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결식 그후... 세월호 일반인유족들 "일상에서 지켜볼것"
<인터뷰>한성식 일반인유가족대책위 부위원장
"우리가 힘 내고 살아야 고인들도 편히 눈감아"
지난 27일 인천 남동구 인천시청 앞 미래광장에서는 지난 4월 16일 진도 앞바다에서 침몰한 세월호 일반인 희생자들의 합동 영결식이 거행됐다.
“진상규명은 시작도 안 했는데 영결식 강행은 안 된다”, “시신을 찾지 못한 가족도 있다”며 일반인 합동영결식을 반대하는 목소리도 나왔지만 일반인 희생자 유가족들의 의지는 결연했다.
일반인 희생자 유가족들이 정부 측의 제안을 받아들여 2014년을 마무리하는 시점에 합동영결식을 거행한 것도 사고 발생 이후 250여 일이라는 긴 시간 동안 희생자들이 눈을 감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참사 이후 차려진 희생자 분향소 등이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사실에 분에 넘치는 미안함과 안타까움에 하루 속히 세월호의 아픔을 떨쳐내야 한다는 의견들이 모였다. 일반인 유가족들은 세월호 참사로 떠나보낸 가족들을 가슴 한켠에 묻어두고 ‘새로운 2015년, 희망찬 새해를 맞이하자’는 다짐을 했다.
한성식 세월호 일반인희생자유가족대책위원회 부위원장은 구랍 31일 ‘데일리안’과 인터뷰에서 “고인들을 유가족이 붙잡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면서 “나라 살림살이도 좋지 않은데 국민세금으로 언제까지 분향소 운영을 하도록 둘 수 없다는 유가족들의 판단이 있어 정부의 제안대로 지난 27일 합동영결식을 진행했다”고 밝혔다.
한 부위원장은 “가족을 잃어 여전히 착잡한 심정이지만 그저 고인들이 좋은 곳으로 두렵지도, 어둡지도, 춥지도 않은 곳으로 가셨기만 하는 바람이다”라고 말했다.
그동안 일반인 유가족들은 단원고 유가족들과는 독립적인 행보를 보이면서 오해와 비난을 받아왔다. 특히 ‘일반인 유가족은 정부·여당 편이기 때문에 특별법을 수용했다’, ‘진상규명 없는 상태에서 유족간 합의 없이 왜 합동영결식을 강행하느냐’라는 낭설과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러한 비난과 오해가 있는 상황에서도 일반인 유가족들은 “대한민국이 세월호에서 회복해야 한다”, “슬픔을 딛고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 “세월호 때문에 국민의 세금이 지속적으로 사용되는 것은 원치 않는다”는 일관된 입장을 견지해왔다.
한 부위원장은 일반인 합동영결식을 일반인대책위 일부 임원진이 독단적으로 강행했다는 지적에 대해 “지난 11월 셋째 주 일요일, 총회를 통해 분향소철소와 합동영결식을 정부에 일임하는 것을 의제로 표결을 진행했다”면서 “3분의 2 이상이 찬성했고 다음날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까지 진행했다. 임원진의 독단이 아니었다”고 반박했다.
이어 그는 “일부 반대했던 분들은 표결 전에 가족들을 설득했다고 하는데 어떤 임원도 가족들에게 미리 전화해서 의견을 강요한 적도 없고 오로지 자율의사에 맡겨 표결했다”면서 “정부 측에 올해 내에 합동영결식을 진행하라고 압박을 가한 바도 없다. 지난 17일 정부 관계자와 만나 합동영결식 날짜 절차 등에 대해 설명을 듣고 이에 따르기로 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아울러 한 부위원장은 진상조사가 끝난 이후 진행될 예정인 단원고 희생자들의 영결식과 관련, “하루속히 슬픔을 딛고 일어나셔서 고인들도 영면하시도록 했으면 좋겠다”면서 “살아계신 유족분들이 또 힘내고 살아야 고인들이 편하게 눈을 감을 수 있을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다음은 한성식 세월호 일반인희생자대책위원회 부위원장과의 일문일답.
-27일 일반인 희생자 영결식이 치러졌다. 올해가 가기 전, 합동 영결식을 진행한 것은 일반인유가족들에게 어떤의미가 있는 것인가.
“세월호는 2014년 초에 일어난 일이었는데, 새로운 2015년을 맞이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다. 저희들도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됐다는 의미가 있지만 그렇다고 진상규명을 잊고, 고인들도 잊자는 의미는 아니다.”
-유가족 입장에서 합동영결식을 정부에 일임하기까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우선 마음이 착잡하다. 가족을 잃었는데 어떤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그저 고인들이 좋은 곳으로, 두렵지도, 어둡지도, 춥지도 않은 곳으로 가시기만 바랄뿐이다.
