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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상공약 남발 끝내 부메랑돼 어린이들부터 피멍


입력 2014.11.07 11:30 수정 2014.11.07 17:41        이슬기 기자

보육료 지원 중단, 저소득층 대책에는 "우리 소관 아냐"

저소득층 무상급식 수치에 '7만명' 차이…논의도 없어

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운효자동 주민센터 앞에서 열린 무상보육·무상급식 파탄위기 해결과 교육재정확대촉구 기자회견에서 홍준표 경남도지사,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황우여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 가면을 쓴 참석자가 급식판을 던지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데일리안

'묻지마' 무상공약으로 인한 재정 악화에 따라 정부와 시·도교육청의 책임 미루기가 계속되면서, 정작 저소득층 어린이들이 피해를 덮어쓸 우려가 커지고 있다.

2012년 시작된 누리과정(만 3~5세 교육·보육비 지원사업)은 당초 시·도교육청이 재정을 지원했지만, 예산 부담을 감당할 수 없게 되자 중앙 정부에 지원을 요청했다. 하지만 정부가 ‘무상급식 예산으로 누리과정 부족분을 메우라’고 반박하면서 곧 무상급식 논란으로까지 번진 것이다.

지난 6일 전국 시·도교육감협의회는 대전에서 긴급 총회를 열고 2015년도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 2~3개월분에 해당하는 일부 예산을 일단 편성키로 결정했다. 다만 경기도를 비롯해 예산 형편상 편성이 불가능한 지역은 예외로 두기로 했다.

앞서 2015년도 누리과정 예산안 전액을 삭감하겠다고 발표한 경기도교육청과 경남도, 서울시교육청에 이어 전액 미편성 상태로 남겨두겠다던 대구시교육청도 일단 급한대로 임시안을 내놓은 것이다.

하지만 이는 지극히 미봉책에 불과하다. 2~3개월 이후에도 정부의 지원이 없을 경우, 어린이집 보육료 지원을 중단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교육감협의회 측의 입장이다. 이들은 "일단 2~3개월분 정도는 가능할 것으로 예측되지만, 이후 지원 대책은 국회에서 예산통과 이전에 밝혀달라”며 “국가 정책에 따른 사업비는 국고나 국채 발행을 통해 해결해야한다"고 강조했다.

문제는 보육료 지원이 반드시 필요한 저소득층의 어린이들의 보육료 지원이 사실상 불가능해졌지만, 정작 이에 대한 대안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첫 불을 지핀 경기도교육청은 일단 법률을 근거로 “어린이집을 지원할 의무가 없다”는 입장이다. 법률상 ‘교육기관’은 교육청이, ‘보육기관’은 보건복지부가 담당하는데, 어린이집은 ‘보육’에 해당되는 기관이므로 재정지원을 할 의무가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경기도교육청 관계자는 이날 ‘데일리안’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누리과정 중 어린이집 지원을 없애면, 지원이 꼭 필요한 저소득층 아이들의 보육료는 어떻게 되느냐’는 질문에 “어린이집은 법률에 따라 복지부 소관이고 경기도에서 맡아야 하는 기관”이라는 말을 되풀이 했다.

해당 담당자는 이어 “사실상 우리 소관이 아니기 때문에 그런 문제에 대해서는 따로 안이 없다”면서 “상위법인 법률에는 어린이집이 복지부 소관으로 되어 있지만, 시행령에는 교육청 소관으로 나와있다. 교육청이 어린이집까지 다 감당하려면 법을 바꿔야하기 때문에 상당히 복잡한 문제”라고 선을 그었다.

그 뿐이 아니다. 누리과정이 시행되기 전인 2011년까지는 소득 수준에 따라 계층별로 수급이 필요한 가정을 조사해 지원했지만, 누리과정이 확대 편성된 이후부터는 이 같은 조사가 중단됐다. 누리과정의 기준 자체가 ‘소득’이 아닌 ‘연령’이기 때문에 별도로 저소득층 수요자 현황을 조사하지 않은 것이다.

즉, 설사 현 시점에서 저소득층 지원대책을 추가한다해도, 정작 수급자의 규모를 파악한 자료조차 없다는 문제가 생긴다. 기껏해야 2011년 이전 자료를 역추정하는 것 외에는 뾰족한 방법이 없는 상황이다.

“무상급식 중단해도 저소득층 지원해준다”지만...‘엇갈리는 수급자’

무상급식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지난 3일 “무상파티에 더 이상 동참할 수 없다”며 무상급식 지원 중단을 선언한 가운데, 인천시도 같은 입장을 밝히고 나서면서 ‘무상급식 보이콧’ 움직임이 일파만파 확산됐다. 이에 야권은 “경남도가 804억 원의 식품비 지원을 중단하면, 21만9000명에 대한 지원이 끊겨 결국 저소득층 6만6000명만 지원을 받는다”고 날을 세웠다.

