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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만 살면 경기가 회복? 나라 경제 망치는 사이비 논리


입력 2015.10.10 10:13 수정 2015.10.10 10:13        데스크 (desk@dailian.co.kr)

<자유경제스쿨>일본 장기침체의 원인은 정부의 섣부른 시장 개입

18일까지 코리아 그랜드 세일에 참여하는 롯데백화점 부산본점과 센텀시티점이 9일 해운대구 벡스코에서 쇼핑박람회인 '메가쇼'를 열고 있다. 이 행사는 사흘간 구두·핸드백 상품을 최대 80%, 가전·가구 진열 상품을 최대 70%까지 할인 판매한다. ⓒ연합뉴스

금리인하 문제로 갑론을박이 한창일 때 모 부처에서 주관하는 경제자문회의에 참석한 적이 있다. 일본의 장기 침체 원인을 진단하고 우리가 일본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한 정책 방향을 모색하는 자리였다. 회의에 참석했던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엔화 가치의 급격한 상승과 자산 버블 붕괴를 일본의 장기침체의 원인으로 꼽았다. 우리가 일본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는 금리를 인하해서 엔화 약세로 수출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기업을 도와주고, 부동산 경기를 활성화하여 가계의 소비 여력을 높여야 한다는 제언이 주를 이루었다.

일본의 장기침체에 대한 원인 진단도 잘못되었지만, 일본에서 실패한 정책을 도입하자고 주장하고 있으니 놀라울 따름이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공격적인 금융·재정정책 때문에 일본이 그나마 20년을 버틸 수 있었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도 있었다. 폴 크루그먼(Paul Krugman)을 필두로 한 케인지언(Keynesian)들의 잘못된 정책 제언이 일본 경제를 망쳤듯이, 사이비 전문가들이 한국 경제를 망칠 수 있겠다는 생각을 지워버릴 수가 없었던 자리였다.

일본이 장기 침체로 빠지는 과정을 자세히 살펴보면 장기 침체의 원인이 플라자(Plaza) 합의로 야기된 엔화 절상과 부동산 버블 붕괴가 아니라 정부의 섣부른 시장 개입이 원인이었음을 알 수 있다. 플라자 합의 이후 찾아온 엔고 불황을 극복하기 위해 일본은행은 공격적으로 기준금리를 인하하였다. 저금리로 투자와 소비가 큰 폭으로 상승하면서 1988년에는 플라자 합의 이전보다 높은 7.1%의 성장률을 기록하였다.

그러나 이는 실물 부문이 뒷받침된 성장이 아니라 부동산과 주식가격이 폭등하면서 나타나는 착시 현상이라는 것을 일본 정부는 물론 국민들도 당시에는 깨달지 못한 듯 했다. 일본이 조만간 미국을 넘어 세계 최고의 경제 대국이 될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과 부동산과 주식 가격은 지속적으로 상승할 것이라는 믿음이 팽배했다. 저금리가 제공한 잘못된 믿음이 자산 버블을 불러온 것이다. 문제는 금리가 인상되면서 표면화되기 시작하였다. 경기가 너무 과열된다고 판단한 일본 정부는 기준 금리를 인상하고 부동산 관련 대출 규모를 규제하는 대출총량 규제를 단행했다. 이후 주가가 큰 폭으로 하락하고 이어 부동산 버블이 붕괴하면서 일본의 장기침체가 시작되었다.

일본은 플라자 합의 이전에도 두 차례의 엔고 현상을 경험한 바 있다. 일본 기업은 사업구조 조정, 사업 다각화, 기술 혁신, 인건비 상승 억제, 원가절감 노력을 통해 1차 엔고(1971~1972년)와 2차 엔고(1977~1978년)를 슬기롭게 극복한 경험이 있었다. 플라자 합의 이후에도 일본 기업은 과거와 같이 산업구조 조정과 경쟁력 강화를 통해 엔화 강세에 대응해나가고 있었다. 이런 와중에 이루어진 금리 인하 정책은 기업의 구조 조정을 저해하고 한계 기업의 수명을 연장해주면서 성장 동력이 약화되는 원인으로 작용하였다. 정상적인 경제 상황으로 되돌아가려는 시장의 재조정 과정이 정부의 개입으로 좌절되고 경기 침체는 장기화되었던 것이다.

자산 버블 이후에도 재정 지출을 확대하라는 케인지언의 정책 제언으로 일본의 경기 침체가 고착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크루그먼은 금리가 제로 수준임에도 불구하고 경기가 살아나지 않는 이유가 유동성 함정 때문이라고 진단하였다. 유동성 함정에서 탈출하기 위해서는 은행을 통해 유동성을 공급하지 말고 정부가 직접 유동성을 공급하라는 과감한 재정정책을 권고하였다. 그러나 부실 채권과 은행 도산이 많았던 1997년 중반에서 1998년 중반을 제외하고는 M2+CD가 안정적으로 증가하고 있어 일본에서 신용 경색이 발생했다는 근거는 없다는 것이 중론이다. 일본 금융시스템의 구조적인 문제로 정치적 목적에 따라 자금이 비생산적인 곳으로 배분되면서 생산적인 곳에는 자금이 부족한 현상이 발생했다는 진단이 더 설득력을 얻고 있다.

따라서 금융시스템의 구조적인 모순을 개혁하고 경제 스스로 과오 투자를 해결하고 시장 원리에 따라 자금이 생산적인 곳으로 흐르도록 하는 정책들이 일본에게 필요했던 것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일본 정부는 크루그만의 권고에 따라 수차례에 걸쳐 천문학적인 재정을 투입하는 과오를 범했다. 결국 경기 부양 정책 실시 이후 경기가 일시적으로 회복되는듯하다가 정책 종료와 함께 경기가 다시 침체하는 과정이 반복되면서 막대한 재정 적자만 쌓여 갔다. 경기 침체로 조세 수입이 감소함에 따라 국채 발행을 통해 재원을 조달하는 비중이 50%에 육박하고 있다. 국가 채무 규모가 급속히 증가하면서 총 재정지출에서 부채 상환 비중이 증가하고 원리금 상환을 위해 국채를 발행하는 악순환을 겪고 있다. 남유럽 국가와 같이 국가 채무 위기가 일본에서도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한국에도 유효 수요가 경제 성장의 동력이라고 믿는 비정상적인 논리가 만연하고 있다. 이러한 논리에 기대어 소비 촉진에 올인 하는 정부의 모습을 보면서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이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소득주도 성장, 부채주도 성장도 모자라 이제는 임시공휴일을 지정하고 ‘코리아 블랙 프라이데이’라는 대폭적인 세일 행사까지 정부가 주도 하겠다고 나섰다.

임시 공휴일로 인해 지난 8월 달의 소비가 10% 이상 증가하는 등 경제적 효과가 10조원에 육박한다고 자화자찬 일색이다. 기업이 부담한 유급 휴가 비용과 생산 차질에는 애써 눈을 감고 말이다. 블랙 프라이데이 행사도 소비 진작과 경기 회복을 위한 마중물 역할을 톡톡히 할 것이라는 기대에 부풀어 있다. 현재의 경기 침체를 일시적인 현상으로 인식하고 소비만 살아나면 경기가 회복될 것이라는 잘못된 믿음에 빠져 있다. 일본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는 하루 빨리 사이비 논리에서 벗어나야 한다.

글/조경엽 한국경제연구원 공공연구실장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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