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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 75%가 대한민국의 생일을 모른다고?


입력 2015.07.18 10:19 수정 2015.07.18 10:28        데스크 (desk@dailian.co.kr)

<굿소사이어티 칼럼>광복절을 건국을 기념하는 날로 환원해야

‘광복(光復)’에 대한 사전적 의미는 ‘잃었던 나라를 되찾음’이다. 때문에 ‘광복’에서 파생된 ‘광복절’의 사전적 의미는 당연히 ‘잃었던 나라를 되찾은 것을 기념하는 날’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국어사전에 게재되어 있는 ‘광복절’에 대한 정의는 “우리나라의 광복을 기념하기 위하여 제정한 국경일. 1945년, 우리나라가 일본 제국주의자들에게 빼앗겼던 나라의 주권을 다시 찾은 날, 8월 15일”이라고 정의해 놓았다.

우리나라에서 간행된 각종 백과사전의 형편도 국어사전과 그다지 다르지 않다. 우리 국민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네이버는 국어사전 내용을 그대로 옮겨 놓았고, 다음카카오는 “우리나라가 일본으로부터 해방되어 나라와 주권을 다시 찾은 날을 기념하는 국경일로 날짜는 8월 15일”로 정의되어 있다.

위키백과는 “1945년 8월 15일로 일제 강점기에 놓였던 한국이 독립을 성취하게 된 사건을 기념하는 날”이라는 설명과 함께 “일부에서는 1948년의 같은 날짜에 이루어진 대한민국 건국을 함께 기념하는 날로 여기기도 한다”고 정의해 1948년 건국을 기념하는 자체를 부수적인 사안(斜眼)으로 취급했다.

‘광복’과 ‘광복절’의 의미

“1945년 우리나라가 일본으로부터 광복된 것을 기념하고, 1948년 대한민국 정부수립을 경축하는 날”로 정의해 놓은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간행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우리나라 4대 국경일의 하나. 1945년 8월 15일에 일본의 식민지 지배에서 벗어나 자유를 되찾은 날을 기념하고, 아울러 1948년 8월 15일의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경축하는 날이다. 1949년에 국경일로 제정”되었다고 정의해 놓은 천재학습백과는 그나마 나은 편이다. 이렇게 국어사전을 비롯해 우리나라에서 간행된 모든 사전에 ‘광복절’은 1945년 해방을 기념하는 날로 정의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두 개의 사실 관계의 다름에 직면하게 된다. 하나는 ‘광복’이라는 단어가 “잃었던 나라를 되찾음”이라면 지금의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해방 이전부터 이미 존재하고 있었는가? 다른 하나는 우리의 주권은 1945년 8월 15일에 회복되었는가? 라는 점이다.

그 동안 우리는 1945년 해방을 언급하면서 관용적으로 ‘잃었던 나라를 되찾았다’라고 사용해왔다. 그것은 역사적 사실로나 국제법적으로 볼 때 또 다른 역사왜곡이다. 먼저 우리 민족이 주권(主權)을 도로 찾은 날이 언제인가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필요하다. 1945년 시점에 우리의 주권이 회복되지도, 잃었던 나라를 되찾지도 못했으며, 1945년 8월 15일 한반도에 주권국가가 존재하지 않았음은 명백하다. 단지 일제 식민지 주민의 처지에서 해방된 주민만 있을 뿐이었다. 일본의 패전과 더불어 한반도는 승전국인 소련과 미국의 분할 통치에 들어갔다. 우리 민족에 대한 통치권이 일본에서 미군정과 소련 군정으로 옮겨간 것뿐이었다.

그로부터 3년 후인 1948년 5월 10일 총선거(總選擧)를 통해 국회(國會)를 구성하여 헌법(憲法)을 제정하고, 그 헌법에 의해 조직된 정부(政府)가 1948년 8월 15일에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선포함으로써 진정한 광복을 성취한 것이다.

이로써 사전적 의미로나 역사적 사실로 볼 때 ‘광복절’은 1945년 해방을 기념하는 날이 아니라 1948년 건국을 의미하는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우리의 기억 속에 광복과 해방을 동일시하는 착시현상이 나타났다. 그에 따라 건국을 기념하자는 주장은 친일파로 매도되기 십상이었다.

