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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렉시트에서 아직도 배운게 없다고?


입력 2016.07.24 08:07 수정 2016.07.24 08:08        데스크 (desk@dailian.co.kr)

<자유경제스쿨>다수의 횡포에 대한 우려가 사라진 정치풍토

지난 24일(현지시각) 브렉시트가 확정된 가운데, 반대파들이 다우닝 스트리트에서 브렉시트를 주도한 보리스 존슨 런던시장에 대한 반대 시위를 벌이고 있다. ⓒ게티이미지코리아

브렉시트에 대한 국민투표가 많은 이들이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영국의 유럽 연합 탈퇴라는 결과로 나타나 보호주의의 확산, 세계 교역량의 감소, 그리고 국제금융시장의 불확실성 확산 등, 브렉시트로 인한 각종 경제적 부작용에 대한 우려가 많은 언론매체를 통해 피력된 바 있다. 또한 그에 대한 대비책 또한 범정부차원에서 마련되고 있으며 국제금융시장의 충격을 상시 모니터하는 정부의 대응팀도 구축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 경제의 대외 의존도가 상대적으로 높은 만큼 브렉시트로 인한 국제금융시장의 환경 변화를 평가하고 대비책 마련에 힘을 쏟는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반응일 수도 있다. 하지만 너무나 많은 눈길이 브렉시트의 영향과 충격에만 매몰된 건 아닐까라는 조심스러운 의구심을 감출 수가 없다. 실제로 브렉시트라는 현상이 한국에 던지는 화두, 즉 브렉시트가 한국에 주는 시사점이 무엇인가에 대한 논의는 찾아보기가 힘들다.

그렇다면 영국의 사회적 갈등을 증폭시킨 브렉시트를 가능하게 만들었던 원인과 제도는 무엇일까? 영국의 브렉시트와 같이 국가적 중요 시책의 변화가 시도될 때 국민의 갈등을 완화시키며 결과에 수긍하게 만드는 정치제도가 현재 한국에 마련되어 있는가? 예상되는 사회적 비용을 최소화하며 국가의 중요 시책 변화에 대해 국민적 합의를 이끌 수 있는 정치적 절차는 무엇일까? 등, 영국의 브렉시트는 경제적 충격이라는 일시적 여파에 대한 대비만이 아닌 우리가 장기적 고민을 통해 개선해야 할 사안들에 대해 많은 시사점을 던지고 있다.

브렉시트는 모든 집단적 의사결정을 위해 다수의 동의라는 동일한 기준을 적용하는 현대 민주주의 제도가 내포하고 있는 문제가 무엇인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다수의 동의 및 지지를 받는 모든 정책이 정당하다고 치부하고 이를 실현하려는 정치적 시도가 얼마나 위험한 발상일 수 있는지를 나타내는 사례이기도 하다. 특히 최근에 정쟁의 대상이 된 사안의 처리 및 해결을 위해 국민투표를 실시하자는 발언이 유력 정치인들의 입을 통해 종종 표출되고 있어 대중영합적 정치 행위로 인한 사회적 혼란 및 갈등의 확산은 한국에도 머나먼 이웃 나라만의 이야기가 아닌 듯하다.

브렉시트를 촉발시킨 주요 원인 중 하나가 영국의 자체적 결정이 아닌 유럽연합을 장악한 이웃 유럽 국가들이 영국에 부과한 과잉규제라는 점에서 브렉시트라는 결정 자체의 옮고 그름에 대한 평가는 사실 현시점에서 불가능하다. 아니 브렉시트에 대한 많은 대중 매체를 통한 비판적 의견에도 불구하고 브렉시트가 불필요한 규제로부터 영국을 해방시켜 오히려 영국 경제의 경쟁력을 회복시키는 계기가 될 수가 있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다수의 동의를 통한 집단적 의사결정 방식, 즉 최다득표(plurality) 결정 제도가 브렉시트와 같이 대다수 영국인에게 직·간접적 영향을 주고 상호 간의 이해가 첨예하게 상충되는 사안에까지 적용된 것은 분명히 잘못된 집단적 의사결정 방식의 운영이었다.

사안의 경중과 시급성에 따라 상이한 집단적 의사결정 방식이 적용되어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 수긍할 수 있는 당연한 원칙이다. 또한 한국에도 어느 정도 이러한 원칙을 적용해 사안의 경중과 시급성 간의 조화를 추구하고 있다. 한 예로 시급성이 상대적으로 중요한 전시의 결정 권한은 대통령에게 부여하는 반면, 사안의 경중이 상대적으로 중요한 헌법의 개정에는 국회 재적의원의 3분의 2 이상과 국민투표 과반 이상의 동의를 동시에 요구하고 있다. 즉 국민의 동의를 얻기 위해 소요되는 의사결정비용(decision-making cost)이 상대적으로 높을 경우 요구되는 동의의 수를 줄이는 반면, 안건에 반대하는 계층이 지불해야 하는 외부비용(external cost)이 상대적으로 높을 경우에는 요구되는 동의의 수를 늘리고 있다.

이러한 제도적 안전장치에도 불구하고 브렉시트라는 현상이 필자를 걱정하게 만드는 것은 한국이 인기영합적 정치 행위로부터 자유롭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최다득표를 얻은 사안을 항상 올바르고 정당하다고 간주하며 메디슨(Madison)이 제기했던 다수의 횡포(tyranny of the majority)에 대한 우려가 사라진 정치풍토가 만연한 한국 상황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안건의 경중과 시급성에 따라 다양한 집단적 의사결정 방식을 적용해 사회적 합의를 모색해야 한다는 원칙을 상기해 영국의 브렉시트와 같은 전철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한 논의가 시급한 이유이기도 하다.

최근 20대 국회의 출범과 함께 대통령 연임제, 의원 내각제를 포함해 권력구조의 변화를 중심으로 개헌에 대한 논의가 점차 공론화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논의는 유력 정치인들의 미래 집권 가능성에 근거한 득실 여부에 국한되어 현행 집단적 의사결정 제도가 가지고 있는 맹점은 실상 간과하고 있다. 또한 영국의 브렉시트 현상은 안건에 따른 최적의 집단적 의사결정 방식이 무엇일까라는 화두를 우리에게 던지고 있다.

국회선진화법과 같이 국회의 모든 결정에 60% 이상의 동의를 요구함으로써 사회적 비용이 급증했던 것과 같이 모든 집단적 의사결정에 다수 득표를 동일하게 요구하는 방식 또한 사회적 비용을 급증시킬 수 있다. 우리가 개헌과 관련하여 정작 필요한 고민은 단순한 권력구조의 변화가 아니라 사안의 경중과 시급성에 따라 더욱 유연하게 적용시킬 수 있는 집단적 의사결정 방식이 아닐까?

글/윤상호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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