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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받는 천안함 용사 "취직 못할까봐 정신병원도 못간다"


입력 2015.03.26 11:22 수정 2015.03.26 11:27        하윤아 기자

"전사를 순직이라니..." 음모론 악플에 또 다른 트라우마

"힘내라는 말한마디 큰 힘 된다" 따듯한 관심 격려 절실

천안함 폭침 5주기를 하루 앞둔 25일 청년이여는미래와 북한인권학생연대, 남북동행 등 청년단체들이 서울역 광장에서 개최한 ‘Remember 3.26 천안함 46용사’기자회견에서 전준영(오른쪽 세번째), 함은혁(오른쪽 네번째)천안함 생존장병이 참석하고 있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천안함 생존자라는 사실은 전혀 숨길 이유가 없죠. 저는 이력서에도 씁니다.”

천안함 폭침 사건 당시 해상병 542기 동기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생존 장병 전준영 씨. 천암함 사건 5주기를 하루 앞둔 24일 서울역 부근에서 만난 그는 밝게 웃고 있었다.

5년 전 생긴 마음의 상처는 아직 채 아물지 않았지만, 그는 어엿한 가장으로서 그리고 훌륭한 직장인으로서 꿋꿋하게 살아가고 있는 모습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전 씨가 건네 준 명함에는 ‘천안함 생존자’라는 빨간색 글씨가 선명하게 적혀 있었다.

그날의 끔찍한 기억을 드러내는 것임에도 그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천안함 생존자라는 사실을 밝힘으로써 얻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말할 정도였다.

현재 한 자동차회사의 영업직 사원으로 근무하고 있는 그는 “명함을 보면 처음에는 ‘아...’라는 반응이 나온다. 그런데 난 사람들과 이야기하기도 쉽고, 먼저 와서 챙겨주는 분들도 있어서 장점도 있다고 생각한다”고 의연하게 말했다.

그는 직장 내에서도, 새로운 사람을 만나서도 천안함 생존자라는 사실을 숨기지 않는다. 분명 아픈 기억이지만 숨길 이유는 전혀 없다는 것이다. 전 씨는 “물어보면 내가 아는 범위 내에서 다 말씀을 드린다. 내가 느꼈던 상황이나 들었던 이야기는 모두 정확히 말씀을 드린다”고 했다.

자신의 이름 옆에 ‘천안함 생존자’라고 새겨 넣게 된 계기에 대해서는 “보상을 받지 못했다는 심리 때문인지 역으로 이것이 내가 살아가는 데 도움이 돼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돌파구’ 돼 준 결혼…“정말 힘들었던 때 아내는 내 옆을 지켜줬다”

천안함 사건이 발생한 2010년 3월 26일 전역을 한 달 앞둔 말년 병장이었던 그는 전우를 잃은 슬픔을 뒤로하고 생존 장병 중 가장 먼저 전역증을 받았다.

모든 것이 혼란한 상태에서 전역의 기쁨조차 제대로 느끼지 못했던 그는 전역 후 방황의 날들을 보냈다. 처음으로 부모님께 반항을 하기도 했고, 부모님이 마련해준 대학 등록금으로 하루하루 날이 새도록 술을 마시며 힘겹게 보내기도 했다.

그런 그를 잡아준 것은 다름 아닌 아내였다. 전 씨의 아내는 천안함 사건 직후 기자회견을 하는 그의 모습을 보고 미니홈피를 통해 위로의 메시지를 남기는 등 연락을 해 왔고, 이후 우연한 기회에 만나게 되면서 이듬해 결혼식을 올렸다. 견딜 수 없을 만큼 힘든 사건이 역설적이게도 인생의 동반자를 만나게 해준 연결고리가 된 셈이다.

전 씨는 “그 때는 진짜 힘들었다. 죽는 상상을 많이 했다. ‘내가 자살하면 살아있는 사람들이 보상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사회에서 우리를 관심 있게 봐주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많이 했다. 지금 아내도 그런 저 때문에 많이 힘들었는데 계속 옆에 있어줬다”며 아내에 대한 고마움을 표했다.

그는 아내와의 결혼이 고통스럽고 힘든 상황을 벗어날 수 있는 ‘돌파구’와 같았다고 말했다. 그렇기에 그는 24살의 이른 나이에도 당시 지금의 아내와 무조건 결혼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양가의 반대에도 결국 두 사람은 결혼에 성공, 이듬해 예쁜 첫 자녀를 얻었다. 그리고 지금 그는 사랑스러운 두 아이의 아버지이자 누군가의 남편으로 한 가정의 든든한 버팀목이 돼주고 있다.

