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연의 우리 터 우리 혼>충북 괴산 은티마을 정월대보름 은티마을 동제
조선국 충북 한가운데 연풍현, 토지지신이 마을을 묵묵히 돕고 모든 사람을 화목하게 하옵소서. 새해 공손히 제사를 올리니 길하고 복을 내려 주시옵소서. 사나운 짐승은 자취를 감추고 악한병도 없어지게 하옵소서. 집집이 가세가 일어나고 인구도 번창 하게 하시고. 오곡이 풍성하고 가축의 번성도 바라며 삼가 생폐를 써서 공덕을 기원하오니 흠향하소서......
지난 5일 정월대보름 오전, 충북 괴산군 연풍면 은티마을 정순화 이장이 축문소리가 산촌의 곡풍이 희양산 자락을 휘돌아 은티 마을을 덮친다. 30여명의 촌로들과 장년들이 이른 봄 골바람에도 아랑곳없이 마을초입 노송아래 자리 잡은 남근석에 몰려있다. 다산과 풍요, 풍농을 기원하는 산간오지마을의 동제 날이다.
정초에 동제를 시작으로 한해의 소원성취를 바라는 산촌 마을사람들의 공동체 생활문화는 요즘 흔치않지만 지금도 각 지역에서 가끔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은티마을의 동제는 어림잡아 4백년이라 한다. 이곳 동제는 다른 지역의 동제와는 색다르다. 제주는 부정 없는 사람 4명을 엄선해 10일간 음주와 흡연을 금하고, 제 당일에는 냉수로 목욕하고 깨끗한 몸과 마음으로 제사에 임해야 한다.
그리고 이른 아침 마을 뒤쪽 오봉정고개와 지름티고재, 국사봉에 위치한 산신당에서 먼저 제를 올리고 내려온다. 국사봉 산신당에는 철로 만든 말 모양의 산신을 모셔 놓았으나 20년 전에 도난당했다. 이 산신은 은티마을 수호신의 상징이었다.
은티마을은 여자의 음부형태처럼 생긴 산이 마을을 감싸고 있는데, 이를 여근곡 또는 여궁혈(女宮穴)이라 부른다. 이 여궁혈 끝자락에는 마을 남정네들이 혹시 모를 부녀자들의 바람기를 꺾기위해 옛 부터 남근석을 세워놓았다. 그래야만 마을에 사람이 번성하고 풍요를 얻을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다행히 지금까지 남근의 효험으로 가정과 마을은 평온이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은티마을 앞에는 희양산에서 흐르는 개천이 있으며 개천을 따라 소나무가 군락을 이뤘다. 마을입구에는 장승과 마을 유래비도 있다. 조금 더 올라가면 400년이나 된 노송과 전나무 수십 그루가 하늘을 찌를 듯이 서 있다. 전나무 아래는 다듬지 않은 자연석들이 포개져 있는데, 그 가운데 남근석을 세웠다. 그리고 금줄을 쳐 신성시 했다. 1970년대 초까지만 해도 남근 옆에는 성황당도 있었으나. 도로를 확장하면서 헐어버렸다고 한다.
연풍에서 문경새재 방향 이화령고개는 백두대간의 줄기다. 은티마을은 희양산 악휘봉과 장성봉 등반을 위해선 필히 거쳐야 하는 마을이다. 크고 작은 봉우리가 병풍을 이룬 그 분지에 은티마을이 자리 잡았다. 이곳에 마을이 들어선 것은 조선 초로 알려져 있지만 인근에서 사람의 뼈나, 치아, 엽전 등이 발견된 것을 볼 때 그 이전에도 사람들이 살았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마을이장은 “백두대간인 희양산에 등산객들이 늘면서 순박하던 마을에 쓰레기기가 쌓여가고 있으며, 산골에 인적이 잦아지면서 인심도 각박해진다”며 안타까워했다.
〔데일리안 = 최진연 문화유적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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