우리나라는 애초부터 건국을 기념하는 국경일이 없었는가?

1949년 제정된 ‘독립기념일’

1949년 이승만 대통령은 ‘독립기념일’을 1948년 건국을 기념하는 국경일로 제정해 줄 것을 국회에 요청하였다. 그러나 국회가 법안을 심의하는 과정에서 ‘광복절’로 명칭을 변경했다. 이승만 대통령은 국경일이 지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외교상 어려움이 있으므로 조속히 국경일을 제정하도록 훈시했다.

1949년 4월 12일 개최된 제40회 국무회의 회의록에는 대통령의 시정일반에 관한 훈시의 건에 대한 보고사항으로 “국가공휴일, 국경일 미정으로 외교관계에도 곤란이 불무(不無)하니 시급 제정하라는 훈시에 대하여 총무차장은 기(旣)히 기안 재결 중임을 보고하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에 1949년 5월 24일 제52회 국무회의에서 ‘국경일에관한법률안’이 최종적으로 확정되었고, 이 법률안은 6월 2일 국회로 회부되었다. 국회회의록에 기록된 정부원안(政府原案)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제1조 국가의 경사로운 날을 기념하기 위하여 국경일을 정한다
제2조 국경일은 좌(左)와 같다.
삼일절 3월 1일
헌법공포기념일 7월 17일
독립기념일 8월 15일
개천절 10월 3일
제3조 국경일에는 각관공서 학교 단체는 그날에 적합한 식을 거행하여야 한다.
제4조 본법 시행에 필요한 사항은 대통령령으로 정한다.

부 칙
본 법은 공포한 날로부터 시행한다.

정부는 1948년 건국을 기념하는 국경일을 제정하고자 했다. 따라서 정부원안은 ‘광복절’이라는 추상적인 명칭보다 우리의 독립을 명확하게 적시할 수 있는 ‘독립기념일’이라는 명칭을 사용한 것이다.


국회에서 ‘광복절’로 명칭이 변경된 ‘독립기념일’

1949년 9월 21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국경일에 관한 법률 정부원안 가운데 ‘헌법공포기념일(憲法公布記念日)’을 ‘제헌절’, ‘독립기념일(獨立記念日)’은 ‘광복절’로 변경한 수정안을 본회의에 상정했다. 그리고 백관수 법사위 위원장은 수정안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이것은 원안입니다. 즉 말하면 정부로부터 제출한 원안입니다. 거기에 대해서 법제사법위원회에서는 신중히 토의한 결과 이 하단(下段)과 같이 수정을 했습니다.

다시 개략(槪略)해 말씀하면 수정안대로 말씀한다고 할 것 같으면 법문의 1조 2조 3조 4조 그것을 나열할 필요가 없이 다만 제1항으로 ‘국경일은 좌와 같다’ 그리고 ‘삼일절’은 ‘삼일절’ 그대로 두고 ‘헌법공포기념일(憲法公布記念日)’이라고 하는 것은 헌법을 제정한 ‘제헌절’로 하자. 또 ‘독립기념일(獨立記念日)’에 대해서는 ‘광복절’이라고 명칭을 하자. 그리고 ‘개천절’에 대해서는 일자를 음력과 양력의 상위(相違)가 있으니 그것은 우리가 이 본회의에서 양력 10월 3일로 하든지 음력 10월 3일로 하든지 그것은 이 자리에서 결정하는 것이 좋다 그러한 의미로 수정한 것입니다.


법사위는 속개된 제2의회에서 변경된 수정안과 정부원안을 놓고 표결에 붙였다. 그 결과 ‘광복절’은 재석원 108명에 가 81표, 부 4표로 법사위 수정안이 가결되었다.

