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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로 국회의원' 되고픈 송희경 "안가보면 모른다"

  • [데일리안] 입력 2016.06.18 10:09
  • 수정 2016.06.21 21:17
  • 장수연 기자 (tellit@dailian.co.kr)

<20대 3당 비례 1번에게 듣는다②-송희경 새누리>

"법안 만드는 것만 입법? 규제 걷어내는 것도 입법!"

총선이 끝난지 2개월여가 지난 지금 여야간 원구성 협상도 타결되고 이제는 정말 20대 국회의 문이 열렸다. 총선 과정에서 각당의 비례대표 순위 명단이 발표되긴 했지만 국민들은 아직도 각당 비례대표 의원들이 누구인지 어떤 활동을 했는지 무슨 비전으로 의정활동을 펼칠 것인지 알지 못한다. 이에 데일리안은 각당의 비례대표 1번 의원들 만나 궁금증을 해소하기로 했다.< 편집자 주 >

송희경 새누리당 의원. ⓒ데일리안 홍효식 기자송희경 새누리당 의원. ⓒ데일리안 홍효식 기자

"대우그룹이 무너지고 10년을 버텼어요. 직원들 데리고 어떻게든 먹고 살아보려고요. 그때 별명이 '잡초'였습니다."

잘나가던 기업인의 회고담만은 아니다. 총선 참패의 후유증에서 아직까지 벗어나지 못한 듯한 새누리당, 그곳 비례대표 1번의 경험담이 고스란히 반영된 각오라면 오히려 그에 더 가깝겠다. 정당의 비례대표 1번은 상징적이다. 옛날에는 당수가 차지했지만 이제는 당의 정책공약을 상징하는 인물들이 비례 1번 이름표를 단다.

두 자녀를 둔 29년차 워킹맘이자 ICT 업계에서만 29년 일한 'IT 전문가'. 박근혜 정부의 역점 화두인 창조경제 활성화에 크게 기여할 인물로 평가받는 송희경 의원. 인터뷰 내내 "제가 전자 기기가 있으면 떨려서 말을 잘 못해요"라며 긴장한 듯한 모습을 보였지만 '현장' '소통' '4차 산업혁명' 등 본인의 키워드를 말할 때는 눈을 반짝이며 질문한 범위 이상으로 당찬 포부를 내놓던 그녀를 의원회관 집무실에서 만났다.

지역구 의원들은 의정활동과 유권자 관리 등을 통해 경쟁력을 키우지만 비례대표는 이야기가 좀 다르다. 지역구가 없어 서럽다. '전국'을 무대로 하다보니 상대할 유권자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송 의원은 국민들과 '어떻게 소통할 것인가'에 관심이 많다. 그는 "그동안의 고객이 기업이었다면 이제는 국민들과 일해야 한다"며 "'통로 국회의원'이 되고 싶다. 그러려면 내가 관리하고 참여할 수 있는 협회나 단체 행사에는 발에 땀이 나게 다니려고 한다. 무조건 현장에 가서 얘기하고, 들어보고 내가 민생경제를 위해 무엇을 하는지 알려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송 의원은 1시간에 걸친 인터뷰 동안 8차례 소통을 언급하며 그 중요성을 역설했다.

송희경 새누리당 의원. ⓒ데일리안 홍효식 기자송희경 새누리당 의원. ⓒ데일리안 홍효식 기자

◇ "치열했던 기업인의 삶...여자 아닌 남자였어도 그렇게 살았을 것"

- 국민들은 정당의 비례대표 1번을 특별하게 기억한다. 19대 새누리당 비례 1번 민병주 전 의원은 '핵과학자'라는 별명도 얻었다. 각인될 만한 인생스토리를 들어보고 싶다.

