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업계 사장님들 불황 타개책은...발로 뛰고 말로 튄다
고재호 대우조선해양 사장, 해외현장 돌며 수주 확대 이끌어
박대영 삼성중공업 사장 "올해부터 영업 뛸 것" 동참 선언
조선업 불황이 장기화되면서 조선업체들은 현장 근로자들부터 최고위직 임원들까지 가진 역량을 총동원해야 생존을 담보할 수 있는 시기로 내몰렸다.
회사를 이끄는 최고경영자(CEO) 역시 마찬가지다. 특히 회사에 오래 몸 담으며 많은 경험과 인맥을 쌓아온 CEO의 역량은 위기일수록 빛을 발한다. 후방 지휘관이 아닌, 선봉에서 위기 돌파를 이끄는 이른바 ‘영업 뛰는 사장님’이 절실한 시점이다.
조선업계 대표적인 영업통 CEO로는 고재호 대우조선해양 사장이 꼽힌다. 1980년 대우조선공업(현 대우조선해양)에 입사한 고 사장은 34년간 근무 기간의 대부분을 해외 영업현장과 조선소에서 보냈다.
그 과정에서 고 사장이 축적한 것은 균형 잡힌 시각과 탁월한 글로벌 비즈니스 감각,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대형 선주들과의 파트너십이다.
고 사장은 영업현장을 돌면서 까다로운 선주들의 마음을 사기 위해 세계 각국의 문화와 비즈니스 매너를 익혀왔다. 특히 오랜 기간 선주들과 어울리면서 와인에 대해서는 전문가 이상의 지식을 지니고 있다. 해외에서 선주들과의 만남이 있을 경우, 선주들의 문화적·종교적인 특성과 더불어 계절과 지역에 맞는 와인을 추천할 수 있을 정도로 높은 식견을 요구되기 때문이다.
그의 ‘영업 DNA’는 회사 수장이 된 후 더욱 빛을 발했다. 취임 이후 최근까지 유럽과 미주지역 그리고 아프리카 등 수십 개국의 해외현장을 돌며 수주 활동을 위한 선주와의 파트너십 강화에 힘써 왔다.
고 사장은 “현장인 조선소와 고객인 선주를 이어주는 가교(假橋) 역할을 하기 위해 해외 출장을 자주 간다”고 말했다.
특히 고 사장은 오일메이저와 국영에너지회사, 양질의 글로벌 선사 위주로 선택과 집중을 통한 선주 포트폴리오를 구성해 영업활동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이 같은 고 사장의 역할이 선주들에겐 성공적인 프로젝트 수행에 대한 신뢰감을, 현장에는 영업 최일선에서 능동적으로 수주를 이끌어내는 수장으로서 믿음을 주고 있다는 평가다.
고재호 대우조선해양 사장, 그리스 선박왕·앙골라 국영선사 회장과 '절친'
대표적인 사례가 앙골라 국영선사인 소난골(SONANGOL)과의 해양플랜트 계약 건이다. 앙골라 해역은 약 126억 배럴에 달하는 원유와 천연가스가 매장돼 있어 ‘심해 자원의 보고’로 여겨진다.
때문에 90년대 초반 소난골은 자국의 해양 천연자원 개발 및 운송을 위한 선박 발주를 각 조선업체들에 타진한 바 있다. 그러나 당시 대부분의 조선업체들은 내전 중인 앙골라의 불안한 정치 상황과 높은 사업 불확실성을 이유로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당시 영업부문 임원이던 고 사장은 불확실한 상황 속에서도 앙골라에 대한 면밀한 시장조사를 통해 이곳이 향후 발전가능성이 큰 곳으로 판단했고, 타 업체들과 다르게 소난골 관계자와 적극적으로 접촉하고 상호 신뢰를 쌓기 위해 노력한 결과 결국 선박을 수주하는 데 성공했다.
그 결과 소난골은 지금까지 약 136억달러 상당의 선박(15척)과 해양플랜트(16기)를 대우조선해양에 발주하며 대우조선해양이 보여준 열정에 신뢰에 화답했다. 또한 대우조선해양은 앙골라 해역에 투입된 3기의 FPSO와 8기의 고정식 플랫폼 등 다수의 해양 구조물을 건조해내며 앙골라 지역의 주요 사업 파트너로 자리매김했다.
소난골의 수장 레모스(Dr. F. De Lemos Jose Maria) 회장은 지난해 12월 대우조선해양을 방문해 수에즈막스급 유조선 2척을 발주하는 계약을 맺으며, 각별한 관계를 다시 한 번 입증하기도 했다.
대우조선해양이 올해 국내 조선소 중 처음으로 초대형 원유운반선(VLCC)을 수주한 것도 고 사장과 그리스 선주와의 파트너십이 원동력이 됐다.