이렇게 제5회 임시국회에서 확정된 법률안은 정부로 이송되어 1949년 9월 30일 국무회의의 의결을 거쳐 법률 제53호로 10월 1일 공포됨과 동시에 시행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제2의회 회의록에 따르면 법사위가 논의 과정에서 정부원안의 ‘독립기념일’을 ‘광복절’로 변경했지만, 건국을 기념하는 것이 옳지 않다거나 건국을 기념하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라 국경일 명칭의 자구 통일에 집착했음을 알 수 있다.

1948년 중앙청 광장에서 열린 대한민국 정부수립 경축식.ⓒ국가기록원

그러나 ‘광복절’은 어느덧 일제로부터 해방(解放)된 날을 기념하는 의미로 굳어졌다. 오늘날 ‘광복절’을 둘러싼 갈등과 ‘건국’을 기념하자는 소모적인 논쟁을 보며 ‘독립기념일(獨立記念日)’이라는 정부원안이 채택되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더욱 크게 느껴진다.

이인호 KBS 이사장은 1948년 대한민국의 건국은 영국혁명, 프랑스혁명과 같은 근대적인 시민혁명의 하나로, 한국근대사에서 유일하게 혁명이라고 부를 수 있는 획기적인 사건이라고 보았다. 국제적 환경으로 영토가 미군과 소련에 의해 분할점령 당하는 시련을 겪으며 일종의 신탁통치였던 미군정체제까지도 극복하고 남한만이라도 영토와 국민을 가진 주권국가로 독립하여 우리의 운명에 대한 주도권을 다시 찾은 것은 혁명적이라고 하기에 충분한 의미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런가 하면 이영훈 교수도 대한민국의 건국은 우리 민족에게 전대미문의 혁명적 사건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왜 대한민국의 건국은 혁명적 사건이며, 전대미문의 사건에 비견되는가. 여기에 대해 박효종 교수는 대한민국의 건국은 단순히 새로운 독립국가의 출현을 넘어 특별한 가치와 속성을 담고 있는 공동체 수립의 쾌거라며, 그것은 한국인들이 지금까지 한반도에서 경험해보지 못했던 정치 사회 경제 문화적 삶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의미가 크기 때문이라고 했다.

우리 민족은 오천 년 역사 이래 겪어보지 못했던 방법 즉, 국민적 합의에 의해 새로운 체제의 나라를 세웠다. 대한민국 건국은 국민이 국가의 주인이 되는 자유민주공화국으로 우리 삶의 질을 획기적으로 바꿔 놓는 역사적 사건이었다.

그러나 국민의 75%가 대한민국 건국일을 모른다는 안타까운 통계가 말해주듯 우리 국민은 대한민국 건국이 갖는 의미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이것이 세계 10위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이러한 현상의 원인은 일차적으로 정부에 있다. 정부가 건국일을 기념하지 않는 것은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확고히 하지 않는 일이다. 대한민국의 정통성이 확립되지 않으니 정체성도 크게 훼손되고 국론은 분열되어 갈등으로 치닫고 있다. 이러한 상태로는 우리에게 주어진 자유통일의 사명을 완수할 수 없음은 물론이다.

박효종 교수는 “영혼으로 존재하는 국가공동체의 존재와 역사는 국민들에게 자존감과 정체성, 및 정신적 뿌리를 제공한다. 국민으로서의 한 개인은 국가의 영혼에서 도덕적 정체성을 추구하고 자신의 존재의미를 확인한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대한민국의 건국을 이념과잉의 덧칠 없이 엄숙하게 기념해야 할 이유”라고 주장했다.

국가 정체성은 개개인이 국가공동체의 일원이라는 소속감과 모든 국민을 결속시키는 유대감이다. 국가 정체성이 형성된 개인은 국가에 대한 긍지와 애국심으로 표출한다. 막스 베버는 “어떠한 정부라도 자기 국민들에게 자기나라를 사랑하고 자기나라에 귀속감을 갖도록 가르칠 능력이 없으면 오래 갈 수 없다”고 말했다. 정부가 건국을 기념하여 대한민국 정통성을 확고히 하고 국가 정체성을 확립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정부의전편람’으로 본 광복절에 대한 정부의 인식

1984년 우리나라 정부 최초의 통일된 의전 안을 수록한 ‘정부의전편람’이 발간됐다. 그때까지 국경일 경축행사나 국가공식행사와 외교행사 시 사용할 통일된 의전(儀典) 기준안은 마련되어 있지 않았고, 각 부처나 기관의 성격에 맞게 개별적으로 기준안을 마련하여 사용했다. 그 후 총 4차에 걸쳐 ‘정부의전편람’이 발간되었고, 각 정권에 따라 ‘광복절’에 대한 정부의 인식이 점차 바뀐 것을 알 수 있다.