"1987년 1월 1일 대우그룹으로 입사해서 최초로 여성으로서 과장을 하다가 KT로 갔다. 새누리당에서는 저 같은 기업에 있던 사람을 비례 1번으로 선택한 것이다. 굉장히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박사도, 핵과학자도, 교수도 아니다. 새누리당 입장에선 민생이나 경제 너무 걱정되니까 저처럼 현장에서 점퍼 걸쳐 입고 열심히 일했던 사람을 부른 것이라 생각한다.

기존 전통산업을 4차 혁명으로 전환하지 않으면 일자리를 만들기 힘든 시점에 현장에서 일한 저를 1번으로 세웠다는 점에서 치열한 게 필요하다고 느꼈다. 제 인생 역시 치열했다. 과장 입문 교육하면 전부 남자고 혼자 여자였다. 입사 때 '사갑 사을'이 있었다. 갑은 남자, 을은 여자. 뭐든지 늦게 진행됐어요. 대리 승진도 3년 늦게 됐고, 과장 승진도 후배보다 늦어서 집에서 이불 뒤집어 쓰기도 했다. 아이도 키워야 했다.

4대가 사는 시댁에 사는데 추석 당일 미국에서 피티가 있었다. 아침에 밥상 차려 드리고 설거지 하고 오후 비행기 타고 미국으로 가서 사업수주했다. 현장이 너무 치열했기 때문에 아이들 아팠는데 수술실도 지키지 못했다. 여자가 아니라 남자였어도 이렇게 살았을 것이다. 그만큼 우리나라 기업 현장은 정말 치열하다."

- 비례대표로서 국가관이나 정치관이 궁금하다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해야 한다는 것이 국가관이고 전쟁없는 나라 빈부격차가 크지 않은 나라가 가치관이다. 그동안의 가치관은 '내가 잘 되면 우리 회사가 잘 되고, 회사가 잘되면 국가가 잘된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 가치관을 더 확장시키고자 한다. '정치가 제일 못하더라' 그게 요즘 젊은이들의 생각이다. 고작 300명 갖고 모든 국민의 물줄기를 다 틀기가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가 좋은 정책 만들면 산업이 잘 되고 회사가 돈을 벌고, 그럼 국가의 국민이 행복할 수 있는 거죠. 그게 거꾸로 내려와야한다.

제가 53살이고 회사에 30년 있었고, 이제는 국가에 들어가 봉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국민은 정치인을 신뢰하지 않는다. 현재 정치는 서로 반대 진영에 있는 사람 너무 헐뜯는다. 젊은 사람들은 보고 배울게 없는 것이다. 정치권은 젊은 인재 중에서 정말로 재능 많고 국가를 사랑하는 인재에 관심도 쏟지 않고 있다. 정치권과 보편적 행복 추구하는 국민의 괴리는 더 멀어질 것이다. 그래서 젊은 친구들과 '정치가 그렇게 혐오스러운 것이 아니다'는 가치관을 서로 공유할 수 있었으면 한다."

- 국민들과 가치관을 공유하기 위해서는 소통이 중요하다. 어떻게 소통할 것인가?

"총선 기간에 비례대표 후보들은 전국구를 돌아다니며 지원유세를 한다. 연설을 안 해봐서 너무 어려웠지만 그렇게 하면서 느꼈던 것이 '이렇게 국민 만나는구나'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저 연봉 높은 기업 고객 등 기득권과 일 했다. 그동안의 고객이 기업이었다면 이제 국민들과 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관리하고 참여할 수 있는 협회나 단체 행사는 발에 땀이 나게 다닐 것이다. 현장과 국회를 연결해주는 '통로 국회의원'이 되고 싶다. 무조건 현장가서 얘기하고 들어보고 마음 열어주는 것 밖엔 소통할 수 있는 방법 없다. 또 자주 인터뷰 통해서 제가 무슨 일을 하고 있고, 그것이 민생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지 알려드릴 계획이다."

