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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소설' '서탈' 후 '서류가즘' 허나 '지여인'은 '문송함다'


입력 2016.01.08 13:45 수정 2016.01.08 13:50        이선민 인턴기자

취준생들 사이의 속어로 어려운 현실 비꼬아

취업준비생들의 현실을 비꼬는 속어들이 일반인들은 알아듣기 힘들만큼 변이하고 있다. 자조를 넘어 조롱에까지 달한 속어들이 구조적 문제를 반영한다는 의견도 있다. ⓒ연합뉴스

취업 준비생(이하 취준생)들 사이에서 어려운 현실을 비꼬는 속어가 유행하고 있다. 온라인으로 취업 정보를 나누는 커뮤니티는 일반인들은 알아듣기 힘든 속어들을 사용한다. 대부분 현실을 비꼬는 말들이다.

대표적으로 ‘자소설’이 있다. 이들은 자기소개서를 자소설이라고 부른다. 자신을 설명하는 글이라기보다는 그럴듯하게 지어낸 소설이라는 뜻이다. 한 취준생은 “내 자소서에 나온 사람이 실제로 존재한다면 그 사람이랑 결혼할 것”이라며 세상에 없는 사람을 창조했음을 자조적으로 시인했다.

취준생에게 가장 가슴 아픈 순간이자 준비기간에 가장 많이 접하는 탈락에 대한 속어도 많다. ‘서탈(서류탈락)’, ‘면탈(면접탈락)’, ‘최탈(최종탈락)’은 예사다. 정말로 가슴 아픈 단어는 ‘전탈’ 이나 ‘광탈’ 이다. 전탈은 지원한 기업에서 모두 탈락했을 때, 광탈은 광속 즉 빛의 속도로 탈락했다는 뜻으로 인적성 검사나 면접까지는 가보지도 못했다는 뜻이다. ‘미칠 광’자를 써서 미친듯이 다 떨어지고 있다는 뜻으로도 쓰인다.

이들에게 가장 괴로운 날은 ‘광탈절’이다. 광탈과 기념일을 뜻하는 절이 합쳐져 서류전형이나 면접전형에서 우수수 떨어진 날을 일컫는다. 공채시즌에는 발표일이 겹치는 날이 많아 하루에 몇 곳에서나 고배를 마시면 광탈절이 된다. 반면 계속된 탈락끝에 서류 전형에서 합격하면 ‘서류가즘’을 느낄 수 있다. 서류 합격의 기쁨이 마치 오르가즘처럼 최고조에 달한 것이다.

‘이케아 세대’는 취업에 뛰어난 스펙을 갖췄으나, 낮은 급여와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젊은 세대를 부르는 말이다. 가구브랜드 ‘이케아’의 가구는 실용적이고 세련됐지만 저렴하다. 이렇듯 각종 자격증과 인턴경험, 해외경험으로 높은 스펙을 갖추었지만, 인턴으로 전전하거나 열정 페이를 받으며 일하는 요즘 세대의 현실을 반영하는 단어다.

상대적으로 취업이 어려운 문과를 비꼬아 표현한 말도 있다. ‘문송합니다’는 문과라서 죄송합니다의 줄임말이다. 기업 채용공고에 지원자격이 이공계일 경우 취준생들이 “지원 자격도 안되네요. 문송합니다”라고 자조하는 것이다. 이 중에서도 ‘지여인(지방대·여자·인문계)’는 취업 시장에서 명함도 제대로 내밀 수 없다고 한다. ‘인구론(인문계의 90%가 논다)’도 비슷한 맥락에서 나온 이야기다.

반면에 취업깡패 라는 말도 있다. 다른 과보다 취업이 잘 되는 과로, 과거에는 경영학과가 주목을 받았던 적도 있으나, 2010년대부터는 공대생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주요 대기업의 우대 때문인데, 공대생 중에서도 ‘전화기(전자·화공·기계)’ 전공자들이 취업깡패로 불린다.

취업이 힘들어 학교의 화석으로 남거나 취준생으로 몇 년을 보내는 이들은 자연스럽게 ‘빨대족’이 된다. 부모님의 지원 아래에서 구직활동을 하다 보니 30대가 넘어서도 부모에게서 경제적 독립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실제로 취준생의 절반 가량이 바쁜 준비기간에 쫓겨 아르바이트도 하지 못한 채 온전히 부모님에게 손을 벌린다는 설문 결과가 있기도 했다.

취업을 위해서는 ‘취업 9종 세트’를 준비해야 한다고 한다. 예전에는 학벌, 학점, 토익 3종 세트가 필요했다면 어학연수와 자격증이 추가되면서 5종, 공모전 입상 경력과 인턴 경력이 추가되어 7종이 되었다. 이제는 사회봉사와 성형수술까지 필요해 9종 세트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렇게 취업을 위해 필요한 것이 많으니 3~4학년 대학생들의 절반이 취업을 위한 휴학을 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기도 했다.

얼굴도 스펙이라는 ‘페이스펙’이라는 말은 어째서 9종 세트가 등장했는지 알수 있게 해준다. 이렇다 보니 아예 ‘달관 세대’가 등장하기도 한다. 높은 청년 실업률에 이미 좌절한 청년들이 희망도 의욕도 없이 무기력하게 살아가는 모습이다. 그저 욕심없이 현재에 만족하고 포기한 채 사는 청년들에 대한 이야기다.

이렇게 불안한 취준생들은 자신들은 ‘N포세대’로 규정한다. 5포, 7포를 넘어 n포세대까지 내몰린 것이다.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하던 3포세대가 내 집마련과 인간관계까지 포기한 5포 세대가 됐고, 이에 꿈과 희망마저 포기한 7포 세대가 등장했다. 이제는 뭘 더 포기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일단 먹고 살기 위해 포기할 수 있는 것은 다 포기하는 n포 세대가 등장한 것이다.

이렇게 스스로를 자조하는 젊은이들이 늘어나다보니 자조가 ‘조롱’으로 이어지고 있다. 사회 풍자를 넘어 우리나라를 지옥에 비유한 ‘헬(hell)조선’이라는 말을 즐겨 쓰고, 헬조선 탈출을 위한 ‘이민계’를 만들어 북유럽이나 호주, 뉴질랜드로의 이민을 꿈꾼다.

한 전문가는 자조와 조롱을 넘어 이제 탈출까지 생각하는 젊은이들이 나타나는 이러한 사태는 젊은이들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사회에서 행복의 기회를 얻기 어려운 구조적 문제 때문이라고 말한다. 공정한 기회와 규칙을 통해 경쟁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선민 기자 (yeatsmin@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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