먼저 ‘정부의전편람’에 드러난 ‘광복절’에 대한 정부의 인식을 살펴보자.

1894년 전두환 정부가 최초로 발간한 편람은 “국권을 회복한 국가최대의 경사로운 날이므로 이를 경축하고, 광복선열의 독립정신을 본받기 위하여 경축행사를 거행한다”고 정의했다. 1984년 편람은 비교적 ‘광복절’의 제정 목적에 맞게 그 의미를 담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 건국(建國)’이라고 명확하게 기술하지 않고 ‘국권회복’이라는 추상적인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후대 정권이 자신들의 의도대로 왜곡시킬 수 있는 빌미를 제공했다. 그것은 장차 국권회복의 시기를 언제로 보느냐 하는 문제를 불러왔다.

노태우 정부와 김영삼 정부에서 발간한 1990년과 1994년도 편람은 “국권의 회복과 자주독립국가의 건립을 경축하고 우리 민족의 독립정신을 민족자존과 통일번영의 새시대를 창조하는 위대한 국민정신으로 승화·발전시키기 위하여 거행한다”라고 하여 동일한 의미의 단어를 나열한 흠은 있으나, 그런대로 건국을 기념하는 날이라는 의미는 담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건국’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추상적 의미 전달로 그친 점은 1894년 편람과 마찬가지였다.

그것은 국권회복과 자주독립국가의 건립을 별개(別個)의 사건으로 인식하도록 유도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가져왔다. 그 결과 국권회복은 해방으로, 1948년의 건국은 자주독립국가의 건립과 동일시하는 현상이 나타남으로써 ‘광복절’ 제정목적이 더욱 왜곡(歪曲)되는 계기가 되었다.

노태우 정부에서 발간된 편람의 특징은 광복회 회장의 기념사 순서가 식순에 포함되었다는 것이다. 김영삼 정부에서 발간된 편람은 한발 더 나아가 “사회자의 안내에 따라 광복회장께서 기념사를 하는 것이 관례화되어 있다”라는 내용이 명문화 되었다. 이는 ‘광복절’이 대한민국 건국을 기념하기 위한 국경일이 아님이 공식화 되는 순간이었다.

김대중 정부 시절인 1999년에 발간된 편람은 “잃었던 국권회복과 대한민국정부수립을 경축하고 독립정신의 계승을 통한 국가발전을 다짐”하는 것으로 바뀌었고, 이명박 정부도 전 정권의 편람 내용을 그대로 원용하고 있다. 비록 몇 개의 단어 나열에 불과한 짧은 문장이지만, 대한민국 건국 정통성을 약화시키는 요인이 되었다. 전(前) 정권이 인식의 오류를 유도하던 것과는 달리, 김대중 정부에서 개편 발간한 1999년판은 ‘대한민국정부수립’이라고 명기함으로써 우리 민족의 혁명적 사건이었던 대한민국 건립(建立)의 위상을 한층 격하(格下)시킨 것이다.

대한민국이 자주독립국가로 건립(建立)된 것을 축하하기 위한 목적으로 제정된 ‘광복절’이 제정 의도(意圖)와는 달리 1945년 해방(解放) 기념일로 굳어졌고, 국가의 건립은 정부수립으로 격하(格下)되면서 건국을 축하한다는 의미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그러나 김영삼 정부가 발간한 편람부터는 국경일을 정하는 기준을 제시하는 ‘국경일 개요’가 추가되었기 때문에 ‘광복절’ 제정 의미가 잘 드러나 있다.

