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경제스쿨>자산 소유 통제해서 자원사용 의사결정은 불가능
최근 구글 딥마인드가 개발한 인공지능(AI)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AlphaGo)와 프로 바둑기사 이세돌 9단의 대결이 전 세계적으로 큰 관심을 받았다. 알파고는 정책망과 가치망이라는 2개의 신경망을 이용하는데, 정책망은 어디에 바둑돌을 두는 게 가장 좋은 수인지 판단하고, 가치망은 각 수에 대한 흑돌과 백돌의 승률을 평가한다고 한다. 그리고 이 두 망을 조합하면 컴퓨터가 처리해야 할 경우의 수를 크게 줄일 수 있다고 한다. 인간보다 더욱 빠르고 정확하게 계산하는 알파고에 맞서 이세돌 9단은 결국 1 대 4로 패배했다.
현재 인공지능은 의료, 법률, 주식 등의 분야에도 적용될 수 있도록 발전하고 있다. 의료센서 데이터를 처리하여 병명과 치료법을 알려주고, 방대한 판례를 학습하여 의뢰인에게 개별 사건에 대한 유무죄 판단과 형량 결정을 조언해 줄 수 있다고 한다. 주식투자에서는 로봇 추천 종목의 수익률이 인간이 결정한 투자 수익률보다 더 높게 나타났다고 한다. 이에 세간에서는 머지않아 사람이 인공지능에 밀릴 수 있다는 우려와 함께 일자리를 뺏길 수도 있다는 걱정이 나오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인공지능이 생산의 중요한 주체인 기업가도 대체할 수 있을까? 즉, 인공지능이 기업가가 해야 할 일을 대신 맡아 더 효과적으로 처리할 수 있을까? 여기서는 기업가 본질에 대한 이해를 통해 이러한 질문에 답해 보려고 한다.
필자가 아는 한 기업가(정신) 이론의 체계적 정립은 오스트리아학파(Austrian school)의 경제학자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이들 내에서 기업가를 바라보는 두 관점이 존재하는데, 하나는 Wieser-Hayek-Kirzner의 이윤기회의 발견(discovery of profit opportunities)이고 다른 하나는 Cantillon-Knight-Mises의 기업가적 판단(entrepreneurial judgment)이다. 아래에서는 기업가에 대한 후자의 관점을 Knight를 중심으로 살펴본다.
잘 알려져 있듯이 Knight(1921)는 위험(risk)과 불확실성(uncertainty)을 구분했는데, 전자는 연역적 계산이나 경험적 자료를 통해 결과들에 대한 확률분포를 알 수 있는 상황을, 후자는 각 사건이 유일하여 모든 결과들의 집합을 구축할 수 없어 관련 확률분포를 파악할 수 없는 상황을 각각 의미한다.1) Knight는 이윤과 기업을 불확실성과 연결시키기 위해 판단(judgment)이라는 개념을 도입했다. 그에 의하면 판단이란 사전에 알려진 확률분포에 따라 결과들을 예측할 수 없을 때, 주어진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의사결정자가 ‘소유하고 통제하는’ 자원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사용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과정이다.2) 이러한 의미에서 Knight의 기업가는 불확실한 상황에서 경제적 자원사용에 관한 판단을 이행하는 존재이다.3)
기업가가 직면하는 상황이 불확실성이 아닌 위험과 관련돼 있다면 정교한 확률계산과 보험 등을 통해 이를 적절히 처리하고 분산시킬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 경우 기업가가 사업 성공에 기여한 한계생산은 시장에서 평가되어 그의 기능은 생산요소로서 거래될 수 있을 것이고, 그의 소득은 고정 임금의 성격을 띠게 될 것이다. 그러나 기업가는 불확실성을 떠맡아 최종 책임을 지는 위치에 있다. 그래서 그는 어느 누구에게도 고용될 수 없는, 따라서 기업을 시작함으로써 스스로를 고용해야 하는 존재이다. 기업가가 얻는 이윤도 불확실한 미래를 다른 사람들보다 좀 더 정확하게 예측한 것에 대한 보상이다.4)
그런데 만약 기업가를 대신해 인공지능이 의사결정을 한다면 우리는 무엇을 기대할 수 있는가? 먼저 불확실하지만 성공에 따른 이윤이 큰 사업은 착수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기대수익이 상대적으로 크게 계산된 사업만 승인하라고 입력된 인공지능에게 어느 수준 이상의 위험을 지닌 사업은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무모하게 보이지만 불확실한 미래를 좀 더 낙관적으로 보고 사업에 뛰어드는 기업가를 인공지능이 흉내 내기란 쉽지 않을 거란 얘기다.
더욱 근본적인 것은 인공지능이 생산적 자원사용에 관한 판단을 할 때 불확실성을 떠맡을 수 없다는 것이다. 계속 언급하지만, 기업가가 성공하거나 실패할 확률은 위험이 아니라 불확실성과 관련돼 있다. 따라서 인공지능이 제아무리 계산능력이 뛰어나도 해당 사업의 모든 결과들을 명시할 수 없다. 즉, 사업의 성공확률을 계산하기 위한 토대조차 구축할 수 없다는 뜻이다. 더욱이 이윤기회는 애초부터 존재하는(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시장행위로부터 추론돼야 하는데, 이 역시 인공지능에게 비교우위가 있는 객관적 계산의 영역이 아니다.
물론 기업가는 특정 과제를 효과적으로 처리하기 위해 인공지능을 이용할 수 있다. 그렇다고 인공지능이 기업가의 역할을 대신 수행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기업가가 과제 해결을 위해 인공지능을 도입하기로 한 것 자체가 기업가적 판단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자산을 소유·통제하여 불확실한 상황에서 자원사용에 관한 의사결정을 하는 인공지능은 개념상 성립될 수 없다. 인공지능은 기껏해야 경우의 수가 많은 상황에서 좀 더 빠르고 정확하게 계산하는 자문위원이나 예측전문가로 ‘기업가’에게 고용될 수 있을 뿐이다.
--------------------------------------------------
1) 비슷한 관점에서 Mises(1949)는 급간 확률(class probability)과 사례별 확률(case probability)이란 용어를 사용했는데, 각각 Knight의 위험과 불확실성에 상응하는 개념이다. Mises가 Knight로부터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증거는 없지만, Knight의 연구를 잘 알고 있었다고 한다.
2) 판단은 자산소유(asset ownership)를 의미한다는 점에서 최종적(ultimate) 의사결정이다. 이는 Grossman and Hart(1986)의 자산사용의 잔여통제권(residual control rights)과 같은 맥락의 개념이며, Knight의 기업가는 자본을 소유할 필요가 없어 불확실성을 떠맡지 않는 Kirzner의 기업가와 이 부분에서 대별된다.
3) Kirzner(1973)는 기업가를 낮은 가격에 구매해서 높은 가격에 판매할 수 있는 기회를 기민하게 포착해서 실행하는 존재로 봤다. 한편 Knight는 시카고학파(Chicago school)로 분류되는데, 불확실성을 강조한 것과는 대조적으로 완전지식(complete knowledge)의 가정을 도입해 완전경쟁(perfect competition)이라는 개념을 정립했다.
4) 불확실성이 덜 내재된 생산과정에 참여한 대가로 받는 자본가의 이자, 근로자·경영자의 임금, 건물주의 임대료 등은 기업가의 소득인 이윤과 달리 고정 보수의 성격을 지닌다.
글/정회상 한국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