송희경 새누리당 의원. ⓒ데일리안 홍효식 기자송희경 새누리당 의원. ⓒ데일리안 홍효식 기자

◇ "창조경제의 현장, 가보지 않고 무슨 수로 알 수 있겠나"

-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등 3당 비례대표 1번과 '4차 산업혁명' 모임을 만들어 활동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인가?

"모바일 차량 예약 서비스인 '우버'는 택시가 없고, 숙박 공유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인 '에어비엔비'는 호텔이 하나도 없다. 완전히 서비스가 혁신화된 것이다. 없던 게 새로 생긴 것. 4차 산업혁명의 근본적인 목적은 없던 가치를 새로 만드는 것이다. 또다른 것은 작은 가치를 크게 넓히는 것이다.

조선업 문제, 자동차 전기차는 공장이 없다. 우리처럼 컨베이어벨트를 타고 부품을 조립하는 게 하는게 아니라 엔진 자체가 없다. 소프트웨어가 다 한다. 배터리 위에 소프트웨어 얹은 상태다. 없던 가치 만들어낸 혁신인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은 기존의 전통제조산업. 조선이든 차든..우리가 전후에 이렇게 먹고 살았던 건 여러 제조업이 활성화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하드웨어가 아니라 소프트웨어로 먹고 산다. 그렇게 되려면 우리나라가 전통제조업이 바뀌어야 한다. 또 소프트웨어 산업이 변화되고, 없던 서비스가 혁신되어야 되는 부분이 필요하다. 그것이 4차 산업혁명이다."

- 박근혜 정부가 추진하는 창조경제정책과 일맥상통한다.

"박근혜 정부에서 4차 혁명 얘기 잘할 수 있는 이유는 그동안의 산업이 하드웨어 중심에서 소프트웨어로 무게중심이 옮겨진 흐름 때문이다. 우리나라가 가장 좋은 무기는 뭐든지 할 수 있는 인프라가 형성돼 있다는 것인데 정작 문제는 소프트웨어나 컨텐츠가 자생력이 없다는 것이다. 미국이나 선진국에서 소프트웨어를 들여왔지만 그 무게중심을 박근혜 대통령이 창조경제를 내놓으며 옮겼다. 이것을 거름을 주고 자갈 돌 빼내고 비료를 줘가면서 키워야 하는게 우리의 몫이다.

그래서 다음 정권 때 열매를 딸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현 정권에서 열매를 딸 수 있다면 가장 좋겠지만 사람 일이라 그렇게 되지 않는다. 이것은 정권과 정권을 이어주는 아주 중요한 문제다. 또 4차 산업혁명은 소프트웨어를 중심으로 ICT(정보기술통신)가 융합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전국에 18군데의 창조경제 혁신센터가 있는데, 그곳을 클러스터로 삼아서 지역대학 학생들이 그곳에 취업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되도록 지자체와 해당 지역 기업, 국회의원이 거기를 끌어안고 살려주면 된다. 그렇게 지역이 살면 국가 산업이 산다. 그것을 위한 무게중심은 이미 만들어졌다."

- 박근혜 정권 임기가 1년 6개월 가량 남았다. IT 실무자로 보기에 창조경제가 어느 정도 진행됐다고 보나?

"제가 경제학자가 아니기 때문에 거시적인 부분까지 대답할 수는 없지만, 경제학 논리에서 봤을 때 창조경제혁신센터를 살려야한다. 현장, 실물을 살려야 한다는 측면에서 말하는 것이다. 창조경제 혁신센터는 만들어진 지 1주년 되는 곳이 60~70%다. 공장을 짓고 그 공장이 성공했는지 실패했는지는 1~2년은 지나봐야 알수있지 않겟나. 이제 성공률을 따지는 것은 의미가 없다.

