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나갔던 파르마 파산, K리그는 안전한가
세리에A 파르마 결국 파산 지경 이르러
K리그 시도민구단 잠재적 뇌관 돌아봐야
이탈리아 세리에A 파르마가 결국 파산 상태에 이르렀다.
파르마는 지난 22일(한국시각) 구단 홈페이지를 통해 “본격적인 파산 절차에 들어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최근까지만 해도 '박찬호 동료'로 익숙한 전 ‘MLB 스타’ 마이크 피아자가 파르마를 인수할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끝내 협상이 결렬되며 파르마는 아마추어 최상위리그인 세리에D로 강등될 전망이다. 지난 시즌 재정난에 허덕이던 파르마는 이미 지난 4월 세리에B(2부리그)로 강등돼 성적도 곤두박질쳤다.
파르마의 최근 입찰가는 꾸준히 떨어지는 추세였다. 하지만 구단 인수와 동시에 갚아야 하는 약 7400만 유로(약 919억6600만원)의 부채가 투자자들의 마음을 돌려세운 것으로 보인다. 구단을 인수해 운영해야 하는데 빚부터 갚아야 하는 상황을 달가워할 투자자는 없었다.
사실 파르마는 지난해부터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선수단 임금 체납이 도마에 올랐으며 심지어 안전요원에게 줘야 할 월급도 제때 챙겨주지 못해 조롱거리가 됐다. UEFA 유로파리그 진출권을 따내고도 세금을 내지 못해 출전 거부당했으며 고액연봉자들을 돈 때문에 내보내야 했다.
이 과정에서 잠피에트로 마넨티 구단주는 돈세탁 혐의로 체포되기도 했다. 심지어 이탈리아 자국 언론 보도에 따르면 유니폼 세탁을 해주는 구단의 지원도 끊겨 경기 후 선수들은 직접 입은 유니폼을 집에 가서 세탁해야 했다.
1990년대 리그 중상위권 팀으로 분류되며 잔루이지 부폰, 파비오 칸나바로, 릴리앙 튀랑, 에르난 크레스포, 세바스티안 베론, 안토니오 카사노 등 이탈리아와 전 세계 국가대표급 선수들이 뛰었던 팀이 이제는 '프로'라는 타이틀을 반납한 채 공중분해 될 처지다.
인수자를 찾고 빚을 갚은 뒤 투자를 해 성적을 거둬야 세리에A에서 볼 수 있을 전망이다.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한 절차다.
일련의 과정을 되새기면 국내 K리그의 위험요소도 보인다. 익히 알려졌듯 K리그 시민구단의 현실은 녹록지 않다.
굳이 먼 과거까지 볼 필요도 없다.
지난해만 하더라도 FC안양, 인천유나이티드, 경남FC 등이 선수들과 구단 직원들 임금체납을 비롯한 수억원에 달하는 적자에 허덕였다. 사실상 일반 기업이면 일찌감치 파산에 이르렀을 상황이다. 하지만 이들은 축구단이라는 특수성을 고려해 꾸역꾸역 운영을 해나가고 있다.
몇몇 단장은 사실상 임금을 받지 않는 무일푼 업무를 하고 있으며 급한 구단은 일단 직원 급여는 뒤로하고 선수들 수당부터 챙겨주는 등 응급처치를 했다. 그러나 모두 정상적인 구단 운영과는 한참 먼 언 발에 오줌 누기다.
원인은 너도나도 철학 없이 시도민구단 창단 붐을 일으킨 데 있다. 1997년 대전시티즌이 첫 시도민구단으로 탄생하면서 큰 관심이 쏠렸다. 기업 논리에 휘둘리지 않는 구단이 생길 수 있다는 기대가 싹텄다.
2002한일월드컵 4강 열풍이 일어나면서 각 지자체에서 너도나도 시도민구단 창단에 합류했다. 현실적으로 국내 축구 환경에서 시도민구단이 자생력을 갖출 수 있을지 고민하고 토론하기보다는 지역 정치인들의 '업적 쌓기'로 축구단 창단이 이용됐다.
시간이 흘러 그런 거품이 빠지자 사실상 지역 기업의 후원으로 운영되던 시도민구단은 만성적 재정난에 허덕이는 길로 빠졌다.
살림이 어려운 시도민구단들은 선수 팔기를 하나의 생존 전략으로 삼기 시작했다. 잠재력 있는 선수가 시도민구단에 입단하면 언젠간 크게 성장해 구단에 돈을 안기고 떠날 것이란 것을 팬들도 암묵적으로 예견하게 됐다.
매년 좋은 선수 영입은커녕 오히려 주축 선수를 내줄 수밖에 없는 시도민구단의 현실은 성적 부진의 굴레로 이어졌다. 그 결과는 잦은 감독 경질과 운영진 교체라는 악수로 반복됐다. 이는 구단이 돈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을 넘어 K리그 전체의 질적 하락까지 가져오는 씁쓸함으로 번졌다.
앞으로도 상황이 더 좋아질 것이란 보장은 없다. 뭔가 획기적인 방안이 나와야 한다. 빚도 갚고 정상적인 구단 운영 자금까지 확보하겠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게 사실이다.
이제 K리그는 시도민구단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필요하다. 임금체납이나 적자 폭을 놓고 프로축구연맹의 징계나 경고 같은 사후 처치만으로는 잠재된 뇌관이 언제든 폭발할 수 있다. 냉정하게 현실을 직시해 근본적인 해결책이나 예방책을 찾아야 한다.
소위 한때 잘나갔던 파르마의 파산 과정을 보면 K리그도 결코 안전지대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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