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페이스북
X
카카오톡
주소복사

김태리 "동성애 다룬 '아가씨', 이 시대에 필요"


입력 2016.06.10 08:58 수정 2016.06.16 09:07        부수정 기자

1500대 1 경쟁률 뚫고 발탁…충무로 신데렐라

"들뜨지 않고, 자유롭고 유연한 배우 꿈꿔"

영화 '아가씨'에 출연한 배우 김태리는 극 중 하녀 숙희 역을 맡았다.ⓒ데일리안 홍효식 기자

'대학생활의 꽃은 동아리'라는 말에 연극 동아리에 들어간 한 대학생은 태어나 처음으로 재능을 발견했다. 졸업을 한 학기 앞둔 2011년, 대학로 극단에 무작정 찾아갔다.

처음엔 스태프 일로 시작하다 졸업과 동시에 빠른 속도로 무대에 올랐다. 모노드라마 '넙쭉이'가 첫 연기였단다. 주연 배우 언더스터디(주연 배우에게 문제가 생겼을 때 대신 투입하는 배우) 였는데 썩 잘해냈고, 이후 재공연 때 더블캐스팅으로 무대에 섰다.

'내게 이런 재능이 있고, 인정받았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배우는 회상했다. 경희대 신문방송학과 졸업 후 인생을 뒤바꿀 운명 같은 오디션에서 당당히 합격했다. 1500대 1이라는 어마어마한 경쟁률을 뚫고, '아가씨'(감독 박찬욱) 숙희 역을 꿰찬 신예 김태리(26) 이야기다.

지난 7일 서울 삼청동에서 만난 김태리는 고등학생 같은 앳된 외모를 지니고 있었다. 지난주부터 홍보 인터뷰 일정을 해왔다는 그는 "새벽 6시에 일어나서 오후 6시에 퇴근한다"고 웃었다.

"황금연휴 때 무대 인사를 돌았어요. 어제는 쉬었고요. 긴 일정에 지치기도 하지만 이것도 다 경험이라고 생각해요. 신인 땐 다 이렇게 한다고 하더라고요(웃음)."

배우 김태리는 1500대 1 경쟁률을 뚫고 숙희 역을 꿰찼다.ⓒ데일리안 홍효식 기자

'아가씨'는 청소년관람불가 영화 중 역대 최단 기간 200만 관객을 돌파하며 흥행 중이다. 구체적인 수치를 언급하자 그는 "그렇게 많이 봤어요?"라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흥행할 줄 몰랐어요. 제가 이런 상업 영화가 처음이잖아요. 수치에 대해 잘 모른답니다."

제작보고회 때 "떨려 죽을 것 같아요"라고 토로한 바 있는 배우는 "말도 안 나오게 '겁나' 떨었다"며 "날 보는 사람까지 긴장될 정도였다"고 했다.

김태리는 '아가씨'로 칸국제영화제 레드카펫을 밟았다. 첫 영화에서 맛본 값진 경험이었다. 그는 "재밌고 신기했다. 영화를 선보일 땐 불안하고 초조하기도 했다"고 미소 지었다.

큰 스크린에서 자신의 연기를 처음 본 순간을 묻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온전한 정신으로 보지 못했고, 연기가 너무 부족했단다. '아가씨'는 총 세 번 봤다고. 볼 때마다 영화가 새롭게 느껴졌고, '디테일'이 보였다고 배우는 말했다.

'아가씨'는 박찬욱 감독이 7년 만에 국내에 내놓는 신작이자 총제작비 150억원에 이른 대작으로 기대를 모았다. 신인 배우 오디션 공고에서 "노출 수위:최고 수위, 노출에 대한 협의 불가능합니다"라는 조건을 내걸었을 만큼 수위 높은 노출신도 예고됐다.

박 감독은 김태리가 뽑힌 이유에 대해 "틀에 박히지 않은, 침착하고 차분한 연기를 한다"고 밝혔다. 김태리 생각이 궁금해졌다.

배우 김태리는 영화 '아가씨'에 히데코 역의 김민희와 파격 동성애 연기를 펼쳤다.ⓒ데일리안 홍효식 기자

"음...저는 그냥 '숙희와 제가 잘 맞았나 보다' 했어요. 초짜인 제게 어떤 연기를 기대하긴 힘들 거라고 생각했죠. 신인이 하면 얼마나 잘하겠어요? 감독님이 제작보고회 때 제가 뽑힌 이유를 말씀하셨는데 '아 그랬구나' 싶었죠."

김태리는 베테랑 배우도 하기 힘든 파격적인 동성애 베드신을 소화했다. 그는 "지인들이 처음엔 걱정했는데 오디션 합격한 후부터는 응원만 해줬다"며 "베드신에 대한 큰 걱정과 부담은 없었다"고 당차게 말했다.

김태리에겐 '1500대 1을 뚫고 나온 신인', '박찬욱의 신데렐라'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소감을 묻자 담담히 말했다. "그냥 그런가 보다 합니다. '그렇구나' 해요. 호호."

2014년 11월 숙희 역으로 낙점된 그는 이듬해 6월 촬영을 시작했다. 오디션부터 개봉까지 총 1년 반이라는 긴 시간이 흘렀다. 김태리는 "촬영이 끝난 후 내 역할은 다 끝났다고 생각했다"며 "다른 영화들 기다리듯이 편하게 개봉을 기다렸다"고 했다.

배우 김태리는 영화 '아가씨'에서 김민희 하정우 조진웅과 호흡했다.ⓒ데일리안 홍효식 기자

연극, 독립영화에만 출연한 그에게 큰 영화는 처음이다. "시나리오가 점점 좋아지는 걸 보고 신기했죠. 영화를 찍다 보면 의도치 않게 수렁에 빠질 수도 있는데 시나리오가 좋아서 저 역시 한 단계씩 성장하는 기분이 들었어요. 감독님이 사소한 부분에 신경 쓰이는 게 보여서 항상 새롭고, 그걸 지켜보는 재미가 있었죠."