단 거기 계신 센터장들의 사고 방식이 원래 혁신센터를 만들려는 취지에 부합하느냐가 굉장히 중요하다. 센터장의 의식구조가 그렇게 되어 있느냐, 고용된 사람들 역시 그런 일을 할만한 사람이냐, 스타트업 기업들이 들어와서 우리 세금으로 낸 국책자금 받고 있는지 감사를 한 번 해봐야 한다. 그것을 갖고 성공률을 판단해야 한다. 그 지표를 개발해서 그것을 갖고 성공이냐 실패냐를 판단해봐야 하는 것이지, 국회의원이 가만히 앉아서 성공이냐 실패를 판단할 수 있느냐고 하면 저는 그 지표를 한 번 내놓아 보라고 말하고 싶다."

- 가늠자를 직접 만들 생각도 있으신가?

"미래부 부국장께 인디케이트 만들어야 한다고 전했고, 내일(8일) 18개 센터장들을 모두 뵙기로 했다. 제가 현장에 간다고 하면 불편해 하실 수도 있지만 안 그래야 한다. 국회의원이 대접 받는 사람이면 안된다. 완전히 섬기는 사람이니까 해당하는 지표를 깔아 놓고 그에 관련된 의견을 많이 들어야한다. 일단은 (현장을) 가서 보고 싶었다."

- 현장의 '워치독' 같다는 느낌이 든다.

"가보지 않고 어떻게 현장을 알 수 있겠나."

◇ "법 만드는 것만 입법? 규제 걷어내는 것도 입법"

- 준비하고 있는 1호 법안은?

"1호 법안으로는 IT 정책의 규제를 풀어내는 정책을 준비 중이다. 민생법안으로는 아동·여성 정책을 준비할 계획이다. 기업에 있을 때는 몰랐는데 국회에 들어와보니 법이 정말 많은 것 같다. 법은 곧 규제다. 법을 만들어내는 것도 필요하지만 있는 법을 폐지하는 것도 입법 활동이고, 규제를 걷어내는 것도 입법 활동, 중복되는 정책을 한꺼번에 모아서 심플한 법안을 내놓는 것도 입법 활동이다."

- 당이 혁신 쇄신을 요구받는 상황이다. 초선 의원으로서 혁신에 어떻게 기여할 것인가?

"일단 특별위원회를 만들었다. 미래특위 소속으로 제가 갖고 있는 전문성 발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연구포럼을 통해서도 전문성을 발휘할 수도 있다. (당 혁신비상대책위원회의) 기간은 짧다고 생각한다. 기업을 예로 들면 기간이 길면 혁신 과정이 루즈해질 수 있지만 기간이 문제가 되는 건 아니다.

최대 관건은 혁신안을 어떻게 조율하고 한 바구니에 담아내느냐다. 바구니에 뭔가 담으려면 곤충의 더듬이처럼 촉이 살아 있어야 한다. 나는 IT 전문 국회의원이기 때문에 IT 현장에 어떤 목소리가 있고 그것에 어떻게 기여할지 촉을 세워야 한다. 그 더듬이가 얼마나 많느냐, 살아 있느냐, 얼마나 많은 국민의 이야기를 듣느냐 그것이 그 정당의 성공을 좌우할 것이다. 혁신비대위의 기간이 짧더라도 더듬이를 살아있게끔 만들어서 조정역할을 잘한다면 얼마든지 좋은 혁신안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캐주얼했다. 어디에도 메인 것이 없는 듯 가벼워 보였다. 1시간 남짓의 인터뷰가 끝나자 그전에는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송 의원의 특징들이 하나둘 눈에 들어왔다. 누군가 도움을 요청한다면, 또는 자신이 그렇게 할 필요성이 있다고 느끼면 금방이라도 현장으로 뛰쳐나갈 듯한 사람이었다. 그녀의 마지막 말은 이랬다.

"아직도 주변 동료들 중에는 저를 이해 못하는 이들도 많아요. 마치 정치에 욕심이 있는 사람처럼요. 하지만 저는 국가라는 말에 '예스'했어요. 국가가 어려울 때 함께 할 수 있겠느냐는 물음에 '그렇다'고 답하고 들어왔어요. 다른 것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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