경남도교육청에 따르면, 경남도가 저소득층 학생 5만2000여명에 대해 교육비 명목으로 지원하는 280억400만 원 가운데 약 140억 원은 학기 중 공휴일 급식비로 지정돼 있기 때문에, 사실상 교육청이 쓸 수 있는 예산은 전체의 절반인 140억 원에 그친다. 이 때문에 교육청이 따로 100억 원 이상을 보태서 저소득층 지원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경남도교육청 급식 담당주무관은 “아마 경남도가 이런 세부사실까지는 밝히지 않았을 거다. 지자체가 돈을 못 준다면, 우리는 그전까지 맡았던 아이들 급식비는 우리가 책임질 것”이라며 “저소득층 학생 6만6000명 외에도 우리 재정을 들여 추가로 지원할 계획이 있다”고 밝혔다. 다만 추가지원 인원에 대해서는 “구체적 수치까지는 공개하기 어렵다”고 답했다.

반면 경남도 측은 “무상급식 도비와 시·군비가 전액 미지원 되더라도 저소득층을 포함해서 당초 급식인원의 50%인 약 14만 명을 지원할 수 있다”고 즉각 반박하고 나섰다.

아울러 보도자료를 통해 △차상위계층 130%이내의 저소득층 자녀는 교육부 사업으로 이미 국비지원을 받아 무상급식을 하고 있으며 △그 외에 등록금, 방과후 수업, 컴퓨터 등 교육정보화 사업비도 무상지원한다고 강조했다.

경남도 관계자는 “자꾸 좌파 쪽에서 6만6000명만 지원할 수 있다고 거짓주장을 하는데, 이미 교육부 사업으로 저소득층 아이들이 국비지원을 받고 있다는 자료까지 다 있지 않느냐”고 토로하며 “그렇기 때문에 꼭 받아야 할 아이들이 못 받게 되지 않는다. 무상급식 중단과는 전혀 무관한 일”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이들의 주장대로라면, 14만명과 6만6000명 사이에 무려 7만명에 달하는 사각지대가 생긴다. 양 측 모두 “저소득층 급식비는 책임진다”지만, 단순히 통계상 차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큰 7만여 명이 향후 어떻게 되는지에 대한 상호 협의나 대책이 아직 없는 상태다.

경남도의 결정을 지지하는 여권 일각에서조차 “이유있는 무상급식 지원 중단도 중요하지만, 지원이 꼭 필요한 저소득층의 규모와 재정에 대해서는 교육청과 사전에 이야기 했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지금까지 뭐하고 언론플레이만 하나. 애들만 피해” 학부모들 원성

이처럼 정치권이 재원 확보 방안도 없이 쏟아낸 무상복지의 문제점이 곳곳에서 터져나오면서, 학부모들은 “결국 애들만 피해보게 된 것”이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고교생 자녀를 둔 50대 여성 이모 씨(경기도 의왕 거주)는 “나도 애가 셋이나 있는 엄마지만, 솔직히 정말 어려운 집들 아니고서야 급식비 정도 부모가 못 내겠느냐”라며 “진짜 필요한 집에 지원을 해줘야지 무상급식하면서 원어민교육, 특별활동 다 없어졌다. 줬다 빼앗으려면 좀 똑바로 조사해보고 일하라고 전해달라”고 토로했다.

무상급식의 갑작스런 중단이 학생들 간 계층 격차를 느끼게 한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중학생과 유치원생 자녀를 둔 마포구의 40대 여성은 "기존에 지원을 받던 아이들에게 혼란을 줄 수 있다"며 "갑자기 누구는 받고, 누구는 안 받게 되면 '우리집은 가난해'라는 박탈감을 느끼게 되지 않겠느냐. 그런 고려도 없이 배째라 식으로 일을 처리하면 안된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어 "가장 최선의 방법은 무조건 밀어붙이는 게 아니라 머리를 맞대고 얘기 하는 것"이라며 "당장 언론플레이나 하는 게 참 한심하다. 그런 점을 제대로 고려해서 꼭 필요한 애들한테 효과적으로 지원되도록 논의를 했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또한 중앙정부의 무책임한 태도를 비판하는 주장도 나왔다. 두 명의 초등학생 자녀를 둔 40대 남성 박모 씨(서울시 관악구 거주)는 “세수전문가들이 얼마나 많은데, 지금까지 재정 예측도 똑바로 안하고선 이제 와서 갑자기 빵빵 터뜨리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 씨는 그러면서 “벌써 11월이다. 당장 내년부터 애들 급식비 몇 십만원을 내느냐는 학부모들 피부에 와닿는 문제인데, 중앙정부는 도대체 지금껏 뭘 해먹고 지금에야 이러는지 너무 무책임하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아울러 총체적 복지정책에 대한 사회적 논의와 함께 전면적인 재검토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다. 재정 능력과 사회적 요구를 모두 고려해 '꼭 필요한' 선택적 복지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박주희 바른사회 시민회의 실장은 “무상급식이든 보육이든 처음의 도입취지를 다 잊은 채 정치논리로만 접근하는 것이 문제”라며 “오히려 정치공방이 극심한 지금이야말로 복지의 우선순위를 정해서 전면적인 구조조정을 해야하는 적기”라고 강조했다.

박 실장은 또 “어느 선까지, 하위 몇 프로까지 지원해야할지를 재정 상태와 실제 필요에 맞게 고려해야한다. 무조건 무상급식이다, 무상보육이다 하면서 정치권이 조급하게 추진을 하니 부작용이 생길 수밖에 없다”며 “지금이라도 무상복지 정책을 원상태도 되돌려서 실효성을 진지하게 점검해야한다”고 말했다.

이슬기 기자 (wisdom@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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