌하고 시장경쟁을 촉진해야하는 정부의 역할에 정반대의 길을 가고 있는 법이다. 본질적인 문제인 '주간 공개 고정가격제'의 결정적 결함을 제거하지 않는 한 시간이 가도 단통법 참사는 해결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이 교수는 "시장에서 거래되는 대부분의 공산품은 각종 할인프로모션을 통해 동일한 가격으로 거래되지 않는다"면서 "누구나 동일한 휴대폰에 대해 동일한 가격으로 구매할 수 있게 하자는 정부의 어설픈 ‘평등주의’가 통신시장을 혼란에 빠뜨렸다"고 말했다.
◇단통법은 국회-정부-이통사 ‘철의 삼각’ 합작품?
특히 단통법 시행 이후 이동통신사들만 이익을 보는 모양새로 흘러가면서 실효성 논란이 더욱 확대되고 있다.
조동근 바른사회시민회의 대표(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단통법의 최대 수혜자는 이통사”라며 “단통법의 파행을 초래케 한 것은 단통법 입법자들, 즉 미래창조과학부 공무원들과 국회의원들의 시장경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탓”이라고 꼬집었다.
실제 단통법 시행으로 올해 이통3사의 영업이익이 2조3000억원대에 이르고 내년에는 4조7000억원까지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에 따라 단통법이 태생부터 이통사에게 유리한 제도라는 지적이 일고 있다. 단통법은 미래창조과학부와 방송통신위원회가 차별적 보조금 지급과 과도한 마케팅 경쟁을 막고 통신요금 및 단말기 출고가 인하를 유도하겠다는 취지에서 도입됐지만 결과적으로는 이통사만 배불리는 부작용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것이다.
업계 한 고위관계자는 "보조금을 통해 시장을 통제해 온 이통사들이 보조금 상한선과 공지를 주 내용으로 하는 단통법을 자신들이 유리한 쪽으로 얼마든지 조정할 수 있는 구조"라며 "단통법 시행령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미래부와 방통위가 이통사들이 시장을 통제할 수 있는 여력을 남겨뒀기 때문에 부작용은 예고된 일"이라고 강조했다.
업계 일각에서는 단통법이 '통피아(통신+마피아)'의 작품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규제산업인 통신업계는 그동안 국회-정부-기업이 밀접한 관계를 형성하는 '철의 삼각(iron triangle)'의 전형이라는 지적을 받아왔다.
그도 그럴 것이 이통사들은 각사별로 적게는 50명에서 많게는 150명까지 대외협력(대관) 인력들을 배치해 국회, 정부와 유기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
뿐만 아니라 미래부와 방통위 등 관련부처 출신들을 적극적으로 영입해 왔다. 이들이 이른바 '통피아'를 형성해 정책 수립에 관여하고 업계에 유리한 쪽으로 법을 만들거나 개정해왔다는 것이다. 현재 통신3사에서 영입한 관련부처 출신 임원들이 수십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관계자는 "단통법의 큰 그림은 이통시장에 만연된 불법 행위들을 뿌리뽑고 소비자들에게 혜택을 돌아가도록 하는 것이지만 세부적인 내용을 보면 통신사와 정부의 실무자들이 업계에 유리하게 만들어낸 합작품"이라며 "앞으로 단통법이 개정되는 과정에서도 통피아의 입김이 적잖게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혼란만 가중시키는 정부…책임은 기업 몫?
결국 단통법의 부작용은 고스란히 소비자 부담 가중과 시장침체로 이어졌고, 제조사들의 실적도 반토막이 났다.
한 판매점 직원은 “보조금 표가 오히려 고객들을 내쫓고 있다. 보조금과 요금제를 열심히 설명해도 소용이 없다”면서 “보조금 대신 매월 요금추가할인을 해준다고 해도, 현재 단통법에 대한 불신이 퍼져 있어 바로 신청하려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다”고 말했다.
실제 단통법 시행 후 이동통신 시장의 신규가입자률은 58%나 감소했고, 제조사는 단말기 판매가 60% 급감하는 등 통신시장은 꽁꽁 얼어붙고 말았다. 심지어 대리점까지 잇따라 폐업하면서 예견됐던 악영향이 나타나고 있다.
이에 정부는 지난 17일 이통사와 제조사들을 한자리에 불러 긴급간담회를 갖고 진화에 나섰으나, 결국은 정책실패를 인정하기 보다 기업들에게 책임을 떠넘기려는 모습만 보였다.
최양희 미래부 장관과 최성준 방통위 위원장은 당시 “단통법의 취지와 다르게 소비자가 아닌 기업 이익만을 위해 이 법을 이용한다면 정부 입장에서는 소비자를 위해 특단의 대책을 검토할 수 밖에 없다”며 으름장을 놓았다.
건전한 시장 경쟁을 통해 가격을 낮추고 담합을 막아 소비자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다. 단말기 값을 찍어누르고 보조금을 손보겠다는 식의 강압적 방식은 반 시장적이며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 실제 이명박 정부에서도 통신료 인하를 소리높여 외쳤지만 결과는 ‘기본료 1000원 인하’가 고작이었다.
정부의 시장 개입 선언으로 소비자는 더 혼란스럽게 됐다. 법이 어떤 방향으로 수정될지 몰라 구입을 더 늦춰야할지 모른다. 소비자는 움직이지 않고 업체는 더 어려워지는 악순환이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이병태 교수는 “단통법 시행에 다른 정부의 단말기 보조금 규제는 경제학 책에도 없고, 외국에도 해당 사례가 전혀없는 희귀한 경우”라며 “정부는 시장의 자유로운 경쟁을 옭아매는 과도한 규제로 불법이 아닌 행위를 범죄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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