고인들을 언제까지 우리 유가족들이 붙잡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영면을 위해 저승에서나마 편안히 그리고 좋은 곳으로 가시라며 합동영결식을 거행했다. 더욱이 지금 나라의 살림살이도 좋지 않은데 국민세금으로 언제까지 분향소 운영을 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결국 일반인 유가족들의 결단이 있었기에 분향소 철수, 늦었지만 합동영결식도 진행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일반인 유가족 총회에서 분향소 철수 및 합동영결식 절차를 정부에 위임하는 것에 대해 반발이 있었던 것 같던데?
“11월 셋째주 일요일에 총회를 했고 분향소철수와 합동영결식을 정부에 일임하는 것을 의제로 내고 가족들과 의논해 표결했다. 3분의 2 이상이 찬성했고 다음날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까지 한 사항이다. 유가족들의 찬성 없이 임원진들이 독단적으로 결정할 사안이 아니다. 유가족 정관에도 과반수 이상의 찬성이라는 조항이 있다.
또한 일부 반대했던 분들은 미리 임원진이 가족들을 설득했다고 하는데, 어떤 임원도 가족들에게 미리 전화해서 의견을 강요한적이 없고 오로지 자율의사에 맡기고 결정한 것이다.”
-부위원장 독단으로 결정했단 보도도 있고, 반대하는 유가족들의 인터뷰도 나왔다.
“정부에 연내 (시기를 못박아) 합동영결식을 해달라고 별도로 요청한 일이 없다. 정부에 날짜와 절차 등 모든 것을 일임한 것이기에 정부의 답변을 기다렸을 뿐이다.
지난 17일 즈음 정부 측에서 인천대책위 사무실에서 만나자고 해서 저를 포함한 임원 4명이 만나 날짜, 절차 등에 대해 정부 측 설명을 듣고 영결식과 관련된 협약서에 제가 서명을 했다. 장종렬 위원장은 생업인 팬션 사업을 위해 자월도에 있었기 때문에 제가 대신 했던 것이다.”
-그런데 위원장은 부위원장 독단으로 결정했다고 한 언론과 인터뷰를 통해 밝혔다.
“장 위원장은 팬션업 성수기인 7월부터 대책위 활동을 거의 하지 못했다. 때문에 임원들 간 만든 메신저 단체 채팅방에 사안이 있을 때마다 올리고 내용을 공유해왔다. 일각에서 위원장 교체설도 나왔지만 임원진들은 위원장을 교체할 필요 없다며 그런 주장을 무마시켜왔고 또 무리없이 대책위를 운영해왔다.
합동영결식과 관련된 모든 내용을 단체 채팅방을 통해 공지를 했는데도 몰랐다는 것은 어려운 결단을 내린 유가족들을 곤란하게 하는 일이라 여겨진다. 하지만 장 위원장은 분향소 설치, 일반인대책위 결성 등 많은 노력을 해왔던 분이다.”
-인천 분향소에서 영정을 철수해 다시 안산 분향소로 들어간 일부 일반인 유가족들의 반발이 있는 모양이다.
“고 이현우, 고 방현수, 고 김기웅, 고 양대홍, 고 구춘미, 고 안현영 씨는 모두 청해진 해운 세월호 승무원들이었다. 4월에 침몰한 세월호에서 근무했던 승무원, 혹은 아르바이트 생들이었다. 처음부터 안산(단원고) 가족대책위는 학생과 교사로만 구성됐기 때문에 일반인 대책위에 승무원, 재중동포 희생자 가족들이 함께했던 것이다.
43위의 일반인 희생자 유가족 가운데 26명의 희생자 유가족만 합동영결식에 참석한 것은 세월호 승무원 6분 유가족의 탈퇴, 재중동포의 중국관습상 참여하지 못했던 것이다. 여기에 실종자 가족분들이 포함돼 있다. 영결식 자체가 미리 계획된 날짜가 아니었기 때문에 참여하지 못한 분도 계시다. 고 박지영, 고 김문익, 고 이묘희 세분은 승무원이지만 일반인 합동 영결식에 참여했다.”
-단원고 유가족들은 진상규명을 한 후 영결식을 하자는 입장인데.
“안산 측은 진상조사위원회 활동이 끝난 후에 영결식을 한다고 공식 발표했는데 최소 18개월 후에 영결식을 한다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렇다면 18개월 후에 영결식을 한다는 말인데 이 기간 동안 분향소 유지비용 등은 누구의 몫인 건가. 국민들께서 애통해 해주시고 같이 아픔을 나눠주셨는데 더 이상 어려운 경제의 발목을 잡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일반인유가족들은 진상규명을 반대하기 때문에 영결식을 진행한 것이 아니다. 진상규명은 당연히 진행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유가족 모두가 마음을 다 잡고 일상생활로 돌아가 자신의 자릴 지키고 건강을 되찾아야 한다는 입장일 뿐이다.”
-일상으로 돌아가는 입장에서 단원고 유가족들에게 전할 메시지가 있다면?
“입장이 같은 유가족이었다고는 하지만 그동안 서로 입장을 달랐다. 하지만 빨리 슬픔을 딛고 일어나셔서 고인들도 영면할 수 있도록 했으면 좋겠다. 살아계신 분들이 힘을 내고, 그래야 그런 모습 때문에 고인들이 영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주) 데일리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