‘국경일 개요’에 “우리나라는 1949. 10. 1 제정 공포된 ‘국경일에관한법률’(법률 제53호)에서 개국 건국 등 국기(國基)와 관련된 날인 3.1절, 제헌절(7.17), 광복절(8.15), 개천절(10.3)을 국경일로 정하고, 이 날을 공휴일로 하고 있다.…다른 나라에서도 대체로 국가 성립에 관계되는 날, 국왕 탄생일 등을 그 나라의 국경일로 정하고 있는데, 예를 들면 ‘미국의 독립기념일(7.4)’, ‘이스라엘의 독립기념일(5.9)’, ‘중국의 정부수립일(10.1)’, 프랑스의 혁명기념일(7.14) 등이 그 대표적인 국경일이다”라고 규정해 놓았다. “개국 건국과 관련된 날”을 국경일로 정했다고 규정하고 외국의 사례를 제시함으로써 ‘광복절’의 의미가 건국과 관련 있음이 보다 명확해진 것이다.

‘해방’과 ‘건국’은 유기적 사건이다

해방은 우리 근현대사에서 가장 획기적인 전환점의 하나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1945년 8월의 해방은 우리의 힘으로 성취하지 못하고 연합국의 승리로 주어졌다. 그 결과 한반도는 전승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분할 점령되는 시련을 겪었으며, 오늘날까지도 분단국으로 남아있게 되었다.

1945년 8월의 해방으로 새나라 건설의 기회는 마련됐으나 1948년 대한민국이 건국되기까지 과정은 몹시 어려운 상황에서 전개되었다. 국내외적으로 우리 운명에 대한 주도권을 우리 스스로 행사할 수 있는 새 나라를 건설하기에 매우 어려운 환경이었다. 미국의 친공적 정책과 내부에서 준동하는 남로당의 거센 공세와 반대를 극복하고 오늘의 자유와 번영의 기적이 가능했던 것은 대한민국 건국에서 비롯된다. 해방은 우리 힘으로 성취하지 못했지만, 대한민국은 국민적 합의에 의해 자유민주 정체를 수용해 우리의 손으로 건국했다. 그러므로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대한민국 건국에 대해 무한한 긍지를 갖고 기념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성신여대 김용직 교수는 “광복은 우리에게 자유를 주었지만, 우리가 만약 근대적 독립국가를 수립하지 못했다면 그 자유는 온전한 것이 될 수 없었습니다. 광복 이후 3년간의 해방공간에서 우리는 이념 갈등과 대립과 혼란을 겪었지만, 마침내 근대적 자유 민주주의 국가를 성립했습니다. 그리고 비록 국토가 분단되어 진정한 의미의 통일된 국민국가를 이루지는 못했지만, 전 세계가 인정하고 심지어 전범으로 삼는 국제사회의 일원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매년 8월 15일이면 광복과 건국을 함께 기념해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라며 “광복은 건국을 포함하여 통합적으로 인식해야만 그 한계적 의미나 현실적 과제를 제대로 인식할 수 있다고 봅니다. 광복과 건국을 함께 기념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라고 했다. 여전히 1948년 해방과 광복을 동일시하는 오류가 있지만, 김용직 교수는 해방과 건국을 별개의 사건이 아닌 유기적 사건으로 인식했다.

건국을 어떻게 기념할 것인가

2008년 정갑윤 의원을 비롯한 7명의 한나라당 소속 국회의원은 ‘국경일에관한법률’ 일부개정안을 제출했다. 개정안 내용은 제2조 3항의 ‘광복절’을 ‘건국절’로 변경하는 것이었으나 논란 끝에 같은 해 9월 12일 개정안을 철회했다.

2014년 새누리당 소속 윤상현 의원도 ‘광복절 및 건국절’로 개정하는 내용의 ‘국경일에관한법률’ 일부개정안을 제출했으나 광복회의 반대에 직면해 있다. 국가적 차원에서 건국을 기념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기 위한 조치는 환영한다. 그러나 두 번에 걸친 법률안 개정 시도는 1948년 건국을 부정하는 세력의 거센 저항과 반대에 부딪쳤다. 이는 건국절 제정을 추진하는 측이나 1948년 건국을 부정하고 ‘광복절’은 1945년 해방을 기념하는 국경일이라고 주장하는 측 모두의 무지에서 비롯된 예견된 반대였다.

