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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우석씨의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서평에 대한 반박


입력 2015.10.28 08:43 수정 2015.10.28 09:59        데스크 (desk@dailian.co.kr)

[칼럼]선입견으로 읽기 시작해 쏠린 생각일 뿐

조우석이란 문화평론가의 글을 읽고 ‘도시 예찬’에 가까운 내 책을 왜 도시 혐오적인 시선의 책이라고 생각했을까 의문이 들었다. 그는 내가 박원순 시장을 맹종하는 좌파 지식인으로 오해를 한 모양이다. 선입견을 가지고서 이 책을 읽기 시작하니 제대로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한쪽으로만 생각이 쏠린 듯싶다.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는 ‘정치화한 생태주의’와 관련이 없다. 자신의 주장과 엮어서 “도시 파괴”를 하는 책이라고 평할 책이 아니다. 왜 그것과 이 책을 연관시켜서 이야기하는지 그 이유조차 모르겠다.

조우석 씨는 그의 글 결론에 필자를 “도시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도시론을 끼적이는 먹물”이라고 평한다. 그 말에 대해서 필자는 우선 조우석 씨가 건축과 도시에 대한 내용을 근거 없이 이렇게 평가해도 되는지 짚고 넘어가고 싶다.

아시다시피 필자는 지난 28년간 건축과 도시를 공부한 사람이다. 8년을 학교에서 건축 공부를 했고, 미국으로 유학을 가 공부하고 세계적인 건축가 밑에서 실무를 하며 미국건축사 자격증을 취득했으며 대학에서 후학을 양성하면서 교육과 건축 실무를 하고 있다.

국내 건축 관련 상을 여러 차례 수상하고 해외 공모전에서도 수차례 수상해 국내외에서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바 있다. 그리고 지금은 토지주택공사와 함께 도시 설계 프로젝트의 도시 공간 구조를 설계하고 있다.

그의 글에는 이런 필자가 쓴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책을 왜 그렇게 평가하는지에 대한 근거가 빠져 있다. 그가 말한 “참 재미도 없다”라고 평한 글은 그의 주관적인 평가이니 받아들일 수 있지만 독창적이지 않다는 말은 사실과 다르다.

내 책에 나온 걷고 싶은 거리를 분석하는 “이벤트 밀도”와 “공간의 속도”를 규정하는 ‘개념’과 ‘공식’은 이전에는 없던 독창적인 분석 방법이고 이는 이미 토지주택공사의 발표에서 인정을 받아 새로이 디자인되는 도시에 적용하려는 독창성이 돋보이는 이론이다.

“적절한 휴면스케일이 동반되어야 한다”라는 필자의 이야기에 조우석 씨는 “진부한 이야기”라고 평했다. 그 말에 동의한다. 휴먼스케일이어야 한다는 이야기는 진부하다. 하지만 휴먼스케일을 만들기 위해서 창안한 “이벤트 밀도”와 “공간의 속도”를 ‘계산하는 방식’은 기존에는 없던 독창적인 생각이다.

조우석 씨는 필자의 책을 보고 나서 “‘나는야 흙에 살리라’는 식의 자연 친화 - 농촌 취향을 버리지 못했다”고 평한다.

그런데 이 책 366페이지에 보면 분명히 “우리나라의 전통 건축에서 나타나는 기법을 지금 현대의 건축과 도시에 적용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왜냐하면 현대 도시의 밀도와 전통 건축의 밀도는 다르기 때문이다. 선배 건축가들의 강연을 들으면 전통 가옥인 ‘독락당’을 언급하면서 지금의 아파트 위주의 주거를 비판한다. 하지만 이는 불공정한 비교이다. 독락당이 지어졌던 당시에는 건폐율, 용적률이 5퍼센트도 안 되게 건축을 하던 시절이다. (…) 만약에 우리나라 주거를 모두 독락당처럼 저밀도로 지었다가는 아마 한반도에 농사지을 땅은 하나도 남아나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전통 건축의 기법을 단순하게 찬양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 책은 과거로 회귀하자는 식의 노스탤지어적인 책이 아니다. 필자는 오히려 그런 생각을 혐오한다. 그래서 현대에 전통을 운운하면서 ‘조선적’인 것으로 돌아가는 것을 경계하라고까지 책에 언급했다.

조우석 씨는 “이 책엔 ‘죽은 아파트의 사회’ 같은 소제목이 등장한다. 즉 아파트는 거대한 흉물이다.”라고 필자가 아파트를 단순 혐오하는 사람이라고 평한다. 하지만 이 책의 237페이지 상단을 보면 이런 글이 나온다.


“미래 우리의 후손은 지금 우리가 100년 전 원목으로 만든 한옥을 경외의 눈으로 쳐다보듯이 지금의 콘크리트 건축을 흠모할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는 철거해야 마땅한 환멸의 대상이 아니라 약간은 인내심을 가지고 바라보아야 할 보존의 대상일지도 모른다.”

이 글이 아파트를 혐오하는 사람이 쓴 것으로 보이는가? 제목인 ‘죽은 아파트의 사회’는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를 패러디한 제목이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를 보면 주인공 남학생들이 동굴에 모여 시를 읽으면서 시를 사랑하고 시를 읽지 않는 사회에 대한 저항을 보여 준다. 그 모임의 이름이 ‘죽은 시인의 사회’이다.

죽은 아파트의 사회는 아파트에 대한 기본적인 애정을 깔고 더 좋은 아파트를 만들어 보자는 필자의 생각이 들어 있는 글이다. 이런 의도를 이해하지 못한 이유는 아마도 박원순 시장에 대한 분노 때문에 이 책의 진의를 보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제발 정치적인 싸움에 내 책을 개입시키지 않았으면 한다.

우리는 아파트에 살면서도 더 좋은 주택 같은 집 안 분위기와 더 아름다운 마을을 만들 수 있다. 다만 지금 우리의 사회 시스템과 건축가의 실력이 부족해서 그런 고밀도의 도시에 못 살 뿐이다. 아파트가 최선이니 그냥 받아들이라는 식의 조우석 씨의 주장은 그걸 간과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조우석 씨는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책을 “건축론, 도시공학을 들먹이지만, 그럴싸한 아카데믹한 거짓말에 속한다.”라고 평가한다. 그런데 이런 평은 건축론과 도시공학에 대해서 전문적으로 알지 못한 상태에서 할 이야기는 아닌 듯하다.

그는 마지막 문장에서 필자가 이 책을 통해서 “도시 파괴”를 한다고 평하고 있다. 이것은 글쓴이의 의도를 완전히 잘못 이해한 것이다. 이 책은 우리가 사는 도시를 더 좋은 도시로, 21세기 한국을 대변하는 도시로 만들자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한 시대를 이끈 국가는 대표적인 도시의 프로토타입을 만들어 낸 국가의 몫이었다. 상수도를 만든 로마, 하수도를 만든 파리, 중앙 공원을 만든 런던, 엘리베이터와 전화기를 도입한 뉴욕이 그랬다. 필자는 대한민국 경제 발전에 큰 역할을 해 온 서울이 다음 단계로 더 진화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 책을 썼다.

그저 근대 도시론을 베껴서 도로망이나 깔아 놓은 도시, 건축가 ‘힐버자이머’가 90년 전에 구상한 아파트 아이디어로 만든 도시가 진화의 마지막 단계는 아닐 것이다.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는 우리만의 살고 싶고, 걷고 싶은 도시를 만들어 보자고 역설하는 책이다. 그가 말한 것과는 전혀 다른 또는 반대되는 내용의 책인 것이다.

글 / 유현준 건축가·홍익대 교수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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