첫 영화에서 대선배, 대감독과 호흡한 영광을 누린 것도 큰 수확이다. 김태리는 "선배들 연기 보면서 느낀 게 많았다"며 "연기, 작품을 대하는 태도, 마음가짐 등을 배웠다"고 했다.

박 감독은 김태리에 대해 "이해가 안 되는 장면이 있으면 주저 없이 물어보는 배우"라고 했다. 이를 언급하자 "감독님의 일상적인 모습, 어떤 사태를 바라보는 시선,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다 좋았다. 현장에선 칭찬을 한 번도 안 하셨는데 영화 홍보 때 내 칭찬을 하신 것 같더라. '그게 감독님 속마음이었던 걸까' 혼자 생각했다"고 웃음을 터뜨렸다.

히데코와 사랑에 빠지는 숙희는 날 것 그대로의 캐릭터다. "숙희는 내면이 튼튼하고, 자존심이 강한 친구예요. 다가오는 상황에 바로 반응하고, 자기 감정을 절제하는 게 부족한 어린 여자이기도 하고요. 이런 점들이 숙희를 다채롭게 만들었어요."

'아가씨'는 총 3부로 구성된다. 1부는 숙희, 2부는 히데코의 시점에서 펼쳐진다. 3부는 전체적인 이야기를 정리하는 식이다.

'아가씨'로 충무로 신데렐라가 된 김태리는 "생각이 유연하고, 창의적인 배우가 되는 게 목표"라고 밝혔다.ⓒ데일리안 홍효식 기자

연기할 때 가장 고민이 된 부분에 대해선 "이해가 안 된 장면은 없었다"고 명쾌하게 말했다. 다만 반전이 있는 이야기라 그걸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고민했단다.

"이야기 전부를 아는 상황에서 '관객이 내 속마음을 알아차리지 않아야 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그러다 이중, 삼중으로 고민했는데 생각만 복잡해지더라고요. 숙희는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뚫고 나가는 사람이라고 정리하니깐 고민이 풀렸죠."

숙희는 처음부터 히데코를 사랑한 게 아니다. 히데코를 속여 돈을 챙기려다 자기도 모르게 사랑에 빠져버린다. 김태리는 "많은 우연이 겹쳐서 사랑을 느끼게 됐다"며 "히데코의 분위기와 용모에 끌렸고, 숙희가 지닌 모성애와 히데코에 대한 죄책감도 사랑으로 변모했다"고 설명했다.

히데코와 숙희는 평범한 사랑이 아닌 동성애를 했다. 영화에선 두 사람이 성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는 장면이 하나도 없다. 아쉬울 법한 부분이라고 했더니 동의하지 않는다고 받아쳤다.

"'아가씨'의 힘은 성정체성을 고민하는 장면이 없는 것이에요. 전개가 빠르고 자연스럽죠. 성정체성을 고민하지 않아서 거부감 없이, 벽을 허물 수 있는 것 같아요. '아가씨' 같은 영화가 이 시대에 필요할 거라 생각했습니다."

김민희와 펼친 파격적인 베드신에 대해선 "찍기 전엔 걱정하진 않는데 막상 찍을 때 어쩔 수 없이 힘들었다"고 했다.

'아가씨'로 충무로 신데렐라가 된 김태리는 "앞으로 장르 불문하고 다양한 작품에 출연하고 싶다"고 포부를 전했다.ⓒ데일리안 홍효식 기자

가장 아끼는 장면을 물었다. 히데코가 담을 넘을 때 숙희가 트렁크로 계단을 만들어주는 장면, 그리고 두 사람이 벌판을 달리는 장면이란다. "대사가 없었는데도 둘의 마음이 와 닿았죠. 두 장면은 히데코가 받던 억압이 해방되는 순간을 나타내요. 히데코가 벽을 넘을 수 있게 숙희가 구원자가 돼 준 거죠."

화려하게 첫발을 내디딘 그는 하고 싶은 게 너무 많다고 했다. 장르 불문하고 재밌는 작품이 끌린단다. 영화, 드라마 상관 없이 모든 가능성을 열었다.

'아가씨'는 그에게 '첫 작품'이다. '처음'이라는 단어를 내뱉었을 때 얼굴엔 풋풋한 미소가 번졌다.

"생각이 유연하고, 자유롭고 창의적인 배우가 되고 싶어요. 나이가 먹고 경험이 쌓이면 자연스레 그렇게 되지 않을까요? 초조해지지 않고, 담담하게 기다리는 것도 중요합니다. 지금까지 해온 대로 차근차근 하려고요."

다음 주부터는 꿀휴식에 들어간다. "잠을 좀 자고, 생각도 정리하고 싶어요. 영어 공부를 하고 있는데 정말 재밌거든요. 다시 하려고요. 영화도 보고요(웃음)."

인터뷰를 끝내면서 "이제 퇴근합시다"라고 하자 그는 물개 박수를 치며 소녀처럼 좋아했다.

폭발적인 관심에 마냥 기쁘고, 들뜰 법한데 김태리는 인터뷰 내내 여유롭고, 차분한 모습이었다. 그러다 '까르르' 웃기도 하고, 진중한 대답을 내놓기도 했다. 1500대 1은 아무나, 그냥 뚫는 게 아니었다.

부수정 기자 (sjboo71@dailian.co.kr)
기사 모아 보기 >
0
0
부수정 기자가 쓴 기사 더보기

댓글 0

0 / 150
  • 최신순
  • 찬성순
  • 반대순
0 개의 댓글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