지금까지 정부를 비롯하여 관련 학자들은 ‘광복절’ 제정 취지가 건국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모르거나, 알아도 언급을 회피했다. ‘광복절’이 일제의 압제로부터 해방된 것을 기념하는 국경일이라는 주장은 법 제정목적과 취지에 반하는 주장이다.

새로운 법을 제정할 때에는 그 법을 제정하는 목적과 배경, 제정 취지가 필요하다. ‘국경일에관한법률’ 제정 동기는 건국 초기에 국경일이 미쳐 지정되지 않아 발생하는 외교적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것이며, 제정 목적은 전 국민이 국가의 경사로운 날을 기념하게 하는 것이다. 제정 과정에서 국경일의 명칭이 일부 변경되었지만, 제정 목적과 제정 동기는 변함없었다.

오늘날 지구상에 있는 나라는 각국의 형편에 따라 어떤 형태로든지 건국한 날이나 독립한 날을 전 국민적 축제로 삼아 기념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현실은 건국을 기념하자는 운동이 오히려 헌법에 위반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는 터에 선택의 폭은 매우 제한적일 수밖에 없으나 두 가지 방안을 제시해 본다.

하나는 애초의 제정목적에 맞게 ‘광복절’을 건국을 기념하는 날로 환원하는 운동을 벌이는 것이다. 즉 광복절 회수 기산점을 1948년으로 수정하여 금년의 ‘광복70년’을 ‘광복67년’으로 환원하는 방법이다. 가장 이상적이며 법 제정 취지나 목적에도 부합되는 것이지만, 실현하기에는 현실적으로 많은 어려움이 있다. 정부와 국민 모두가 60여년 이상을 ‘광복절’을 해방을 기념하는 국경일로 알고 또 그렇게 기념해왔기 때문에 관행으로 굳어져버린 오늘날 원래대로 복원하기까지는 엄청난 반발과 갈등이 예상되지만, 시도해볼만한 가치가 있다.

새로운 법을 제정하기 위해서는 법 제정의 필요성과 제정목적이 분명해야 한다. 그에 따라 법이 제정되면 그 법은 제정목적에 맞게 집행되어야 한다. 이러한 원리로 보았을 때 ‘광복절’은 제정목적에 반하게 집행되고 있으므로 원래의 제정목적에 맞게 건국을 기념하는 국경일로 환원하도록 정부에 청원하는 한편 헌법소원도 가능할 것이다. 헌법소원을 통해 국민의 관심을 유도하고 애초의 ‘광복절’ 제정 목적을 알리는 기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건국을 기념하는 날을 새롭게 제정하는 것이다. 이 또한 반대세력이 존재하므로 법 제정에 성공하기까지는 많은 난관을 돌파해야 한다. 이때 ‘건국’과 ‘광복’을 동시에 기념할 수 있도록 ‘건국절 및 광복절’로 개정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것이다. 건국절 제정운동이 성공하려면 국민적 공감대 형성은 필수적이다. 국민적 동의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적절한 홍보수단이 마련되어야 하며, 올바른 역사 교육이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어떤 방법을 모색하든 갈등 요소는 존재하지만, 대다수 국민이 ‘광복절’은 건국을 기념하기 위해 제정되었다는 사실을 인식할 때 건국절 제정운동으로 야기되는 갈등은 대부분 해소될 것이다.

대한민국의 번영과 발전의 원동력은 확고한 국가 정통성과 정체성을 공유하는 국민 국가에 대해 자긍심을 가지고 애국심으로 표출하는 힘이다. 그것은 대한민국에 소속된 개개인이 대한민국 건국을 기념하고 축하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어떠한 정부라도 자기 국민들에게 자기나라를 사랑하고 자기나라에 귀속감을 갖도록 가르칠 능력이 없으면 오래 갈 수 없다”는 막스 베버의 격언을 대한민국 정부는 귀담아 들어야 할 것이다.

글/김효선 건국이념보급회 사무총장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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