고 사장과 각별한 친분을 쌓은 것으로 알려진 그리스 선박왕 존 안젤리쿠시스 회장은 자신이 이끄는 그리스 최대 해운선사 안젤리쿠시스 그룹 내 마란 탱커스 매니지먼트(Maran Tankers Management)를 통해 고 사장에게 2억 달러 상당의 계약(VLCC 2척)을 선물했다. 어려운 시장 환경 속에서 단비와 같은 수주계약이다.
고 사장과 안젤리쿠시스 그룹과의 인연은 2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안젤리쿠시스 그룹이 9만8000t급 원유운반선을 대우조선해양에 처음으로 발주한 1994년 당시 런던 지사장이었던 고 사장은 안젤리쿠시스 그룹 관계자들과 오랜 친분을 쌓아왔다.
100여척의 선박을 보유 중인 안젤리쿠시스 그룹은 1994년 첫 거래 이후, 이번 계약포함 총 75척의 선박을 대우조선해양에 발주했다. 현재 옥포조선소와 대우망갈리아조선소(DMHI)에서는 19척의 안젤리쿠시스 측 선박이 건조되고 있다.
세계 금융위기 이후 최악의 조선불황이 불어 닥친 지난해에도, 안젤리쿠시스 그룹은 총 12척의 선박(VLCC 2척, 수에즈막스 탱커 4척, LNG선 6척)을 대우조선해양과 대우망갈리아조선소에 발주하며 신뢰 관계를 더욱 공고히 했다.
선주들과 마냥 좋은 관계만 유지한다고 좋은 성과를 거둘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때론 선주의 ‘가격 후려치기’에 단호한 태도로 대응해야 수익을 보장받을 수 있다.
고 사장은 이미 시황이 어려울 때 영업통의 진가를 발휘하며 위기 돌파 능력을 보여준 바 있다. 지난 2009년 미국발 경제위기로 조선업황이 악화됐을 당시 일부 그리스 지역 선주들은 수주 협상 막판에 돌연 선가를 낮춰달라는 무리한 요구를 하기도 했다. 만약 거절할 경우, 수억 달러 상당의 계약이 취소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당시 영업을 책임지고 있던 고 사장은 단호히 대응했다. 30년간 체득한 경험을 통해 그리스 지역 선주들이 간혹 무리한 요구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소위 ‘찔러보기’식 요구에 무리하게 응하는 것보다 중심을 잡고 기준을 세워야 올바른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았던 것이다. 결국 고 사장의 뚝심에 무리한 요구를 하던 선주들도 결국 마음을 바꿔 본래 조건대로 배를 발주했다.
고 사장 취임 이후 대우조선해양은 어려운 시장 환경 속에서도 승승장구하고 있다. 첫 해인 2012년 전세계 조선·해양업계 최초로 해양플랜트 수주 100억달러를 달성했고, 2013년에는 136억달러의 신규 수주를 기록했다.
조선업계가 세계적인 경기 침체와 유가하락으로 극심한 불황에 시달렸던 지난해는 경쟁사들이 줄줄이 연간 판매목표에 크게 못 미치는 부진을 보인 가운데서도 대우조선해양은 149억달러의 수주액을 기록하며 목표를 초과 달성했다. 특히, 개별업체로는 처음으로 한 해 30척 이상의 LNG선을 수주했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박대영 삼성중공업 사장 "위기 극복 위해 올해부터 영업 뛸 것"
CEO는 회사 안팎을 두루 챙기며 전체 조직을 이끄는 막중한 임무를 부여받은 위치다. 그런 CEO가 영업 현장을 직접 챙기는 게 사실 상식적인 일은 아니다.
하지만 판매 제품의 단가가 수백억원에서 수천억원에 이르는 조선업이라면 상황은 다르다. 배 한 척, 해양플랜트 한 기 수주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인 요즘 형편엔 더욱 그렇다.
‘영업 뛰는 사장님’의 중요성은 이미 경쟁업체에서도 공감하고 있다.
박대영 삼성중공업 사장은 지난달 5일 사내방송으로 직원들에게 전달한 신년사를 통해 회사의 위기 극복을 위해 직접 적극적으로 수주에 나서겠다는 결심을 밝히기도 했다.
박 사장은 “원가비용 과다초과, 부채증가, 수주부진 등으로 회사가 생존의 갈림길에 서 있다”면서 “무엇보다 시급한 문제는 일감확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올해는 제가 밖으로 선주들을 찾아다니면서 수주에 총력을 기울일 생각”이라며 “선주를 설득하는 일이라면 노사 누구라도 동참해 주시리라 믿는다”고 말했다.
고재호 사장이 만들어 낸 ‘영업 뛰는 사장님’의 위기돌파 방식이 박대영 사장의 동참으로 조선업계의 한 트렌드가 될 수 있을지 관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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