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때 한화가 대우조선해양을 샀더라면...
무리한 자금조달, 조선시황 악화로 그룹 전체 타격
삼성그룹과의 화학·방산 계열사 '빅딜'기회 놓쳤을 수도
“2008년 금융위기가 한화를 살렸다.”
최근 대우조선해양의 대규모 적자 사태를 두고 재계 한 관계자는 이같이 말했다. 당시 금융위기로 한화의 대우조선해양 매각이 무산되지 않았더라면 대우조선해양의 부실을 한화가 고스란히 떠안았을 것이라는 얘기다.
5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대우조선해양 부실 문제가 조선산업은 물론, 금융권과 정치권까지 큰 파장을 일으키며 이 ‘뜨거운 감자’를 떠안을 기업으로 한화가 언급되고 있지만, 정작 한화는 더 이상 대우조선해양과 엮일 이유가 없다며 선을 긋고 있다.
한화에게 있어 대우조선해양은 ‘떠올리기 싫은 기억’일 수밖에 없다. 역사에 가정은 없다지만 한화가 당초 계획대로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했었더라면 지금 한화의 모습은 크게 달라졌을 것이고, 지금보다 나았을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다.
“그 때(2008년)는 한국 조선업이 세계를 선도하던 시절이었으니 조선산업에 매력이 있었죠. 그리고 추진할 당시에는 곧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칠 것이라는 걸 예상 못할 때였으니 과감한 투자가 필요하다는 판단이었습니다.”
한화그룹 관계자는 대우조선해양 인수 당시의 상황을 이같이 회상했다.
한화는 당시 포스코와 GS, 현대중공업 등이 참여한 인수전에서 6조3000억원을 써내 우선협상대상자 지위를 얻었고 3150억원의 이행보증금까지 냈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치면서 상황은 급반전됐다.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위해 금융권과 인수자금 조달 계획을 준비했는데 연말이 되면서 금융위기가 본격화 되니 금융업체들이 모두 등을 돌려 버렸죠.”
돈을 마련할 길이 없어진 한화는 산업은행 측에 분할 납부를 요청했고, 산은이 이를 거부하면서 딜은 깨졌다.
3150억원의 이행보증금도 돌려받지 못한 상태다. 한화는 산은을 상대로 이행보증금 반환 소송을 냈지만 2심까지 패소해 현재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한화 대우조선해양 지분 50.4% 6조5000원에 응찰…현재 가치는 10분의 1
재계에서는 설령 한화가 이 돈을 떼이더라도 당시 산업은행이 분할 납부계획을 거부한 게 한화로서는 천만다행이었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당시 매입조건은 산업은행이 보유한 대우조선해양 지분 31.3%와 캠코 보유지분 19.1% 등 총 50.4%를 인수하는 데 6조3000억원을 한화가 지불하는 내용이었다.
입찰이 진행되던 2008년 10월 중순 대우조선해양 주가가 2만원선, 시가총액이 3조8000억원 내외였고, 지분 50.4%의 가치는 1조9000억원 수준이었음을 감안하면, 한화는 여기에 무려 200% 이상의 경영권 프리미엄을 더해 적어낸 셈이다.
자금조달계획도 당시 한화의 재무상황을 고려하면 무리한 계획이었다. 한화가 산은에 제출한 자금조달 계획안을 보면, 자체 자금은 1조원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한화생명(당시 대한생명) 지분 21% 1조7000억원, 갤러리아백화점 1조2000억원, 장교·소공동 빌딩 6000억원 등 보유자산 매각을 통해 4조5000억원을 조달한다는 내용이었다.
결과적으로 산은이 나머지 1조8000억원을 분납한다는 조건을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무산됐지만, 만일 이를 수용했더라면 한화는 알짜 자산들을 모두 잃는 출혈을 감수했어야 했다.
한화가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을 당시에도 한화의 자금조달 계획에 대한 시장의 우려가 컸다. 일각에서는 ‘승자의 저주’얘기도 나왔다.
출혈의 결과물이 좋은 성과를 낸다면 그만한 가치가 있겠지만, 공교롭게도 글로벌 금융위기와 함께 조선업계도 고속성장 시대를 접고 2009년부터 불황으로 접어들었다.
한화가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했더라면 투자 손익을 단순 지분가치로만 계산해도 손해가 막심했을 터였다. 현재 대우조선해양의 시가총액은 1조3000억대로, 여기에 지분율 50.1%를 반영하면 6500여억원에 불과하다. 한화의 제시액 대비 10분의 1 수준이다.
최근 산은이 대우조선해양의 유동성 위기를 막기 위해 최소 1조원의 증자를 추진하고 있다는 점은 한화로서는 더욱 가슴을 쓸어내릴 만한 일이다. 7년 전 딜이 성사됐더라면 이 비용 역시 한화의 몫이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삼성그룹과의 화학·방산 계열사 '빅딜'기회 놓쳤을 수도
한화그룹이 지난해 말 삼성그룹과 단행한 ‘빅딜’도 대우조선해양 인수가 무산됐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한화는 삼성으로부터 삼성종합화학, 삼성토탈, 삼성테크윈, 삼성탈레스 등 4개 기업을 인수함으로써 주력인 화학과 방위산업을 대폭 강화했다.
이들 4개사를 인수하는 데 한화가 삼성에 지급할 돈은 1조9000억원에 달한다. 그나마 자금 조달 부담을 덜기 위해 삼성종합화학과 삼성테크윈 인수대금은 2~3년간 나눠 지급하는 조건을 걸었다.
7년 전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위해 자금을 총동원했더라면 애초에 삼성과의 빅딜은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게 재계의 시각이다.
물론, 대우조선해양이 한화그룹 밑으로 들어갔더라면 지금과 같은 부실은 없었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대우조선해양의 방만경영에 대한 책임 소재 중 하나로 ‘산업은행의 부실한 관리감독’이 지목되고 있는 만큼 제조업 경영에 능한 대기업이 가져갔을 경우 상황은 달라졌을 것이라는 예상이다.
한화그룹 관계자는 “금융업을 하는 산업은행과 제조업이 주력인 한화는 기업경영 방식 자체가 다를 수 있다”면서 “현재 대우조선의 상황만을 놓고 한화가 대우조선을 인수했다면 한화도 같이 힘들어졌을 것이라는 가정은 무리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렇다고 한화가 지금에 와서 ‘뜨거운 감자’가 된 대우조선해양을 떠안는 희생을 감수할 이유는 없다는 입장이다.
한화그룹 관계자는 “조선업 경영 환경 자체가 그 때(2008년)와는 달라졌고, 지금은 대우조선 자체가 인수 매력이 없다”면서 “한화의 대우조선 인수설은 외부에서 일방적으로 하는 소리고, 우리는 전혀 검토도 하고 있지 않다”고 못박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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