때만 되면 도지는 음모론·악성 댓글 “화도 나지만 이제는 내성 생겼어요”

5년이 지난 지금에도 천안함 생존 장병들을 차가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회의 눈초리는 여전하다. 특히 천안함 주기가 돌아오는 매년 3월이면 온라인을 중심으로 천안함 사건을 둘러싼 온갖 음모론과 네티즌들의 악성댓글이 난무한다.

전 씨는 생존 장병들을 향한 네티즌들의 이유 없는 비방글이나 천안함 사건에 대한 어이없는 음모론을 접할 때마다 직접 댓글을 다는 등 적극적으로 의견을 표출하고 있다.

실제 그는 “댓글에 ‘저는 생존자입니다 궁금한 것이 있으면 전화주세요’ 하고 전화번호를 남긴 적도 있다”며 “보면서 화가 나니까 나도 같이 댓글을 남긴다. 아내도 보고 남기기도 한다”며 아무렇지 않은 듯 웃어 보였다.

그러면서 그는 “며칠 전에도 한 매체에서 ‘순직한 전우’라고 했는데 열이 받더라. 이게 어떻게 순직이냐. 전사지. 우린 그런 것 하나에도 예민하다. 이제 앞으로 생존자도 참전용사로 해줬으면 좋겠다”고 작은 바람을 드러냈다.

또한 그는 최근 5주기를 계기로 일부 생존 병사들이 용기를 내 언론 인터뷰에서 자신들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지만, 여전히 이를 달갑지 않게 보는 네티즌들 때문에 상처받는 일도 적지 않게 발생하고 있다고 전했다.

전 씨는 “큰 맘 먹고 (인터뷰)한 애들이 술 먹고 전화가 오더라. (인터뷰를) 하는 게 맞는 건지 잘못된 건지 모르겠다고. 댓글에 상처를 받은 것이다. 그런데 나는 하면 내성이 생기니까 잘 이겨내라고 했다. 나 말고 다른 애들도 밖에 나오기가 쉽지는 않다”고 안타까워했다.

여전히 트라우마 시달리는 생존 용사들 “힘내라는 말 한마디 큰 힘”

전 씨의 전언처럼 실제 많은 생존 장병들은 여전히 극심한 트라우마로 생활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날 전 씨와 함께 만난 함은혁 생존 장병(27)은 “3월달이 되면 특히 힘들다”고 고통을 호소했다. 함 씨는 “동기들도 죽고, 같이 생활하던 병사들도 죽고, 친하게 지냈던 사람들도 한 순간에 가버리니까 허한 마음에 그냥 눈물이 난다. 생각하면 마음도 아프고...”라면서 눈가에 고인 눈물을 닦아냈다.

생존 장병들은 천안함 사건 이후 생긴 트라우마를 치료하기 위해 각자 나름의 노력을 하고 있지만, 마음 편히 정신과 치료를 받을 수도 없는 힘든 상황에 놓여 있다.

함 씨는 “트라우마 때문에 아직도 승강기를 혼자 타지 못하고 불을 켜고 자거나 음악이나 텔레비전을 일부러 크게 틀어놓기도 한다”며 “내 경우는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하는데 취직할 때 진료 기록이 남으니 정신과 치료를 하고 싶어도 사실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그는 한동안 대인기피증으로 사회생활에 어려움을 겪었고, 참을 수 없는 괴로움과 고통에 삶을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마저 들어 최근까지 여러 차례 자살기도를 하기도 했다고 전한다. 특히 ‘왜 살아 돌아 왔느냐’, ‘너희는 패잔병이다’라는 등의 악의적인 댓글을 보게되면서 그 괴로움이 더욱 심해졌다고 털어 놨다.

그러면서 그는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도 맞아 죽는다’는 속담을 거론했다. 이어 함 씨는 “지금 우리(생존 장병)들이 그렇다. 지금 우리에게는 격려의 말이 가장 필요하다. ‘힘내세요’라는 말이 정말 큰 힘이 된다”며 국민들의 따뜻한 관심과 위로가 가장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하윤아 기자 (yuna1112@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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